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기갑부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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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기갑부대 (3)
2021.11.06.
“으음…….”
소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주유소라는 무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기관총 사격은 어렵다. 자칫 실수를 했다가는 이 근방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마음 같아서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돌아가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부하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적을 보고도 내뺀 겁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다.
보병들에게 들어가 보라고 할까……. 하지만 지금까지 큰소리만 잔뜩 쳐놓고서 선두에 서지는 못할망정 보병들의 힘에 의존하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내부 수색을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소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병장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소위가 반색을 하며 묻는다.
“자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향후에 이곳에서 작업하게 될 전우들의 안전을 위해, 위험의 가능성들을 찾아 완전히 섬멸하고 싶습니다!”
병장은 청산유수로 아무 소리나 잘도 지껄여 댔다. 짬밥의 위대한 힘에 진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살피더니 명령을 내렸다.
“좋아! 내 소속 분대답다! 수색을 허락한다! 23시 50분까지 작전을 완료하도록!”
“넵!”
병장이 대답과 함께 민첩하게 분대원들을 독려하며 주유소 건물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벽에 기대며 안쪽을 살피는 폼만 보면 사정을 빤히 아는 진우조차도 실제 작전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 만큼 모두 한마음으로 진지하게 쇼를 하고 있다.
그가 30분을 주기 전에 시계를 보았던 게 진우에겐 중요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시간 제약을 두는 걸 보니, 때를 맞춰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자, 이거 박 이병, 네 거지?”
앉아쏴 자세를 유독 열심히 취하던 김 상병이 구석에서 수통을 집어 몰래 건네준다.
“포스터만 가져오는 거다. 다른 건 아무것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라. 우린 거지가 아니다.”
매점 문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병장이 분대 전체를 향해 소리를 죽여 다짐했다. 모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K―2에 장착된 플래시를 켠 뒤, 유리로 된 문을 활짝 밀어젖히며 일사불란하게 뛰어 들어간 분대원들은 날짜가 지난 신문이 놓여 있던 가판대부터 뒤집어엎었다.
두 명이 카운터 위로 뛰어 올라가고, 진우와 병장이 과자 판매대를 잡아당겨 문 앞으로 끌어다 놓으며 전방의 시야를 확보하는 척 문을 가렸다.
김 상병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동료들의 그림자 사이에 몸을 숨긴 채 포스터를 떼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장이 재촉하기 위해 고개를 힐끔 돌린 순간, 김 상병은 벌써 쪼그리고 앉아 떼어낸 포스터를 둘둘 말고 있었다.
빠르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감탄했다. 테이프가 붙어 있던 자리를 아예 대검으로 잘라낸 모양이다.
꽈르르륵―
과자 판매대를 거칠게 밀어서 포스터가 있던 벽 쪽으로 붙여 버렸다.
담배, 음료수, 각종 과자와 오징어 버터 구이 같은 악마의 유혹을 용케 이겨내고 분대원들은 1층을 샅샅이 수색하는 작업을 마쳤고, 그러는 동안 김 상병은 동그랗게 만 포스터를 반으로 접어 옷 뒤쪽에 집어넣었다.
이제 우리만의 작전이 끝났다. 안도하는 한숨을 다 같이 몰아쉬려 할 때, 2층에서부터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눈이 똥그래진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큰 소리는 아니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와 있으니 그 진동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쿵―!
똑같은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오자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위에 분명 뭔가가 있다.
“왜 그러나?”
여전히 장갑차에서 내려오지 않은 소위가 동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며 큰 소리로 물어온다. 병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아, 씨발. 말이 씨가 됐잖아…….”
병장은 초조한 표정으로 건물 왼편 끝에 붙은 계단을 힐끔거렸다. 김 상병도 그제야 포스터에 대해 집착했던 걸 조금 후회하는 얼굴이다.
“그냥 가기는 쪽팔린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양이였던 모양입니다, 라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보고를 할 참이었지만, 이렇게 되고 나니 선뜻 그 말이 입에서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자존심을 위해 포스터를 얻으러 온 건데, 이런 상황에서 그냥 내뺀다면 오히려 이쪽의 자존심이 바닥을 치게 된다.
