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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상처 (5) (55/449)


55. 상처 (5)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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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은 말뚝을 박을 때처럼 높이 들어 올렸던 해머를 반쯤 던졌다. 중력에 맡겨진 채 좀비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힌 해머는 가속도가 붙으며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우지끈! 놈의 머리가 박살 날 타이밍에 맞춰 보안관은 해머 손잡이 끝부분을 꽉 움켜잡고 곧바로 허리와 어깨를 이용해 해머를 다시 들어 올렸다.

열한 번째 놈과 열두 번째 놈은 워낙 바짝 붙은 채 달려들어서 큰 스윙을 할 수 없었다.

해머 손잡이를 짧게 잡은 보안관은 앞서 오는 놈의 등짝을 후려쳐서 넘기고, 그다음 놈의 머리통에 짧은 일격을 집어넣었다.

쿠에에엑!

괴물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지르면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거리가 짧았던 탓에 힘을 죽인 공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두 놈 다 죽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했다. 두 놈의 사이를 벌려서 풀 스윙을 할 시간을 번 것이다. 보안관은 몸을 일으키려는 녀석을 쫓아가 허리에 연속해서 해머를 내리꽂았다.

콰자작! 콰작!

놈의 허리가 반대로 꺾이면서 뼈가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이제 이 녀석은 일어날 수 없다. 일단 한 놈의 발을 묶어놓는 데 성공한 보안관이 몸을 돌리려 하자, 삼식이가 벌써 다른 놈을 상대로 잘 싸워주고 있었다.

삼식이는 삽의 손잡이 끝을 꽉 움켜쥔 채 원심력을 최대한 살려 채찍처럼 휘둘렀다.

칵!

삽날이 스치고 간 괴물의 목에서 살점이 뭉텅 찢어져 나간다.

그리고 괴물이 다시 몸을 일으키자마자 곧바로 또 같은 자리를 노려서 후려쳤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휘둘러도 삽이라는 무기의 한계 때문에 좀처럼 괴물을 죽이기는 어려웠다.

“뒤로 빠져! 내가 끝낼게!”

삼식이가 잠시 다른 놈들을 지체시켜 주는 동안 열한 번째 놈을 끝장낸 보안관이 외쳤다.

삼식이가 사선으로 폴짝 뛰며 공간을 만들어주자 그 사이를 비집고 뛰어든 보안관이 해머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찍었다.

우지직!

목뼈와 두개골이 한 번에 부서지면서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던 좀비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사이 삼식이는 기어서 쫓아온 괴물의 머리를 후려쳐 넘기고, 비어 있는 목에 삽을 찔러 넣었다.

콰콱.

삽날이 살을 파고들어 가 뼈에 걸린다. 삼식이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절단을 위해 삽날을 꽉 밟았다.

자, 저놈은 이제 다됐고, 앞으로 세 마리만 더 쓰러뜨리면 된다…….

이를 악문 보안관은 며칠 연속으로 혹사당해 쑤시는 어깨와 팔목을 달래가며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열세 번째 괴물을 향해 힘차게 해머를 휘둘렀다. 제1타는 앞세우고 달려드는 상체, 그리고 가속도를 살린 2타는 썩은 살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는 골반이다.

꽈직!

커다란 소리가 났다. 아주 깨끗하게 적중된 쇳덩어리가 사람의 뼈를 엉망으로 부수면서 뚫고 지나는 소리. 괴물은 발끝이 잠시 허공에 떠올랐다가 이내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격의 막바지에 해머가 날아가 버렸다는 점이다. 힘이 빠진 보안관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나간 해머는 원심력이 잔뜩 붙은 채 길 건너편 상점까지 빙글빙글 날아갔다.

억―! 보안관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해머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휴대폰 대리점의 유리창을 박살 내며 떨어져 버렸다.

졸지에 무기를 잃은 보안관은 약간 놀란 얼굴로 지쳐서 부들거리는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이제 케블라 장갑 한 켤레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도구다. 삼식이는 급한 대로 자신의 삽이라도 던져 주고 싶었지만, 좀비의 목뼈 깊숙이 박힌 삽날은 도무지 쉽게 빠져나와 주지를 않았다.

그롸아아악!

삼식이가 삽을 좌우로 비틀어 대는 동안, 남은 두 마리의 괴물은 보안관을 향해 아가리를 쫙 벌리며 나란히 달려들었다. 아무렇게나 휘둘러 대는 놈들의 손을 피하면서 보안관은 새삼 놀랐다.

내 몸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겨우 4킬로그램밖에 안 나간다고 생각했던 해머지만, 그 길고 무거운 추를 내려놓으니까 몸놀림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진다.

