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삼척원자력발전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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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삼척원자력발전소 (4)
2021.10.19.
진우는 두 번이나 3점사를 해서 겨우 놈을 쓰러뜨렸다. 흔들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의 사격은 평지 위에서와는 또 달랐다.
“이거 씨발, 괜히 뻘짓거리하는 느낌인데…… 안 따라와.”
이미 주차장을 점령하고 기숙사 방향을 향해 밀려드는 좀비의 물결을 옆에서 따라 달리며 김 상병이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기숙사로 오르는 언덕 위에서는 어설프게 재정비한 병사들이 아래를 향해 정신없이 총알을 퍼부어 대고 있다.
파파파파! 파파파바박!
그와아아악!
언덕을 뛰어오르다가 총알을 잔뜩 뒤집어쓴 놈들은 아래쪽으로 굴러 내려갔고, 그것이 전진하는 좀비의 속도를 조금은 늦춰주는 효과를 냈다.
2층 창문에 위치를 잡으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 믿은 여남은 명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의외의 방식으로 진우의 계획이 현실화되었다.
발단은 고립되어 있던 분대 병력의 병사들이었다. 울상이 되어 K―2를 난사하던 그들은 진우가 탄 지프를 보자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뛰기 시작했고, 그들의 뒤를 수많은 좀비들이 울부짖으며 쫓았다.
“저거 보셨습니까?”
진우가 외치자 김 상병이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그래! 차 갖다 대보자! 근데 여기 태우기엔 너무 많은데!”
처음에 도망치기 시작한 인원은 열 명가량이었다. 그 뒤를 바짝 따라붙은 좀비들은 가장 뒤의 두 명을 순식간에 덮쳤다.
끄아아아! 전우의 비명을 참을 수 없던 병사 둘이 돌아서서 희생자들의 목을 뜯고 있는 좀비들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뒤따르던 좀비들에게 곧바로 붙잡혀 버렸다.
살아남은 병사들 중 하나가 다리가 풀려 앞으로 쓰러졌고, 또 하나는 도저히 못 뿌리치겠다 싶어 옆길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차례로 좀비들에게 삼켜지고 마지막에는 세 명만이 남았다.
“타! 빨리!”
김 상병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180도 회전을 해서 기다려 준다. 진우는 세 명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있던 놈들의 머리를 차례로 날렸다.
“가, 감사합니다!”
“빨리 타! 그냥 가버릴 거야!”
병사들이 인사치레를 하려는 시간도 아까워서 김 상병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긴 완전히 빈말만도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매력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을 바꿔 그들을 쫓아오는 좀비가 이미 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간다!”
세 명의 병사가 차 안에 겨우 상체를 욱여넣자마자 김 상병은 액셀을 최고로 밟았다. 앞쪽에서도 뒤늦게 이쪽에 흥미를 보이며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좀비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 갑자기 장사가 잘되니까 무섭네! 박 이병! 저기! 1시! 1시!”
핸들을 틀어 달려드는 좀비들을 피해 나가며 김 상병이 외쳤다.
뒤쪽에 따라붙은 놈들을 상대하던 진우는 곧바로 돌아서서 조수석에 몸을 기대며 사격을 시작했다. 진우의 총알을 피해 날아든 놈이 지프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아! 씨발!”
김 상병이 욕설과 함께 반사적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퍼억―! 범퍼 가드에 부딪쳐 박살 난 좀비의 머리통이 앞 유리창을 들이받자 유리에 금이 쫙 간다.
놈의 시체를 밟고 기우뚱한 차체의 한쪽 바퀴가 들리며 정신없이 흔들렸다. 김 상병은 미친 사람처럼 바쁘게 핸들을 돌려 댔고, 브레이크와 액셀을 번갈아 밟았다.
“아, 후…… 하하하! 봤냐, 이 새끼야! 뭐? 운전할 줄 아시냐고? 어때, 잘하지?”
겨우 상황을 수습한 뒤 방향을 잡은 김 상병이 속도를 높이며 소리를 질렀다. 까딱하면 차에서 떨어져 나갈 뻔했던 진우와 병사들이 의자를 꽉 잡고 합창을 했다.
“잘하십니다!”
“알았으면 너희는 얼른 갈겨!”
세 병사가 측면과 후방을 맡았고, 조수석으로 옮겨 탄 진우는 전방을 가로막는 좀비들을 노렸다. 한번 흐름을 타기 시작하자 더욱 많은 수의 좀비들이 목표를 그들로 바꿔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쪽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좀비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달리는, 안 그래도 좁은 길이 점점 더 좁아졌다. 정문으로 향하는 도로가 좀비들로 이루어진 벽 때문에 서서히 막혀간다.
“숙이고 꽉 잡아라! 뚫는다!”
