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상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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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상처 (7)
2021.10.27.
골목을 배회하는 몇 마리를 용케 죽이고 저곳까지 다다른다고 해도, 저렇게 잔뜩 몰려 있는 괴물들을 다 해치운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게다가 자신은 다른 괴물들이 오늘 어떤 주기로 골목을 돌았고, 왜 보안관과 삼식이가 저런 곳에 고립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고 있다.
저 두 명이 동시에 시간 간격을 무시한다거나 착각했을 리는 없으니, 분명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한동안은 차분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시간부터 기록해 두어야 한다.
“지금 몇 시니, 제니야?”
“한 시 반요.”
유빈은 공구 가방에서 공업용 커터를 꺼내 바닥에 시간을 파놓았다. 잠시 더 기다리고 있자니, 예전에 봤던 것처럼 괴물들이 무리를 지어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따로 묻지도 않았는데 제니는 알아서 시간을 불러준다. 1시 34분. 꼬리가 지하 통로 쪽을 지나 돌아 나간 시간은 1시 40분이었다.
“6분 조금 넘게 걸린 것 같군. 지나가는 시간은 대충 같은데…….”
유빈은 초조하게 혼잣말을 하며 계속 아래쪽을 주목했다.
그가 변화한 괴물들의 움직임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거리 왼쪽에서 괴물들이 등장하더니,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번화가 위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 상황을 대충 알아차린 유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또 10분 정도가 지나니, 이번엔 위쪽에서 괴물들이 걸어 내려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며 유빈에게 상황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제기랄, 셋씩이나……. 보안관과 삼식이가 위치한 건물은 각자 반시계 방향으로 순환하고 있는 세 개의 좀비 무리가 겹쳐지는 접점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유빈은 ‘간격이 늘어났다던데’라는 신입의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들은 점점 더 크게 원을 그리며 거리를 배회했던 것이고, 그래서 이전에는 아무리 지켜보고 있어도 다른 두 무리가 눈에 띄지 않았던 거라고 하면 모든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진다.
“정리해 보자면 이런 거네…….”
유빈은 바닥에 파놓은 숫자들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 건물 앞에 괴물들이 떼를 지어 지나다니지 않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5분이 안 돼. 좌우 양쪽, 그리고 위쪽에서 계속 들이닥치니까.”
“어제 새벽에 탈출할 때에는 그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응,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더 늘어난 거야. 그때랑 달라졌어.”
“그럼 구하는 게 훨씬 어려워졌잖아요.”
“음…… 그러네.”
유빈은 이마를 문지르며 신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다 할 묘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그저 답답할 뿐이다. 서울의 웬만한 거리가 다 그렇듯, 워낙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우회해서 접근할 수 있는 샛길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롸아아악―
번화가 입구를 배회하던 괴물 하나가 공연히 먼 하늘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마치 오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빤히 다 보이는데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요. 피융~!”
제니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보안관과 삼식이를 향해 뭔가를 겨누어 쏘는 시늉을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리부터 쏴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아직 어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유빈이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제니는 고개를 젓고 자신이 상상했던 무기를 설명했다.
“아니, 이건 석궁. 지금 구해주려고 석궁 쏜 거예요. 총이 아니라.”
“석궁?”
“네. 그 왜, 영화에 나오잖아요. 이렇게 밧줄 달린 화살이 피융~ 날아가서 건물에 박히면 그걸 타고 쭈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아, 그런 거 하나만 있었어도.”
응? 설명을 듣던 유빈은 다시 난간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발아래 펼쳐진 건물들과 골목을 바라보았다.
맞아, 방법이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보면서 유빈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꽉 막힌 채 살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왜 이런 상황에서까지도 반드시 길로만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
격리 시설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넘은 시점부터 세 번째 칸의 중년 여자는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졌다.
으으으~ 하고 신음하면서 계속 침을 질질 흘리던 여자는 급기야 귀신 들린 사람처럼 바닥을 뒹굴며 울부짖어 대기 시작했다.
“저기…… 이 아주머니, 약 좀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정제라도…….”
임수정이 보초병들에게 호소해 보았지만, 그들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통제와 항생제는 요청을 하면 접수처에서 제공하지만, 그 외에는 48시간 동안 아예 접촉을 금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구토를 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며칠 사이 달라진 세상 속에서, 격렬한 구토는 곧 좀비화 과정의 마지막 징조라 간주될 만큼 아주 위험한 증상이다.
“으아아아! 으악! 끄으으~”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철창을 마구 내려치는 바람에 주먹은 온통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흐른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는 최종 단계로 들어섰다.
“우웨에에엑!”
