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삼척원자력발전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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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삼척원자력발전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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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삼척원자력발전소 (3)
2021.10.18.
전방에서는 3개 소대 규모의 교대 병력들이 2열로 늘어서서 철책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는 몸을 숨길 만한 참호도, 바리케이드도 없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는 물이 질퍽하게 뿌려져 있었다. 몇 개 분대가 소방 호스까지 동원해서 계속 철책 너머까지 물을 뿌려 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헉, 헉, 이제 비긴 거다. 나도 너 한 번 살려준 거야.”
교대 병력의 후방으로 피신한 뒤, 김 상병이 진우의 철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억, 허억…… 감사합니다.”
“후우∼ 감사하긴, 새끼야. 하아∼ 씨발, 실은 비긴 거 아니야. 내가 사수니까 대략 두어 번은 널 더 살려줘야 돼.”
말을 마친 후, 털썩 드러누워 두 팔을 번갈아가며 주무르는 김 상병의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진우는 숨을 몰아쉬며 좌우를 둘러봤다. 완전히 탈진한 병사들이 땅에 드러누운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것밖에 안 남았나…….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철책에서 좀비들을 사격했던 2개 소대 병력 중 절반가량이 보이지 않는다.
유탄에 맞아 쓰러진 부상자들이 의무실로 옮겨졌다고 쳐도, 너무 많은 수가 희생돼 버렸다. 그러나 좀비들의 습격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일어나! 일어나!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누우면 죽는다! 빨리 물 마시고 일어나라고! 빨리! 뛰어가서 3열에 서!”
선임하사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쓰러진 병사들을 일으켜 세웠다. 진우가 총을 다시 들고 일어나기 위해 끄응, 소리를 내자 옆에 누운 김 상병이 팔목을 잡았다.
“누워, 새끼야. 놀던 새끼들 좀 싸우라고 하고. 어차피 지금 가봐야 쓰러져. 더 쉬어. 워커 채이기 전까지는 그냥 죽었다 하고 있으라고.”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김 상병은 계속 숨을 헐떡였다. 옳은 이야기처럼 들려서 진우는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사실 그 역시 양팔이 다 저릿저릿했다. 등에 닿는 아스팔트조차 천상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
같은 시각, 민구는 병원 2층의 1인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불이 꺼진 방 안의 유일한 조명은 그가 물고 있는 담배뿐이다.
민구가 담배를 빨아들이면 잠시 주위가 밝혀졌다가, 이내 빨간 불똥만 남아 허공에서 까딱거린다. 후우우∼! 민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사방은 어둡고 고요하다. 그것이 민구를 기쁘게 했다.
이따금씩 울리는 괴물들의 울음소리만 아니라면 어디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호텔에라도 온 기분이다.
하루를 더 쉰 만큼 어깨도 훨씬 나아졌고, 발목은 이제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이삼 일 더 걸렸지만, 이 정도라도 회복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둘까.’
피곤하지는 않지만, 체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바닥에 꽁초를 비벼 끈 민구는 팔을 베고 자리에 누웠다. 끼이익―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있는 왼쪽 방이다.
자박, 자박, 복도를 걷는 소리, 쇠 트레이 위의 물건들이 찰그랑거리는 소리……. 문틈으로 플래시 불빛이 비쳐 든다. 그리고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무세요?”
문밖의 간호사가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민구는 메마른 말투로 물었다.
“소독을 한 번 더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 시간에? 민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들어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침대 옆에 트레이와 플래시를 내려놓았다. 쇠 트레이 위에는 가위와 붕대, 알코올 솜이 담긴 통이 올려져 있다.
“빨리 완쾌되시려면…….”
묻지도 않은 말을 한 뒤, 간호사는 입술을 핥으며 민구가 셔츠를 벗을 때까지 기다렸다. 간호사복 상의의 윗 단추가 하나 더 풀어져 있다.
‘의사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군.’
민구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순순히 어깨를 내밀었다.
“몸이 정말 좋으세요. 운동을 많이 하셨나 봐요.”
상체를 깊숙이 숙이며 묶인 붕대를 푸는 그녀의 손이 민구의 가슴과 어깨를 자꾸 스친다. 허술하게 여며진 그녀의 상의 틈 사이로 제법 깊숙한 골이 드러난다.
민구는 그것을 무표정하게 빤히 쳐다보았다. 소독솜으로 섬세하게 상처를 문지르는 동안 그녀의 아랫배도 민구의 허벅지를 문댄다. 새로 붕대를 감을 때에는 바짝 붙어 노골적으로 민구의 얼굴에 가슴을 들이댔다.
