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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아포칼립스 (5) (80/449)


80. 아포칼립스 (5)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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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을 더 던지는 동안에도 제니의 볼라는 거의 같은 위치에 맞고 빠르게 얽혔다. 회전하는 돌에 맞으며 나무의 껍질이 파여 나간다. 기분이 좋아진 제니가 손뼉을 쫙! 치며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다리를 거는 거예요?”

“음, 맞아. 뛰어오는 놈 종아리 부근에 던지면 줄이 엉키면서 자빠지는 거지. 운이 좋으면 돌에 맞아서 뼈가 부러질 수도 있고.”

“근데 이 장갑은 왜 씌워놓은 거예요?”

“아…… 그건 돌끼리 서로 부딪치면 깨질 수도 있으니까 충격을 줄이려고. 안에다가 청테이프도 말아놨으니까 어지간해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차라리 목을 노려보면 어떨까요?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고.”

제니가 풀어 온 볼라를 쉬지 않고 되던지며 묻는다. 신통방통하게도 이번엔 정말 사람의 머리 높이에 맞혔다.

“사람이라면 기절을 하든가 아파서 쓰러지겠지만, 괴물들은 그 정도로 안 돼. 이건 싸워서 죽이라는 무기가 아니라, 네가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발을 묶어놓으려는 거니까. 그렇게 자빠뜨리기만 해도 보안관을 훨씬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거고.”

대답 없이 한 번 더 볼라를 던져 명중시킨 제니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자, 이제 그럼 오빠가 한번 뛰어와 봐요. 내가 맞힐게.”

깜짝 놀란 유빈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가만히 쳐다보자, 제니가 등을 떠민다.

“빨리요. 연습을 해야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죠. 실감도 나게 좀비처럼 우에에~ 하고 뛰어오세요.”

“아니, 아니…… 큰일 나. 그거 정말 무기라고. 그리고 나…… 지금 다리도 이 모양인데…….”

유빈이 정색을 하자 제니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렇게 자꾸 속아 넘어가니까 놀리죠. 후후, 고마워요, 오빠! 보답으로 내가 뭐해줄까요? 뽀뽀?”

바짝 들이대는 제니의 얼굴 때문인지, 순진한 사춘기 소년도 아니면서 고작 뽀뽀라는 단어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너 바보냐? 놀리는 걸 빤히 알면서 뭘 두근거리고 그래…….

그럼에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유빈은 어깨를 감싸는 제니를 뿌리쳤다.

“어휴, 그만 좀 놀려~! 너 왜 자꾸 나 괴롭혀어~”

“어, 괴롭히는 거 아닌데? 자, 이러면 믿어요?”

제니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다.

아아…….

유빈은 그날 처음 보았다, 말로만 들었던 악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악마는 일주일째 화장을 안 하고 있어도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입술 주변에서 은은한 복숭아 향기가 풍겨 나온다. 그리고 풍성한 갈색 머리로 심장을 휘감아서 오뚝한 콧날로 후벼 판다.

눈을 감고 있는 제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자, 유빈의 가슴속에서도 뭔가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매일 죽음의 공포와 맞서는, 건강한 이십 대 남자에게 그건 너무 큰 유혹이었다.

하하! 이 녀석, 장난이 너무 심한데, 라고 대응해야 멋지다는 건 알지만, 저 붉은 입술을 갖고 싶은 욕망이 유빈의 혀를 꼼짝 못 하게 얼려놓았다.

놀리는 걸까, 아니면 진짜 허락해 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왜? 연예인들에게 이 정도는 보통인 걸까?

유빈의 복잡한 머릿속은 터지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제니가 눈을 감은 시점에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영원히 멈춰 버린 것처럼도 느껴진다.

“후~”

유빈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머리통을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을 때,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돌아온 보안관이 산 위쪽에서 외친다.

“제니야, 유빈아! 갔다 왔어!”

“어, 보안관 오빠! 이거 봐요! 유빈 오빠가 나한테 무기 만들어줬어요!”

범죄의 현장이라도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빨개진 유빈과 달리, 제니는 곧바로 돌아서서 활짝 웃으며 볼라를 들어 보인다.

“……바보.”

장난스럽게 얼굴을 찡그린 제니가 손가락으로 유빈의 어깨를 쿡, 찌르며 작게 속삭인 뒤, 곧바로 표정을 바꿔 환하게 웃으며 보안관 일행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어어! 올라오지 마! 그 주변에 함정 많으니까 조심해!”

지쳐 있는 삼식이나 신입과 달리, 서둘러 언덕을 내려오며 외치는 보안관의 목소리에서는 반가움에서 얻은 에너지가 뚝뚝 묻어난다.

제니가 보안관 일행에게 볼라 시범을 보이며 박수를 받고 있는 동안, 유빈은 목 뒤까지 흠뻑 적신 땀을 씻어내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큼, 큼, 어땠어? 뒷산 올라가 보니까, 뭐 좀 건질 게 있었어?”

“음, 뭐…… 그럭저럭.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떤 거부터 들을래?”

