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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열화지옥 (4) (72/449)

72. 열화지옥 (4)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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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간호사는 불신이 가득한 얼굴로 민구를 한 번 힐끔 돌아보고는 곧바로 다시 헬기를 향해 팔을 휘젓는다. 뭐, 자기 인생이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터라 민구 역시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물망 안에 사람들을 다 몰아넣고 나서 구조대가 자물쇠를 잠그면, 대형 헬기는 떠나고 검은 헬기가 내려서 총으로 무장한 구조대들을 다시 태운다. 흔들리는 그물 안에 든 채로 공중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이제 살아났다는 기쁨에 바깥으로 팔을 내밀어 흔들었다. “아, 어떡해! 어떡해! 가지 마요! 여기도 있어요!” 헬기가 떠나 버릴까 봐 두려워진 간호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세 개의 건물 옥상을 거치며 생존자들을 쓸어 담은 헬기는 마침내 병원 위에까지 이르렀다. ― 생존자 여러분, 옥상 구석에 모여 계십시오. 신속한 구조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부탁입니다. 옥상 구석 쪽으로 이동하세요.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머리가 엉망으로 엉켜 버린 간호사와 의사가 순순히 한쪽 끝으로 달려가 기다리자, 헬기에서 레펠용 로프가 내려졌다. 민구는 조금 전 그가 자리를 잡은 옥상 문 근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맥주 캔을 기울였다. 구조대 중 인솔자로 보이는 사내가 먼저 발을 옥상에 딛고 총을 겨누자 나머지 둘도 줄을 타고 따라 내려왔다. “세 분이 답니까?”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려와 울음을 터뜨린 간호사에게 구조대 중 한 녀석이 물었다. 얼굴이 유난히 희고 입술이 얇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달려들려 하자, 그녀를 밀어낸 구조대가 손짓으로 그물망을 부른다. “자, 한 분씩 들어가십시오!” 그물망이 옥상 위에 걸쳐지자 인솔자가 자물쇠를 돌려 문을 열며 말했다. 안에 들어 있던, 미리 구조된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함께 생존을 축하한다. 간호사와 의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왕처럼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은 민구에게 구조대가 외쳤다. “자, 선생님께서도 빨리 탑승하세요!” 민구는 대꾸하지 않았다. “선생님!” 흰얼굴이 다른 대원 하나와 함께 다가오며 위압적인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지금 다른 지역에도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가 많이 있기 때문에 바쁩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민구는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좌우에 버티고 선 놈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검은색 군화부터 깔맞춤으로 뽑은 복장, 레인저용 조끼, 탄띠, 헬멧, 기관총에 대검, 삼단봉까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특수부대처럼 보일 이 그럴듯한 꼴은, 예전에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한참을 쳐다보던 민구가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난 됐으니까 가봐.” 하지만 놈들은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흰얼굴이 협박에 가까운 투로 말했다. “선생님, 지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반대편에 서 있는 놈은 각진 턱을 갸웃거리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보려 애썼다. 큭큭큭, 그 기분 잘 알지. 