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아포칼립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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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아포칼립스 (6)
2021.11.20.
소위는 씩 웃으면서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슬리퍼입니다. 사이즈가 대충 비슷한 걸 찾아서 가져왔습니다. 신어보세요. 새 물건이 아니라 좀 그렇지만, 암만 그래도 맨발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이걸 주시려고 일부러……. 이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하죠?”
적잖은 감동과 함께 부담감이 느껴져서 임수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군인은 해맑은 얼굴로 웃을 뿐이다.
“하하, 보답이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대민 지원이 제가 맡은 일이고,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건데요. 신어보세요. 맞습니까?”
임수정은 슬리퍼를 바닥에 놓고 발을 넣었다. 약간 헐렁한 듯 맞는다. 사실 이 정도 호의를 받았으니 사이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 편하게 잘 맞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와아~ 언니, 정말 잘됐어요, 감사합니다!”
테라는 덩달아 기뻐하며 소위에게 인사를 한다.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다음에도 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기 지원 센터로 오시면 됩니다. 그럼…….”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임수정과 테라 때문에 당황한 듯, 소위는 진땀을 흘리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유난히 믿음직스러운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임수정은 생각했다.
‘이 지경이 되었어도 세상이 완전히 끝나 버린 것은 아닐지도 몰라…….’
***
좀비들의 습격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삼척 발전소 방어 부대에서는 화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교대로 나누어 취침을 한다.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오전 5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여덟 시간의 취침이 보장된다고 하면 꿈같은 이야기겠지만, 좀비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기상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네댓 시간에 불과하다.
햇살이 가득한 1시부터 9시까지의 오후 취침조를 선호하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지만, 사흘에 한 번씩 취침 시간대를 바꾸기 때문에 특별히 불만이 일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들 워낙 지쳐 있었기 때문에 막상 대학원 건물을 빌려 쓰는 임시 생활관 내에 들어가기만 하면 커튼 사이로 비쳐 드는 빛 속에서도 병사들은 금방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날 진우의 분대는 오후 취침조였다.
“응?”
원자력 대학원 건물, 위민관 202호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던 진우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것은 오후 네 시가 막 지난 시점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고 있는 진우를 향해, 불침번을 보던 병사들이 물었다.
“왜 그래, 인마?”
“저…… 혹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습니까?”
긴장해서 묻는 진우에게 불침번들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새끼…… 악몽 꿨나 보네……. 조용히 하고 얼른 다시 누워. 다른 사람까지 깬다.”
“그래. 뭐, 무서워도 어쩌겠냐? 좋은 생각하고 빨리 자라, 이병.”
그런가……. 뭔가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꿈이었나…….
진우는 주위를 한 번 돌아보고 나서 조용히 베개에 머리를 댔다. 그래도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끄으응~ 끄으응~
천장에 달린 시스템 에어컨이 돌며 시원한 바람을 내뿜고 있는데도 야전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잠꼬대를 내뱉고 있다.
그토록 끔찍한 매일을 보내고 있으니 악몽을 꾸지 않는 병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암~ 뭐야, 쟤들?”
“아마 좀비 나오는 꿈 꿨나 봅니다.”
203호 입구에 서서 따분하게 하품을 하고 버티던 불침번들도 202호에서 주고받는 대화에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기웃거린다.
얼른 시간이 지나야 교대를 하고 나도 좀 자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찌뿌듯한 허리를 조금씩 펴던 때,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응?”
203호 불침번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내무반 내 서열 2위인 윤 상병이 벌떡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윤 상병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아파서 깨셨습니까?”
두 명의 불침번 중 일병 계급장을 단 쪽이 물었다. 철조망에 걸려 찢어졌다던 윤 상병의 허벅지에 눈길이 갔다. 윤 상병은 막아서는 두 병사를 귀찮다는 듯 밀쳤다.
“아, 씨발. 체했나? 우웁, 좀 토하고 와야 할 것 같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일병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윤 상병을 부축해서 화장실까지 데려갔다.
