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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빈집털이 (5) (86/449)


86. 빈집털이 (5)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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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30분이 되자 탁상 위의 알람이 울렸다. 수용소처럼 꽉 짜인 이 보호 시설의 하루가 시작된다.

간호사는 무거운 머리를 억지로 끌어 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밤늦게까지 여러 가지를 고민하느라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했다.

가장 첫 번째 일정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다. 처음 이 시설에 와서 샤워를 할 때에는 온몸에 따뜻한 물방울이 닿는 그 감촉이 너무 좋아 은혜롭다고까지 느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의혹이 든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청결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걸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가만히 서서 간호사는 한참을 생각했다.

“어휴~ 왜 이렇게 한참 걸려? 여자들끼리만 있는데 어지간히 꼼꼼히 씻네. 누가 보면 신랑님 만나러 나가려고 꽃단장하는 줄 알겠어. 호호호.”

간호사가 대충 물기를 닦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룸메이트 여자가 타박을 주며 깔깔댄다.

저런 여자에게 밥을 먹지 말라고 권하거나 같이 도망치는 건 무리야…….

간호사는 다른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여기 밥이 맛있어서 그런가? 살이 좀 붙은 것 같아.”

“왜 아니겠어요. 저는 정말 나흘 동안 쫄쫄 굶다시피 했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먹는 게 뭐든지 다 꿀맛이네요.”

“정말이야. 여기 옷이 헐렁한 원피스라서 다행이지, 바지였으면 숨도 못 쉴 뻔했다니까. 하하하!”

오전 7시, 아침 식사 시간. 좁은 식당에 모여 앉은 열 명의 여자는 40분 동안 주어진 식사 시간 동안 마음껏 수다를 떨며 즐기고 있다.

혼자 남겨진 아이 엄마도 맛나게 음식을 먹으며 수다에 여념이 없다. 아이와 헤어지게 된 엄마들이 흔히 보이는 걱정과 상실감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 저녁을 거른 터라 간호사의 배도 어지간히 고프지만, 그 글씨를 보고 난 후에는 이곳 음식을 입에 댈 수 없게 돼버렸다.

이 약이 섞인 음식을 먹고, 대체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를 만큼 멍해져 있고 싶지는 않다. 간호사는 숟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거리기만 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혼자 달아나는 건 분명 어려울 게 틀림없다. 조력자를 구해야 한다. 그녀와 비슷한 정도의 힘과 의지를 가진 조력자라면 더 좋을 것이다.

“아니, 자기! 이거 안 먹을 거야? 남길 거면 내가 먹는다?”

그녀의 후식을 눈독 들이고 있던 파마머리가 냉큼 푸딩을 집어 가려 할 때, 간호사는 얼른 푸딩 위에 손을 대고 막았다. 파마머리는 푸딩에, 간호사는 그 파마머리의 룸메이트에 관심이 있었다.

파마머리의 룸메이트는 이제 갓 스물 정도 된 어린 여자였고, 무슨 운동을 했는지 몰라도 꽤나 단단해 보이는 체격의 소유자였다. 간호사가 파마머리에게 말했다.

“나도 이거 먹으려고 했었는데, 그럼 바꿔요.”

“뭐랑 바꿔? 난 내 밥 다 먹었는데.”

“그냥 점심 먹을 때까지 방만 바꿔줘요.”

“방 바꾸지 말라고 하던데……. 그리고 방은 왜 바꾼대? 어머, 혹시 이 친구한테 관심 있어? 호호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 저 언니한테 운동 좀 배우려고 그러는 거야. 언니, 운동했었죠?”

간호사의 질문에 어린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헬스클럽 트레이너였어요.”

“잘됐다. 나 여기서 꼼짝 않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하고 소화도 안 돼.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 몇 개만 좀 알려줘요. 나는 그런 거 한 번도 안 해봤거든.”

“그러세요.”

어린 여자가 순순히 승낙을 해주자, 망설이던 파마머리도 한나절 동안의 방 사용권과 푸딩의 교환을 받아들였다.