이런 건 위신 문제니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민구가 말없이 앉아서 맥주 캔을 입에서 떼지 않고 있자 각진턱이 다시 위협했다. “이렇게 나오시면 일행분들도 모두 구조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제 말 아시겠습니까?” “풋, 그런 건 너 좋을 대로 해. 내 알 바 아니니까, 인마.” 민구는 빙글거리며 왼손 잽으로 각진턱의 사타구니를 가볍게 건드렸다. 워낙 빠른 주먹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날아오자 깜짝 놀란 각진 턱의 입에서 흑, 하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는 각진턱을 보며 민구가 유쾌하게 웃었다. “큭, 새끼, 겁먹기는……. 후후, 괜찮아. 한 번 봐줬으니까 이제 얼른 꺼져.” “일어나! 지금 당신은 공무집행 방해를 하고 있어!” 흰얼굴이 총을 고쳐 쥐며 목소리를 높인다. “큭큭큭, 공무집행? 어이, 아저씨. 말 잘했어. 어디 쯩 구경 좀 해봅시다?” 두 놈이 멈칫하며 입을 열지 못하자 민구가 더 소리를 높여 낄낄댔다. “크크크! 야, 아까부터 계속 생각했는데, 너희 어디서 봤는지 이제 대충 기억나는 것 같다. 그 복장하며 나랏밥 먹는 놈들인 척 구라 치는 꼬라지하며……. 그래그래, 예전에 내가 너희 선배들이랑 한 번 같이 일했었다. 그게 아마 2년 전쯤에 재개발 반대하는 애들 싹 털 때였나, 그랬지? 후후.” 말을 끊은 민구는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나직이 내뱉었다. “야, 그냥 꺼져라. 저것들 데려다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터치 안 할게.” 구조대원들은 민구의 말에 급소를 찔린 것처럼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뭐야, 이 새끼? 무슨 개소리야? 이 씨발!” “이 새끼 봐라? 이건 말로 하면 안 되겠는데? 야, 야이, 씨발 놈아, 네가 뭘 아는데? 응?” 금방 밑천이 드러난 구조대원들이 민구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민구의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계속 그물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솔자가 고함을 쳤다. 저 사람, 뭐해? 아유, 어딜 가나 미친놈들 꼭 있어. 아, 빨리 타요……. 구조받은 사람들도 그물망 안쪽에서 원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흰얼굴이 인솔자를 돌아보며 손으로 엑스 모양을 만들자, 인솔자는 그물망 문을 잠그고 줄을 두 번 당겨 올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대형 헬기가 위로 올라가 버리고 난 뒤, 인솔자가 다가와 물었다. “왜? 이 새끼가 어쨌는데?” 다짜고짜 욕지거리군……. 민구는 인솔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제 서른 정도나 되었을까?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척하고 있지만, 개뿔도 아니라는 게 서 있는 자세만 봐도 드러난다. 도긴개긴이기는 하지만, 이놈보다는 오른편에 서 있는 흰얼굴 쪽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새끼가 저희 소속을 아는 척하고 자꾸 엉깁니다.” 흰얼굴이 민구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흔들었다. 인솔자는 당황한 듯 뒤쪽을 돌아보며 만류했다. “야, 야, 왜 그래? 보는 눈들이 있어.” “봐도…… 그냥 물린 새끼라서 처리하는 걸로 알지 않겠습니까?” “하긴 어차피 저것들이야 무작정 살려 달라고 빌 놈들이니까……. 그럼 버릇 좀 가르쳐 줄까? 야, 씨발아, 일어나. 뭘 믿고 개겨? 응?” 인솔자가 거칠게 의자를 걷어찼다. “어이쿠!” 과장되게 소리를 지른 뒤, 의자를 똑바로 놓고 다시 앉으며 민구가 말했다. “하여간 재미있어. 그냥 보내준다는데도 싫다는 건 대체 뭐지? 꼭 이렇게 제 명 재촉하는 새끼들이 있다니까? 야! 너희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다? 알지?” 각진턱이 삼단봉을 촤악, 펴며 윽박질렀다. “닥치라고, 개새끼야! 좃만 한 게 입만 살아서 건방지게…….” “야, 너희…… 총도 있고 칼도 있으면서 왜 그딴 걸 꺼내고 그래?” 마시던 맥주를 다 비운 민구는 빈 캔을 반으로 접어 주무르며 비아냥거린다. 각진턱이 삼단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왜냐면! 너 같은 개새끼는 이걸로 천천히…… 컥! 커컥!” 각진턱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목을 움켜쥐며 무너져 내렸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콸콸 솟아오른다. 탱그렁― 각진턱이 놓친 삼단봉이 바닥에 뒹군다. 민구의 손에 들려 있는, 알루미늄 캔의 접힌 단면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이런 씨발!” 