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하이웨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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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하이웨이 (1)
2021.10.28.
흰 셔츠에 잔뜩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길가에 세워둔 차에 올랐고, 급하게 시동을 걸었다. 테라가 다시 몸을 일으킬 때, 네 번째 남자가 뛰어와 차의 뒷문을 열었다.
“야! 왜 이래, 씨발! 같이 가!”
큰 부상을 입었는지 네 번째 남자는 어깨 전체가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꺼지라고, 개새끼야! 너 물렸잖아!”
차 안에 타고 있던 남자들이 피 흘리는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밀쳤다.
“이런 씨발! 미친 새끼들아! 이거 내 차라고!”
피 흘리는 사내가 친구의 멱살을 잡아끈다. 친구는 전염병 환자를 대하듯 기겁을 하며 팔을 뿌리쳐 보려 했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아! 이것 좀 놓으라고!”
“그냥 씨발, 죽여 버려! 어차피 변해!”
그때, 정장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 하나도 그 상황 속에 뛰어들었다.
“저! 저 좀 태워주세요! 살려주세요!”
살점이 뜯어진 눈두덩에서 계속 피를 흘리는 여자가 차 문을 꽉 잡고 소리를 질렀다.
“이건 또 뭐야? 씨발! 빨리 문 닫으라고!”
운전자가 고함을 친다.
“물렸어도 난 괜찮아! 봐! 너희 친구 영민이야!”
피 흘리는 사내가 강하게 항변하고 있을 때, 운전자가 뛰어나오며 쇠뭉치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사내가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동안에도 여자는 여전히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 미친년이! 물린 주제에 여길 왜 기어 들어와!”
운전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콱 휘어잡고 당겼다. 여자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에요! 이건 아니에요!”
“비켜!”
운전자는 여자를 땅에 패대기친 뒤, 구둣발로 아랫배를 걷어찼다. 여자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웅크리는 동안 이번에는 쓰러져 있던 사내가 운전자에게 달려들었다.
“아이, 개새끼! 존나 질기네! 놔! 씨발, 놔!”
사내의 얼굴과 머리에 몽둥이세례가 콱콱 퍼부어졌다. 결국 끈질기게 버티던 사내의 몸이 맥없이 툭 무너져 내리자, 세 명의 남자들은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여자가 네 발로 기어가 차 앞을 가로막아 보려 했지만, 그들은 사정없이 여자를 치고 지나가 버렸다.
머리통이 깨지고 터져 나간 사내와 여자가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몸을 움찔거린다.
‘물린 사람은 죽는다!’
테라는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가죽 정도만 간신히 붙어 덜렁거리는 새끼발가락에서는 아직도 계속 피가 흐르고 있다.
이걸 사람들이 본다면…… 안 돼, 안 돼! 테라는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집 안으로…….
와장창!
그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거리의 사람들을 덮쳤다.
그롸아아악!
그리고 비명과 괴성.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테라는 귀를 막았다.
열심히 걸었지만, 속도는 나지 않는다. 잘려 나간 상처가 땅에 닿을 때마다 온몸에 저릿저릿한 통증이 와서 절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피난하는 건물 앞에서는 물린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자동차들은 보행자를 사정없이 쳐 죽이면서 내달리고 있다.
“어, 저기 쟤! 안으로 들어간다!”
“절로 가자.”
빌라 앞에 도착한 테라가 번호 키를 누르고 있을 때, 달아나던 두어 명이 그녀를 발견하고 뒤를 따라 뛰어 들어온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남자들은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서성거리며 중얼거렸다.
“야…… 쟤 발.”
“물린 거 아니야?”
“가만있어 봐. 일단 집에까지…… 하면…… 되지.”
무섭다……. 테라는 겁에 질려서 뒤를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곳에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이 남자들을 달고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제발 다른 곳으로 가주었으면…… 제발. 그러는 사이에도 무심한 엘리베이터는 일정한 속도로 내려온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을 때, 무언가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그녀와 사정없이 부딪쳤다.
그롸아아악! 크와아악!
눈이 하얗게 변한, 무서운 사람 둘이 테라를 밀쳐 넘어뜨린 후, 뒤쪽의 남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악! 으악! 이런 씨발!”
사내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괴물과 엉켜 붙었다. 테라는 다급히 엘리베이터 안에 뛰어들어서 단추를 눌렀다. 끄아악― 닫히는 문 사이로 끔찍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하아…… 하아……. 으흐흐흐으~”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온 테라는 현관 앞에 엎어져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이제는 안전하다.
