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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상처 (4) (54/449)


54. 상처 (4)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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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거기가 뭐가 좀 그랬는데?”

보안관이 묻자 삼식이는 부끄러움이라고는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처음엔 좀 따끔거리더라고. 그래서 그냥 까졌나 했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며칠 지나니까 만나는 여자애들마다 다 난리가 난 거야. 간지럽다고.”

“누구한테서 옮은 건지도 모르고?”

“뭐, 한 사나흘 사이에 만났던 애들 중 하나겠지만, 정확하게는 모르지. 그거야……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대놓고 ‘나 병 있어요!’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여튼 안 되겠더라고. 이러다가는 동네 전체에 다 퍼질 것 같아서 진숙이 누나한테 마이신 좀 갖다 달라고 부탁해서 골고루 나눠 먹었지. 그 누나도 먹으라고 하고.”

“진숙이?”

“으응, 그 누나는 커다란 약국에서 일하던 약사인데…… 너도 기억날 거야. 왜, 그, 마을버스 타는 데 케밥 가게 옆에 약국 하나 있었잖아. 처음엔 명희가 소개를 시켜줘서…….”

또 여자애들 이름이 잔뜩 나오기 시작한다. 보안관은 두통이 오기 전에 삼식이의 말을 끊었다.

“됐어, 그만 이야기해. 안 알고 싶다. 그래서 마이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이 말이지?”

“마이신도 알고, 다른 약들도 알아. 여자애들 골고루 나눠 주다 보니까 약이 워낙 많이 필요했는데, 한 종류만 그렇게 여유분이 많지 않다더라고. 그래서 이 약, 저 약 받아먹었지.”

마치 지네나 큰 지렁이처럼 혐오스러운 걸 보는 눈으로 자랑하듯 떠들어 대는 삼식이를 바라보던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아…… 한 가지만 물어보자. 걔들, 너 때문에 그렇게 험한 꼴을 보고도 좋다고 다시 만나디?”

“자취방에서 같이 약 나눠 먹은 다음에 재미있다고 웃으면서 또 했는데? 사람이 아플 수도 있지……. 어, 저기 또 들어온다. 가만있어 보자, 지금 시간이…….”

삼식이는 천진한 얼굴로 대답한 뒤,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번 그룹도 바로 전의 간격보다 5분이나 늦게 들어오는 중이었다.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 문제는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는 거다.

***

“안 돼…… 안 돼……. 헉!”

철창 속에서 웅크린 채 선잠이 들었던 임수정은 자기 잠꼬대에 놀라 벌떡 일어나며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그녀는 캄캄한 어둠에 묻힌 채 괴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괴물들이 휘젓는 손이 바로 등 뒤에 닿을 것 같은데, 발은 바닥에 달라붙은 채 움직일 수가 없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괴로웠던 그 꿈속에서 그녀는 계속 그 흉터얼굴사내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민구 씨…… 민구 씨…….

그리고 민구가 그녀를 맞는다. 아아, 그러나 이미 그의 몸은 엉망으로 난자당해 있다. 피투성이의 남자를 붙들고 임수정은 오열했다. 그러다가 깨어난 것이다.

민구 씨라니…… 누가 들으면 아주 오래도록 사귄 정다운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어처구니없는 꿈에 괜히 부끄러워진 임수정은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아직 붙어 있는 잠을 털어냈다.

“몇 시쯤이나 된 걸까?”

안전을 위해 잠실구장 쉘터의 격리 시설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암흑 속에서 깨어났던 경험이 있는 임수정에게 그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낮과 밤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사람을 힘들게 했다. 보초병들이 선 위치에는 커다란 벽시계가 붙어있다.

11시, 낮이겠지……. 임수정은 들어오던 날 받았던 시간표를 꺼내 봤다.

앞으로도 30시간 가까이를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옆자리에는 테라가 잠이 든 것인지, 앓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쓰러져 있다.

