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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기갑부대 (4) (68/449)


68. 기갑부대 (4)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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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바박! 피비빙―

외부의 총성이 계속 귀를 자극한다. 아직까지 후방의 아군이 싸워주고 있다는 의미여서 총소리는 그래도 반가운 소식이다. 장갑차 내부의 모든 승무원들은 침묵 속에서 다음의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총소리가 멎은 뒤에까지도 외부에서 아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콰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전차가 가볍게 흔들렸다.

뭐지? 뭐가 폭발한 거지?

다들 겁에 질린 눈만 마주 볼 뿐, 아무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했다. 아마도 길가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연료 탱크가 기관총탄에 맞아 폭발한 거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가까운 곳이었는가 하는 데 있었다.

만약 바로 곁에서 불이 난 거고 곧이어 연쇄 폭발이 이어질 거라면……. 장갑판을 뚫고 파편이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쇳덩어리 내부에서 천천히 구워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차축 회전! 우로 90도!

소위의 명령을 조종수가 복창하자 장갑차가 제자리에서 크게 돌았다.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보병들은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꽉 쥐면서 가볍게 비명을 지른다.

― 진정해! 뿌리칠 수 있다! 저속 전진!

장갑차는 크르릉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길가에 밀어둔 자동차를 밟아 뭉개기 시작했다.

장갑차 내부는 정신없이 출렁거렸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좀비들이 달라붙어 있는지, 시야는 계속 확보되지 않았다.

와그그그작― 우드득―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들의 지붕을 갈아 뭉개가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동안 장갑차는 계속 기우뚱거렸고,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폭발음과 함께 장갑차가 흔들렸다.

콰아아앙!

이번 충격은 아까보다 더 크고 강해서 보병들은 벽에 하이바를 부딪치거나 앞으로 넘어졌다. 조금 전의 폭발보다 더 근접한 곳에서 일어난 게 분명하다.

치이이익―

우우웅―!

갑자기 측면에서 공기가 주입되는 소리가 들리며 장갑차 차체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소위가 짜증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 뭐야?

― 우측면 에어백 부양 장치입니다. 한쪽만 부푸는 걸 보면 오작동인 것 같습니다.

조종수가 대답했다.

― 중지시켜!

― 통제가 안 됩니다! 명령이 듣지 않습니다!

측면 전체를 커버하는 긴 에어백이 어떻게 장애물들 사이로 교묘하게 걸쳐졌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것 때문에 무한궤도 한쪽이 들려 버린 모양이다.

위이이잉―

공회전하는 엔진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 기우뚱해진 장갑차는 좀처럼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보아왔던 장갑차 안의 붉은 조명이 갑자기 불길하게 느껴진다. 폐소공포증이 찾아온 한 병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가고 싶습니다! 우웁! 허어, 허억― 병장님, 숨을 못 쉬겠습니다!”

“진정해! 금방 끝난다! 가슴을 펴고 숨을 들이마셔!”

이 병장이 달래보지만, 병사는 이미 패닉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다.

우지끈, 우두두둑!

가라앉은 왼쪽 무한궤도가 깔려 있던 자동차 지붕들을 완전히 갈아 무너뜨리면서 경사도는 더욱 심해졌다. 겨우 조금 더 전진하는가 싶던 장갑차는 이내 앞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으아앗!”

보병 탑승 구역에 앉아 있던 병사들은 포탑을 보호하고 있는 격벽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좁은 포탑 내부 역시 사정은 매한가지여서, 소위와 사수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지휘 통제 장치를 들이받았다.

으직!

뼈가 부러진 소위의 코에서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져 위장 도색을 지우며 흘러내렸다.

“으윽!”

코를 움켜쥔 소위의 입에서 비명과 신음의 중간 정도 되는 소리가 고통스럽게 새어 나온다.

우웨에엑― 위생백을 미처 찾아내지 못한 병사가 구토를 시작하자 값비싼 전자 장치들 위에 토사물이 잔뜩 뿌려졌다.

쿠구구―

가뜩이나 전면이 무거운 K21은 한번 중심을 잃자 가속도를 붙이며 빠르게 앞쪽으로 기울어지며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포탑 주변에 한데 몰려 엉킨 보병들의 무게도 한몫했다.

― 파도막이 전개!

소위는 안간힘을 썼다. 앞면에 설치된 넓은 쇠판을 열어서 그 힘으로 앞으로 고꾸라진 장갑차를 밀어내겠다는 것인데, 애초에 단순히 도하용 장비로 설계된 파도막이에 그만한 힘이 있을 리 없다.

위이이잉― 이이잉―

한계까지 내몰린 모터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소위가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자, 넓지 않은 장갑차 내부는 금세 모터에서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 차 버렸다. 납이 타는 냄새가 폐부를 찌른다.