그렇게 말한 김 상병은 기어를 바꾸고 RPM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원래 그리 빠른 차는 아니지만, 그래도 녀석은 다섯 명이나 태운 상황에서도 꽤나 분발해 주었다.
좀비 벽이 완전히 닫히려 하고 있다. 속도계 바늘이 120에 이르렀을 때, 레토나는 대여섯 마리의 몸뚱이를 한 번에 박살 내며 썩은 시체들의 문을 들이받았다.
우지끈!
레토나의 오른쪽 라이트가 깨져 나가고, 부서져 버린 범퍼 가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펜더는 완전히 우그러졌고, 유리창은 박살이 나버렸다.
콰콰콱! A필러와 대시 보드를 꽉 잡고 있었지만, 진우는 몸이 앞으로 기울며 머리를 호되게 박았다. 철모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떠올랐던 뒷바퀴가 내려앉으며 퍼엉! 소리를 내고 타이어가 터져 버렸다. 쿠션이 사라져 버린 뒷바퀴들이 계속 덜그럭거리고, 이제 속력도 낼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는 달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있다. 그들이 돌파한 곳이 거대한 좀비 무리의 맨 뒷부분이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것처럼 느껴지던 놈들이지만, 이제 그 끝을 분명히 보았다.
“다들 괜찮아?”
핸들에 얼굴을 박았는지 입 주변에서 피가 흐르는 김 상병이 아무렇게나 돌아간 백미러를 조종하며 물었다.
가운데 낀 녀석만 멀쩡하고 양쪽에 앉은 병사 둘은 코피가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살아서 차에 타고 있다.
“끄으으! 네, 감사합니다!”
병사들이 부어오른 코를 더듬거리며 진심을 가득 담아 큰 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조금 전의 충돌 때 떨어져 버렸다면 지금 뒤에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놈들에게 붙들려 꼼짝없이 산 채로 뜯어 먹혔을 것이다.
“김 상병님! 속도 좀!”
뒤를 돌아본 진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들이 탄 지프가 빌빌거리며 갈지자로 휘청대는 동안 좀비들은 꽤나 거리를 줄였다. 코피를 닦던 병사 하나가 ‘상병?’이라며 혼잣말을 한다.
“이게 최고로 밟는 거야! 2단으로 올라가지도 않아! 젠장, 축이 휘었나 봐!”
김 상병이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터져 버린 탓에 타이어만 얇게 덮여 있는 뒷바퀴는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계속 덜그럭덜그럭, 신경 쓰이는 소리를 냈다.
속도계를 힐끔 보니 시속 28킬로미터 부근에서 바늘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부와아아앙! 아무리 액셀을 밟아봐야 공연히 엔진의 떨림만 커지고 더 빨라지는 기미는 없다.
“28킬로야! 더 이상은 안 나와!”
쫓아오는 놈들이 100미터를 12초에 뛴다 해도 이 차보다 빠르다. 거리를 줄이기 전에 앞서 달리는 놈들은 제거해야 한다.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좌석으로 옮겼다. 탄창을 갈아 끼우고 따라붙는 좀비들을 향해 3점사를 날렸다.
투투둑! 투둑!
워낙 흔들려 대서 명중률은 절반도 안 되지만, 그래도 넋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 정문에 배치된 병력까지의 거리는 2킬로미터. 앞으로 5분 동안만 제발 차가 계속 달려주기를 진우는 간절히 빌었다.
“뭐해! 너희도 쏴, 이 새끼들아!”
다른 병사들에게 김 상병이 소리를 질렀다.
“아! 네!”
“네!”
“응!”
제각기 대답을 한 뒤, 병사들은 차 옆으로 몸을 내밀어 사격을 시작했다.
타다다― 타다다― 20여 발을 쏴서 운 좋게 한두 발이 맞으면,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육상 선수처럼 달려들던 좀비가 뇌수를 흩뿌리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김 상병은 진우를 믿기로 하고 뒤를 보지 않았다. 유리창이 박살 난 채 날아가 버려서 바람을 맞아가며 운전하는 중이라 똑바로 앞만 보고 달리기도 벅찼다.
그롸아아악!
뒤를 따라잡는 놈들의 수가 서서히 늘어났다. 어두운 구간을 지나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들어설 때마다 안 보이던 공간 속에서 대여섯 놈씩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지프와 나란히 서서 달리다가 거리를 줄이기 위해 진로를 수정하는 좀비들마다 진우의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진우가 머릿속으로 카운트하는 시계가 280초까지 갔을 때, 김 상병이 목청껏 환호하며 경적을 울려 대기 시작했다.
“왔다! 왔어!”
저 멀리 철책들이 보이고, 전방 경비 부대가 쌓아놓은 모래 포대와 바리케이드가 눈에 들어온다. 난데없는 소음에 깜짝 놀란 병사들이 서치라이트의 방향을 돌리고 사격 자세를 갖추고 있다.