웅크리고 있던 여자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뿜어져 나왔다. 끈적이는 녹색의 액체에서는 시궁창보다 더한 악취가 진동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테라와 임수정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앉았고, 보초병들은 다급하게 무선 연락을 취한 뒤, 거치대에 올려놓았던 장비를 꺼내 달려왔다.
“물러나세요! 위험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가 불명확한 한차례의 구두 경고 이후, 두 보초병은 철창의 양쪽 끝에 긴 쇠막대기를 걸어 철창을 끌어당겼다.
덜컹!
바퀴가 조금씩 움직이며 중년 여자가 들어 있는 철창이 앞쪽으로 끄집어내졌다.
“우웨에에엑!”
철창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여자는 구토를 멈추지 않았다. 토사물이 튈까 봐 당황한 병사들이 한 걸음 물러났을 때, 갑자기 여자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철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롸아악!
임수정은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뒤쪽 철창을 꽉 부여잡았다. 그날 새벽 보았던, 바로 그 괴물의 모습…… 그 울부짖음이다.
크와아악!
여자는 철창을 마구 후려치며 고함을 질러 댔다.
“아, 이런 씨발!”
깜짝 놀란 병사들이 놓쳤던 쇠막대기를 다시 집어 들려 다가갈 때, 여자의 팔이 철창 밖으로 쑥 뻗어 나왔다.
창살이 워낙 촘촘해서 팔꿈치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팔을 사방으로 휘저어 대는 그 기세 때문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철창 사이에 끼어 있는 여자의 팔은 피부가 찢어지며 조금씩 빠져나와 점점 더 먼 곳까지 할퀴려 들었다. 병사들은 겨우겨우 다시 쇠막대를 확보하여 끌어내기 시작했다.
크와악!
여자가 한 번 더 창살을 향해 달려들자 그 충격 때문에 철창 전체가 콰장! 소리와 함께 앞으로 기운다. 그리고 중심을 잃은 철창은 기우뚱하게 넘어지며 테라가 들어 있는 철창을 덮쳤다.
“꺄아악!”
뒤로 기울어진 철창에 부딪힌 테라가 앞으로 넘어져 버렸다. 바로 눈앞에는 입 주위에 토사물을 잔뜩 묻힌 괴물이 하얗게 변한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울부짖고 있다.
“테라야!”
임수정이 안타깝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다. 저렇게 가까이 겹쳐진 상태라면 손만 뻗어도 테라의 머리채를 움켜쥘 수 있다.
그롸아악!
괴물이 또다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목표는 바로 눈앞의 테라가 아니라 건너편 철창의 임수정이다.
“테라야! 이 틈에 빨리 엎드려! 몸을 더 낮춰!”
괴물이 자신을 향해 팔을 뻗어 대는 동안 임수정은 테라에게 소리쳤다. 겁에 잔뜩 질린 테라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뒤쪽으로 물러나서 두 손을 가슴에 붙인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괴물의 시선은 집요하게 한 칸 건너의 임수정을 쫓고 있다. 마찰을 이기지 못해 살갗이 찢어져 나간 다음에도 계속 뻗어 오는 팔에서는 검고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빨리! 빨리!”
보초병들은 막대를 끌어 어떻게든 철창을 다시 세워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괴물의 저항이 워낙 완강해서 도무지 뜻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쾅!
거칠게 문을 열고 뛰어든 일단의 군인들이 철창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들은 모두 마치 폭발물 처리반처럼 두꺼운 안전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젠장! 바퀴가 부러졌잖아!”
헬멧 사이로 욕설이 흘러나온다. 두 명의 병사가 가까이 다가가 기울어 있는 철창을 바로세우는 동안, 병사 하나가 두꺼운 쇠막대로 괴물의 팔을 후려치며 엄호를 했다.
쿠웅!
셋이나 달려들어 애를 쓰고 나서야 괴물이 든 철창은 겨우 바로 세워졌지만, 바퀴가 세 개만 남은 상황이어서 도무지 중심을 잡지는 못했다.
괴물은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난리를 치며 철창을 흔들어 대고 있다.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였다.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처리해!”
누군가 명령을 내리자 보호복을 입은 병사가 커다란 총을 장전하며 다가왔다.
“눈 감으십쇼!”
수용된 사람들을 향해 외친 병사는 잠시 여유를 준 뒤, 총신을 철창 안으로 넣어 괴물의 머리에 바짝 붙였다.
푸슝!
잠깐 동안의 정적. 그리고 다시 한 번 푸슝! 작은 총성이 또 울렸다.
‘상황 종료!’라는 군인들의 외침을 들었지만, 끔찍한 꼴을 보고 싶지 않은 임수정은 여전히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드르륵, 군인들이 쇠막대를 잡아끄는 소리, 철창이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 그런 것들이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임수정은 고개를 들었다.