파마머리가 탐욕스럽게 입 안으로 푸딩을 털어 넣는 동안 간호사는 어린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며 무슨 말로 설득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의 계획은 곧 아무 소용없는 일이 돼버렸다.

“심정현 씨?”

식당 문을 나설 때, 기다리고 있던 직원 하나가 파일을 흔들면서 간호사의 이름을 부른다. 긴장하고 있던 간호사는 움찔 놀라며 대답했다.

“네?”

“잠시 진료실로 좀 와주시겠어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왜요? 여기서 말해봐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린다. 주변의 다른 여자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직원은 파일을 넘기더니 냉담하게 말했다.

“최근에 성관계하신 게 언제죠?”

“그런 것도 알아야 해요? 사생활이잖아요?”

“성관계는 그렇죠. 하지만 성병은 다른 분들에게도 전염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저희가 관여해야 돼요. 못 느끼셨어요? 이 정도면 평소에도 굉장히 간지럽고 따끔거렸을 텐데.”

어머, 어머, 성병이래. 뭐하던 애야?

주변의 여자들이 소곤거리고 킥킥대는 소리가 들린다. 간호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직원을 노려보았다. 직원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파일을 덮으며 빤히 마주 보고 말했다.

“저더러 여기서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망신스러워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간호사는 직원이 이끄는 대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의심이 가는 건 민구였다. 제대로 씻지 않고 관계를 가진 게 잘못이었을까?

젠장, 이런 이야기가 고스란히 귀에 들어갔으니 그 헬스 트레이너 여자와 가까워지는 건 쉽지 않겠는걸…….

간호사는 한숨을 쉬면서도 복도의 구조를 파악하고 싶은 욕심에 열심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엘리베이터는 직원들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가져다 대야지만 움직인다.

나중에 탈출할 때에는 네년을 때려눕히고 그 목걸이를 빼앗아주마.

간호사는 여자 직원의 얄미운 뒤통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물론 목걸이보다 더 큰 문제는 복도 끝마다 지키고 선 건장한 경비원들이다.

“들어가세요.”

첫날 의료 검진을 받았던 방문을 열고 직원이 간호사에게 손짓을 한다. 방 안쪽에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 의사가 가볍게 미소를 짓고 앉아 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그녀의 파일이 펼쳐져 있다.

“어서 오세요. 거기 앉으십시오. 갑자기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놀라셨죠?”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의자에 앉은 간호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의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티고 선 두 명의 남자간호사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달칵, 그녀의 등 뒤로 문이 닫힌다.

“이해합니다. 성병이란 게 다 그렇죠. 하지만 치료를 받으시면 금방 완쾌됩니다. 어디 보자, ‘가너리어’시네요. 예전이라면 고생 좀 하셨겠지만, 요즘은 다 약이 좋아서 금방 완쾌됩니다. 주사제 처방해 드릴게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간호사는 갑자기 의심이 들어 의사가 적고 있던 처방전을 확 잡아챘다. 처방전에 적힌 글씨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당황한 의사가 묻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세요! 본다고 알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제 몸에 무슨 약을 놓는지 보는 것도 문제예요? 저도 간호사였지만, 이런 항생제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X―1 10밀리그램? 이게 대체 뭐예요?”

간호사였다는 말에 의사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껄껄대며 웃었다.

“심정현 씨, 간호사였어? 그래서 뭐? 아는 체하면 내가 막 벌벌 떨 줄 알았나? 하하하! 그렇게 약은 사람이 임질에는 왜 걸렸어?”

“개소리 집어치워! 임질이라는 것도 순 다 거짓말이었잖아! 이게 대체 무슨 약 처방이냐고!”

“그거야 맞아보면 알지.”

안경 너머 의사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고 느낀 순간, 곁에 서 있던 남자들이 간호사의 양어깨를 짓누르고 팔을 잡아 제압했다. 누르는 힘이 너무 강해서 꼼짝도 할 수 없어진 간호사는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질렀다.

“놔! 이 개새끼들아! 이 지저분한 새끼들! 너희가 무슨 수작 부리려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아? 놔!”

