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상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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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상처 (1)
2021.10.21.
개미.
진우의 머릿속에 개미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보았던 광경. 죽어 있는 참새, 그 시체 주변을 까맣게 덮고 바글거리던 개미 떼…….
죽음과 삶이 너무 어지럽게 얽혀 있어서 어린 마음에도 구역질을 참으며 한참을 지켜보았었다.
투투투투, 투두둑, 투투투투.
“밀리지 마! 계속 쏴!”
그롸아아악! 그아아아아~!
10년도 더 된, 이제는 잊고 살던 과거가 떠오를 만큼 압도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개미 떼처럼 적극적이고, 개미 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좀비들이 엄청난 규모로 원자력발전소 정문을 향해 덮쳐 오고 있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K―3가 긁고 지나간 자리에는 내장이 터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간 좀비들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놈들이 그렇게 되고도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며 뛰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조명탄의 불빛, 그리고 지프에서 쏘아대는 서치라이트.
어둠에 묻히지 않은 곳 어디로 시선을 돌려봐도 좀비가 가득했다. 병사들은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압도되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저 징그러운 놈들의 웨이브가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다.
두려움과 긴장은 신체의 능력을 떨어뜨린다. 병사들의 총구는 떨렸고, 명중률은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투두둑! 투두둑!
놈들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걸 느끼면서 진우는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강력해 보이던 정문 경비대의 화력이었는데, 막상 규모 5의 좀비 군단을 제압하려니 커다란 벽과 마주한 기분이다.
“머리를 쏴! 머리! 다른 데는 소용없다!”
지휘관들이 사선 뒤를 돌며 고함을 질렀다.
등신들…… 또 잘못된 명령이다. 김 상병과 나란히 오른편 뒤쪽 사로에서 사격을 하던 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좀 있지…….
단순히 헤드샷이 명중시키기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지금 그들이 마주한 상황은 지난 이틀 동안의 소규모 습격 때와 완전히 다르고, 조금 전 철책 위에서 아래를 향해 쏘던 때와도 또 다르다.
이렇게 많은 놈들이 한꺼번에 속도를 높여 몰려들고 있는데, 사수의 위치가 더 높지 않다면 차라리 맨 앞줄의 하체를 겨냥하는 게 낫다.
머리보다 훨씬 커다란 표적이고, 다리가 부러져 나가 자빠진 놈들은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들이 알아서 걸레처럼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전진하는 속도도 훨씬 늦출 수 있다.
“김 상병님!”
진우는 옆자리의 김 상병을 큰 소리로 불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머리를 겨누고는 있지만, 예광탄의 방향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는 김 상병이 대답했다.
“응? 왜? 왜 불러?”
“다리를 쏴야 합니다! 하체! 하체!”
그래? 김 상병은 이유도 묻지 않고 총구를 약간 아래로 내린 뒤 연사를 시작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아스팔트 바닥을 박살 내던 총알들이 좀비의 다리를 훑자 무릎과 골반이 엉망으로 부서지고 꺾여 나간 놈들이 땅바닥에 얼굴을 갈며 나뒹군다.
꾸아아악―!
뒤따르던 좀비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동료의 몸뚱이를 난폭하게 짓밟고 앞으로 뛰어나온다. 간혹 한 번씩은 보너스처럼 넘어진 놈에 걸려 네댓 놈이 한꺼번에 자빠져 주기도 한다.
삼척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의 총알을 명중시킨 김 상병이 크게 환호하며 외쳤다.
“와우! 이거 존나 죽이는데? 진작 말해주지! 개새끼야, 훨씬 쉽잖아! 야, 너희도 다리 쏴! 병장님, 하쳅니다, 하체!”
기분이 좋아진 김 상병은 서둘러 탄창을 갈며 주변의 병사들과 아까 구해준 세 명에게도 새로운 전략을 전파했다. 그의 말을 들은 병사들 중 반 정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조언을 따라 쏴봤다.
어차피 머리를 겨누고 아무리 당겨봐야 댓 번에 한 발도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으니 밑져야 본전이다.
파바바바방!
투투투툭! 투툭! 투두둑!
수십 마리의 좀비가 일시에 무너져 내리자 긴장에 짓눌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몇몇 병사들의 얼굴에 비로소 활기가 돈다. 그들의 표정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하나의 문장이었다.
‘이 작전은 통한다!’
연사로 한 번씩 훑고 나면 가장 앞의 두어 줄이 무너져 내렸다.