한쪽으로 밀린 담요 사이로 허벅지를 간신히 덮는 길이의 얇은 시폰 원피스가 드러난다.

그리고 철창 한쪽에 나란히 벗어둔 핑크색 샌들. 잘려 나간 발가락으로 저런 걸 신고서도 용케 살아남아 이곳까지 왔구나 싶을 만큼 가냘픈 힐이다.

“끄으응…… 으으응…… 으…….”

울상을 짓는 테라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송골송골 맺혀 있는 이마의 땀은 아마 고통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여자인데도 가슴이 에이는 것 같이 안타까워진다. 그러니 입구 쪽의 보초병들이 한숨을 계속 내쉬며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 아이, 치료라도 제대로 받은 걸까?’

임수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테라의 왼발을 바라보았다.

붕대 끝에 맺혀 굳어 있는 피만 봐도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상처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진통제 알약을 지급받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아아…… 흐으으…… 흐윽, 흑! 흑…….”

테라의 신음이 울음으로 바뀌었다.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던 테라는 조금 뒤, 눈을 껌뻑이며 잠에서 깼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두고 있는 동안에도 가슴은 여전히 가볍게 흐느끼고 있다.

“괜찮아? 많이 아프니?”

임수정이 묻자 테라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일어나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그냥 무서운 꿈을 꿔서…….”

테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맨살이 드러나 있는 가녀린 팔을 담요로 감쌌다.

“와, 벌써 열한 시가 넘었네요. 저 이제 네 시간만 더 있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요.”

물을 마신 뒤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테라가 말했다. 그녀의 이미지처럼 앙증맞고 고급스러운 시계다.

“그렇구나. 축하해.”

“크, 감사합니다. 언니는 내일까지 여기 계셔야 하는 거죠? 저 없으면 심심하실 텐데…….”

“아니야. 그냥 자지, 뭐.”

“맞아요. 그까짓 하루, 후딱 지나가니까요. 언니, 저…… 여기서 나간 다음에도 언니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또 뵐 수 있을까요?”

테라가 얼굴 가득 애교를 담아 물었다. 임수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 그럼 나야 영광이지.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친하게 지내주겠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정말이죠? 그럼요 미리 약속을 해둬요. 전 나가면 계속 3루 쪽에 있을게요. 언니도 내일 나오시면 그리로 오세요. 약속이에요!”

그렇게 다짐을 하며 테라는 가느다란 팔을 철창 사이로 내밀어서 새끼손가락을 까딱였다. 임수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을 마주 뻗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3루 쪽에 가는 것보다 먼저 의무실에 꼭 찾아가 봐. 발 다친 곳,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거야. 날씨가 이렇게 덥고 습하니까…….”

임수정이 걱정스레 이야기하는 동안 누군가 격리실의 문을 두드렸다.

“마무리.”

안쪽의 보초병이 암구호를 던지자 밖에서 답을 한다.

“김용수.”

바뀐 암호도 또 야구 선수다. 어지간히 프로 야구가 그리운가 보군……. 임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이 열리자 두 명의 군인이 중년 여자 하나를 인솔해 왔다. 보초병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군인들은 중년 여자를 철창으로 안내했다.

임수정과 테라의 자리를 지나 바로 옆 칸에 이르자 군인 하나가 철창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다. 들어가십쇼, 군인의 무뚝뚝한 명령에 중년 여자는 강하게 반발했다.

“여, 여기를 들어가라고요? 싫어요! 내가 무슨 죄인이에요? 난 안 들어가요!”

여자는 악을 쓰고 대들며 붕대를 두른 팔로 철창문을 잡고 버텼다.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여자의 몸을 밀며 버티던 군인은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차갑게 내뱉었다.

“셋 셀 동안 안 들어가시면 다른 분들의 안전을 위해 쉘터 밖으로 추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추방이라니! 내가 왜 추방을 당해! 세금 낼 거 다 내고! 아들새끼 둘 곱게 키워서 군대까지 보냈는데! 너는 어미도 없냐? 응? 새파랗게 젊은 새끼가 나한테 추방이라니!”

