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열화지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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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열화지옥 (3)
2021.11.10.
육만배의 보험은 확실하게 작용했다. 차가운 물속에서 한나절 이상 난리를 쳐 대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중년 사내는 단 한 통화만으로 별 어려움 없이 구조 헬기를 불러냈다.
능력이라고는 개뿔어치도 없지만, VIP와 동향이라는 이유로 친동생처럼 총애를 받는다는 게 헛소문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새벽 공기를 뚫고 날아온 헬리콥터 승무원들은 그의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분들은 누구십니까? 의원님 직계가족분들이십니까?”
중년 사내의 신원을 확인한 승무원이 육만배와 조직원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애초에 무의미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배다른 아들만 잔뜩 낳은 것도 아니고, 젊고 건장한 남자만 20여 명이 모여 있는데, 가족일 리가…….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사이야. 신원 확실한 사람들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저희가 받은 명령은 의원님과 그 직계가족을 제주도로 모셔오라는 것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함께 태울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사람이 나한테 그동안 해준 게 있는데……. 그러지 말고 위에다가 연락해서 일행도 같이 간다고 보고해. 내가 말한다고 하면 그러라고 할 테니까.”
당황한 육만배를 대신해서 중년 사내가 편을 들어줘 보지만, 승무원들의 반응은 단호했다.
“곤란합니다. 지금 현재 민간인들은 제주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 그럼…… 저희는…….”
부글거리는 속을 꾹 억누르며 육만배가 물었다. 기관단총을 멘 채 헬기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만 아니면 다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다.
부사관 하나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따로 구조용 헬기를 파견해 달라고 보고하겠습니다. 그쪽에서 민간용 쉘터로 보내 드릴 겁니다. 그 정도가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몇 분이십니까?”
“스물두 명입니다. 그 쉘터라는 데는 대체 어딥니까?”
밤새 죽은 놈들이 셋이나 돼서, 이제는 요리사 둘과 계집애들, 그리고 자신까지 셈에 넣어도 그게 전부다.
“아마 잠실로 모셔갈 겁니다. 22명! 보고를 해놓을 테니, 대기하십시오. 오늘 내로 구조대가 도착할 겁니다. 자, 이제 탑승해 주십시오, 의원님.”
잠시 버텨보던 중년 사내는 못 이기는 척 승무원들이 이끄는 대로 헬기에 올라타며 육만배를 돌아보았다.
“허허, 나 이거참. 어이, 육 회장! 그래도 구조는 해준다니까 거기서 버티다 보면 좋은 세상 오겠지, 뭐. 그때 다시 만납시다!”
중년 사내의 뻔뻔한 웃음만을 남기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국방색 헬리콥터를 보면서 육만배는 이를 빠득, 갈았다. 하지만 그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육만배는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경호실장에게 명령했다.
“기동아, 들었지? 강 실장 방에다가 메모 커다랗게 남겨라. 잠실 쉘터라는 데에서 기다린다고.”
***
“후욱, 후욱~”
민구는 자극을 느끼면서 천천히 푸시업을 계속했다.
며칠 동안 얌전히 모셔만 뒀던 근육은 아직 100퍼센트의 감을 되찾지 못했고, 그런 건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의 몸은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강도로 움직일 수 있어야만 한다.
부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되자 그는 매일 세 시간 이상을 운동에 투자했다.
비록 나이롱환자가 많다고는 해도 교통사고 전문 병원답게 재활용 운동기구들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민구가 택한 것은 좀 더 원시적인 방법이다.
시체들 사이를 피해 빠르게 계단을 뛰어오르고, 윗몸일으키기와 푸시업을 하면서 민구는 그의 몸 전체를 다시 각성시키는 중이었다.
“끄응~”
운동을 끝내고 몸을 일으키자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아침마다 옥상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운동을 한 덕에 원래부터 구릿빛이었던 그의 피부는 더욱 강인해져서, 단단한 복근은 칼날도 튕겨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민구는 옆에 놓아둔 여섯 개들이 맥주 캔 중 하나를 따서 들이켜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퍼진다. 민구는 맥주를 들고 옥상의 난간을 향해 걸어갔다.