기어오는 놈들이 뛰어오는 놈들보다 덜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사실이다. 병사들은 신념에 가득 찬 얼굴로 열심히 탄창을 갈아 끼우고 또 재조준을 했다.
똑같은 총을 가진 비슷한 인원이 상대하고 있지만, 채 2분도 지나기 전에 오른쪽 라인과 왼쪽 라인 간에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줄기차게 머리만 노리다가 순식간에 좀비들과 거리가 좁혀진 왼쪽 라인의 병사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새끼들아! 당황하지 말고 머리를 쏴! 머리를 조준하라고!”
지프 위에서 패닉 상태의 중위가 목이 터져라 외쳐 보지만, 그저 공염불일 뿐이다. 좀비들이 다가올수록 중위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다리 쏴! 옆으로 전달해! 머리 말고 다리!”
하체 조준 전략의 전도사가 된 김 상병은 아예 사격은 뒷전으로 미루고 사선을 따라 뛰며 부지런히 외쳐 댔다.
그때, 누군가 김 상병의 멱살을 잡아챘다. 성난 표정으로 지프에서 뛰어 내려온 중위였다.
“이 새끼가!”
중위는 깜짝 놀라 굳어버린 김 상병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팔꿈치를 갈며 넘어진 김 상병을 다시 잡아끌고 가 지프 앞에 내던진 뒤, 그의 턱에 권총을 바짝 대면서 중위가 소리쳤다.
“뭐하는 새낀데 내 명령을 번복해? 죽고 싶어?”
“……아닙니다.”
총구를 내려다보며 김 상병이 대답했다. 사선의 병사들과 부사관들은 그들의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는 중이었다.
속는 셈 치고 노려봤던 하체 사격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많은 병사들이 깨달은 뒤부터, 밀린다고만 느껴졌던 전세는 다시 팽팽한 균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잠시 여유가 생겨 뒤를 돌아본 진우는 중위에게 붙들려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 상병을 발견했다.
“난 당장 여기서 널 쏴버려도 돼, 이 주제도 모르는 새끼야. 그렇게 해줄까? 응?”
“……잘하겠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 보기도 전에 김 상병의 입에서는 기계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리고 한 줄기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야이, 씨발. 나한테 이럴 정신이 있으면 저기 달려오는 좀비를 한 마리라도 더 죽일 것이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분하고 창피하고 억울하다.
지프 위의 중기관총 사수와 운전병은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애써 외면하는 척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타! 투투투투투둑!
등 뒤에서 쉬지 않고 울리는 무심한 총소리와 좀비들의 비명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다. 눈물을 본 중위는 광기 어린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김 상병의 멱살을 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너 같은 새끼는 본보기로라도 가만두면 안 돼!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려고…….”
침을 마구 튕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 열등감을 감추고 싶었던 중위가 권총의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싸움에 지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무능력함이 들통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이 새끼만 사라지면…….
철컥!
김 상병은 질끈 눈을 감았다.
휘익~
바람이 빠르게 일더니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빠악―!
김 상병이 실눈을 떠보자 권총을 떨어뜨린 중위가 부러져 버린 손을 쥐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으악! 뭐, 뭐야?”
난데없는 습격에 놀라 고개를 들려던 중위의 뒤통수에 진우의 개머리판이 다시 날아들었다.
콱!
그리고 중위는 눈을 홉뜬 채 고꾸라졌다.
“박 이병…….”
“어, 어어어! 손 들어!”
김 상병이 기뻐하기도 전에 지프에 탑승하고 있던 중기관총 사수와 운전병이 허둥대며 총을 집는다. 하지만 진우는 그보다 훨씬 빨리 조준을 끝마쳐 두고 라이트의 사각으로 옮겨 서 있었다.
“야!”
기관총 사수에게 고정된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진우가 두 사병을 불렀다. 둘 다 작대기 세 개짜리였지만, 그런 게 지켜져야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 휘장 보이지?”
진우가 한 발짝을 내딛자 가슴에 붙은 금속제 특등사수 휘장이 라이트를 측면으로 받으며 위압적으로 번쩍인다. 두 병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가 말을 이었다.
“내가 대대에서 1등이었어. 그래도 해볼래?”
이번엔 둘 다 고개를 젓는다. 그들이 총에서 손을 떼는 걸 확인한 진우가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유탄이 튄 겁니다. 나중에 깨어나서 물으면 그렇게 이야기하십쇼. 상병님들, 우리 같이 삽시다!”