의사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쭉 켜고 나서 천천히 책상을 돌아 걸어왔다.

“정말? 정말 우리가 뭘 하려는지 알아? 아닐 텐데?”

의사가 빙글거리자, 그녀를 제압하고 있던 남자들도 낄낄댄다.

“그래! 이 개새끼야! 이 버러지만도 못한…….”

쫙―!

의사가 날린 따귀가 너무 강력해서 그녀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의사가 말했다.

“소리 질러봐야 귀만 아프지, 저 문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그러니까 조용히 말해. 그리고 욕은 좀 자제하고. 배울 만큼 배운 년이…….”

“야이, 씨발 새…….”

쫘악―

두 번째 따귀가 같은 자리를 때린다. 간호사의 입에서는 피가,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번 해보자는 거야? 환영해. 난 그런 거 좋아해. 어디, 또 욕해보셔.”

간호사는 말없이 의사를 노려보았다. 흥분한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의사는 또 낄낄 웃었다.

“하하, 그것 봐. 배짱도 없으면서 괜히 왜 덤벼서 매를 버느냐고. 가만히 있어야 너도 편해. 알겠어, 심정현?”

의사가 책상 위의 전화기를 누르자, 그녀가 들어왔던 것과 반대 방향의 문이 열리며 여자 직원이 권총형 주사기를 가지고 들어온다.

주사기 위에 부착된 약병은 벌써 반쯤 비워져 있다. 이미 그녀보다 먼저 누군가가 맞았다는 이야기다.

저건 누구에게 사용했던 걸까?

머리가 뒤로 젖혀진 채 간호사는 겁에 질린 눈으로 주사기를 바라보았다.

사라진 사람들, 아빠와 함께 가족실로 옮겼다던 아이…….

그녀가 정답을 찾았다고 느꼈을 때, 이미 주사기 바늘은 그녀의 목을 뚫고 들어와 문제의 약물을 투여했다. 따끔함에 이어 약이 혈관으로 퍼지면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수면제일까 싶었지만, 몽롱하지는 않다.

“뭘 놓은 거야, 이 개새끼야!”

간호사는 한 번 더 욕설을 퍼부으며 대들어봤다.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던 의사는 여전히 재미있다는 표정을 유지하며 빈정거렸다.

“이제 네가 알 수도 있을 텐데, 둔한 년일세. 어이, 놔줘 봐.”

그녀의 양팔을 꽉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자마자 간호사는 어떻게든 달아나기 위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대체…….

간호사는 자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간신히 움직이는 것은 그녀의 두 눈동자뿐이다. 그 외에는 전혀…… 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물어보려 해도 턱이 벌어지지 않는다. 닫혀 있는 입술 사이로 혀가 입천장을 친다.

“으으으…….”

두려움이 온몸을 휩쌌다. 간호사의 입에서는 신음 같은 울음소리만이 간신히 새어 나왔다. 의사가 양 손바닥을 비비며 빙글댔다.

“신기하지 않니? 내가 개발했어. 정신은 멀쩡한데 윗입술 아래로는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지. 혹시 그러면 통각도 마비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건 또 아니라 이 말씀이야.”

의사가 손을 뻗어 간호사의 허벅지를 꽉 움켜쥐며 꼬집는다. 간호사는 피멍이 들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의사가 손짓을 하자 곁에 섰던 남자들은 그녀의 헐렁한 원피스를 벗겨내고 커다란 수갑을 가져와 두 손에 채웠다. 그들이 작업하는 동안 의사는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했다.

“너는 못 움직이는데 우리는 네 몸을 마음대로 조종하니까 웃기지? 근육이 경직된 게 아니라서 그래. 이건 독극물이나 그런 게 아니라 뇌만 잠깐 속이는 거거든. 아, 옷 벗기는 건 신경 쓰지 마, 네까짓 거 몸뚱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수갑이 단단히 채워지자 남자들은 그녀를 바퀴 달린 캐리어 위에 옮겨 싣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의사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잘 가라는 인사를 한다.

‘이러지 마.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제발, 이러지 말라고!’