“하아아~!”
복잡한 감정이 담긴 한숨이 임수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너무도 끔찍한 괴물의 모습, 아슬아슬했던 위기, 이 비인간적인 상황…….
그 모든 것이 그녀를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몇 차례 더 숨을 몰아쉰 임수정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옆자리의 테라를 돌아보았다. 그녀 역시 아마 어지간히 놀랐을 것이다.
“아!”
테라를 돌아본 임수정은 가슴이 아파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테라의 두 눈동자는 커다랗게 열린 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벌어져서 바르르 떨리는 입술, 숨 쉬는 것을 잊은 듯 경직된 가슴, 원래부터 하얀 얼굴은 핏기가 싹 지워져 파랗게 질렸고, 길고 가느다란 다리는 발작을 하듯 부들댔다.
“테라야…….”
임수정이 조용히 부르자 테라는 떨림이 가라앉지 않는 듯 두 어깨를 감싸 쥐며 입을 열었다.
“저…… 다 봤어요.”
“뭐라고? 무슨 말이야?”
“눈을 감으라고 하는데…… 감아지지가 않아서…….”
“아…… 이런.”
임수정의 입에서 새로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테라는 눈앞에서 펼쳐진 처형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것이다.
“머리가…… 머리가 펑! 터져 나갔어요. 머리가…… 머리가…… 펑! 하고…….”
테라는 자신의 뒤통수가 터져 나갈까 봐 두려워진 사람처럼 손을 뻗어 뒷머리를 꽉 움켜쥔 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으흐으으~ 으흐으~ 머리가…… 머리가…….”
“테라야! 괜찮아! 우린 저렇게 안 돼! 우린 안 물렸잖아! 우린 괜찮아!”
그녀에게 닿기 위해 최대한 손을 뻗으면서 임수정은 간절하게 외쳤다. 테라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흐으으~ 네, 언니. 우린…… 우린 안 물렸어요. 우린…… 저는, 괜찮아요. 차에 치인 거예요……. 으흐으으~ 빨간 스포츠카가 치고 갔어요. 빨간색…….”
팔을 내밀어 임수정의 손을 꼭 잡고 나서도 테라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아기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괜찮아. 나는 저렇게 안 돼……. 왜냐면 나는 차에 치인 거니까……. 피처럼 빨간색의 스포츠카였어……. 그렇다고 해야 해!
***
그날, 테라는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형처럼 귀엽던 시몬이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괴물로 변하더니, 입을 쫙 벌리고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었다.
아그작!
급하게 피해봤지만 자신의 발가락은 이미 시몬의 입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이를 밀치고 곧바로 돌아서 달렸다.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발가락이 바닥을 계속 스쳤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너무나 무서워져서 한시라도 빨리 제니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니……. 함께 손을 맞잡고 앉아 울었던 2년 전의 그날부터 테라에게 있어 제니는 언제나 가장 소중하고 믿음직한 친구였으며, 또 언니 같은 존재였다.
‘괜찮아, 나을 수 있어. 제니가 곁에서 간호해 줄 거야…….’
테라는 제니가 뛰어나와 자신을 자동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탄 차는 곧바로 방향을 돌려 지하 주차장에 그녀를 놔두고 가버렸다.
“오빠! 제니야…… 기다려!”
왜? 테라는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계속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사장의 커다란 SUV가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도 테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사진 주차장 진입로를 걸어서 올라가 보니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는 도로가 동공을 밀치고 들어왔다. 과속하던 차들이 난폭하게 서로를 들이받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머리통을 물어뜯고 있다.
“이게…… 이게 뭐야?”
테라는 겁에 질린 눈동자로 사방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하룻밤 만에 세상이 지옥으로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끼이이익!
바로 등 뒤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와 타이어 마찰음에 깜짝 놀란 테라는 상처의 통증도 잊고 몸을 움츠렸다.
콰작!
뭔가가 범퍼에 부딪혀 터져 나가는 소리. 돌아보니 빨간 스포츠카가 비틀대며 급하게 사라져 간다.
그리고 검은 타이어 자국이 박혀 있는 진입로에는 시몬이, 조금 전 자신의 발가락을 물어뜯던 시몬이 처참하게 뭉개져 죽어가고 있다.
‘어떡해, 시몬……. 내 뒤를 따라왔던 것일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테라는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 순간. 지잉~! 머리가 터지는 듯한 고통. 테라는 잠시 아득해졌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흘러내린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고, 심장박동이 공연을 막 끝마쳤을 때보다도 더 빠르게 뛴다. 잘려 나간 발가락이 한층 더 엄청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는 맨발로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때, 인근 빌라에서 뛰어나온 세 명의 남자가 테라를 밀쳐 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