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열화지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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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열화지옥 (1)
2021.11.08.
“임수정 씨, 48시간 지나셨습니다. 소지품 챙겨서 나오세요.”
격리 시설에 갇힌 지 50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을 때, 보초병들이 다가와 철창문을 열어주었다. 벽에 기대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임수정은 담요와 휴지, 물병을 챙기고 서둘러 좁은 우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 맞다.”
자신이 사용한 변기가 신경 쓰여 다시 뒤돌아 들어가려는 임수정을 보초병이 만류한다.
“놔두십시오. 그런 거 치우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기계로 세척하니까, 손대지 마십시오.”
병사의 목소리가 권유보다 명령에 가까웠기에 임수정은 더 말하지 않고 나왔다.
“아그그…….”
허리를 쭉 펴려다가 묵직한 통증이 느껴져서 저절로 앓는 소리를 내며 엉거주춤하게 벽을 짚고 선 임수정에게 보초병들이 웃어주었다.
“허리가 아프시죠? 딱딱한 바닥에 이틀 동안 앉아만 계셔서 그렇습니다. 나오시는 분들 거의 대부분 비슷하시더라고요.”
“어후, 그런가요?”
“네.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실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무 지원 센터에 가시면 진통제나 파스도 드릴 겁니다. 자, 여기, 여기, 여기, 이렇게 세 군데에 사인하시고요…….”
임수정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보초병이 내미는 서류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것에 이름만 몇 번 갈겨 쓰고 나면 이 지겨운 폐쇄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읽어보지도 않고 휙휙― 넘겨가며 시원하게 사인으로 동의를 해주고 싶지만, 그녀의 천성이 그렇게 생겨 먹지를 못했다.
“이게 무슨 서류인가요?”
질문을 던지며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는 임수정에게 보초병이 대답해 준다.
“맨 앞 장은 이곳에 계실 때 어떠한 가혹 행위도 당하지 않았다는 증명서이구요, 그다음 건 앞으로 이 보호 시설에 계시는 동안 규칙을 준수하고 관리자들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동의서, 그리고 마지막 장은 필요한 경우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지원서입니다.”
“입대 지원서라고요?”
서른이 넘은 여자에게?
게다가 필요한 때 아무 때라도 데려다가 쓰겠다고?
찜찜해진 임수정이 수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보초병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한다.
“아, 그건 뭐 신경 안 쓰셔도 되는 겁니다. 병무청에서 하라고 하니까 서류를 받고는 있지만, 아무도 실제 징병이 되지는 않았어요. 뭐, 열네 살짜리부터 육십 먹은 노인까지 다 하는 거니까 그냥 형식적인 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영 미심쩍은 이야기지만, 사인을 못 하겠다고 버텨봤자 사정을 봐줄 성싶지도 않다. 임수정은 한숨을 내쉬며 내키지 않는 서류에 이름을 써줬다.
“네, 다 됐습니다. 자, 이 종이 가지고 이 앞 대민 지원 센터로 가시면 생필품을 드릴 겁니다. 거기에서 전달하는 지시 사항도 잘 들으시면 됩니다.”
도장 찍힌 조그만 딱지를 받아 든 임수정은 어제 테라가 했던 것처럼 90도로 깊게 허리를 숙여 보초병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쉬이잉―
이틀 만에 맞아보는 외부의 바람이 머리칼을 흐트러뜨리자 임수정은 감격한 표정으로 갇혀 있지 않은 밤공기를 실컷 들이켰다. 맨발이지만 자유롭게 걷는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아서 불편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저…… 여기로 가서 이걸 드리라고 하던데요.”
대민 지원 센터는 격리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딱지를 내밀자 뚱한 표정의 군인은 별다른 설명 없이 라면 박스만 한 종이 상자 하나를 집어 가라고 한다. 친절함이라는 단어를 집에 놔두고 입대한 녀석 같다.
“이게 뭐예요?”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묻는 임수정에게 군인이 싸가지 없는 투로 말했다.