하긴 반쯤 작살난 지프를 앞세워서 천 단위의 좀비들이 떼로 몰려드는데, 누군들 안 놀랄까. 철컥, 일제히 총을 겨누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멈춰!”
뒤에서 피에 굶주린 괴물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는데 멈추라니, 그런 명령은 들을 수 없다. 다섯 명은 팔을 흔들며 죽어라 뛰었다.
“쏘지 마요! 비키니! 빤쓰! 비키니! 빤쓰!”
100여 미터 전방에 지프를 비스듬히 멈춰 세우고 급하게 달려가며 김 상병이 암구호 두 개를 한꺼번에 다 외쳤다. 따라 달리던 진우와 세 병사도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바리케이드 앞에 이르러서는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해서 기어 들어갔다. 그들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과 동시에 전방으로부터 옮겨온 네 정의 K―3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타타타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 일반 화기들도 일제히 발사됐다. 달려오던 좀비들의 몸뚱이가 사방으로 잘려 나가고, 쓰러진 놈들의 시체를 밟고 또 다른 녀석들이 기꺼이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롸아아아악―! 발전소 정문 6차선 도로는 순식간에 수백의 시체로 뒤덮였다.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키는 진우의 어깨를 누군가 잡아 눌렀다.
“앉아!”
경계병들이 진우와 김 상병 일행을 빙 둘러싼 다음,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중위가 물었다.
“이 새끼들, 피 나잖아. 너희 뭐야? 물렸나?”
“5소대 동쪽 초병입니다! 안 물렸어요! 안 물렸어요! 깨끗합니다!”
김 상병이 군복 단추를 풀고, 바지를 걷어 올리며 외쳤다. 그렇게 말하는 입술은 피딱지가 덮인 채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김 상병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입술을 까뒤집어 보였다.
“이건 타박상입니다! 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피를 흘리던 뒤의 병사들을 가리켰다. 중위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애들이란다, 이놈. 병장이 둘이나 있구만, 상병 놈의 새끼가. 하여튼 알았어. 두고 보면 알겠지. 야, 얘들 감시해.”
그 말에 깜짝 놀란 김 상병이 뒤를 돌아보자 정말로 작대기 네 개가 달려 있다.
하지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까짓 줄 하나, 두 개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총소리는 끊임없이 울리고, 정면으로부터 추가 병력이 달려와 사선에 섰다.
왜 이런 화력이 아직도 여기서 한가하게 경계 근무나 서고 있던 것인지 진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섯 명이 차를 타고 쫓겨올 때에는 무한하게만 보였던 거대한 좀비 무리가 10여 분 만에 모두 궤멸되었다.
마지막으로 비틀대며 기어 다니는 놈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 임시 본부의 무전을 받고 돌아온 중위가 도로 위에 잔뜩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1소대, 2소대. 5분 내에 저거 확인 사살 끝내고 한쪽으로 정리해라. 그리고 차선 하나 확보한 후 곧바로 승차하도록. 지원 들어간다.”
씨발, 너무 늦었잖아. 진우의 이가 빠득 갈렸다.
“하∼! 덥다. 이거라도 좀 벗자.”
김 상병을 따라 진우도 헬멧을 벗었다. 어찌나 뜨겁고 괴로운지, 땀에 흠뻑 젖은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 같다.
머리에 물을 붓고 군복 자락을 펄럭여 바람을 불어넣고 있던 김 상병이 중위의 명령에 따라 아직도 그들을 지키고 선 정문 소속 일병들에게 물었다.
“야, 너희 여기서 오늘 뭐했냐? 우리 좃뺑이 까는 동안 왜 지원 안 왔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김 상병이 다시 협박했다.
“아쭈? 씨발놈이…… 우습지? 너희 이름 다 보여, 개새끼야. 내가 기억했다가 군 생활 아주 제대로 꼬이게 해줘 볼까?”
“나도 이름 외웠어.”
“나도.”
같이 차를 타고 온 병장들도 도끼눈을 떴다. 고참들의 협박에 기가 죽은 일병들 중 하나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게…… 정문 쪽으로도 동시에 협공이 올지 모른다면서…… 현재 위치 이탈하지 말고 경계 태세 강화하라고 명령이 내려왔답니다.”
“어디서?”
“임시 본부인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이 그랬다고? 근데 다 밀리고 나니까 지금 무전 때려서 오라고 하는 거야?”
“그런 것 같습…… 잘 모릅니다, 저는.”
하여간…… 김 상병이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아니, 무슨 베트남전을 하는 줄 아나? 저 새끼들은 좀비라고. 뇌가 없는 좀비! 협공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것들은.’
진우는 멀리 보이는 대학원 기숙사 건물의 불이 환히 밝혀진 꼭대기 층을 향해 눈을 흘겼다. 임시 본부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