이대로 나가서 구라를 쳐버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그런 건 관계없다.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 자신은 분명히 기억할 테니까.
병장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내가 올라가 보겠다. 말 꺼낸 게 나랑 쟤니까 공연히 너희까지 피해 볼 필요 없다.”
물론 그가 가리킨 ‘쟤’는 김 상병이었고, 김 상병은 얼굴이 파래져서 진우를 바라봤다. 어젯밤의 그 난리를 겪으면서 정말 피를 나눈 전우가 된 그에게, 진우는 돕겠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여줬다.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나머지 분대원들에게 1층을 맡기고, 진우와 김 상병, 병장, 세 사람은 천천히 나선형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선봉을 자처하는 걸 보면 병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밖에서 비추는 제논 램프 덕에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지만, 창틀이나 기둥이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 속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액션 연기를 해 대며 1층을 털 때와는 전혀 다른 신중함을 가지고 세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쿵―!
또다시 복도를 울리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병장과 진우는 앞쪽을 겨누고, 김 상병은 뒤쪽을 경계하며 소리의 진원지로 보이는 방 앞에 도착했다. 병장은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봤다.
스으윽.
손잡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간다. 잠겨 있지 않은 것이다.
“안에 계시면 대답하십시오!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병장이 큰 소리로 몇 번을 반복하여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긴장된 세 사람의 숨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린다. 병장은 진우와 김 상병에게 눈짓을 해서 엄호를 지시한 다음 곧바로 문을 힘껏 걷어찼다.
콰앙―!
진우는 총을 겨드랑이에 꽉 끼운 채 다가올 위협에 대비했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플래시로 비춘 방 안은 거의 텅 비어 있고,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아, 하아…… 뭐지, 씨발? 이 방이 아닌가?”
여전히 K―2 소총을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댄 채 병장이 말했다. 어안이 벙벙하기는 진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리의 진원지는 분명 여기가 맞다. 천천히 방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조그만 소파를 걷어차 밀어봐도 쥐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는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비릿한 바람이 불어올 때, 그들을 공포에 빠뜨렸던 소리의 정체가 밝혀졌다.
반쯤 열려 있던 뒤쪽 베란다 문이 바람에 닫히면서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를 낸 것이다. 문의 움직임에 놀라 재빨리 사격 자세를 취했던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씨발. 왜 문이 닫히지도 않고 계속 저렇게 쿵쿵거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틈에 슬리퍼가 끼워져 있어서 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하고 다시 밀려났다가 바람이 세게 불 때면 한 번씩 퉁퉁거리며 문틀을 쳐 댄 것이다.
이런 제기랄, 등에 식은땀을 쫙쫙 흘리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던 이유가 고작 쓰레빠 때문이었다니…….
세 사람은 슬리퍼를 걷어차 버리고 문을 꽉 닫으며 한바탕 욕을 퍼부었지만, 동시에 적잖이 안도했다.
“이일병 병장이다. 수고 많았다.”
병장이 잠시나마 서로의 목숨을 의지했던 두 사람에게 악수를 청한다. 자기소개를 하는 김 상병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며 이 병장이 한마디 했다.
“이 새끼 봐라? 너 지금 내 이름 가지고 병장이라도 일병, 그런 생각하면서 웃었지?”
“아닙니다. 병장님 같은 훌륭한 분을 분대장으로 모시게 돼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은 겁니다.”
“지랄하네. 어쨌든 앞으로도 오늘처럼 뜻을 모아서 꼭 같이 살아남자.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이일병 병장님!”
싱거운 김 상병이 엉덩이를 한 대 걷어차인 후, 세 사람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23시 35분에 장갑차로 돌아가 2층의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자 소위는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잘한다. 고양이 보고 놀라고, 문소리에 기절하고…… 너무 용감해서 뭐라 말이 안 나온다. 너희를 진짜 군인으로 만들려면 내가 얼마나 힘이 들지 앞길이 깜깜하다. 꼴도 보기 싫다. 빨리 탑승해!”
