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 삼척원자력발전소 (5) (50/449)


50. 삼척원자력발전소 (5)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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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왔다면 좀비와 다를 바 없는 돌대가리이고, 보지 않고 지껄인 거라면 미친 새끼들이다.

배치된 첫날부터 온갖 이치에 닿지 않는 명령들을 내리더니, 결국 이런 사달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병력을 넓게 벌려두지 않고, 발전소 담장 내부로 경계 영역을 한정해 두기만 했어도 훨씬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다다다다― 발전소 방향에서는 아직도 총성이 끊임없이 울린다. 다행히 내부 병력이 완전히 궤멸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우우웅―

낑낑대며 시체들을 밀어놓은 뒤, 지프 한 대와 두 대의 트럭을 필두로 하여 정문 병력들의 3/4 이상이 빠져나갔다.

맨 뒤에서 걸어가던 소대의 하사관 하나가 경비병까지 붙여진 진우 일행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너흰 뭐야? 남들 다 출동하는데 팔자 좋게 앉아 있네? 야, 얘들 뭐야?”

김 상병에게 갈굼을 당했던 일병이 대답했다.

“발전소 동쪽 경비병이었답니다. 외상병이라서 감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응? 어디? 아아, 이거?”

코피가 난 병장들의 코를 당겨본 하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얘네 괜찮아. 어떻게 콧구멍 안쪽만 물리겠냐. 너희도 여기 합류해. 한 놈이 아쉬우니까. 야, 얘네 탄창 지급해 줘라.”

하사의 명령 한마디에 진우 일행은 갑자기 지원 병력이 되어버렸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금 전까지 오늘 밤 내내 그 힘든 싸움을 다 겪고, 목숨을 건 질주를 해서 겨우 조금 달아났는데…… 거기를 또 들어가라고?

너희 전부 다 여기서 올빼미 우는 소리 들으며 탱자탱자 노가리 까고 놀던 동안 우리는 좀비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싸웠단 말이다…….

진우와 김 상병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 죽다 살아난 세 병사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 강펀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의 김 상병이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하사님, 저희는 조금 전까지…….”

“뭐, 이 새끼야? 안 간다고? 까라면 깔 것이지, 명령 불복종이야?”

“하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 상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더럽게 억울하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고, 해봐야 들어주지도 않는다.

지급되는 탄창을 받아 챙기고 다시 철모 끈을 조였다. 그들을 따라왔던 세 병사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눈을 하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산책 나왔냐? 뛰어! 뛰어! 걷지 말고 뛰어!”

하사관이 등짝을 후려치며 호령했지만, 한번 풀려 버린 진우 일행의 다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축 처진 어깨에 겨우 총을 걸쳐 두고 걸음을 옮기며 모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씨발, 너나 뛰어라. 죽음을 향해 뛰어가라니…….

***

그 시각, 원자력발전소 주차장에서는 두 대의 버스 지붕 위에 올라선 열두 명의 병사가 주변을 가득 둘러싼 좀비들을 향해 열심히 총을 쏴대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이놈들이 버스 창문을 밟고 지붕 위까지 올라올 만큼의 머리가 안 된다는 사실이었고, 반대로 불행한 점은 그들이 좀비의 바다 한가운데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어두컴컴한 주변을 밝히기 위해 간간이 아래를 향해 조명탄을 꺼내 던졌다.

치이이익― 붉은 조명탄이 날아가서 불빛이 비추는 곳마다 모두 피투성이의 부패한 머리들이 넘실대며 아가리를 쫙쫙 벌려 대는 모습뿐이다. 그렇게나 많이 죽였는데도 아직 만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쿠웅!

오른쪽 벽에 붙은 좀비들이 한꺼번에 몸을 날리자 버스가 기울었다. 으아아!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병사들이 가까스로 버텨내며 비명을 지른다. 지붕이 매끈한 직원용 관광버스에는 붙잡을 곳 하나 변변히 없었다.

쿠웅!

이번엔 반대쪽에서 덤벼들었다. 발이 미끄러진 병사를 동료들이 겨우 잡아주었지만,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 총은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씨발! 안 돼!”

유일한 무기를 잃은 병사는 양팔을 벌려 다른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싸울 수 있도록 허리춤을 꽉 쥐었다.

그런 역할이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최선을 다해 협력했다.

생존? 그런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오는 놈들의 머리를 날리고는 있지만, 가지고 있는 탄약의 양보다 저놈들의 머릿수가 몇 배나 더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조금씩 지쳐 갔다. 좀비들이 차체에 부딪쳐 올 때마다 버스는 좌우로 흔들리고, 사방에서 올리는 고함 소리는 혼을 빼놓았다.