“새끼들…… 질긴데?”
아래쪽의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괴물들을 보면서 민구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이 지날 동안 뭘 제대로 먹은 것 같지도 않고 딱히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놈들은 처음과 다름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괴성을 질러 대고 있다.
“괴물은 괴물이군.”
민구는 눈에 보이는 범위의 괴물들을 하나씩 세어봤다. 병원 건물 바로 앞에 대여섯, 진입로와 이어진 큰길 방향에 또 대여섯. 확실히 며칠 전보다는 그 수가 줄었다.
어디로 간 걸까? 죽지는 않았을 텐데…….
반면, 4차선 도로 건너편의 주상 복합 빌딩에는 아직도 서른 마리 이상이 뭉쳐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하루에 두어 번 아주 커다란 무리가 이 앞 도로를 지나곤 한다.
민구는 시선을 돌려 주상 복합 빌딩 우측에 위치한 자신의 목표물을 살펴봤다.
다행히 아직 잘 있군.
민구는 그리운 사람을 바라보듯 애잔한 미소까지 지었다.
“짠!”
소리를 죽이려고 구두까지 벗어 든 채 몰래 다가왔던 간호사가 민구의 등을 끌어안기 위해 달려들었다. 민구는 가볍게 몸을 틀어 그녀를 피하며 오히려 뒤쪽에서 목을 틀어잡았다.
“나는 놀라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잡고 있던 목을 풀어주며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말투로 민구가 말했다. 그런 취급을 받고 나서도 간호사는 여전히 땀으로 젖은 민구의 등을 쓸며 치근덕거렸다.
“의리 없이 혼자서만 한잔하시기예요? 아이, 차암~”
간호사는 민구가 마시던 맥주를 집어 한 모금을 마시며 끈적한 시선으로 그의 몸을 훑었다. 민구는 아무 말 없이 새 맥주를 따서 입가에 가져갔다.
“뭘 보고 계셨어요?”
여자가 물었다. 민구는 도로 건너편의 주상 복합을 가리켰다. 박살 난 1층 유리문 사이로 괴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저거.”
“아으, 징그러워라. 바퀴벌레도 아니고, 대체 왜 저 건물 주변에만 잔뜩 모여 있는 걸까요? 이쪽에는 별로 없잖아요.”
“저 건물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야. 먹이가 있어야 꼬이는 법이지.”
“어머, 정말요? 그럼 저 사람들은 이제 어떡해요?”
“안에서 굶어 죽든가, 아니면 나와서 싸우든가, 둘 중의 하날 택해야지.”
“어느 쪽일 거라고 보세요?”
민구의 등에 착 달라붙은 간호사는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려 그의 단단한 몸을 쓰다듬었다. 어지간히 밝히는 여자처럼 굴고 있지만, 이 여자가 실제로 원하는 게 뭔지 민구는 잘 안다.
순진하게도 탈출하는 내내 지켜줄 순정을 기대하는 거겠지, 훗.
“싸울 거였으면 벌써 나왔어야 해. 일주일이면 이미 늦었어. 이 병원처럼 큰 매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물이 떨어진 지도 며칠이나 지났을 테니. 저렇게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놈들은 그냥 뒈지는 거야.”
민구가 차갑게 내뱉자 간호사가 웃는다.
“풋, 근데 실은 우리도 마냥 기다리고만 있잖아요. 민구 씨는 무슨 계획이 있는데요?”
“내 계획은…….”
민구는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저 건물에 있는 새끼들이 다 굶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 그러면 저 괴물들도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날 테니까.”
“그전에 구조대가 와 줬으면 좋겠는데…….”
간호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구조대?”