멜빵에 건 채 옆으로 차고 있던 기관총을 고쳐 잡으려는 인솔자의 무릎에 민구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아악―! 무릎이 반대로 꺾인 녀석이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을 때, 민구는 각진턱의 피가 묻어 번들거리는 맥주 캔을 그 입술 안쪽에 박아 넣었다. 콰작―! 아직 그 끔찍한 고통에 대한 비명이 인솔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기도 전에 민구는 몸을 옆으로 돌려서 흰얼굴의 공격을 피했다. 파바바박―! 흰얼굴이 발사한 기관총알이 각진턱의 몸을 꿰뚫으며 걸레를 만들었다. 민구는 재빨리 흰얼굴의 뒤로 돌아가 헬멧을 잡아당기면서 허리를 걷어찼다. 으드득!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흰얼굴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민구는 아직 헬멧을 놓지 않은 채 걷어찬 반동을 그대로 살려 뒷발차기로 인솔자의 얼굴을 날렸다. “커어억―!” 턱이 빠져 버린 인솔자가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입에 박혀 있던 캔이 날아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뒹군다. 민구는 흰얼굴의 헬멧을 잡아끌고 인솔자에게 다가가 기관총을 멀리 걷어차 버렸다. 캔으로 각진턱의 목을 그었을 때부터 불과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끄으으으…….” 무릎을 꿇은 흰얼굴의 벌어진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온다. 민구는 놈의 조끼 윗부분에서 핸드 가드를 풀고 칼을 꺼내며 속삭였다. “야~ 너 칼 좋은 거 가지고 다니더라? 5160강이냐, 이거?” “으으으~” 불행히도 의식이 남아 있는 흰얼굴이 고통과 공포가 한데 엉킨 숨소리를 힘겹게 뱉어낸다. 민구는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알아. 좃 나게 아픈데 기절도 안 하지? 왜 그런지 이야기해 줄까? 내가 그렇게 찼거든. 그러게 왜 남의 머리를…….” 갑자기 말을 끊은 민구는 흰얼굴을 내던지고 옥상문 안으로 몸을 날렸다. 파파파파팍― 파파파파팍―! 검은 헬기에서 발사한 기총이 옥상 위를 두 줄로 훑고 간다. 민구가 잡고 있던 흰얼굴의 몸통과 인솔자의 다리가 총탄에 맞으며 사방팔방으로 피가 튀었다. 파파파팍― 파파팍―! 다시 한 번 더 날아든 총알들이 옥상 문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콘크리트를 쩍쩍 갈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건물 내부로 숨어든 민구에게 그것은 대단한 위협이 되진 못했다. 위이이잉― 천천히 건물 주변을 돌던 검은 헬기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후 기수를 돌려 돌아가 버렸다. 헬기의 크기로 보아 남아 있는 전투 요원이라야 두 명 정도일 테니, 나름 냉정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젠장, 귀찮게 됐네.” 문틈으로 헬기가 돌아가는 걸 확인한 민구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인솔자를 향해 서둘러 뛰어갔다. 찌이익, 흰얼굴에게서 빼앗은 칼로 간호사가 흔들던 시트를 잘라내서 인솔자 놈의 허벅지를 힘껏 졸라 묶었다. 그렇게 해도 기관총에 관통돼 박살이 난 놈의 다리에서는 피가 계속 솟아오르며 좀처럼 멎지 않았다. “야! 야! 이 새끼야! 일어나!” 민구는 엉망으로 찢어진 인솔자의 뺨을 사정없이 때려 깨웠다. 끄으으― 으아아아! 녀석은 눈을 뜨는 것과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러 댔다. “시끄러!” 민구는 놈이 비명을 멈출 때까지 계속 뺨을 후려갈겼다. 찢긴 볼의 살에서 피가 흐를 때쯤 비로소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놈, 아직 두 팔이 멀쩡한데 덤벼볼 엄두도 못 내는군……. 빠져 버린 놈의 턱을 탁, 쳐서 끼워 맞춰주고, 민구는 담배 두 개비에 불을 붙인 뒤 하나를 물려주며 물었다. “쟤네들 뭐하려고 데려간 거냐? 아, 아닌가? 어디로 데려갔는지부터 물어봐야 되나?” 놈은 두 개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지 않고 쿨럭거리며 힘겹게 담배만 빨았다. “하여간에 혀가 무거운 척하는 새끼들이 있어요……. 야, 나 이런 거 있어.” 민구는 녀석의 눈앞에 빼앗은 대검을 들이댔다가 곧바로 옆구리를 푹, 찔렀다. “끄아악―!” 녀석이 비명을 지르자 민구는 또 뺨을 후려갈겼다. “살살 찔렀어, 이 새끼야. 엄살 부리지 마.” 