여자가 아무리 바락바락 대들어도 군인은 냉정했다. 군인이 말했다.

“하나!”

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삿대질을 멈추지 않는다.

“너희 말고 책임자 나오라고 해! 이따위 취급 받으려고 소득세, 재산세 꼬박꼬박 물어가며 살았던 게 아니야! 이딴 종이 쪼가리가 뭐냐고!”

중년 여자는 입소 시간이 적혀 있는 종이쪽지를 군인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둘!”

분위기가 과열된다. 뒤에 선 군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고쳐 잡았다. 여차하면 중년 여자의 등짝이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임수정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보고 있을 때, 테라가 끼어들었다.

“오빠! 오빠! 제발! 그러지 마요. 잠깐만요! 네?”

철창 앞쪽에 바짝 붙어 깍지 낀 손을 기도하듯 앞으로 내밀며 사정을 한 테라 덕에 몇 초의 여유가 생겼다.

군인들은 카운트를 멈추고 중년 여자를 위압적으로 노려봤고, 여전히 기세가 죽지 않은 중년 여자를 테라가 달랬다.

“아주머니, 아니…… 어머니, 그러지 말고 들어오세요. 저도 처음엔 되게 싫었는데, 금방 익숙해져요. 그리고 시간 정말 빨리 가요, 어머니. 저 같은 어린애도 견디잖아요. 네?”

분노 때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중년 여자도 삼자의 개입에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몇 번 숨을 몰아쉰 뒤 철창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철창 안에 들어서자마자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재빨리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빠.”

테라는 되돌아가는 군인들을 향해 꾸벅꾸벅 열심히 고개를 숙였다. 임수정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으으으으으…… 으으으…….”

아직도 분이 다 안 풀린 것인지, 중년 여자는 급하게 담요를 꺼내 두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자의 온몸에서는 옷을 흠뻑 적실 만큼 많은 땀이 흘렀다. 여자의 팔에 감긴 붕대 위로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 다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상처인 것이다.

“……괜찮으세요?”

테라가 안타까워하며 말을 건네봐도 듣는 것 같지 않다. 여자는 어제 임수정이 그렇게 했듯이,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처박고 짐승처럼 신음 소리만 흘려 댔다.

***

“이제 가야겠어. 계속 보고 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더 늦어지면 유빈이랑 제니도 걱정할 것 같아.”

세 번째 그룹이 코너를 돌아 나가는 걸 네 번이나 반복해서 지켜보고 난 뒤, 보안관은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삼식이도 고개를 끄덕인 뒤 걸음을 떼려 할 때, 신입이 딴죽을 걸었다.

“퍽이나 우리 걱정하겠다. 예쁜 여자애랑 둘만 남았는데 존나 실실거리면서 쪼개고 있겠지. 안 봐도 빤한 거잖아?”

“걔가 너냐?”

보안관과 삼식이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단호한 표정으로 무기를 꽉 움켜쥐고 있지만, 너무 많은 시간적 여유가 오히려 불안하다.

두 사람은 철책을 넘은 다음 지하 통로 앞에 서서 천천히 100을 세었다. 혹시나 맨 끝의 놈들이 코너를 돌아 나가지 않고 뭉그적거렸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구십구, 백! 가자! 잘 따라와!”

보안관이 앞서 달렸고, 삼식이가 그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지하 통로를 지나 계단을 뛰어오르니, 텅 빈 번화가의 여기저기서 상주하던 괴물들이 얼굴을 내밀고 그들을 맞아준다.

놈들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짜증스럽고 소름이 돋게 하지만, 이미 열다섯 마리라고 숫자까지 파악해 둔 터라 놀라울 건 없었다.

보안관은 재빨리 좌우로 시선을 돌려 놈들의 위치를 대강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동선과 순서를 정했다.

그롸아악!

크르르!