비아냥을 들었어도 장갑차에 앉아 서로를 마주하는 분대원들의 얼굴엔 승리감이 깃들어 있다.
그래도 우린 수상한 지역을 내 발로 직접 뛰어서 정찰했어. 너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진짜 군인 타령하는 놈이 아니야.
그리고 오늘 승리의 증거물인 포스터는 여전히 김 상병의 군복 뒤쪽에 잘 감춰져 있다. 비록 오늘 새로 만난 분대원이지만, 이 작은 사건은 그들에게 커다란 유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쿠루루루루.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탄 1호차가 선두에 서서 돌아간다.
여전히 인적이 없는 도로를 지나쳐 가면서 무료하다는 생각이 장갑차 내부에 천천히 퍼져 갈 때쯤, 진우의 온몸에 그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제기랄!’
자신의 예감이 틀린 것이기를 바라며 진우는 스크린에 비치는 전방을 열심히 살폈다.
자동차들을 도로 양쪽으로 밀어내 쌓아둔 덕에 텅 비어 있는 중앙 차선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화면이 비추고 있는 건 고작 수십 미터 앞일 뿐이다.
“왜 그래?”
김 상병이 진우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또 오는 것 같습니다.”
“오다니? 좀비? 어떻게 알아?”
“안 들리십니까? 아주 작긴 하지만 이 소리? 그리고 냄새가…….”
김 상병과 이 병장은 코를 벌름거리며 열심히 냄새를 맡아본다. 하지만 기름 냄새에 가려져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얘, 이상한 애 아니냐?”
병장이 김 상병에게 묻자, 김 상병이 고개를 저으며 진우를 변호했다.
“아닙니다, 병장님. 어제 새벽 기습 때도 이놈이 제일 먼저 알았습니다.”
‘그래?’ 하며 병장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병사들의 웅성거림을 들은 소위가 주의를 준다.
― 보병 탑승 구역, 소란스럽다! 무슨 일인가?
병장이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말했다.
“장갑차장님, 전방에 좀비가 출몰한 것 같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소위가 열 받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소리, 그림자, 그다음엔 냄새인가? 본관은 제군들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다. 정숙하고 있어라. 돌아가면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진짜 전장에 어울리는 군인으로 만들어주겠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더 보탠다.
―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구역에 좀비들이 이동하는 시간은 오전 두 시부터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보병들이야말로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당장 내가 지키는 초소 앞에 언제쯤 좀비의 습격이 올 것인지도 전혀 모르는 일반 사병들이 10킬로미터 떨어진 도로의 좀비 시간표를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일단은 명령을 지켜야 했기에 병사들은 초조한 얼굴로 전방의 스크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5분쯤 더 달린 장갑차가 활처럼 휘어진 도로 구간으로 접어들 때, 장갑차의 엔진 소리를 뚫고 예의 그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확실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적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였다.
하지만 청력을 보호하고 서로 교신하기 위해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던 소위와 두 명의 승무원만은 그 소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런 젠장.’
진우가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이번엔 소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신호가 좀비들의 출몰을 알렸다.
완만한 곡선 고갯길을 넘자 아래로부터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수백의 좀비들이 스크린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으으으으와아악!
좀비들의 괴성이 열려 있던 조종석 해치를 타고 실내로 전달된다.
“12시 좀비 출현! 12시 좀비 출현! 규모는 삼! 규모는 삼!”
조종수가 다급하게 외치며 서둘러 해치를 닫았다. 소위가 소대 전체에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1호차 속력 올려! 2호차 지원! 3호차는 현재 위치에서 유류 운반차를 엄호한다. 1호차 기관총 사격!”
끼이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갑차는 시속 55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높였고, 포탑 위쪽에 자리한 7.62㎜ 기관총에서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25톤이나 되는 무게로 좀비들을 일거에 뭉개 버릴 요량인 것 같다.
좀비들을 스무 마리 정도나 겨우 명중시킨 뒤 기관총 사수는 해치를 닫고 내부로 들어가 버렸고, 뭔가와 부딪치고 깔아뭉개는, 기분 나쁜 질감이 엉덩이에 전해지면서 장갑차가 좌우로 가볍게 흔들렸다.