“욱, 우욱, 우웨에엑, 아으~ 으, 우웨엑.”
변기를 보자마자 곧바로 쏟아내기 시작한 윤 상병의 토사물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풍겨 올라왔다. 그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 동행한 일병은 등을 돌리고 몰래 코를 막았다.
젠장, 문이라도 좀 닫고 토하지…….
일병이 속으로 욕을 퍼붓는 동안, 다른 내무반에서도 병사 하나가 불침번을 대동하고 화장실을 찾아왔다.
“윽!”
악취에 놀란 그들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코를 가린다. 일병은 자기가 괜히 창피한 것 같아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았을 때, 화장실 안쪽에서 그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롸아악!
“이런……!”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일병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속았다!’였다.
속았다……. 이 개자식이 아까의 교전에서 좀비에게 물어 뜯겨놓고 엉뚱한 소리를 했구나. 왜 다른 사람들이 몰랐을까…….
일병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빠르게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소변을 보려던 이병이 팔뚝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윤 상병은 하얗게 변한 눈을 번뜩이며 주둥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그 곁에 서 있던 옆 내무반 불침번을 덮쳤다.
“으와악!”
불침번이 워커 발로 윤 상병의 배를 후려 찼지만, 힘이 모자랐다. 윤 상병은 불침번을 깔아뭉개며 아가리를 쫙쫙 벌린다.
깔려 있는 불침번은 두 손으로 윤 상병의 목을 밀고 버티면서 소리를 질렀다.
“야! 씨발, 이것 좀!”
공포심에 얼어붙어 있던 일병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허겁지겁 찾았다. 대걸레! 일병은 손잡이를 바투 잡고 윤 상병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퍼억! 퍼억!
두 차례나 머리통을 맞고도 여전히 윤 상병은 밑에 깔린 불침번의 광대뼈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야이, 개새끼야―! 다급한 불침번이 필사적으로 외친다.
그제야 일병은 자신의 공격이 왜 효과가 없는지 깨달았다. 너덜너덜한 걸레가 충격을 반 이하로 줄여준 것이다.
“뭐야? 응? 뭐야? 어! 이런 씨바알~!”
일병이 대걸레의 술 부분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고성과 욕설에 놀란 병사들이 하나둘씩 내무반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다가 기겁을 한다.
“비상! 비사앙!”
누군가 벽을 두드리며 모든 병사들을 깨웠다. 하지만 그런 소동들이 좀비 아래 깔려 있는 불침번을 구해주지는 못한다. 어느새 윤 상병은 불침번의 얼굴 바로 앞까지 접근해 있다.
끄으으, 용을 쓰며 밀어내는 불침번의 손톱이 좀비로 변한 윤 상병의 살갗을 벗겨낼수록,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일병은 대걸레를 집어 던지고 좀비의 측면으로 돌아가 목을 움켜 감았다.
“놔, 이 씨발 놈아!”
아래에 깔려 있던 불침번은 윤 상병의 중심이 뒤로 들린 틈을 놓치지 않고 배를 걷어차며 간신히 빠져나왔다.
쿠웅!
밀쳐진 윤 상병이 뒤로 넘어갔고, 덕분에 일병은 좀비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깔린 형국이 되었다.
그롸아아악!
윤 상병이 거세게 몸부림을 칠수록 일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목을 꽉 두르고 있는 자신의 팔에 금방이라도 좀비의 이빨이 닿을 것 같다. 팔에 힘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진다면…… 그 순간, 자신은 죽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 상병은 여전히 놀라운 힘으로 버둥거린다.
“이…… 이것 어떻게…….”
자신이 구해준 불침번을 향해 일병이 애원한다. 불침번도 돕고는 싶지만, 어떻게 공격해야 좋을지 좀처럼 방법을 찾기 어렵다.
“머리 치워!”
총알도 없는 빈총을 들고 달려 나온 병사들이 바닥에 깔린 일병에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일병이 미처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총을 거꾸로 잡고 휘둘러 윤 상병의 얼굴을 박살 냈다.
콰작―!