“거기 쓰여 있잖습니까, 구호품이라고.”
“네. 그럼 이제 이거 가지고 가면 되나요?”
임수정이 애써 성질을 죽이면서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자 군인은 서랍에서 열쇠를 꺼내 탁자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것도요.”
“저…… 이건…….”
“어허, 거참! 딱 보면 사물함 열쇠지. 이 아줌마, 찜질방도 안 다녀봤나?”
군인이 비아냥거리자 옆자리의 다른 군인들이 낄낄댄다.
아줌마라고? 이런 개…… 으휴, 아니다. 그냥 참자. 후우…….
발끈하려던 임수정은 생각을 고쳐먹고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런 사소한 것들과 매번 정면으로 맞서기에 지금의 그녀는 너무 지치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언니!”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박스를 안은 채 1루 측 건물 내부를 너털너털 걸어가던 임수정에게 테라가 절룩이며 달려와서 안긴다.
“아, 테라야.”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는 게 느껴져 임수정은 쑥스럽게 웃었다.
임수정이 가장 먼저 살핀 것은 테라의 발이었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 어지간히 아플 텐데, 테라는 용케 그 불편해 보이는 분홍색 샌들을 신고 잘도 걸어 다닌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계속 안 나와서 걱정했어요.”
“그러게. 괜히 두 시간은 더 잡아둔 것 같아. 뭐지?”
“그 오빠들이 언니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나 보네요. 후후.”
임수정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얘는. 너라면 몰라도 나한테 그러겠니? 조금 전에도 이 박스 안에 뭐 들었는지 물어보려다가 아줌마 소리까지 들었어. 얼마나 떽떽거리던지.”
“하하하, 그 박스 준 사람이죠? 콧구멍이 크고, 낙타처럼 생긴……. 신경 쓰지 마세요. 그 사람 유명해요, 못된 말 하는 걸로.”
E열 사물함 앞에 서서 임수정의 번호를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숫자를 따라 읽어가며 테라가 말했다.
“그래? 그럼 좀 위안이 되네.”
“언니 사물함은 여기네요.”
테라는 임수정의 사물함 열쇠 번호를 보고 자신과 근처라면서 좋아한다. 그녀의 조언대로 미리 박스를 뜯어 가져갈 물건만 가져가고, 남은 건 사물함에 넣어두기로 했다.
구호품 박스 안에는 은박으로 코팅된 돗자리, 이전에 지급받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큰 담요 하나, 공기를 주입해서 쓰는 베개, 수건 두 장, 두루마리 휴지, 생리대, 물 두 병과 건빵 두 봉지, 비닐봉지 몇 장과 아주 싸구려 티가 나는 프리 사이즈 트레이닝 복 한 벌, 그리고 열 개들이 콘돔 한 박스가 들어 있었다.
다른 물건은 다 이해가 가는데 콘돔은 이 상황과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임수정은 잠시 콘돔 박스를 들고 멍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테라가 귀엣말을 한다.
“근데, 그게 의외로 꽤 인기가 있나 봐요. 그거 한 박스가 건빵 두 봉지랑 교환된대요. 크크.”
“그래?”
이 쉘터 내에서 건빵 두 봉지라는 게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테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임수정은 두 가지에 대해 놀랐다.
하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섹스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그녀보다 불과 하루 일찍 나온 테라가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알았니?”
“하하, 언니도 참, 그런 걸 누가 가르쳐줘요? 그냥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은 거예요.”
“그런데 테라야, 가진 거라고는 달랑 이게 다인데, 이까짓 걸 굳이 사물함에 넣어둬야 하나…….”
임수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테라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달랑 그거밖에 없으니까 더 잘 보관해야 해요. 사람들이 막 훔쳐 가요.”
“정말?”
“네. 저도 어제 나와서 멋모르고 자리 위에 박스째 올려뒀었거든요. 근데 화장실 다녀와 보니까 먹을 거랑 콘돔만 싹 가져가 버린 거 있죠? 히잉, 물 한 병은 좀 놔두지…….”