카메라 앞을 막아서던 좀비들이 속속 무한궤도 아래로 끌려 들어가 사라지거나 반 동강으로 무참하게 잘려 나간다.
우두두둑! 빠가가가각―!
좀비들의 단단한 두개골이 수십 개씩 터지며 소름 끼치는 울림을 만들어냈다.
파바바바바바―
2호차에서 발사된 총알들은 1호차가 놓치고 지난 좀비들의 몸을 벌집처럼 부순다.
“후진한다. 속도는 20.”
소위의 명령에 따라 한참을 달려가던 장갑차는 다시 뒤쪽으로 내달렸다. 규모 셋을 순식간에 반 이상 섬멸시키는 장갑차의 활약을 보면서 보병들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넓은 벌판이었다면, 소위의 콧대는 더욱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맹렬하게 달려들어 봐도 좀비의 맨몸뚱이는 두꺼운 복합 장갑에 덮인 K21 장갑차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할 것같이 보였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 잔뜩 거들먹거리면서 장갑차를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좀비들을 짓밟던 소위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측면의 자동차에서 점프한 좀비들이 용케 포탑 위에 달라붙으면서부터다.
좀비들은 안테나에 매달리고, 포탑 안에 손가락을 넣어 휘젓는가 하면, 외부 감지 카메라에 이빨을 들이댔다.
커다랗게 벌려진 아가리가 카메라 위에 덮쳐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은 온통 하얀 화면만을 내보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장비가 파손되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 위로 겹쳐진 좀비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첨단의 장갑차는 장님과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소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멈춰 서버린 장갑차 내부를 울렸다.
― 조종실, 시야 확보되어 있나?
― 불가합니다. 아무것도 식별되지 않습니다.
조종실 해치에 붙은 파노라마 카메라도 피와 체액으로 뒤덮여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제 해치를 열지 않으면 외부를 볼 수 없다.
― 당황하지 마라! GPS로 바꿔서 기동 가능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가장 당황한 사람은 그인 것 같았다.
스크린에 직선과 화살표로 이루어진 컴퓨터 그래픽이 떠올랐다. 활처럼 완만한 곡선을 이루던 실제 도로가 그래픽에서는 똑바른 직선로로 표시되어 있다.
― 2호차, 1호차 포탑 위에 붙은 좀비들을 기관총으로 요격할 수 있나?
소위는 근접해 있던 2호차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포탑 내부에 설치된 동축기관총이므로 해치를 닫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사격이 가능하다.
― 가능하다! 시야 확보를 위해 포탑만 180도 회전하라. 가능하다!
보병들은 불안한 얼굴로 비닐 손잡이를 꽉 쥐었다.
잠시 후, 총소리와 함께 장갑차 내부가 가볍게 울려온다. 2호차가 쏜 기관총이 1호차를 명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거, 괜찮습니까?”
누군가 두렵다는 투로 묻자 이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색이 장갑차니까 이론적으로는 괜찮을걸? 저 정도 화력으로는 안 뚫려.”
피빙― 핑― 핑―
기관총탄이 쇠를 튕기고 지나가며 계속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좀비들이 다 떨어져 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조바심이 난 소위는 화면을 다시 열화상 쪽으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온통 녹색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2호차, 아직 좀비들이 그대로 붙어 있다. 어떻게 된 건가?
― 적중시켰는데…….
치익―! 치, 치칙! 치익…….
잡음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무선이 끊겨 버렸다.
― 2호차! 2호차!
소위의 얼굴에서는 점점 핏기가 빠져나갔다. 이쪽의 수신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2호차의 송신 기능 장애인지조차도 파악이 안 된다.
소위는 다급하게 3호차를, 그래도 대답이 없자 그다음엔 유류 운반차까지도 호출해 봤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단안식 조준경에까지도 눈을 가져다 대보지만,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되어버렸는지 온통 뿌옇기만 하다.
이젠 정말로 눈과 귀가 다 막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