개머리판에 맞은 윤 상병의 코뼈가 주저앉고 이가 부러진다.
“한 번 더!”
병사가 총을 높이 치켜들었을 때, 윤 상병의 억센 손이 그의 다리를 잡아당긴다. 병사는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총으로 일병의 얼굴을 때렸다.
으아아!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일병이 눈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른다. 그 틈에 일병의 팔에서 풀려난 윤 상병은 넘어져 있던 병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딜! 이 개새끼야!”
윤 상병의 머리통을 향해 병사들의 공격이 쏟아져 내린다.
콰직! 콱! 콱!
주변을 빙 둘러서 있던 병사들이 계속해서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대자 마침내 윤 상병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통이 박살 난 채 쓰러져 버렸다.
“후우~ 후우~”
윤 상병이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진 이후에도 공포심 때문에 한참 동안 더 머리통을 깨부수던 병사들은, 마침내 조금 진정이 되어 숨을 몰아쉬며 놈의 시체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개머리판마다 윤 상병의 피와 뇌수가 튀어 있다.
“야, 너 눈 괜찮아? 보여?”
순식간에 눈두덩이 퉁퉁 부어올라 보라색으로 변한 일병에게 병사들이 묻는다.
“아, 예…… 보이긴 합니다. 아으~”
“그만하길 다행이다. 제길, 진짜 먹물을 뽑을 뻔했네. 어디…… 너는?”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불침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도 괜찮습니다. 다행히 물리기 직전에 저 일병이 도와줘서 살았지 말입니다.”
웃으며 말하는 불침번의 뺨에는 한 줄기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거칠게 뜯겨 나간 살점…….
이건 누가 봐도 물린 상처였다.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물렸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씨발…… 야, 그 자리에 앉아.”
병사들은 상황을 저주하면서 굳은 표정으로 불침번을 향해 명령했다. 불침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당황해하며 묻는다.
“왜…… 왜들 그러십니까? 저, 저는 괜찮습…….”
자기 얼굴에서 다른 병사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더듬던 불침번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자기 손바닥에 묻어 나온 피와 따끔한 얼굴의 상처를 느꼈기 때문이다.
“어…… 어, 나 이거, 저…… 저, 저 이제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까? 예? 으흐흑.”
불침번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오열한다. 전투 도중도 아니고, 내무반에서 휴식하던 도중에 이런 상황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어느새 주변에는 수십, 수백의 병사들이 모여들어 그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있다.
“야이, 씨발! 이 개새끼! 이 개새끼 때문에! 내가 왜!”
불침번은 이미 죽어 자빠져 있는 윤 상병의 다리를 마구 후려치며 울부짖었다.
“야, 오 일병! 진정해! 안 변할지도 모르잖아!”
그와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고참들이 불침번을 진정시켜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들도 이미 자신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오 일병은 엎드려서 통곡을 해 댔다.
“뭐야? 왜 이 난리야? 비켜서, 이 새끼들아!”
당직병들을 거느리고 달려온 당직사관이 병사들을 헤치며 호통을 친다.
얼굴이 찢긴 채 울부짖고 있는 일병, 군복을 입은 채 대가리가 터져 죽은 좀비, 좀비의 허벅지에는 아직도 피가 맺힌 상처가 있다…….
상황을 목도하고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당직사관이 소속 분대장의 뺨을 후려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이 새끼야, 외상자 확실히 보고하라고 했지! 이런 등신 같은 새끼!”
분대장의 배를 걷어차 넘어뜨려 버린 당직사관은 허리에 두 손을 짚은 채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야! 다들 자기 생활관으로 돌아가. 그리고 너, 화장실로 가서 일단 물로 좀 씻어봐. 내가 볼 땐 물린 게 아닌 거 같다.”
“저…… 정말입니까?”
눈물과 콧물, 피로 범벅이 된 오 일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래, 인마. 쇠붙이나 뭐에 뜯긴 모양인데. 얼른 씻어.”
누가 들어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간절했던 오 일병만은 당직사관의 말을 믿었다.