드르르륵, 두두두두! 드르르륵!

기숙사와 대학원 건물 2층에서는 창가에 배치된 경기관총이 언덕 위로 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향해 열심히 총알을 퍼붓고 있었다.

버스에 오른 병사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다. 흔들리는 차 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사격을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병력이 좀비들을 밀고 내려와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와아아악!

쓰러진 좀비들이 늘어나면서 바닥에 깔린 시체는 점점 높이 쌓였고, 그것을 밟고 올라서는 녀석들이 휘젓는 손은 어느새 버스 지붕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타앙―! 그렇게 하는 것이 아래의 시체 탑을 더 높여준다는 걸 알면서도 겁에 질린 병사들은 자신의 발목을 향해 팔을 뻗는 놈들의 머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있는 새끼는 쏘지 마! 그러다 여기까지 올라온다고! 뒤쪽부터 제거해! 뒤쪽부터!”

병사들은 목청이 터져라 같은 말을 반복해 외치면서도 막상 자신의 발아래로 좀비의 손이 보이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흩어져 서 있던 처음과 달리 병사들은 점점 가운데로 모여 섰고, 어느새 거의 등을 맞붙인 자세가 됐다.

탕! 타앙! 탕!

연사에서 3점사로, 그리고 잠시 뒤부터는 단발 사격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총소리는 점점 더 잦아들었다. 허리에 느껴지는 예비 탄창의 무게가 하나씩 빠져나갈 때마다 그들의 생명선도 함께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

이미 총알이 다 떨어진 옆자리 2호 버스의 병사들은 뜨거운 총신에 대검을 낀 채, 시체들을 발판 삼아 기어 올라오려는 좀비들을 찔러 대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 1호 버스의 병사들 역시 더더욱 방아쇠를 당기기가 두려워진다. 하나둘씩 기어오르는 놈들이 늘었고, 마침내 2호 버스의 지붕은 좀비에게 점령당했다.

“끄아아! 안 돼! 안 돼!”

마지막까지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열심히 싸우던 병사조차 물량을 앞세운 좀비들에게 팔다리를 붙잡힌 채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아래로 내던져진 병사의 몸뚱이는 사방에서 달려든 좀비들에 의해 순식간에 수백 개의 조각으로 찢겨 나갔다.

“씨바알! 이런 씨발!”

홀로 남아 버스 구석으로 몰린 병사 하나가 울먹이며 사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간절한 표정으로 맞은편 버스 위의 동료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쪽 1호 버스 위에 서 있는 여섯 명은 그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씨발!”

열심히 총을 휘두르던 병사는 결심한 듯 총을 아래로 내린 후, 총신을 꽉 쥐었다.

그리고 대검을 자신의 목에 찔러 넣기 위해 팔을 힘차게 올렸다.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싶던 것이다. 그러나 좀비들은 그 작은 자유도 허용하지 않았다.

끄롸아아악―! 대검이 피부를 막 꿰뚫었을 때, 몸을 던진 좀비가 병사를 끌어안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찌이익! 대검이 찢고 나간 병사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는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좀비들의 이빨이 자신의 온몸에 박혀 들어가는 통증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1호 버스 위에서 버티고 있는 병사들의 심장을 찢을 듯이 길고 크게 울렸다. 병사의 살점과 내장을 입에 문 좀비들은 만족할 줄 모르고 곧바로 다음 목표인 1호 버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개좃같은! 병사들은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떨리는 손으로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왜 이렇게 가혹한 꼴을 봐야 한단 말인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끝이 안 나는 것인가…….

“총알 있어? 탄창? 탄창!”

애타게 지원을 외치는 소리, 총을 놓친 병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분의 탄창을 다른 병사들에게 나누어 줬다.

그래봐야 또 금방 다 써버린다. 마침내 그들 전부가 빈총만을 꼭 쥐고 있게 되었을 때, 병장 하나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지막 탄창을 꺼냈다.

“후우∼ 이게 진짜 끝이다. 어쩔래?”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쩔래’의 의미를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혹시 지붕 위에 오를 수 있을까 싶어 끊임없이 뛰어오른다. 탄창을 꽉 쥔 병장이 말했다.

“나는 좀 무섭다, 솔직히. 아픈 것도 싫고……. 저 새끼들한테 쏘지 말고 그냥 갈 수 있을 때 우리가 편하게 가자.”

“저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병 하나가 눈을 내리깔고 동의했다. 물론 반대도 있었다.

“전 싫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다.”

점점 더 크게 흔들리는 버스 위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좀비들의 울부짖음을 배경음으로 깔고 투표를 했다. 편히 가자 셋, 싸우자 셋. 공교롭게도 삼 대 삼이 나오는 바람에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봤다.

