87. 천국과 지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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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천국과 지옥 (1)
2021.11.26.
태양 그룹 작은 회장의 아침 식사, E914065는 거의 숨이 넘어간 모양이었다. 자율신경에 의해 일어나는 경련이 그녀를 움찔거리게 만들고 있다.
― 세 끼 잘 챙겨 먹여라. 몸 축나지 않게.
회장이 명령했다. 좀비에게 음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 늙은 제왕에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아마 가장 먼저 그 자신이 저 크레인에 걸리게 될 테니까. 지금은 그저 시키는 대로 매일 세 명씩을 얌전히 진상하는 수밖에 없다. 중년 남자는 수화기를 든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넵, 회장님. 명심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이미 전화는 끊겼다. 뚜우― 하고 울리는 대기음을 확인한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914065, 맥박 제로. 심장 멎었습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여자가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말투로 보고한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것은 간호사가 찬 수갑과 연결되어 있던 측정기에서 보내오는 신호다. 여자의 보고가 없었다고 해도 위층의 사람들은 E914065가 언제 숨을 거두었는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
작은 회장 좀비가 여자의 피투성이 겨드랑이에서 입을 떼어내고 유리창 위쪽의 다른 먹잇감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시점, 바로 그때가 E914065의 사망 시간이다.
“먹이가 죽자마자 귀신같이 흥미를 잃는군. 정말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중년 남자는 혼잣말을 늘어놓고 나서 방독면을 쓴 다음, 크레인을 올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끼리릭―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시체를 위쪽으로 끌어 올린다. 열려 있는 천장의 해치를 노려보며 좀비가 펄쩍펄쩍 뛰지만, 이 정도 높이까지는 닿을 수 없다.
한때는 징그러우리만큼 영악하던 작은 회장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크레인에 매달려 보려는 시도도 생각해 낼 수 없을 만큼 멍청한 괴물에 불과하다. 물론 황 회장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황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다시 예전의 상태로, 야비한 머리를 핑핑 굴려 대던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 여전히 굳게 믿고 있다.
“작업 개시! 타이머 잘 보고 서둘러서 진행해!”
E914065의 시체가 완전히 끌어 올려지고 해치가 닫히자, 중년 남자가 명령했다.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사방 위쪽에는 빨간색으로 된 디지털 타이머가 깜빡거린다.
여자가 사망한 시점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으로, 지금은 9분 20초가 남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10분을 데드라인으로 설정해 둔 이 시간 역시 오로지 경험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확보한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다.
시체가 좀비로 변하는 시간을 잘못 계산했던 작업의 초창기에는 갑자기 깨어난 좀비의 공격 때문에 연구원 한 팀이 전원 몰살당하는 경우도 발생했었다.
중년 남자는 그 당시의 비디오를 직접 목도한 적이 있다. 일단 좀비로 변화하고 나면 놈들은 팔이 잘리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을 공격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몸부림을 쳐서 두 팔목을 끊어내고, 사람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꼴은 정말로 끔찍했다.
“신체 확보!”
크레인에 고정시켜 뒀던 수갑을 풀고 E914065를 묵직한 스텐 침대 위에 가죽 허리띠로 묶어 고정시킨 연구원이 외쳤다.
다음 단계는 머리에 안전망을 씌우는 것이다. 턱의 위아래에 긴 나사못을 박아 넣은 다음, 그것을 스테인리스 파이프로 만들어진 헬멧과 연결한다.
두 명의 직원이 그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은 양 손목과 발목, 그리고 팔꿈치와 무릎을 침대에 달린 고정 띠에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그 두 가지 작업을 마치고 나니, 타이머는 4분이 남았다.
“마스크 클리어!”
E914065의 얼굴 전체를 가린 헬멧을 흔들어서 단단히 고정됐는지를 확인한다. 이제 이 샘플은 턱을 벌릴 수 없고, 누군가를 깨물어 공격할 수도 없다.
헬멧의 정수리 쪽에 나 있는 둥근 구멍은 만일의 사태 때 샘플을 쉽게 파괴하기 위한 용도다. 이 구멍 안에 총구를 넣고 발사하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좀비의 뇌를 파괴할 수 있다.
타이머는 3분 30초를 막 지났지만, 여기까지만 완수해도 좀비가 가진 위험성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위이잉!
드릴을 이용하여 턱을 지나 양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헬멧의 끝부분과 늑골 사이, 그리고 스테인리스 침대를 연결하는 볼트를 박아 넣는 것이 다음 단계다.
2센티 직경의 굵은 드릴이 살과 근육, 폐를 꿰뚫는 동안에도 좀비 박테리아에 감염된 여자의 신체에서는 더 이상 큰 출혈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젤리처럼 찐득해진 피가 드릴 사이에 엉겨 붙을 뿐이다.
늑골과 골반에 각각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굵은 볼트를 넣고 침대와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으로 작업은 완료되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이다. 이제는 1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간이 완전히 지나가 버리고 난 뒤, 이 샘플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방독면을 쓴 직원들은 침대 머리맡에 얌전히 모여서서 타이머를 주시했다.
그으으으~!