인솔자 녀석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자신이 미친놈의 손아귀 아래 무방비로 놓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민구는 칼에 묻은 피를 녀석의 옷에 문질러 닦으면서 말했다. “다시 물어볼게. 쟤들 어디로 왜 데려갔냐고?” “혀, 형님!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심부름만 한 것뿐입니다. 저는 죄 없어요.” 민구가 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착각을 했는지 인솔자가 엉뚱한 고백을 한다. “그러니까 그 심부름이 뭔데?” 인솔자의 조끼를 뒤져 쓸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면서 민구가 물었다. 대답이 없자 다시 녀석의 옆구리에 칼날이 얕게 박혔다.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 어김없이 따귀에 불이 난다. 후우우~ 후우우~ 이를 악물고 고통을 삼키는 인솔자의 얼굴은 왈칵 쏟아진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잠시 더 버티던 녀석이 조끼 주머니에서 뭔가를 몰래 꺼내려다가 민구에게 팔목이 잡혔다. “이놈! 후후후, 이건 또 뭐야? 독침이냐, 이 새끼야?” 녀석의 팔목을 비틀어 올리며 민구가 물었다. 볼펜을 12 크기로 축소해 놓은 것 같은 크기와 모양의 투명한 붉은색 도구였다. 끝부분에는 안전 커버가 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은 몇 번이나 더 민구로부터 고통을 받고 나서야 사실을 털어놓았다. “끄으응…… 뭔지는 몰라요, 형님. 그거…… 그건 D.E.M.이라는 건데, 일시적으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고…….” 민구는 안전 커버를 벗겨내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스프링이 달려 있어 근육에 대고 꽉 누르면 침이 튀어나오는 방식인 것 같다. “아예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뭐하러 가지고 다녀?” “후우…… 좀비들에게 포위되거나 했을 때…… 후우……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그걸 주사하라고…… 후우,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러면 10분간 심장이 멎은 상태가 돼서 좀비들이 그냥 지나친다고…… 끄으으.” “구라 치지 마, 이 새끼야. 그랬다가는 뇌도 같이 뒈져 버릴걸?” “으으으, 그런 건 몰라요……. 무슨 약이 어떻게 해서 괜찮다고 했…….” “그으래?” 민구는 길게 끌지 않고 곧바로 놈의 팔뚝에 도구를 박아 넣었다. 끄아아아악―! 놈이 몸을 채며 발광을 하다가 몇 초 만에 뻗어버린다. 민구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녀석의 맥을 짚어보았다. 뛰지 않는다. 기관총에 작살난 녀석의 다리에서 쏟아지던 피도 기세가 약해졌다. 별게 다 있군……. 민구는 여섯 개들이에서 세 번째 캔을 따서 입으로 가져가며 놈의 시계로 시간을 쟀다. “푸아아― 캑! 헉…… 헉!” 정말로 정확히 10분이 경과하자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우웨엑― 구역질을 해 대면서도 별로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걸 보면 뻗기 전의 기억까지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푸슛, 놈의 허벅지에서 다시 피가 솟기 시작했다. 이미 꽤나 많은 피를 잃어서 녀석의 얼굴빛은 외계인처럼 파랗다. 상태가 이쯤 되면 사리 판단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자, 이제 말해. 아까 걔들 어디로 데려가서 뭔 짓을 하는지.” 민구는 피딱지가 말라붙은 놈의 주둥이에 맥주를 기울여 부어주며 물었다. 놈이 입을 달싹거리긴 하는데 뭔 말을 하는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기운이 없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귀를 가까이 대자 비로소 조금 알아들을 만했다. 마지막까지 몰리자 놈은 힘겨워하면서도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아는 것들을 다 털어놓았다. 흐흠, 그런 거란 말이지……. 그런 거라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양아치 새끼들……. 나 같은 깡패 새끼보다 더 미친 놈들이라니까. 고개를 든 민구는 만족한 얼굴로 물었다. “너 말이야, 지금 피를 많이 흘려서 어차피 살 수는 없어. 내가 금방 끝내줄까, 아니면 그냥 놔두고 갈까? 1번……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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