“이렇게 하자.”

고민하던 병장이 탄창에서 총알 하나를 빼며 말했다.

“죽을 사람은 이거 하나씩만 있으면 되니까, 그럼 나머지는 싸울 애들이 나눠 가져.”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들 모두가 울상이 돼버렸다. 병장은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해서 총알을 빼 나눠 줬다.

“자, 너는 하나만 있으면 되지?”

“그, 근데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총이 없는데…….”

총을 놓친 병사가 총알 하나를 받아 쥐고 당황해서 물었다. 아! 새로운 문제에 당면한 병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얘 좀…….”

말끝을 다 맺기도 전에 다들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 총에 두 방 넣고 내가 먼저 가면 네가 집어서 쓸래?”

“그…… 그러다가 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버스 지붕을 잡아보려는 좀비의 손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고 나서 병장이 무겁게 말했다.

“후우∼ 그 총알, 날 줘라. 내가 너부터 먼저 쏴줄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둘은 마주 보고 섰다. 부탁한 일병은 눈을 꼭 감은 채 양손을 맞잡으며 부들부들 떨고, 부탁받은 병장은 비지땀을 흘리며 총을 들었다.

처음엔 턱을 들게 해서 거길 겨누고 쏘려 했다. 하지만 병장은 얼굴을 마주 보고 그렇게 하는 게 도저히 무리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좀비들의 머리통을 날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야, 안 되겠어. 하이바 벗고 돌아. 뒤에서 할게.”

병장의 부탁에 따라 철모를 벗어 들고 돌아선 일병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다른 병사들의 얼굴에서도 핏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떨고 있는 건 집행을 맡은 병장이다.

그는 몇 번이나 전우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눴다가 또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사람 모양을 한 좀비들을 수백 번 죽여봤기 때문에 이제 좀 무감각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다른 병사들도 모두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병장과 일병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후우, 후우, 후우!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계속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던 병장이 마침내 결심을 굳혔는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짜 당긴다! 잘 가라!”

눈물범벅이 된 일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는 그저 ‘흐으으으∼ 엄마……’ 하는 낮은 울음소리만 새어 나온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가 살던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싶어 꽉 감고 있던 눈을 가늘게 떴다. 턱,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총구가 뒤통수 근처에 겨눠지는 느낌. 그리고 그때…… 보았다.

“잠깐! 잠깐만요!”

일병은 다급하게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야! 뭐야? 이러면 나도 너무…….”

“저기! 저기 불빛! 불빛이에요!”

일병이 가리키는 왼편 정문에선 정말로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비쳐 오고 있었다. 지원병이다. 으와아아! 아직 희망이 있다!

순식간에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총을 고쳐 쥐고, 뻗어오는 좀비들의 머리에 다시 총알을 박아 넣고 손을 으스러뜨리기 시작했다.

“전원 위치로! 빨리 하차해! 빨리!”

정문이 가까워지자 중위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100여 미터 전방에 트럭을 세우고 서둘러 모든 병사들을 내리게 했다.

급하게 뛰어내린 병사들은 넓게 벌려 자리를 잡고 앉거나 엎드려 총을 겨눴다. K―3까지도 바닥에 내려놓고 양각대를 고정시켰다.

뒤를 따라 달려오던 진우는 그 광경을 보고 괴로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멍청한 전술 결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좀비들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와 속도다. 상대편에서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데 이쪽이 자세를 낮추고 멈춰 서다니, 가장 쓸데없고 멍청한 짓거리 아닌가.

차라리 트럭의 덮개를 걷어내고 달려가며 후방을 친다면 훨씬 좋을 텐데…….

치이이익― 여러 발의 조명탄이 한꺼번에 좀비 무리를 향해 날아가고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파앙! 펑펑펑펑! 퍼퍼벙―!

지프 위에 설치된 50구경 중기관총의 대포 같은 발사음이 울리자 늘어선 좀비들의 머리통이 몇 개씩 관통되며 잇달아 터져 나간다.

낮게 엎드린 채 위치를 확보한 병사들 역시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목표를 따로 조준할 필요도 없을 만큼, 어디를 쏴도 좀비의 몸을 뚫었다.

먹음직스러운 인간들이 한꺼번에 150여 명이나 측면에서 들이닥치자 놈들의 광기도 극에 달했다.

그롸아아아아―!

하늘을 덮을 듯 커다랗게 괴성을 질러 대며 좀비들이 달려든다. 거기에 건물 위에서 고전하고 있던 병사들이 내지른 함성까지 더해지자 강원도의 깊은 밤은 한층 더 극적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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