“네. 군인들이나 경찰이나…… 뭐, 아무나 구조하러 와주지 않을까요? 아무도 더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그렇고, 저기 저 건물 사람들도 그렇고.”
헬기 소리는 간간이 들리지만, 그들이 있는 건물 근처로는 오지 않았다. 구조 같은 걸 기대하지도 않던 민구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최소한 저놈들보다는 우리가 오래 살 테지. 여기는 세 명이서 매점을 나눠 쓰고 있으니까 말이야.”
병원 매점이란 게 꽤 편해서 당장 필요한 것은 거의 다…… 라고 할 만큼 있다.
운동을 마친 뒤 단백질과 수분을 보충해 줄 연어 통조림과 생수, 게다가 나이롱환자 전문 병원답게 담배나 술도 잔뜩 쌓여 있으니, 당장 더 바랄 건 없었다.
그는 그저 조금만 더 기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간호사의 기도가 닿은 것일까?
그로부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정말로 헬기가 나타났다.
콰콰콰콰콰.
별다른 표식도 없이 온통 새까맣게 칠해진 헬리콥터가 프로펠러로 요란하게 공기를 가르며 병원 주변 상공을 천천히 돈다.
“허!”
아직 옥상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민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지, 저놈들?’
민구는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검은 헬기를 바라보았다. 상공을 배회하던 헬기가 삐― 하는 마이크 소음과 함께 방송을 시작했다.
― 생존자 여러분! 저희는 긴급 구조대입니다! 생존자들께서는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시거나, 계시는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순차적으로 모두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이 지역에서 저희가 철수하기 전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생존자 여러분! 저희는 긴급 구조대입니다! 생존자들께서는 창문을 열고…….
확성기로 방송하는 구조 메시지가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귀를 왕왕 울렸다. 스피커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천둥 같은 프로펠러의 소음도 깨끗이 집어삼키고 있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도로 주변의 생존자들은 갑자기 단비를 만난 듯 화색을 띠고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건물 여기저기에서 창문이 열리고 수건이든 옷이든, 아무거나 색깔 있는 천을 다급하게 집어 든 사람들이 팔을 내밀어 흔든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군.”
민구는 주위의 풍경을 가만히 둘러보며 생존자들의 수효를 헤아렸다.
이 넓은 거리와 여러 개의 빌딩들 속에서 불과 몇 분 만에 흔들어 대는 수건의 개수를 대충 파악 가능하다는 건, 첫날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던 생존자들 중 꽤나 많은 수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의미다.
아마 수분 섭취를 못해서겠지…….
민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창문 앞에 달라붙을 수 있는 사람의 수에 제한이 있으니, 실제 생존자는 흔들리는 수건의 두세 배 정도쯤 될지도 모르겠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일주일 만에 들어보는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고, 헬기 하나만으로 간만에 거리 전체에 활기가 돈다.
민구가 눈여겨보고 있던 주상 복합 건물의 옥상에도 어느새 몰려나온 사람들이 펄쩍펄쩍 뛰어 대며 단비 같은 구조대를 반기고 있었다.
재미있군. 덕분에 시간이 꽤나 단축되긴 하겠어…….
민구는 상처를 긁적이며 미소 지었다. 놈들이 모조리 구출되든, 아니면 죽든, 민구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저 놈들 때문에 아직도 건물 아래를 떠나지 않고 있는 괴물들만 사라져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와아아! 민구 씨! 지금 저거 들으셨어요? 구조대래요! 구조대! 우리 이제 살았어요! 여기요! 여기예요!”
간호사도 옥상으로 뛰어나와 수술용 푸른색 시트를 정신없이 흔들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가뜩이나 시끄러운데 그녀의 째지는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민구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좀 진정하고 있지그래?”
“네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구조대라고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야죠. 여기요! 여기도 사람 있어요!”
민구의 경고를 받은 이후에도 간호사는 열심히 시트를 흔들며 고함을 쳤다.
흠~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민구는 의자를 옥상 뒤쪽으로 옮겨 앉았다.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그녀의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민구의 시선을 잡는다.