E914065였던 좀비가 하얗게 변한 눈동자를 번뜩거리며 울부짖기 시작한 시각은 사망으로부터 32분 41초가 지난 시점이었다. 나사로 단단히 고정된 몸을 움직여 보려고 발버둥을 칠 때마다 침대가 가볍게 흔들린다.
아가리 역시 마찬가지다. X자로 교차된 네 개의 나사가 고정해둔 턱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놈의 포효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만을 겨우 내고 있었다.
“32분 41초……. 평균치보다 조금 늦은 편입니다.”
“사망까지 걸린 시간이랑 같이 기재해서 넘겨.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으니까. 샘플 이동시키고.”
중년 남자가 건조하게 말했다.
“네.”
직원들이 스테인리스 침대를 끌고 제한 구역의 복도로 빠져나가자, 나머지 직원들이 피범벅이 된 바닥을 물과 소독약으로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오늘 아침은 뜯어 먹힌 부위가 좋아서 청소에 용이해 다행이었다.
가끔 아래층의 작은 회장 좀비가 복부를 뜯어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쏟아져 나온 내장을 모두 정리하는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르르르…….
이동하는 동안에도 좀비는 끝없이 그릉거리며 움직이기 위해 애를 썼다.
손잡이를 밀고 가는 직원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 괴물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막연한 공포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E914065 샘플화 작업 완료했습니다.”
화상 인터폰에 대고 보고를 마치자, 연구실의 굳게 닫혔던 이중문이 열린다. 연구실 내부에는 조금 전 간호사의 뺨을 후려갈겼던 그 젊은 의사가 여러 조수들과 함께 비닐 가운을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수고했어. 이쪽으로 옮겨.”
의사는 연구소 중앙의 조명 아래를 가리켰다.
불과 40여 분 전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눴던 여자가 좀비로 변해 수술용 침대에 고정된 채 배달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젊은 의사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안함이나 가책 따위도 드러나지 않는다.
여전히 헤실거리는 미소를 보면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자아~ 어디 보자. 어이쿠, 오늘은 겨드랑이를 드셨네. 참 매일 골고루도 잡수신단 말이야.”
젊은 의사가 손바닥을 비비면서 여자의 상태를 점검한다.
사망 소요 시간과 좀비 변신 시간을 모두 꼼꼼히 훑어본 그는 E914065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지시하고, 그녀의 파일에 붙어 있던 NFC 태그를 수술용 침대에 옮겨 고정시켰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오 박사님.”
침대를 이곳까지 끌고 온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 하자, 젊은 의사가 그들을 불러 세우고 말했다.
“아, 신 차장님한테 그거 말씀드려. 샘플 중에 남자가 더 많이 필요하니까 모레 점심까지는 남자들을 고르시라고. 가능하면 나이가 젊은 순으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20대부터.”
“알겠습니다. 모레 점심까지 남자. 20대부터 저 연령순으로.”
직원들이 메모를 하고 방을 나가자 오 박사는 안경을 한 번 치켜올린 다음 연구원들에게 물었다.
“우리도 시작해 볼까? 뭘 투입할 순서였지?”
“탄저균입니다.”
“그렇군. 그럼 피하주사 먼저 시도해 보고, 5일 후까지도 경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직접 폐에 넣어보는 걸로 하지. 무균 격리실에 넣어.”
오 박사의 지시에 따라 연구원들은 스테인리스 침대를 아크릴 벽으로 둘러싸인 격리실에 집어넣었다.
오 박사가 오케이 사인을 내리자, 우주복처럼 생긴 일체형 방균복을 입고 격리실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인력들이 탄저균이 든 주사기를 집어서 좀비의 팔에 주사한다.
만약 이 세균이 효력을 발휘한다면 2~3일 내에 피부에 수포를 일으키고 내부 소화기관에 이상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오 박사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수십 마리의 좀비들에게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 심지어 독극물까지 투여했어도 놈들은 여전히 아무 이상 징후 없이 그르렁거리며 침대에서 움직여 보려고 애를 쓸 뿐이다.
좀비를 무력화시키는 세균을 찾아내는 것은 저 망나니 작은 회장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한 과제였다.
이미 백신이나 치료법이 발견된 질병의 세균을 공중에서 살포해 좀비를 모두 한 방에 죽여 버리고 치료제로 나머지 생존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태양 그룹의 영향력은 지구 전체에 미치게 된다.
만약 그것만 발견한다고 하면 황 회장도 좀비가 돼버린 후계자의 치료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구 총책임자인 그의 지위가 덩달아 확고해지리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연구 윤리 규정을 여러 차례 위반했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퇴출당한 오 박사에게는 그것이 복수의 길인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좃도 모르는 개새끼들이…….”
“네?”
윤리 위원회 늙은이들을 회상하던 오 박사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설이 새어 나오자, 곁에 서 있던 여자 연구원이 깜짝 놀라 묻는다. 오 박사는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 후후후, 네 욕 한 거 아니야. 놀라지 마.”
오 박사가 다시 신호를 보내자, 격리실 내부 인력들은 좀비를 침대째 들어서 투명한 관 속에 옮겨 넣고 밀폐 뚜껑을 닫았다.
태양 그룹 제1연구실에서 투약 실험한 87번째 좀비 E914065는 이제 살균 과정을 거쳐 보관실로 옮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