두 병사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쓰러져 있는 중위를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운전병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넘어지다 땅을 헛짚어서 손이 부러진 걸로 하면 되겠군.”
잠시 그들의 눈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진우는 경계를 풀고 김 상병을 부축했다. 그러곤 사선으로 돌아가 병사들 속에 섞여들었다. 두 병사도 차에서 내려 기절해 있는 중위를 끌어 올렸다.
“이이이― 씨발,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김 상병이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진우는 그가 진정할 때까지 내버려 두고 다시 총구를 전방으로 돌려 열심히 좀비들에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타앙―!
날려 버리고 싶었던 중위의 머리 대신 좀비의 대갈통이 터진다.
타앙―! 타앙!
전방에는 없는 역겨운 적들에 대한 증오심을, 진우는 좀비에게 대신 풀었다. 또라이 지휘관이 의식을 잃은 후, 전투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좀비 무리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제대로 전략만 짜여 있었어도 이보다 훨씬 쉽고 적은 희생을 치르면서 격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발전소 건물 너머의 바다에서 붉게 동이 터올 때쯤, 길고 긴 전투도 서서히 끝을 맺어갔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수만 남았을 때에도 좀비들은 조금도 기죽는 법 없이 맹렬하게 달려들다가 뇌수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마침내 광활한 발전소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타아앙―!
시체 더미를 뚫고 나와 바닥을 기어오던 녀석의 미간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 것을 끝으로, 진우도 밤새도록 꽉 쥐고 있던 소총을 내려놓았다.
멍해진 김 상병은 주차장을 가득 덮은 시체들의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드문드문 피로 얼룩진 푸른 군복도 끼어 있다.
후우우~ 후우우~
아무리 크게 한숨을 쉬어도 꽉 막힌 가슴이 뚫리질 않는다. 진우는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벗겨진 오른손으로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 끔찍한 웨이브로부터 결국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런 건 승리가 아니다.
진우와 김 상병은 퀭해진 얼굴로 동해 바다를 진홍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었다. 새 하루가 밝는다.
그들이 지친 몸을 누인 곳은 카페테리아로 이어진 나무 회랑의 야외 테이블. 주변에는 그들처럼 지친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고 맛스타를 나눠 마시며 생존을 자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진우와 김 상병만큼 긴 시간 동안 싸운 사람은 없었다.
정말 지독한 싸움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500명의 대대원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진우가 속했던 내무반은 두 명의 생존자만 남기고 아예 전멸해 버렸다.
완전히 탈진한 김 상병은 벤치 위에 벌렁 드러누운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진우 역시 어지간히 지쳐서 고개를 들기도 힘에 겨웠다. 어서 아침을 먹고 총을 분해해서 닦아야 하는데, 그럴 기력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주차장 가득히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그대로 놔두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벤치에 발을 올리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겨우겨우 숨을 몰아쉬는 진우에게 김 상병이 물었다.
“……야, 박 이병.”
“예…… 이병 박진우.”
진우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묻는 목소리나 답하는 목소리나 기운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 중위 새끼가 깨어나서 나 찾으면 어떡하지?”
“얼굴 기억 못할 겁니다. 그렇게 깜깜한데다가 정신도 반쯤 나가 있었는데…….”
“너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 정도 잘생긴 사람은 흔치 않아서.”
“후후후.”
“이 새끼 봐라? 웃네?”
“후후,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농담이다 새꺄. 잘했어.”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 어제 일을 깡그리 잊어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정말 죽어라 세게 때렸지 말입니다.”
“……그냥 죽여 버리지…….”
진우는 대답하지 않고 슬픈 눈을 들어 발전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상병의 목소리에 반쯤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도 알고 있다.
결기가 부족해서…….
만약 보안관이었다면 그런 중위 따위…… 정말로 대번에 머리통을 날렸을 텐데.
부우웅~
발전소에서는 직원을 태운 미니 버스들이 바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발전소의 야간 근무조와 아침 근무조가 교대하는 시간인 모양이다.
저희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밤새도록 죽음과 씨름을 했는데, 저것들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구나. 이제 피 한 방울 안 묻힌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을 먹고, 편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겠지…….
한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가운이나 작업복을 입은 원전 직원들에 대한 미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여기 좀 앉아도 되겠나?”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벤치에 다가와 음식이 담긴 종이봉투 두 개를 턱 내려놓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