조금 전에 비해 스텝도 훨씬 빠르고, 팔도, 허리도 자유자재로 움직여진다.

보안관은 몸을 틀어 앞선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다리를 걸어 넘겼다.

괴물의 몸이 허공에 떠서 도는 걸 보며 몸을 돌린 보안관의 스트레이트가, 괴물의 콧잔등을 무너뜨리면서 달려드는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잇달아 두 번의 빠른 어퍼컷이 놈의 턱에 꽂혔다.

덜컥―!

턱이 위로 들린 녀석이 비틀대는 동안, 보안관은 오른 다리를 놈의 허리 뒤에 집어넣은 후, 손바닥을 쫙 펴서 들려 있는 턱을 세게 밀어 쳤다.

빠가각!

고정된 척추 때문에 충격을 줄이지 못한 괴물의 목이 뒤로 꺾여 나간다.

그때, 날아가 떨어졌던 놈이 뒤쪽에서 몸을 내던졌다.

그롸아아아악!

보안관은 몸을 회전시키며 그 힘을 오른 다리에 담아 힘껏 로우킥을 날렸다.

내딛던 다리에 충격을 받은 괴물이 옆으로 나가떨어진다. 다시 일어나려는 녀석의 얼굴에 보안관은 다시 한 번 힘찬 발차기를 먹였다.

콰득!

단단한 안전화에 맞은 괴물의 턱이 부서지고 이빨이 사방으로 튄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

세 번을 연속해서 사커 킥을 얻어맞은 뒤에야 괴물은 더 이상 목을 들어 올리지 못했고, 그렇게 널브러진 녀석의 관자놀이에 마지막 확인 사살용 킥이 꽂혔다.

콰직!

엉망으로 부러진 목이 180도 가까이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괴물의 몸뚱이는 엎어지고, 얼굴은 하늘로 향한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이 새끼들, 맨몸으로도 충분하네……. 허억…….”

두 괴물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보안관은 해머를 되찾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휴대폰 대리점 안으로 들어갔다.

해머가 박살 낸 진열장에는 수십 개의 최신형 휴대폰 박스가 쓰러져 있고,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도 하나 뒹굴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나무 배트. 아이들 장난감이 아니라 정말 성인용 야구 배트다. 이런 게 왜 여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이유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와!”

보안관은 아이처럼 탄성을 지르면서 해머보다 야구 배트를 먼저 집어 들었다.

적당한 무게, 안정적인 단단함, 그리고 무엇보다 정확한 타격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적인 모양.

손에 쏙 들어오는 새로운 무기다. 두어 번 스윙을 해보니 해머를 휘두를 때와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거 좋은데?”

그는 천진한 눈빛을 지으며 해머와 함께 야구 배트를 챙겨 들었다. 피가 잔뜩 묻은 삽을 아스팔트 바닥에 문질러 닦고 있던 삼식이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됐네, 안 그래도 해머는 영 힘겨워 보였는데……. 이제 15분 남았어. 빨리 뛰자, 보안관.”

“응!”

두 친구는 텅 비어 있는 번화가 거리를 내달려 십자가 모양 4거리의 코너에 위치한 약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좀비에 대비해서 야구 배트를 바짝 치켜들고 약국의 데스크 안쪽과 약 조제실 너머를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빨리 찾아와! 나도 여기서 챙길게.”

보안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삼식이는 메고 있던 가방을 건네고, 약 조제실 뒤편에서 약병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삼식이가 항생제를 찾는 동안 보안관은 가방의 지퍼를 열고 눈에 보이는 약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진통제, 영양제, 소화제, 감기약, 소독약, 파스, 반창고에 붕대, 모기약, 비타민 C까지…….

조그만 약상자들로 가방을 반쯤 채운 다음, 보안관은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싶어 약국을 한 번 빙 둘러봤다. 하지만 워낙 가슴이 두근거려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찾았다! 이, 이렇게 생겼었어!”

조제실 너머에서 기쁨의 환성을 내지른 삼식이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약병 두 개를 챙겨 나왔다.

“그럼 이제 가자.”

보안관은 삼식이가 던진 약병들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그사이 삼식이는 전원이 나가 있는 냉장고를 열고 조그만 박스 하나를 꺼내 들고 온다.

“뭐야, 그건?”

“뭐긴! 당연히 약국하면 박카스지!”

타당해!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꾸역꾸역 박카스 상자까지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얼마나 꽉 눌러 담았는지, 지퍼가 터지기 직전이다.