“좋은 소식요.”

호기심이 발동한 삼식이에게 볼라를 넘겨준 제니가 재빨리 고른다. 보안관이 대답했다.

“좋은 소식은 뭐냐면…… 저 위에 약수터가 꽤 많더라고. 이제 적어도 물이 없어서 죽지는 않을 것 같아.”

약수터라는 말을 들은 제니가 눈을 반짝거린다. 유빈이 물었다.

“그럼 나쁜 소식은 뭐야?”

에…… 보안관이 말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사방 어디를 돌아봐도 번화가에 있는 것보다 좀비들이 더 적은 곳은 없다는 것. 달아날 구멍이 안 보이더라. 그리고…… 산으로 가려져 있어서 눈에는 안 보이지만, 좀비들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모여 있다는 거.”

보안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유빈은 자꾸 조금 전의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사실 이렇다 할 사건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쁜 일은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니와 나눴던 대화를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다.

비밀을 품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보안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이 든다.

그건 오랜 기간 동안 이 친구들을 알고 지내면서 아직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직도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유빈은 생각했다. 이 이상은 제니와 비밀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

“저기는 뭔데 사람이 저렇게 모여 있지?”

3루 쪽 외야석이 웅성거리는 걸 보며 임수정이 물었다.

쉘터 내 규칙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소란을 피우는 걸 금지하고 있어서 그런 북적임이 더 눈에 확 띈다. 근처에 경비병들이 있는데도 아무런 제지가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묵인해 주는 모양이다.

“저도 어제 들은 이야긴데…… 저기가 시장이래요.”

테라가 대답해 준다. 임수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시장? 하하, 아니, 뭘 팔아? 가진 게 있어야 팔 것도 있는 거지.”

“그냥, 이것저것 서로 필요한 게 다르니까 저렇게들 하나 봐요. 왜, 전에 제가 이야기했었잖아요. 콘돔이랑 건빵이랑 바꾸기도 한다고요. 뭐, 그런 거겠죠.”

“맞다, 그랬었지…….”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구나…….

임수정은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가보실래요?”

임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현재 절실한 것은 신발이었지만, 모두가 다 단벌 신발인 상황에서 자신의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라고 여겨져 깨끗이 포기하고 있었다.

물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발에 꽉 끼는 테라의 샌들을 빌려 신고 가야 하는 게 조금 불편하고 미안하긴 하지만, 테라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리도 테라 아니었으면 애들 주스라도 하나 얻어 줘볼까 하고 저기 기웃거리고 있었을걸? 테라 덕 단단히 보고 있는 거지, 뭐.”

함께 지내는 애 엄마 하나가 끼어들자, 주변에서 모두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테라가 난감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으며 부끄러워한다.

“아휴~ 그런 말씀 마세요. 그거 다 군인 오빠들이 준 건데요.”

그녀들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장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물

건의 가짓수도 제한적이고 대부분 보잘것없는 상품들뿐이어서 무슨 장사가 될까 싶지만, 그래도 일단 그 장소에 발을 들이민 사람들은 꽤나 진지하게 흥정까지 해 가며 거래를 위해 애를 썼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물건은 물론 술이다. 그러나 애초에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고 군에서 따로 지급을 해주지도 않아, 실제 거래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주방에서 빼돌린 맛술이라며 가끔 매물로 나오는 조그만 병에 담긴 수상한 액체가 거의 전부였다.

실제로 시장을 지배하는 최고 인기 품목은 담배였다. 군인들에게서 얻은 담배 한 개비는 하루에 한 봉지씩 제공되는 건빵과 같은 값어치를 가진다.

배고픔과 맞바꾼 귀한 상품은 외야석 귀퉁이에 마련된 조그만 흡연 구역에서 재와 연기만을 남기고 그저 몇 분 만에 사라져 버리지만, 그래도 담배를 원하는 수요는 꾸준하다.

콘돔이나 의무대에서 하루에 두 알까지만 지급해 주는 진통제도 인기 상품이었고, 초코파이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적응력과 상술이 뛰어난 몇몇은 단 며칠 사이에 담배 열 갑이 넘는 자산을 긁어모은 경우도 있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젊은 여자애들이 뭉쳐서 기업처럼 움직이며, 군용 물품의 주요 공급 수단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쉘터의 1루 쪽 여자 화장실은 은밀한 거래의 장소로 변질되어 버렸고, 망을 보는 여자애들은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애초에 차단한다.

아무리 엄격한 통제를 한다고 해도 담배 몇 개비만으로 매춘이 가능한 상황에서 모든 군인들의 일탈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런 탓에 상부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 주는 분위기다.

건빵을 팔아 콘돔을 사고, 몸과 담배를 바꾸고, 그렇게 모은 담배를 시계나 금붙이, 작은 핸드백과 교환하여 저금한다.

이 쉘터 기준에서 보자면 막대한 자산가인 테라와 함께 지내는 덕에 물건들에 굶주리지 않는 임수정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나름 절실하고 치열한 생존 활동인 것이다.

