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아포칼립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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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아포칼립스 (1)
2021.11.15.
……어째서?
황급히 권총집을 푸는 동안 개리슨의 뇌리에는 의문부호가 떠나질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바로 몇 시간 전에 캠프 러전에서 출발한 의무병이 감염되었단 말인가.
이곳에서는 단 한 차례의 교전도, 조우도 없었다. 애초에 초고온의 화염으로 모든 걸 깨끗이 정화한 뒤 상륙했기 때문이다.
그롸아아아! 그아아~!
개리슨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눈동자에 흰 막이 덮인 의무병은 토사물과 침을 흩뿌리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타타타타타― 타타타―
개리슨이 콜트의 공이를 뒤로 젖히기도 전에 날카로운 총성이 귓가를 울린다. 그와 동시에 뛰어오던 좀비 병사는 뒤로 날아가 버렸다.
경비병들이 M27 IAR을 발사한 것이다. 5.56㎜ 나토탄에 벌집이 된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좀비 병사가 다시금 벌떡 일어났다.
“오 마이…….”
경비병들과 개리슨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터진다. 이미 수없이 브리핑을 받았어도 온몸이 꿰뚫린 채 되살아나서 달려드는 좀비를 실제로 보는 일은 그 박력이 완전히 달랐다.
투투투투투!
경비병들은 다시 M27을 어깨에 붙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얼굴에 대여섯 개의 총알구멍이 난 뒤에야 좀비 병사는 제자리에 고꾸라져 버렸다.
“무슨 일이야? 자네 괜찮은가?”
커피를 마시던 트로이 중장이 난데없는 총성에 놀라 묻는다. 개리슨은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했다.
“별건 아닙니다. 그저…….”
하지만 그는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병사 하나가 좀비로 변했다. 그것도 좀비들로부터 가장 안전해야 하는 이곳 베이스캠프에서…….
“대체 뭐야, 이 자식? 좀비 이빨이라도 밟았던 거야?”
좀비의 시체를 둘러싼 채 웅성거리는 병사들에게 트로이 중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구경거리가 아니다! 전사자야! 바디 백에 담아 후송시켜!”
개리슨은 좀비 병사의 이름과 군번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작전이 개시되기 전에 외출을 하고 돌아온 녀석일 테지. 어떤 막사를 누구와 함께 사용했었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작전 본부 동쪽 벽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아파치 헬기가 전하는 영상이 전달됐다.
세르반테스 거리 북동쪽의 거주 지역으로부터 남하하는 좀비 무리들이 보인다. 이미 상당수는 불태워서 허허벌판으로 만든 구역 너머까지 접근해 와 있다.
― 헤드 쿼터, 여기는 아파치 슈퍼 11! 지금 전송한 영상 확인했나?
“여기는 헤드 쿼터, 좀비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모니터 앞에 앉은 병사들 중 하나가 응답을 했다.
― 많다. 800에서 1,000 사이, 펜사콜라 만으로 진행 중이다. 아파치 슈퍼 11과 12가 발포 허가를 기다린다.
“아파치 슈퍼 11, 대기하라. 상황을 보고하겠다.”
무전을 마친 병사가 트로이를 돌아본다. 트로이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끈하게 쓸어버리라고 해.”
“발포 허가! 반복한다. 발포 허가.”
― 발포 허가 확인했다.
아파치 헬기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대인 살상용 히드라 미사일과 30㎜ 기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두 대의 아파치에서 연기를 뿜으며 날아가는 미사일들이 적중될 때마다 지면이 파이고 커다란 영역의 좀비들이 산산이 갈라져 튄다.
30㎜ 기관총이 훑고 지나는 자리에는 2피트 높이의 먼지기둥이 선을 그리며 솟아올랐다.
두 대의 헬리콥터가 적재하고 있던 144발의 히드라 미사일과 2,400발의 기관총 탄약을 짧은 시간 만에 모두 쏟아붓고 나자, 거리는 피어오른 연기와 자욱한 흙먼지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런 곳에 아직도 뭔가가 살아 있을 성싶지는 않아 보일 만큼 혹독한 광경이다.
― 쿨럭! 아파치 슈퍼 11, 12. 재장전을 위해 기지로 돌아간다. 쿨럭! 쿨럭!
“허락한다. 현재 경계 위치는 아파치 슈퍼 25와 슈퍼 26이 담당하라.”
적재된 무장을 텅 비운 아파치들은 상공에서 대기하던 병력과 교대한 뒤, 기지가 있는 마이애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 활약을 한 것이 해병대 소속의 바이퍼가 아니라 육군의 아파치라는 점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트로이는 조금 전의 소동을 잊은 채 나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공중 화력전을 지켜봤다.