― 쿨럭! 쿨럭! 조종석 해치 열겠습니다!

― 안 돼! 불가하다! 규정 외의 일이다!

조종사가 괴로워하지만 소위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병사들이 소화기를 찾아 불꽃이 튀는 쪽을 향해 뿌려 대는 동안에도 뿌연 연기는 훨씬 짙고 자욱하게 차올랐다.

조금 전 구토했던 병사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는 것을 필두로 해서 차례로 모든 병사들이 기침과 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조종사는 해치를 밀어 올렸다.

덜컥―!

뭔가 아래쪽에 걸린 해치는 몇 센티미터만 간신히 열렸다.

“장갑차장님! 쿨럭! 후방 해치 개방해 주십시오! 쿨럭, 쿨럭! 저희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숨을 참다못한 이 병장이 간절하게 외쳤다. 이대로 이 안에서 개기다가는 어차피 질식으로 모두 죽게 될 상황이다.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장갑차장님! 소위님!”

이 병장이 아무리 외쳐 봐도 위쪽 포탑은 고요하기만 하다.

“우웩, 으~ 쿨럭! 이거, 아무래도 기절한 모양이지 말입니다!”

김 상병이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면서 외쳤다. 이 병장도 동의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쩌지? 젠장!”

“해치를 열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외치는 진우의 눈에도 눈물이 대롱대롱 달려 있다.

이 병장이 포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서 엄호를 해줘야 나가지! 지금처럼 이렇게 거꾸로 처박힌 상태에서는 뛰어나가지도 못해!”

“그거 기다리다가 다 죽습니다!”

진우는 45도 정도 위쪽에 떠 있는 후면 해치의 철제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끼이익―

안간힘을 써봐도 해치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바닥에 떨어져 내릴 쇠문이지만, 지금 각도에서는 들어 올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려서 몇 배나 힘이 든 것이다.

이이익― 이 병장과 김 상병까지 달려들어 봤지만, 모터의 도움 없이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탕―!

육중한 해치가 다시 닫히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래도 이 시도로 건진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비록 미량이기는 해도 맑은 공기가 유입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지근에 좀비들이 많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만약 근처에 좀비 떼가 있었다면 해치가 열리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어 문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생난리를 치며 들어 올렸을 것이다.

“작은 해치로 나가자!”

김 상병이 좌석 손잡이를 잡고 서서 버티며 진우를 목말 태웠다. 이 병장도 또 다른 병사를 어깨에 올리고 진우를 돕게 했다.

사람 하나가 허리를 굽히고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수동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진우는 소총을 사선으로 세운 채 빙 돌려 발사했다. 혹시 위쪽에 서 있을지 모르는 좀비들을 노린 것이었다.

퓨퓨퓩―

총구가 원을 3분의 1쯤 그렸을 때, 고깃덩어리를 총알이 꿰뚫는 소리와 함께 좀비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와아아악―

그리고 곧바로 좀비 한 마리가 해치 내부로 머리를 들이밀며 뛰어들었다.

“쏴! 쏴!”

당황한 병사들이 황급히 사격을 개시했다.

파바바박!

대여섯 개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고, 뛰어내리던 좀비는 사지가 찢겨 나가면서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핑― 티팅―!

누군가의 총알이 장갑차 내부에 맞고 튀었다.

“으악!”

곧이어 병사 하나가 허벅지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유탄이 꿰뚫고 간 자리에서는 금세 콸콸 피가 솟아올랐다.

“야! 얘 좀 챙겨! 묶어줘!”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병사를 붙잡아 구석으로 당기며 이 병장이 고함을 질러 댔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좀비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두드리는 데 혼이 팔려 있었다. 이미 죽은 좀비라는 걸 인식하지 못할 만큼 두려움이 이성을 압도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두어 마리만 더 뛰어 들어온다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사태까지도 일어날지 모른다.

시간을 끌어선 안 돼…….

탄창을 갈아 끼운 진우는 좌석 손잡이를 밟고 뛰어 올라가며 크게 외쳤다.

“쏘지 마! 나간다!”

해치 밖으로 뛰어나가기 직전, 진우는 하이바를 벗어 왼손으로 내부 끈을 쥔 채 들어 올렸다.

끄와아아악!

낚시에 걸려든 좀비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하이바를 향해 달려든다.

콰악.

좀비의 얼굴에 부딪힌 하이바가 날아가고, 재빨리 손을 뺀 진우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좀비의 가슴과 배에 총알을 잔뜩 박아 넣었다.

타타타타타―

크웨에에―

엉망으로 훼손된 좀비의 몸뚱이가 장갑차의 외부에 내동댕이쳐지며 퉁, 퉁, 울렸다.

“으아아아!”

진우는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큰 소리로 기합을 지르며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포탑에 달라붙어 있던 네 마리의 좀비가 반색을 하고 달려든다.