가방을 멘 삼식이와 양손에 무기를 든 보안관이 막 약국 밖으로 뛰어나왔을 때, 골목 저편에서는 깜짝 선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롸아아아아아악!

그와아악! 크라아악!

예상 밖의 광경에 보안관과 삼식이는 잠시 얼어붙어 버렸다. 전철역에서 보자면 왼쪽에 해당되는 골목 입구에서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어째서? 네놈들은 언제나 반시계 방향으로 이 거리를 돌았었잖아! 지금 이 방향은 거꾸로라고! 게다가 규칙에 따르면 아직 너희가 등장할 시간이 아니야…….

하고픈 말은 무지하게 많지만, 그런 것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리고 달아날 수도 없다. 지하 통로까지 포함하면 철책까지의 거리는 100여 미터.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해도 놈들을 뿌리친다는 건 무리다.

그오아아악!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놈들은 거리를 좁혀 뛰어왔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두 사람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약국 간판을 잡고 뛰어올랐다. 3층 건물의 옥상만이 그들이 현재 바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다.

“그거 버려! 해머랑 배트 버리라고!”

한 손에 무기 두 개를 끝까지 꽉 움켜쥔 채 한 손으로만 올라가 보려고 낑낑대는 보안관에게 먼저 2층 창문까지 기어오른 삼식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걸 버리면 무기가…….”

“어차피 그걸로 저것들 다 못 죽여!”

보안관은 마치 대단한 보물을 포기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벌렸다.

땡그렁!

해머와 배트가 바닥에 떨어진다. 마치 그 추락하는 힘으로 추진력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보안관이 두 손으로 간판을 잡으며 힘껏 뛰어올랐다.

“자, 손잡아!”

먼저 3층까지 올라가 있던 삼식이가 난간 아래로 몸을 내밀며 손을 뻗었다. 보안관은 간판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면서 삼식이의 손과 난간을 동시에 붙잡았다.

“하아! 하아~! 뭐지? 이 씨발? 이 새끼들, 대체 뭐야?”

3층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은 보안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삼식이도 말없이 고개만 젓는다. 아래에는 벌써 건물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괴물들이 옥상 위의 두 사람을 향해 고함을 질러 댔다.

보안관은 커다래진 눈으로 자신들이 위치한 건물을 둘러봤다. 다행히 옥상으로 올라오는 길은 건물 내부와만 연결되어 있고, 조그만 상자처럼 생긴 철제 옥탑문은 굳게 닫혀 있다.

다행히……라고? 이런 젠장, 갑자기 나타난 좀비들 때문에 3층 옥상 한가운데에 갇혀 버렸는데 뭐가 다행이야?

화가 난 보안관은 손바닥으로 철제문을 세게 내려쳤다.

“뭐야!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이게 왜 숨어 있고 지랄이지?”

초조해진 보안관은 연신 입 주변을 쓸어내렸다.

자신들은 분명히 괴물들의 움직임 속에서 규칙성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훌륭하게 식량을 구하고, 놈들의 소굴에서 탈출까지 했었다.

그런데 왜 이놈들은 갑자기 규칙을 깬 것일까? 대체 다섯 개의 그룹 중에 어느 무리에 있던 놈들이 이렇게 몰래 숨어 있었던 걸까?

보안관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시간 전에도 다섯 개의 그룹은 규칙성을 잘 지켜가며 행진을 했었다. 이렇게 큰 무리가 떨어져 나갔다면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분명히 아직 나타날 때가 아니었어.”

삼식이도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며 시계를 들여다봤다. 11시 40분. 아직 오렌지 호프가 등장하려면 5분 정도나 더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보안관과 삼식이는 초조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좀비들이 넘실대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곗바늘이 11시 46분에 가까워졌을 때, 오른쪽 골목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멤버들로 구성된 오렌지호프 그룹이 걸어 들어왔다.

그것을 보면서 비로소 두 사람은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의 발아래에 모여 서서 울부짖고 있는 녀석들은 원래 이 골목을 배회하던 놈들이 아니었다.

몇 분씩 늘어나던 시간 간격. 그것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였는데…….

“젠장, 계속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한 바퀴를 도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면,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던 거잖아! 아, 이런 돌대가리!”

보안관은 자책하며 자신의 머리를 두들겼고, 삼식이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가방에서 박카스를 꺼내 입에 가져갔다. 꿀꺽! 꿀꺽! 박카스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운 삼식이가 말했다.

“이 새끼들, 점점 더 멀리까지 돌아다녔던 거네. 그러니까 이 밑에 놈들은 옆 동네에서 온 녀석들이고…….”