그녀의 머릿속에 간절한 애원이 계속 떠오르지만, 소리로 전달할 방법은 없다. 그저 ‘으으으’ 하는 간절한 신음만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를 태운 캐리어는 복도를 지나 스테인리스로 된 커다란 방에 도착했다.

방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하고, 사방의 구석에는 물청소를 용이하게 해주는 긴 배수구가 있다.

방의 구석에 배치된 기묘한 모양의 도구와 수술 기구들이 신경을 긁는다. 방의 끝에 사선으로 붙은 유리창에서는 한 층 아래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E914065 전달합니다.”

그녀를 싣고 온 남자들이 보고하자, 방을 지키고 있던 대여섯의 사람들이 간호사의 얼굴과 파일의 사진을 대조해 보고 나서 사인펜으로 줄을 그으며 대답했다.

“E914065 전달받았습니다.”

그들은 방독면과 방균복, 수술용 장갑까지 끼고 있다. 남자들이 돌아가자 방독면을 쓴 사람들은 수갑이 채워진 그녀의 팔을 들어 올려 방 가운데에 있는 크레인에 걸었다.

철컹!

쇠사슬이 울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두 팔을 위로 한 채 쇠사슬에 매여 대롱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실리콘으로 된 두툼한 패드를 쇠사슬과 수갑 위에 씌우는 것으로 준비는 대강 마쳐졌다.

“으으으으…… 끄으으!”

간호사는 모깃소리 같은 신음을 내는 것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을 했다. 그러나 방독면을 쓴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준비를 마치고 기계 장치 곁으로 가서 레버를 조작했다.

철컹~!

기이잉!

그녀의 발아래 해치가 양옆으로 열린다. 바로 아래층과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가로세로 1미터 정도의 커다란 구멍 사이로 아래층의 방이 보인다. 그곳 역시 온통 스테인리스로 둘러싸여 있다.

위이이이~

쇠사슬이 천천히 그녀를 아래로 내린다. 공포 때문에 그녀의 동공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아! 잠깐만! 에이, 이런 건 다 정리를 하고 배달해 줘야지.”

방독면을 쓴 남자 하나가 손을 흔들자 다른 사람이 레버를 멈추었다. 남자는 간호사에게 다가와 목덜미에서 가는 은 목걸이를 뜯어냈다.

“이빨을 다치면 안 되니까.”

남자가 은 목걸이를 흔들면서 다시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기이잉―

그녀의 몸은 다시 아래로 천천히 내려졌다. 팔이 끊어질 듯 아프다. 그러나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후각으로 파고드는 지독한 악취였다.

스르륵.

건너편의 방문이 열린다. 정신병원의 안전 격리실처럼 사방이 흰 쿠션으로 덮인 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튀어나왔다.

그롸아아악!

이미 들어봤던, 그 소름 끼치는 괴성이 울릴 때, 간호사는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그 힘든 과정을 거쳐 좀비들로부터 구해낸 사람들을 다시 좀비의 먹이로 던진단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좀비가 뛰어오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 속에 담긴다. 비록 피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좀비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어지간히 고급 양복을 입고 있다.

콰드득!

좀비의 이빨이 그녀의 겨드랑이를 물어뜯는다.

끄아아악! 너무도 큰 고통이 전해지지만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간호사는 제발 기절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니면 어서 숨이라도 거둘 수 있기를…….

그런 기도에도 불구하고 좀비의 이빨은 그녀의 살을 뜯어내고 피를 철철 흐르게 만들며 통증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꽈드득!

그롸아아아악!

때르르릉!

위층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들이 기울어진 유리를 통해 E914065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책임자인 중년 남자는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예, 회장님.”

중년 남자는 허리를 90도에 가깝게 숙인 채 전화를 받으며 인사를 했다.

― 작은 회장은 어떻게 하고 있나?

수화기 너머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묻는다. 중년 남자는 E914065의 살을 뜯고 있는 좀비를 힐끗 돌아보고 나서 대답했다.

“예, 회장님. 작은 회장님 지금 막 아침 식사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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