먼저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며칠 동안 살을 섞은 사이. 한 번 더 이야기해 줄 의리 정도는 있을 것 같다. 민구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이봐…… 이봐!”
얼마나 흥분했는지 민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던 여자는 거칠게 어깨를 잡아채인 후에야 그를 돌아봤다.
“네? 왜 그러세요, 민구 씨?”
겁에 질린 얼굴로 여자가 물었다.
“이거 뭔가 구려. 그러니까 좀 잠자코 있어봐.”
“구리다니, 뭐가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저 새끼들이 방송하는 걸 잘 들어보라고. 냄새 안 나?”
여자는 감각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오른쪽으로 치켜뜨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검은 헬기에서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들이 반복되어 울려 나오고 있다.
― 생존자들께서는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시거나 지금 건물의 옥상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순차적으로 모두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이 지역에서 저희가 철수하기 전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생존자 여러분! 저희는 긴급 구조대입니다!
“안 이상한데요? 구조대라잖아요?”
간호사는 조금도 의심할 게 없다는 표정이다.
민구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동안 여기에서 단 한 번이라도 헬리콥터 본 적 있나? 그런데 오늘이 철수하기 전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영 뜬금없잖아?”
“글쎄요……. 우리는 몰라도 다른 동네에서 구조했겠죠. 민구 씨, 오늘 좀 이상해요. 왜 그러세요? 혹시 제가 마음 변할까 봐 걱정돼요? 아앙~ 그런 건 걱정하지 말아요.”
여자는 되도 않을 소리를 하고 민구의 팔짱을 한 번 꽉 낀 다음, 다시 시트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생전 문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던 의사도 언제 기어 나왔는지,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 가운을 벗어 펄럭거리고 있다.
다들 눈이 뒤집혔군. 내가 무슨 말을 해봐야 들리지도 않겠어…….
민구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의자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콰콰콰콰―
한참 동안이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검은 헬기가 방송을 중단하고 상공으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멀리 떨어진 민구에게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간호사와 의사가 겁에 질린 얼굴로 민구를 돌아보며 물었다.
“봐, 봤을까요?”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못 보기가 더 어렵지.”
그래도 불안했는지 두 사람은 간절한 목소리로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여기요! 여기 있어요!”
얼마나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댔는지는 그들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증명을 해준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어지간히 질린 민구는 뜨끈해져서 오줌 맛이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켜며 그들을 만류했다.
“어이, 소용없어. 저렇게 높이 올라가 있는데 그 정도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이렇게라도 해야죠. 여기요! 사람 살려요!”
간호사는 자신의 삶에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대하듯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시트를 흔들었다. 지난 일주일간 운동이라곤 하지 않던 의사는 이내 지쳐서 바닥에 퍼질러 앉은 채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지극한 정성 덕인지 검은 헬리콥터는 다시 조금 고도를 낮추었고, 거기에 더해 조금 더 덩치 큰 헬리콥터 하나가 동쪽에서부터 날아왔다.
새로 등장한 헬기의 아래쪽에는 컨테이너 크기의 그물망이 달려 있다. 두 대의 헬기는 민구가 위치한 병원 건물 위를 한 바퀴 빙 돈 뒤, 주상 복합 부근 상공에 떠서 제자리 비행을 한다.
한쪽으로 비켜서 있으라는 안내 방송 후에 검은 헬기에서 옥상을 향해 로프가 내려지고,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구조대가 내려왔다.
사람들을 줄 세운 구조대가 신호를 보내자 이번엔 대형 헬기가 다가와 그물망을 옥상에 댄다.
“아아, 저 사람들 너무 좋겠다. 여기도 빨리 좀 구조하러 와줬으면…….”
간호사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중얼거리고, 의사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구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봐, 그동안의 정리로 한마디만 더 해줄게. 저것들 암만 좋게 봐줘도 군인은 아니야. 그것만 감안하고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