가장 가까이에 숨어 있다가 뛰어오는 두 놈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목과 허리가 심각하게 꺾여 있어서 달리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새 전법을 실험해 보기에는 최적의 상대였다.

상점 쪽으로 붙어 선 채 괴물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보안관은 허리를 돌렸다가 곧바로 해머를 휘둘렀다.

콰직―!

보안관의 풀스윙 해머에 직격당한 괴물은 허리가 거의 90도로 꺾어지며 날아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창을 박살 내고 처박혀 버렸다.

하지만 보안관이 계획했던 것처럼 위의 유리 조각이 떨어져서 괴물의 목을 잘라주지는 않았다.

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데다가 씰 처리까지 되어 있는 유리는 깨져 나간 그대로 날카로운 단면을 유지하며 붙어 있다.

“이런 젠장!”

첫 스윙에 들어간 힘을 그대로 이어 크게 회전하면서 두 번째 놈을 후려갈긴 보안관이 외쳤다. 두 번째 괴물 역시 깨져 나가 있는 상점가 유리에 꼬치처럼 꿰였지만,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유리가 안 떨어지잖아!”

말을 하면서도 보안관은 바쁘게 몸을 놀려 세 번째 괴물의 무릎을 박살 냈다. 무릎이 반대로 꺾여 나간 녀석은 달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내동댕이쳐지며 구른다.

삽날을 세워 첫 번째 놈의 발목을 세게 내려치면서 삼식이가 말했다.

“그것 봐! 이 계획, 들을 때부터 뭔가 허술하더라!”

“아냐! 다시 한 번 해볼게!”

보안관이 두어 걸음을 내디딘 다음, 뛰어오는 네 번째 놈의 옆구리에 해머를 박아 넣었다.

와드득― 갈비뼈가 으스러진 괴물이 다시 상점의 유리문을 향해 날아가 부딪쳤다.

꽈앙!

강화유리 문에 부딪친 괴물이 반동 때문에 앞으로 튀어나온다.

“뭐야! 이 유리는 깨지지도 않아?”

튀어나오는 놈의 머리통을 힘껏 내려치면서 보안관이 물었다.

“몰라! 말 좀 시키지 마! 바빠!”

삼식이는 유리 조각 사이에 박혀 있는 괴물의 무릎을 콱콱, 내려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괴물 녀석은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자신의 옆구리를 뚫고 나와 고정시켜 놓은 유리 파편을 손으로 부러뜨리는 중이었다.

아무리 좀비라고는 해도 손바닥이 엉망으로 잘려 나가면서 날카로운 유리를 밀어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구역질이 절로 난다.

“하여튼 빨리 뛰어와! 일일이 다 죽일 필요도 없어!”

비장의 전법은 구멍투성이인 것이라 판명되었지만, 전투에서까지 실패할 수는 없다.

보안관은 열심히 해머를 좌우로 휘두르며 길을 텄고, 삼식이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혹시나 몸을 일으키려는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홉 번째 괴물의 머리통을 박살 냈을 때, 보안관이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역시 이놈의 해머는 너무 무거워…….

손목을 움켜쥔 보안관의 표정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삼식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힘들지? 일단 역으로 돌아갈래? 나머지는 한 시간 반 뒤에 다시 와서 처리하자!”

그러는 동안에 뒤쪽에서는 미처 끝장을 내지 못한 괴물들이 엉망으로 부서진 하체를 질질 끌고 필사적으로 기어오며 괴성을 질러 댔다.

전방에서도 남아 있는 괴물들이 무더기를 이루며 뛰어오고 있다. 놈들이 이렇게 거리 전체에 넓게 퍼져 있어 준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괜찮아! 그때까지 이놈들만 남아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가슴이 부풀도록 숨을 들이쉰 보안관이 다시 해머를 들어 올리고 허리를 틀었다. 잔꾀를 부려봤는데 안 통하면 하던 대로 하면 된다. 해머쯤이야, 이미 몇천 번을 휘둘러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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