정답을 알아맞혔지만, 보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두 사람은 약가방 하나만 꼭 껴안은 채 수백의 좀비들이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옥상 위에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

깨끗이 빨아 꼭꼭 짜놓은 빨래가 대야 가득 담겨 있다. 유빈과 제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시간과 공을 들여 해놓은 노동의 성과를 바라봤다.

“자, 이제 이걸 널어야지?”

유빈은 다친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가 긴 4x4 각목 한 개와 공구를 챙겨 왔다.

“그걸로 뭘 하시려고요?”

각목을 절반으로 잘라 가슴 높이 정도로 다듬는 유빈을 보며 제니가 물었다.

“음? 빨래를 했으니 건조대가 있어야지.”

잘라낸 각목의 끝부분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반대편 끝은 말뚝처럼 날카롭게 깎아냈다. 그렇게 해놓은 각목에 구리 파이프를 집어 와 대본다. 두어 번 더 구멍을 넓히고 나니 약간 헐렁하게 맞았다.

“좋아.”

유빈은 만족한 표정을 짓고 나서 두 번째 각목을 잘라 똑같은 모양의 물건을 하나 더 만들었다.

제니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는 동안 유빈은 작업한 말뚝과 해머를 가지고 4차선 도로를 건너 철책으로 걸어갔다. 가볍게 절뚝이던 유빈이 말뚝을 흙바닥에 살짝 박아두고서 제니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지금? 똑바로 됐어?”

제니는 고개를 좌우로 조금씩 갸우뚱거리고 양쪽 눈을 번갈아 떴다 감았다 해보더니, 손을 들어 왼쪽으로 흔들었다.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었어요. 조금만 바로 세워보세요.”

유빈은 말뚝을 약하게 밀고 나서 다시 물었다.

“이 정도?”

“조금만 더.”

“이젠 됐지?”

“네, 오빠. 지금 딱 수직.”

유빈은 체중을 실어 말뚝을 꽉 눌렀다. 맥없이 쑥 빠지지는 않을 정도가 된 다음, 해머를 짧게 쥐고 콩, 콩, 내려쳤다. 구경하고 있던 제니가 뛰어와서 말뚝을 잡아준다. 해머를 내려놓으며 유빈이 말했다.

“어, 잠깐만 제니야. 일할 때는 꼭 장갑을 껴야 돼. 이렇게 매끈해 보여도 가시가 꽤 많거든. 쪼개지면서 결이 박힐 수도 있고.”

유빈은 자신의 장갑을 벗어서 제니에게 건넸다.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헐렁한 장갑을 당겨 끼고 다시 말뚝을 잡았다.

“꽉 잡았지? 간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유빈은 힘 조절을 해가면서 해머를 내려쳤다. 잠시 후, 미리 표시를 해놓은 선까지 말뚝이 들어가자 두 사람은 3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가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유빈이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제니는 후다닥 뛰어가 아까 대봤던 구리 파이프를 끌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파이프 양쪽 끝을 잡고 말뚝의 구멍에 넣었다.

“잘돼가고 있어?”

“네, 여기 여유 있어요.”

“그쪽이 더 길어야 해. 조금 더 당겨봐. 옳지. 그대로 잡고 있어줘.”

제니가 반대편 끝을 잡고 있는 동안 유빈은 파이프에 구멍을 뚫고 긴 나사못을 박아 너트로 고정시켰다. 그러고는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이제 파이프가 빠져 버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안정적인가 확인하기 위해 말뚝에 체중을 실어본 유빈이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널어볼까요?”

함께 빨래 대야를 들고 와 팡팡 턴 다음 널었다. 길이도 적당하고, 빨래 무게 정도는 충분히 이길 만큼 튼튼하다.

“휴대폰이 없는 게 한이네. 그날 트럭에 두고 내리는 게 아니었는데…….”

떨어지려는 빨래를 잡고 고쳐 너는 제니의 모습을 보면서 유빈이 중얼거렸다. 등을 돌리지 않은 채 제니가 물었다.

“왜요?”

“나중에 사람들한테 제니가 손빨래해 준 옷을 입어봤다아~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데, 증거가 될 만한 게 하나도 없잖아. 아무도 안 믿을걸?”

“풋.”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제니가 유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증언해 드리면 되잖아요. 넵! 유빈 오빠 말이 사실이에요. 제가 이렇게 박박 문질렀습니다!”

“하하하…….”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서 유빈은 얼이 빠진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말한 ‘나중에’라는 건 대체 언제일까? 왜 나는 그때까지 내가 멀쩡히 살아남아서 또 다른 생존자들과 지금을 추억하면서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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