끼이이잉―

바깥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소음을 내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인천에서부터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군인들은 중장비까지 동원해서 도로를 끊고 철책을 세워, 주변의 아파트 단지로부터 운동장 주변을 격리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여의도 상공에서 이미 규모 여섯짜리 좀비들의 압도적인 위용을 목격한 임수정의 눈에는 힘겹게 설치한 장벽들이 아주 하찮고 보잘것없게만 보였다.

실제로 올림픽로 방향에서는 몇 차례나 힘겨운 방어전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군인들은 외부로 나가 다시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야 했다.

쿠쿠쿠쿠―

한쪽에서는 모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미터 직경의 플라스틱 관을 한강에 직접 연결해서 물을 끌어오는 양수기가 작동하며 내는 소음이다.

“답답한가 봐요……. 그러면 거기 만남의 벽에 가보지? 거기 가서 사람들이 써놓은 거 한참 읽다 보면 시간 금방 가던데.”

“그래요. 혹시 알아? 아는 사람이 편지 써놨을 수도 있잖아.”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바깥 경치를 보고 있는 임수정에게 일행인 아기 엄마들이 권한다.

“만남의 벽요?”

임수정이 물었다.

“응. 여기 말고 반대편으로 가다 보면 거기 벽 한쪽에 전부 편지를 붙이게 해놨어요. 두 사람도 혹시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으면 가서 편지도 써놓고 오고 그래요.”

아기 엄마들이 가리킨 방향은 1루 쪽 내야석이었다. 반가운 얼굴을 만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 보이지만,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임수정은 테라의 잘린 발가락을 한 번 살핀 후 물었다.

“우리도 가볼까? 거기까지 걸어가도 괜찮겠어?”

“네. 그래요, 언니. 저도 구경해 보고 싶었어요.”

임수정과 테라는 야구장 잔디 위를 가로질러 건너편 스탠드를 향해 걸어갔다.

접수대에서는 조금 전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한 새로운 생존자들이 나란히 늘어서서 등록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묻는 접수 담당자의 질문에 가장 앞에 서 있던 노년의 사내가 공손히 대답한다.

“아, 예…… 육만배입니다.”

이 사람들도 이제 격리되겠구나…….

임수정은 육만배라는 노인의 얼굴을 힐끔 돌아보고 약간이나마 연민의 감정을 가졌다. 살아난 건 다행이지만, 격리실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끔찍하리만큼 지루하고 비참하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끼어 있을까 싶어 생존자들을 훑어본 뒤,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 임수정과 테라는 1루 관중석 위로 올라갔다.

그 주변을 서성이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만남의 벽이 어딘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내야석의 앞쪽, 예전 치어리더들이 춤을 추던 위치에 커다란 나무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날짜별로 편지를 붙이게 해놓았네…….”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테이플러로 고정되어 있는 수많은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다. 가장 최초의 편지는 7월 15일에 붙여진 것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신이 구조되었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붙어 있는 쪽지들은 대부분 편지라기보다는 자신의 이름과 찾는 사람의 이름, 그리고 현재 자신이 야구장의 어느 구역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써놓은 메모에 가까웠다.

7월 15일자를 다 읽고 난 임수정이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참 세상 좁게만 살았나 보다, 나는.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

벽에 바짝 붙어 찬찬히 메모들을 살피던 테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합해도 몇천 명 정도이니까요, 뭐.”

몇천이라…….

임수정은 새삼 자신의 행운을 절감했다. 서울의 인구를 천만이라고만 잡아도 잠실에 머물고 있는 생존자들은 5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중에 자신도 끼어 있다. 확률이 그쯤 되면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홀로 남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사무칠 만큼 고독감이 밀려온다.

외롭고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콘돔이 인기 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속에 뻥 뚫린 상실감을 그렇게라도 메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거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사연에는 그들의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이틀 분량까지 읽고 난 뒤, 임수정은 눈물이 날 것 같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테라는 눈물이 글썽해져서도 여전히 열심히 쪽지들을 읽고 있다. 임수정이 물었다.

“누구 특별히 찾는 사람 있어?”

“네……. 근데 기대는 사실 안 해요.”

“누군데?”

“……제니요.”

“아, 그렇지. 그런데 왜 기대를 안 해?”

“제니가 여기 왔었다면 군인 오빠들이 분명히 저한테 이야기를 해줬을 테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테라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없이 그리운 표정으로 편지들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 여기 계셨네요. 임수정 씨 맞죠? 한참 찾았습니다.”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임수정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손에 비닐봉지를 든 군인 한 명이 멋쩍게 웃으며 다가온다. 모자에는 다이아몬드가 하나 박혀 있다.

지금 내 이름을 부른 게 맞나? 테라가 아니라 내 이름을? 대체 누구지?

임수정은 기억을 더듬으며 소위의 얼굴을 살폈다.

아…….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헬기 조종사로부터 그녀를 인계받고 서류 작업을 도와준 군인이다.

“아, 예.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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