하아∼ 하아∼ 뜨거운 그녀의 숨결이 민구의 머리카락에 닿는다. 입술과 이를 사용해 최대한 천천히 붕대 끝을 꽉 잡아당겨 고정시킨 뒤, 간호사가 고개를 숙였다.
“……끝났습니다.”
트레이를 집어 들기 위해 간호사가 침대 쪽으로 허리를 숙일 때, 민구가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제법 탄력이 좋은 엉덩이라 손안에서 제멋대로 출렁거린다. 민구는 손끝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어머…….”
그녀는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하지만 허리를 살짝 비틀 뿐,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민구는 한쪽 입술을 찡그려 웃으며 말했다.
“넌 안 끝났잖아?”
***
끼우우우웅―!
진우의 귀에 또다시 철책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철책과 연결된 망루에 있던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왜 아직도 총소리가 안 들리는 걸까? 하지만 그런 모든 궁금증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다. 이대로 단 몇 초만 더 쉬고 싶다.
“일어나. 어쭈, 이 새끼! 새까만 이병이 자빠진 꼴은 아주 병장이네.”
주임원사가 발목을 툭, 찬다. 꿀 같은 휴식이 끝났다. 진우는 벌떡 일어나서 총과 탄약을 챙겨 사로의 맨 뒤에 가서 섰다.
“아직 쏘지 마라! 대기! 대기!”
소위가 병사들을 붙잡아놓는 동안, 좀비들은 철책을 거의 다 밀어 넘어뜨렸다. 옆쪽에서는 아까부터 뀨우우우우웅― 하는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뭐야, 씨발. 왜 쏘지 말라는 거야? 좃도…… 이것도 무슨 작전이야? 그리고 아까부터 정문 병력은 왜 안 오냐고?”
김 상병이 목소리를 죽여 투덜거린다. 그롸아악― 좀비들의 커다란 비명이 바로 50여 미터 앞에서 울려오고 있는데, 총을 겨눈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라는 건 꽤나 힘겨운 일이었다. 진우도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완전히 철책이 넘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대기!”
다시 소위가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콰당!
마침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서 있던 철책은 완전히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바닥에 고여 있던 물이 요란하게 튄다.
“발사!”
좀비들이 철조망 위를 내달려 오는 것과 동시에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파파파파바― 투투투투두―! 투투둑! 투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일제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뀨우웅, 소리를 내며 울려 대던 커다란 장비의 스위치가 내려졌다.
파지지지지―!
물에 젖은 철망을 타고 고압 전류가 흘러 들어갔다. 철책을 밀어 치며 네 발로 맹렬하게 달려오던 좀비들이 갑자기 땅에 들러붙은 것처럼 멈춰 서 경련을 해 댄다.
뒤에서 달려오던 놈들도 제자리에서 부들거린다. 감전된 좀비들의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길이 4미터, 폭 150미터의 거대한 전기 사형 시설인 셈이다. 한 번 감전된 놈들은 총격에 머리가 날아가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쓰러지지 못하고 우뚝 서서 온몸을 떨어 댔다.
“계속 쏴! 발사!”
기세가 오른 소위가 목이 터져라 외쳐 댔다. 이런 걸 설치해 뒀구나. 발전소라 이거지……. 진우와 김 상병도 처음엔 꽤 괜찮은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땅에 들러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의 대갈통을 날려 버리면, 뒤쪽에서 뛰어오는 놈들에 의해 등을 떠밀린 그다음 줄이 같은 자리를 채우며 부들댄다.
이런 식이라면 놈들은 단 한 발짝도 더 나서지 못하고 저곳에서 몰살을 당할 것같이 보였다. 하지만…….
퍼엉!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감전된 좀비 한 마리가 팝콘이 터지듯 튀어 올랐다.
하늘 높이 떠서 날아온 좀비는 금방 몸을 벌떡 일으키고 다시 달려들었다. 고압 전류에 익어버린 녀석의 피부는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으와아!”
타타타! 두두두둑!
좀비가 날아든 근방의 병사들은 기함을 하며 총을 갈겨 댔고, 불타오르는 좀비의 사지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튀겨지는 것은 그놈 하나만이 아니었다.
펑! 퍼벙! 퍼버벙! 퍼버버벙! 퍼벙!
사방에서 발사된 좀비들이 거짓말처럼 하늘에 호를 그리며 날아와 바닥에 떨어졌다.