파바박― 파박― 파바바박―

진우는 가까운 순서대로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대갈통이 박살 나고, 목과 분리된 좀비들의 몸뚱이가 맥없이 장갑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급한 불을 끈 진우는 해치 밖으로 뛰어 올라가 45도로 기울어진 장갑차의 후면 위에 섰다.

다급하게 360도를 둘러보니 사방에서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풀쩍풀쩍 뛰면서 이쪽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던가?’

탄약이 다 떨어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저쪽 역시 시야를 상실한 것인지, 벌써 한참을 떨어져 있는 2호차는 더 이상 기관총을 발포하지 않았다.

미처 깔아뭉개지지 않은 좀비 잔당들을 요격하는 것은 훨씬 더 후방에 서 있는 3호차가 담당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지근에서 달려드는 좀비 무리들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 1호차 보병들의 몫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위쪽 안전합니다!”

진우는 장갑차 내부를 향해 외친 다음, 열려 있는 해치에 등을 댄 채 가장 가까운 방향의 놈들부터 차례로 총알을 먹여줬다.

파바박― 파바박―

다른 장갑차의 라이트가 미치지 않는 범위의 지역에서 유령처럼 움직이는 놈들을 조준경으로 쫓고 있자면, 공포 영화 속에 빠져든 것 같아 소름이 끼칠 만큼 오싹해진다.

하지만 어제 밤새도록 그 끔찍한 물량을 경험하고 나니 이 정도는 충분히 견뎌줄 만하다.

게다가 저 좁고 냄새나는 장갑차 안에서 질식할 바에야, 언제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좀비와 싸우다가 죽는 쪽을 택하는 게 낫다.

“네 후방은 내가 맡는다! 자, 다들 빨리 기어 나와!”

두 번째로 장갑차 위에 올라선 것은 이 병장이었다.

이 병장은 진우와 등을 맞대는 위치로 가서 좀비들을 향해 한차례 난사를 퍼부은 뒤, 장갑차 내부를 향해 외쳤다. 커다란 얼굴과 달리 꽤나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이다.

김 상병과 다른 병사들도 차례로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고 기침을 해가며 숨을 몰아쉬었다.

타바바바바― 투두두두두―

일곱 정이나 되는 K―2가 일시에 연사를 해 대자 달려들던 좀비들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물론 김 상병의 예광탄은 오늘도 하늘로 솟구치기만 한다.

타앙! 타앙! 타앙!

진우는 방향을 바꿔가며 위협이 될 만한 좀비들을 저격했다. 조명이 어둡다는 점이 조금 어려움을 주지만, 거리만 확보된다면 이 정도 규모는 그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양이다.

아군의 피해 없이 10여 분간 펼쳐진 교전이 끝을 맺은 뒤,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생존과 승리를 만끽했다. 그때쯤 2호차와 3호차 주변의 좀비들도 거의 정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움직이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전방을 확실하게 살핀다!”

흥분이 한차례 휘몰아치고 간 뒤, 이 병장이 분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각자 개인화기에 장착된 플래시로 전방을 어지럽게 둘러보는 동안, 진우는 천천히 포탑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포탑 뒤쪽에 달린 난간을 꽉 잡고 기울어진 장갑차의 앞쪽을 살폈다.

기관총 사격을 받아 꺾여 나간 안테나의 날카로운 단면에는 반 토막이 난 좀비의 하체가 꿰어져 있고, 조종석 해치는 엉망으로 부서진 트럭 짐칸에 꽉 끼어 있어서 열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부양 장치의 공기만 빼준다면 구난 전차를 부를 필요 없이 자력으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장갑차장석 해치 손잡이를 꽉 잡은 채 팔꿈치 위쪽이 잘려 나가 버린 좀비의 팔을 워커로 걷어차 날린 다음, 진우는 해치를 끌어 올렸다.

아직도 자욱하게 깔려 있던 연기가 빠져나가고,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위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해 댔다.

“소위님.”

“…….”

“소위님!”

“으…… 응? 응?”

진우가 부르자 소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위쪽을 돌아본다.

피딱지가 앉은 소위의 코는 뼈가 어긋난 채 퉁퉁 부어올라 주먹만 하다. 눈물과 코피로 범벅이 되어 위장크림이 벗겨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 사람의 나약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쿨럭! 쿨럭! 여기가…… 지금?”

소위는 조금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머리를 감싸 쥐더니 진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끝까지 고맙다거나 잘했다는 말은 안 하시겠다는 건가? 내 동생도 너보다는 어른스럽겠다…….

그 얄팍하고 유치한 자존심이 너무 같잖아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소위를 탱크 밖으로 잡아끌며 진우는 하루 종일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건넸다.

“진짜 전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소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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