대당 2천만 불짜리 무기를 쓰면서 이 정도의 재미마저 없다면 무슨 맛으로 전쟁을 하겠는가.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하나 나오기는 했어도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이른 해병 투입 가능 시간은 09시 45분입니다, 장군님. 09시 45분에 해병 1개 소대가 스트라이커 여섯 대에 나눠 타고 다리를 건넙니다. 상공에서 아파치 네 대가 네 방향을 담당하며 엄호하고, 10시 40분까지 첫 열 블록의 수색을 마치면 생존자를 구출해서 스트라이커와 블랙 호크로 후송합니다. 예정보다 세 시간 이상 빠르지만, 공군 쪽에서는 지원에 문제없다는 반응입니다.”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개리슨이 보고했다. 3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떠 있는 조지 H. W. 부시 호와 벌써 의견 조율까지 마친 모양이다.
한 시간 반 뒤인가…….
트로이 중장은 그의 믿음직한 참모를 가리키며 동행했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편리한 친구도 있단 말이야. 한 가지 단점은 너무 편해서 가끔은 내 머리를 쓰는 법을 잊어먹는다는 거지. 좋아! 개리슨, 실행해!”
사각 턱을 가진 경호원들도 가볍게 웃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시 본부 내의 그 누구 하나 이 대규모 구출 작전이 실패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첨단의 무기들로 무장한 700여 명의 정예군이 이빨로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들 따위에게 패배할 만한 이유라고는 아무리 애를 써서 찾아보려 해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
“아파치 슈퍼 30! 아파치 슈퍼 30! 응답하라!”
불길한 징후가 다시 발현된 건 08시 50분이었다. 계속 콜록거리던 아파치 헬기의 조종사가 난데없이 비명을 질러 대다가 교신을 끊은 후, 나바레 지역의 중심부에 추락해 버렸다.
아직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아파치를 잃는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트로이 중장을 위시한 임시 본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추락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여기는 건물 옥상이라든가 나무숲 사이에서 예고 없이 RPG가 날아오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저 최강의 헬리콥터를 떨어뜨릴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교신으로 구조 요청을 할 여유도 없이…….
“아파치 슈퍼 28! 현재 30이 보이나?”
모니터 앞의 병사가 근처의 헬기들로부터 현지의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 보인다. 추락했다. 화염, 연기도 없고,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구조대 파견을 요청한다.
“아파치 슈퍼 28, 추락하기 전에 무슨 징후가 있었나? 공격을 받았다거나 고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
― 없었다. 쿨럭! 쿨럭! 컥! 젠장, 이놈의 기침……. 반복한다. 그런 대화는 없었다.
“알겠다. 현재 영역을 계속 경계하라. 지금 이 시간부로 별도의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발포 허가가 주어졌다.”
트로이는 굳은 얼굴로 의무대를 포함한 세 대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가까운 지역이므로 시속 60마일 이상의 속력을 낼 수 있는 스트라이커가 빠르게 달려간다면 20분 내에 구조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쿨럭, 쿨럭―!
전산을 담당하는 병사가 허리를 굽혀가며 격하게 기침을 하자, 초조하게 작전 본부 내를 배회하던 트로이가 버럭 성질을 부렸다.
“젠장! 또 기침인가? 오늘 하루 종일 너희에게서 들은 건 그 지겨운 기침 소리뿐이다! 그만 좀 해둬! 병가를 내든가! 이젠 더 못 참겠어!”
“쿠, 쿨럭! 죄, 죄송합니다! 쿨럭! 장군님!”
도저히 기침을 참을 수 없는지 입을 막은 병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 모습을 본 트로이는 자신의 성질을 자책하면서 금방 화를 누그러뜨렸다.
“후~ 내가 미쳤지……. 아니야, 상병. 미안해하지 말게. 그리고 의무대에 가서 약이라도 좀 먹고 돌아오게.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100퍼센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가서 여기 감기 환자가 많으니까 약을 충분히 달라고 말을 해.”
“알겠습니다. 쿨럭, 쿨럭!”
병사는 힘겹게 경례를 마치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작전 본부 여기저기에서는 크고 작은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기침을 하지 않는 건 트로이와 함께 헬기를 타고 늦게 도착한 여덟 명뿐이다.
“장군님, 이쪽으로 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서편 창가에서 외부를 살피던 개리슨이 손짓을 하며 트로이를 부른다.
“왜 또 그러나? 이제 놀라는 일은 그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개리슨이 가리킨 방향에는 헐크를 착용하고 막사를 건설하던 병사들 20여 명이 단체로 주저앉아 기침을 하고 있었다.
증상이 심한 녀석들은 네 발로 땅을 짚은 채 토사물을 흘리기도 한다. 저 정도가 되면 이제 감기라고 넘어갈 수준이 지나간 상태다. 게다가 아까 좀비로 변했던 그 의무병 녀석과 거의 똑같은 증상이다.
“뭐야? 무슨 풍토병이라도 유행 중인 건가? 이럴 수는 없어. 아무리 네이팜으로 문명의 흔적을 싹 쓸어버렸다고는 해도 여기는 소말리아가 아니라 플로리다란 말이야.”