‘구조 신청을 해야 해.’
한참을 울고 난 테라는 띵해진 머리를 붙들고 전화기 앞으로 겨우 기어갔다. 지금 제니에게 전화를 해봐야 사장 오빠는 차를 돌려 다시 와주지 않을 것이다. 테라는 119를 선택했다.
같은 다이얼을 수십 번 누르고 또 누른 후에야 겨우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담원의 말로는 너무 많은 구조 신호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에 시간 약속은 해줄 수 없단다.
테라는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주소와 이름을 일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무서운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지만, 이제는 구조만 기다리면 된다.
‘……엄마 목소리를 들어야겠어.’
잠시 멍해 있던 테라의 뇌리에 플로리다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펜사콜라의 아름다운 하얀 나무 집. 지금 그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심히 다이얼을 눌러보지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몇 번을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여서 테라는 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하아아~”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겪고 난 그녀는 벽에 기대어 한숨을 내쉰 후, 멍하니 거실 바닥을 바라보았다. 거실의 마루 위에는 흙투성이가 된 그녀의 발바닥 자국과 함께 점점이 핏방울이 떨어져 있다.
아파…….
테라는 잘린 발가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 끔찍한 모양에 다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면 봉합을 할 수 있을까? 바깥쪽 가죽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새끼발가락은 잘린 뼈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움푹 파여 나간 곳 주변엔 시몬의 이빨 자국이 남아 있다.
“어떡해…….”
테라는 울상을 지으며 상처를 다시 살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잇자국이라는 걸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새끼 물렸어!’라고 소리치며 친구의 머리통을 몽둥이로 터뜨리던 남자들의 무자비한 모습이 떠오른다.
구조대가 도착해서 이걸 본다면…….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려 봐도 방법은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그걸 해야 한다.
‘잘라내자!’
테라는 고개를 끄덕인 후 욕실로 가 조심조심 발을 씻어냈다. 그저 물이 닿는 것만으로도 뜯긴 상처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수건으로 눌러 물기를 닦아내고, 주방으로 가서 가위와 얼음을 채운 밀폐 용기, 그리고 선물 받은 위스키를 가져왔다. 밀폐 용기에 얼음을 채우고 수건에 가위의 날을 시험해 봤다.
싹둑― 가위가 한 번 스치고 지나가자 두툼한 수건이 깨끗이 반으로 갈라진다. 이제 발가락 차례다.
“후우…… 후우…… 후우…….”
신경을 둔화시키기 위해 얼음 통 속에 발가락을 담그고 있는 동안, 자꾸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해서 테라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발이 차가워졌을 때, 가위를 가져다 댔다.
눈을 감고 싶지만 잘 보고 자르지 않으면 같은 일을 또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없다. 제니가 곁에 있으면 해줬을 텐데…….
테라는 제대로 앞을 보기 위해 눈을 꾹 감아 고여 있던 눈물을 짜냈다. 할 수 있다. 2년 전 그날을 생각해! 그날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이까짓 것!
“흐읍!”
테라는 심호흡을 마친 뒤, 수건을 꽉 물고 조심스레 가윗날을 벌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을 꾹 감았다가 뜬 테라는 힘껏 가위질을 했다.
싹둑!
“끄아악! 끄으으…….”
머리끝까지 터져 오르는 통증!
테라는 가위를 내려놓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고통과 상실감이 한 번에 밀어닥치며 터져 나온 눈물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발가락은 깨끗이 잘려 나갔다. 시몬의 이빨 자국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처럼 또다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 위에 위스키를 부은 뒤, 다시 발을 얼음 속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제 구조받을 수 있다. 잘린 발가락이 담긴 밀폐 용기를 냉동실에 소중히 넣어두고 진통제를 찾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을 때, 테라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제니야.”
잠꼬대처럼 제니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떠보니, 이미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테라는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서랍에서 진통제를 꺼내 물과 함께 마셨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알약을 가루 내 상처에도 뿌려봤다. 물론 그 정도로 해결될 만한 부상이 아니다.
“아직 구조하러 오지 않은 건가?”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보니, 이제 거리에는 사람보다 괴물들이 더 많다. 테라는 다시 구조 요청을 해보려고 휴대폰을 꺼냈다. 112, 119, 제니의 휴대폰…… 그 어느 곳에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테라는 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물병을 입에 가져갔다.
술이라도 마시고 잠이 들어버리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구조대가 왔을 때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꾹 참았다.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기약 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그날 오후부터 전기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