그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일으켜 아직도 악취가 진동하는 화장실 안으로 걸어가자, 당직사관이 당직병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당직병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권총집을 풀며 오 일병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화장실 문을 닫았다.
그곳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전우 살해.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 중 감히 그 누구도 말려보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만큼 좀비는 두렵고 끔찍한 존재였다. 변하기를 기다렸다가 확인을 마치고 손을 쓰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타앙! 탕! 탕!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을 깨고 화장실 문 안쪽에서 총소리가 울렸을 때, 병사들은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떨궜다.
조금만 빨리 도왔더라면…… 하는 자책부터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실로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그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흑! 흐으윽!”
누군가 소리 죽여 울음을 터뜨리자, 몇몇 병사들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야! 너, 너, 너, 남아서 여기 치우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생활관으로 돌아간다! 빨리!”
당직사관이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린다. 병사들은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과연 그렇게 처리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윤 상병에게 맨 처음 팔을 물렸던 병사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 있었다.
물어뜯기는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했던 일병조차도 문제의 그 이병에 관한 일을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새끼들…….”
건물 밖으로 나와 눈에 덜 띄는 구석으로 걸어간 당직사관은 분을 채 삭이지 못한 듯 담배에 불을 붙이며 씩씩거렸다. 조금 전 사람의 머리통을 날려야 했던 당직병들도 기분이 더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건 단순히 좀비를 사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들 말이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자, 당직사관이 힘없이 말했다.
“어이, 너희도 속 터질 텐데, 한 대씩 피워라. 계급장 생각하지 말고…….”
빈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당직사관은 직접 담배를 물리고 불까지 붙여줬다.
“후우우~”
그들 셋은 조용히 담배를 빨아댔다. 다들 소주 한 잔이 너무도 그리운 심정이었다. 그때, 당직병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았다.
“어라?”
“왜 그래?”
허리를 굽히고 핏자국을 쫓는 당직병에게 당직사관이 물었다.
“이거 보십시오. 뭐가 좀 이상합니다.”
그의 말처럼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들이 건물 뒤편으로 이어져 있다.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핏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에어컨 실외기는 웅웅― 울리면서 청각을 마비시키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먼지 가득한 냄새는 다른 감각마저 흐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당직사관은 권총을 꺼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롸아아아―
자판기 사이에 숨어 있던 좀비는 당직사관을 향해 번개같이 달려들었고, 그의 총알은 허공을 갈랐다.
콰드득!
좀비의 이빨이 당직사관의 경동맥을 물어뜯자,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끄으으윽, 당직사관이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지만, 좀비는 여전히 그의 목에서 이빨을 빼지 않고 더 깊숙하게 박아 넣는다.
찌지직, 당직사관의 목이 찢겨 나간다.
타앙! 탕! 탕! 탕!
당황한 당직병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발사한 총알은 좀비의 등과 당직사관의 얼굴에 맞았다.
눈이 관통당한 당직사관은 즉사했고, 첫 번째 먹이가 숨을 거두자 좀비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당직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타앙!
당직병들은 열심히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좀처럼 머리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면대에 얼굴을 박고 있던 일병을 뒤에서 쏠 때보다 훨씬 더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으아악! 좀비를 밀쳐 내려다가 손가락을 잘린 당직병이 비명을 지르며 내무반 안쪽으로 뛰어 들어간다. 마지막 남은 당직병은 부들거리는 두 손으로 권총을 꽉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빈 약실을 때리는 소리에 병사의 가슴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와아악―
좀비는 어느새 그를 깔고 앉아 어깨를 물어뜯고 있다.
왜? 왜 총알이 없지?
병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총알이 더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좀비의 이빨이 핏줄을 찢자 뜨거운 피가 솟아오른다. 지독한 고통을 지나 의식이 가물거리는 속에서야 비로소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화장실에서의 처형…… 그때 사용한 세 발의 탄환…….
“커어억!”
마침내 병사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숨을 거뒀다. 크게 떠진 채 멈춰 버린 그의 동공에 내무반 건물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좀비의 뒷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