트로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리자, 개리슨이 전용 헬기를 호출했다.
― 쿨럭, 쿨럭! 무슨 일입니까, 개리슨 대령님?
“아…… 신경 쓰지 말게. 잘못 눌러진 모양이야.”
헬기 조종사가 심하게 콜록거리며 무선을 받자, 개리슨은 곧바로 연락을 끊고 조지 H. W. 부시에게 시호크 헬기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왕복 거리가 작전 반경을 넘어서지만, 일단 도착해서 그 뒤에는 허큘리스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자는 논의까지 진행되었을 때, 듣고 있던 트로이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봐, 대체 뭐하는 거야? 헬기는 여기에도 잔뜩 있어.”
“장군님, 이건 아무리 봐도 단순한 감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빨리 예외도 없이 전염되는 감기라는 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개리슨이 목소리를 죽인 채 속삭이며 같은 헬기편으로 이동해 온 경호원들을 불렀다. 다섯 명의 사각 턱 근육질이 다가와 명령을 기다린다.
“기지 내부지만 경호 단계를 코드 레드로 올리겠다. 절대 장군님 주변을 떠나지 마라! 안전핀을 풀어두고 위협이라고 판단되는 건 전부 쏴버려.”
개리슨은 이번에도 조용히 속삭이면서 전산 장치 앞에 앉아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 누구도……. 알아들었지?”
경호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개인화기의 안전장치를 조용히 해제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었던 트로이가 개리슨을 잡아끌려는 순간, 컨테이너 외부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롸아아아악!
옆머리를 박박 민 해병이다. 아니, 해병이었던 병사가 좀비로 변해서 괴성을 지르며 막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
“으아아아!”
투투투둑―! 투투투투―!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해병들이 깜짝 놀라며 좀비를 향해 총을 난사한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좀비는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채 맥없이 고꾸라져 버렸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좀비의 시체 주변에 해병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든다. 그중에 몇몇은 심각할 정도로 쿨럭거리고 있다.
“뭐, 뭐야! 왜? 네이팜으로도 청소되지 않은 좀비가 있었단 말인가?”
트로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체로 기침을 해 대던 육군들이 우회적으로 제시해 줬다.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하던 20여 명의 헐크 장착 병사가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일제히 울어 댔다.
그와아아악! 그롸아아―!
그러고는 병사들이 모여 있는 막사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이런 젠장! 뭐야?”
“이런 개새끼들!”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달려들자, 막사 내부는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드르륵― 드르르륵―!
여기저기서 자동화기를 난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비명 소리가 그에 지지 않을 만큼 크게 터져 나온다.
가장 끔찍한 것은 이 좀비들이 미군의 제식 방탄 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데다가 외골격 갑옷인 헐크로 몇 배나 더 파워를 끌어 올린 놈들이라는 사실이었다.
퓨퓨퓨퓩―!
대여섯 발의 총탄을 방탄조끼와 헬멧으로 막아낸 좀비가 해병의 팔을 잡아당기자, 잘 익은 닭다리처럼 그의 어깨가 관절째 뽑혀 나간다.
끄아아악! 간절한 비명을 내지르는 해병의 목덜미에 좀비의 이빨이 사정없이 박힌다.
투투투툭― 투두두둑―!
아군과 좀비가 엉망으로 얽혀 있는 상황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병사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좀비의 팔이 막사 기둥을 부수자, 천막이 아래로 내려앉아 그 아래의 모든 사람과 좀비가 한데 엉켜 버렸다. 그야말로 눈을 감은 채 총을 갈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군인들이 비명만을 남기고 죽어갔다.
“막사 15번에 좀비 출현! 막사 15번에 좀비 출현! 쿨럭! 쿨럭! 우웨에엑!”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달려가던 해병 하나는 해변의 한가운데에서 엎어졌다가 좀비가 되어 일어났다.
이미 그의 주변에는 헐크를 장착한 수많은 좀비들이 다른 막사에 남아 있는 인간들을 노리며 맹렬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위이이잉!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좀비들의 전진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장갑차의 외부에 설치된 기관총이 사정없이 총알을 발사한다. 50구경 기관총탄을 맞은 좀비들은 픽픽 날아가면서 쓰러지지만, 두어 대의 장갑차가 상대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끄웨에엑!”
헐크를 착용한 좀비 여남은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밀어 치자 17톤에 육박하는 스트라이커가 이렇다 할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옆으로 넘어졌다.
이동할 수 없게 된 스트라이커를 좀비들이 덮쳐 기관포탑을 부수고 해치를 억지로 비틀어 연다.
최후의 순간, 패닉에 빠진 승무원들은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 40㎜ 그레네이드 런처를 모두 발사해 버리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푸슈슈슉―
콰아앙!
무작위로 날아간 그레네이드가 사방에 떨어지며 기지와 막사들을 불덩어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