헛! 서글픈 이야기라서 임수정은 혀를 쯧쯧, 찼다. 하긴, 세상 어디엘 가더라도 일정한 비율로 좋은 놈과 나쁜 놈, 베푸는 놈과 훔치는 놈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 너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니?”
“아니요. 먹을 건 많이 있어요. 언니도 박스에서 먹을 건 따로 빼서 사물함에 미리 챙겨두세요. 제 걸 드릴게요.”
먹을 걸 다 도둑맞았다더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얘는?
임수정이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찰을 돌던 군인 두 명이 주변을 힐끔거리면서 다가왔다.
“테라 씨.”
뒤쪽을 확인하고 난 뒤, 군인이 말을 건다. 다른 군인은 건빵바지에서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꺼내고 있다. 테라는 반갑게 미소를 지어주며 꾸벅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빠.”
“후우~! 테라 씨! 사랑합니다!”
한 발자국 다가온 건빵바지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속삭인다.
그가 내민 손에는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음료수 두 개와 초코파이 두 봉지가 들려 있다. 테라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두 손으로 음식들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군인 둘의 손을 한 번씩 꼭 잡아주며 테라는 고맙다는 말을 명랑하게 연발했다. 부끄러워 그런 것인지, 행복감에 그런 것인지 얼굴이 터지기 직전까지 달아오른 군인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재빨리 멀어졌다.
뭔가 대단히 부당한 거래를 한 것 같아서 불안하게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임수정과 달리, 테라는 평온한 모습으로 군인들의 뒷모습을 보고 서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 더 가져가야지.”
테라는 팔목에 차고 있던 열쇠를 꺼내 자신의 사물함을 열었다.
가로 40센티, 세로 80센티 정도 되는 철제 사물함의 문이 열리자 엄청난 양의 음료수와 건빵, 초코파이 따위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높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세상에…….”
테라의 사물함을 본 임수정의 입에서는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웬일이야? 이게 다 군인들이 준 거야?”
“음, 거의 그래요.”
“이 정도 있으면 좀 전의 그 사람들 건 받지 말걸 그랬다.”
“하지만 그 오빠들은 저한테 뭘 꼭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요…….”
테라가 대답했다.
“거절하는 것보다 그냥 고맙게 받아야 그 오빠들이 더 기쁠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어차피 전 벌써 훨씬 더 큰 걸 빚지고 있는걸요, 뭐.”
그 말을 하면서 테라는 사물함 위쪽에 걸어둔 정글모를 인사하듯 바라보았다.
“씨발, 누구는 좋겠어……. 좃도.”
십 대로 보이는 여자애들 서넛이 테라를 향해 들으라는 듯 욕설을 퍼부으며 근처를 지나간다.
테라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사물함 문을 닫고 열쇠를 돌려 잠갔다. 그 정도로 부족했는지 여자애들은 몇 마디 험한 말을 큰 소리로 남기고 가버렸다.
“봤냐, 저년 발가락 잘린 거? 아유, 존나 징그러워. 저러고서도 높은 샌들을 신고 다니고 싶나? 미친년이.”
“얼굴도 씨발, 화장 떡칠 안 하니까 별것도 아니구만. 병신 된 년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몰라. 킥킥킥!”
당사자가 아닌 임수정이 들어도 화가 나서 못 참을 수준이지만, 정작 테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임수정의 팔을 잡아끈다.
“가요, 언니. 이 코너만 돌면 제가 맡아둔 자리 있어요.”
“괜찮아, 테라야? 저런 이야기 듣고? 기분 많이 상했지?”
“인기가 올라가면……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거든요. 저희 집에요, 눈만 도려낸 제 사진도 엄청 많이 날아왔었어요. 피까지 뚝뚝 떨어뜨려서……. 처음엔 속상해서 많이 울었는데,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정말 힘들었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테라가 임수정을 이끌고 간 곳은 원정 팀 더그아웃이 있는 내야석 건물 내부였다.