고맙게도 머리로 떨어져 버린 뒤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도 간간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오히려 더 사나워져서 달려들었다.
온몸이 불에 타오르면서 아가리를 벌리고 뛰어오는 놈들의 모습은 경악과 공포, 그 자체였다.
3열이었던 사선은 순식간에 흐트러져 버렸고, 앞줄에 엎드려 있는 병사들은 겁에 질려 몸을 일으켰다. 계속 물을 뿌리던 병사들도 호스를 던지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 지켜! 이탈하지 마!”
지휘관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도 불타는 좀비가 하늘에서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는 데는 당해낼 수가 없다. 떨
어져 뒹구는 좀비들은 순식간에 10여 미터 내로 거리를 좁힌 뒤 네 발로 기어서라도 덤벼들고, 혼란에 빠진 병사들이 쏴대는 탄환은 제대로 맞지 않았다.
전열이 흐트러진 채 우왕좌왕하는 동안 바닥에 뿌려두었던 물도 거의 증발해 가고 있다. 이 상태대로라면 이제 저 뒷줄에서 달려오는 놈들은 더 이상 전기 통닭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투둑! 툭! 투투툭!
“끄웨에엑!”
앞서 오는 놈들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이건 도무지 끝이 없다. 전쟁을 해야만 한다면, 이런 괴물들이 아니라 목숨이 아까워 뒤로 후퇴할 줄 아는 인간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파바박! 파밧!
나란히 서서 열심히 K―2를 당기던 진우와 김 상병의 눈빛이 마주쳤다.
‘여차하면 주차장 안으로 후퇴하자!’
김 상병이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눈으로 말했다. 진우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대가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전기 철조망 작전은 영 똥이었다. 좀비는 감전으로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고, 공연히 철책 하나를 넘어뜨릴 동안의 시간만 허비한 셈이다.
“히엑! 끄아악!”
좀비와 인간이 난잡하게 엉켜 있는 앞쪽에서 속속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이미 너무 근접한 상태여서 3열에 속해 있던 진우로서는 섣불리 방아쇠를 당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진우는 고개를 돌려 퇴각 지점으로 정한 주차장을 살폈다. 주차되어 있는 대여섯 대의 승용차와 트럭들.
저 사이로 숨는다고 해도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어쩌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진우는 바쁘게 눈을 돌리며 계산을 했다.
퍼엉! 퍼엉!
망설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팝콘이 된 좀비들이 날아온다. 부하들을 독려하던 소위가 좀비에게 덮쳐져 목을 물렸다.
“끄으윽!”
소위는 권총을 들어 자신의 목을 물어뜯고 있는 좀비의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찌이익! 소위의 피부가 찢기며 붉은 근육이 매달려 올라온다.
“아악!”
소위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두 발째의 총탄이 좀비의 머리를 관통한 뒤 소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허억…… 허억!”
터져 나온 뇌수를 가득 뒤집어쓴 소위가 목을 움켜쥐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또다시 세 마리가 그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중에 군복 입은 놈이 하나 끼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와드득! 좀비의 이빨이 소위의 얼굴을 잘라냈다. 맥없이 쓰러진 그는 더 일어나지 못했다.
꽈득! 찌지직! 좀비들이 사나운 소리와 함께 움찔거리는 소위의 얼굴과 다리에서 사정없이 살점을 뜯어낸다.
“에잇! 씨바알!”
파바박! 파박! 투투둑!
근접하는 놈들에게 총알을 박아 넣으며 틈마다 다시 주차장을 훑던 진우의 눈에 라이트가 켜진 채 서 있는 지프가 들어왔다. 키가 걸려 있다.
저거다! 진우는 김 상병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흩어져 뒹굴고 있는 탄약 박스를 하나 집어 들고 지프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롸아아아악! 크르르!
투투투투두! 투툭! 투투투!
진우와 김 상병을 필두로 해서 살아남은 100여 명의 병사들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뒤로 몇 걸음씩을 달아났다가 다시 앞을 향해 발포하고, 또 뒤돌아 뛰는 식이다.
그렇게 멈칫거리던 병사들 중 많은 수가 희생되어야 했다.
망설임 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무수한 좀비들을 상대하면서 거리를 벌리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었다. 총소리와 울부짖음, 비명 소리와 고성이 섞여 원자력발전소 동쪽의 공간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지휘 체계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수십 명이 좀비들에게 희생되는 동안, 병사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후퇴했다.