안쪽 벽에 세 줄로 돗자리를 깔고 맥없이 누워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임수정과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이가 든 여자들이고, 이 쉘터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어린아이들 예닐곱이 웃으며 그 주변을 뛰어다닌다.
아마도 좀비 사태 속에서 남편과 헤어지게 된 아이 엄마들끼리 자연스럽게 뭉쳐 만든 무리일 것이다.
“어, 테라다.”
테라를 발견한 여자아이가 달려와 다리에 안겼다. 다섯 살 정도나 되었을까, 이렇게 연약한 팔과 다리로 용케 저 아수라장을 빠져나와서 살아남았구나 싶을 만큼 어린 아이였다.
“언니라고 해야지!”
아이의 엄마가 가볍게 나무란다.
“하하, 괜찮아요. 소영이 안녕? 자, 언니가 뭐 가져왔나 보자…… 짠, 우와! 맛있는 초코파이네!”
테라가 비닐봉지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주자 아이는 신이 나서 초코파이 봉지를 흔들며 엄마에게 뛰어갔다.
엄마가 ‘너 고맙습니다, 했어?’라고 묻자 아이는 뒤늦게 돌아서서 배꼽인사를 한다. 테라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웃고, 아이 엄마와 가볍게 눈인사를 교환했다.
“테다야, 이거 가더.”
아직 기저귀를 달고 있는 아기 하나가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걸어와서 동그랗게 대충 뭉쳐 놓은 종이를 건네며 혀 짧은 소리로 테라를 부른다. 테라는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와아~ 이게 뭐야? 나 가져도 돼?”
“어, 그거 호두가다. 머거.”
물론 호두과자가 아니라 휴지 쪼가리일 뿐이지만, 테라는 입에 가져가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얌얌얌~ 아, 맛있네. 고마워, 왕자님~ 후후. 얘들 귀엽죠, 언니?”
목적을 달성하고 신이 나서 호두과자를 더 만들기 위해 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기의 손에도 테라가 쥐여 준 초코파이가 들려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담아 왔던 과자며 주스를 골고루 하나씩 쥐여 주자 봉지는 거의 다 바닥이 났고, 그 대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예전 같았으면 별것 아닌 간식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선물이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두어 개의 돗자리들을 지난 다음, 비어 있는 테라의 옆자리에 임수정이 가져온 돗자리를 깔았다.
이제 이곳이 내 집이 된 건가…….
허망한 마음으로 한숨을 짓는 임수정에게 테라가 주스와 초코파이를 권했다.
“언니도 드셔보세요. 저 이거 굉장히 오랜만에 먹는 건데, 이렇게 맛이 있는 거였는지 몰랐었어요.”
자신의 돗자리에 앉은 테라가 웃으며 초코파이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흰 얼굴과 오물거리는 핑크색 입술을 보고 있자니, 자기 간식을 아껴서 몰래 쥐여 주고 가는 군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여자인 임수정조차도 흐뭇해질 만큼 예쁘다.
“고마워.”
배는 고프지만 처지를 생각하면 심란해져서 임수정은 봉지도 뜯지 않은 과자를 들고만 있었다.
하필이면 테라가 아줌마들과 어린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아줌마들의 수다와 아이들 투정 부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하며 울렸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앞으로 매일 저런 소음과 함께해야 한다니, 적잖이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보다 더 한적한 자리도 많은 것 같은데, 왜 얘는 하필 이런 곳에, 그것도 한가운데쯤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걸까?
임수정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티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 하나가 그녀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희망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이틀 이상을 환히 밝혀진 철창 안에서만 지내고 나온 터라 임수정에게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절실했다.
‘내일은 테라에게 좀 사람이 적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해야겠어. 가뜩이나 정신 산란한데, 애들 우는 소리에까지 시달리고 싶지는 않아.’
공기 튜브 베개를 베고 누운 임수정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가씨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렸다.
“어딜 만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