먼저 주차장. 가장 가깝고 주차된 자동차와 막사들을 엄폐물로 삼을 수 있는 곳이지만, 뒤가 막혀 있다.
다음이 대학원 건물로 향하는 언덕길. 멀고 몸을 숨길 곳은 없으나 퇴로만은 넓게 트인 방향이다. 축구장 네 개 넓이의 건물들과 휴식 공간을 지나면 그 뒤에 진짜 원자력 발전소 건물들이 나타난다.
“야,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김 상병이 달리면서 소리쳐 물었다. 왼손에 소총, 오른손에 탄통을 나눠 들고 있는 진우는 턱으로 불 켜진 지프를 가리켰다.
“저거? 장교용 아니야?”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위계질서를 확실히 하는 게 아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살아남아서 이 발전소를 외부 침입자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저 지프를 확보하면 전자의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가고, 이 탄통의 총알과 충분한 지원만 있으면 후자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다.
졸업하자마자 면허를 따두길 잘했다. 진우가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고 뛰는 걸 본 김 상병은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씨바. 군기교육대도 살아 있어야 가는 거지.”
지프에 도착한 두 사람은 뒷좌석에 탄통부터 던져 넣었다. 천 근처럼 무겁게 느껴지던 짐을 놓은 것만으로도 훨씬 살 것 같다.
아직 엔진도 끄지 않은 차의 보닛이 가볍게 떨린다. 그건 진우와 김 상병, 두 사람의 생명이 한동안 더 이어지게 될 거라는 의미였다. 핸들을 잡으려던 진우보다 앞서서 김 상병이 재빨리 운전석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내가 운전할게! 넌 어디로 갈지만 말하고 저 새끼들 잡아!”
김 상병은 조수석에 총을 눕혀두고 재빨리 기어를 바꿔 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멍해 있는 진우를 향해 부끄러운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나보다 쏘는 건 좀 낫잖아, 이 새끼야!”
“운전할 줄 아십니까?”
확실하게 하고 싶었던 진우가 뒷좌석에 뒤쪽을 보고 걸터앉으며 물었다. 괜히 아무 데나 들이받고 멈춰 서버리면 곤란하다. 김 상병이 어이없다는 듯 머리를 뒤로 젖혔다.
“하하, 땅개로 구르고 있자니까 별소리를 다 듣네. 야이 씨발, 열아홉 때부터 자유로에서 놀았다. 일산 미친개가 나야! 그보다 너, 잘 잡았냐?”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상병은 곧바로 가속기를 깊숙이 밟았다.
부아아앙― 요란한 엔진 소리가 나고 잠시 타이어가 연기를 낸 후, 그들이 탄 군용 레토나는 총알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젖혀진 지붕 덕에 간만에 맞은 시원한 바람이 땀에 찌들어 있던 목덜미 사이를 좀 식혀준다.
“어디로 갈 건데? 말을 해야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병사들과 얽혀 있는 좀비들 사이를 요령 있게 피해서 빠져나가며 김 상병이 외쳤다.
“쟤네들 가까이 갔다가 돌려서 정문으로 가주십시오! 그리로 몰아가고 싶습니다!”
“그땐 너무 밟지 말란 말이네? 알았어!”
김 상병은 핸들을 꽉 쥐고 속력을 높였다. 기어 변속이 매끄러운 걸 보니 차 좀 몰아봤다는 이야기가 완전히 뻥은 아닌 모양이다.
몰려오는 좀비 파도의 본진을 향해 똑바로 돌진해 가는 건 또 엄청난 일이었다. 한 번씩 놈들이 동시에 아가리를 벌리고 울부짖을 때마다 바짓가랑이가 움찔움찔한다.
“야, 됐어? 돌려?”
“조금만 더 가주십시오!”
좀비 무리로부터 40여 미터까지 다가갔을 때, 김 상병이 차의 핸들을 틀었다.
“더 이상은 안 돼! 후달려서 못 가겠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진우는 총을 겨눠 녀석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투투툭! 투툭! 투투툭! 저 많은 놈들이 전부 주차장과 대학원 건물로 몰려가 버리면 남는 건 몰살밖에 없다. 이 중 다만 얼마라도 분산시켜서 정문까지 끌고 가야 한다.
투투투! 투투투!
열심히 쏴보지만, 놈들은 좀처럼 돌아봐 주질 않는다. 옆의 놈이 머리가 터져 날아가는데도 고개 한 번을 틀어주지 않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간다니, 이런 돌대가리 새끼들!
“안 따라오잖아!”
백미러를 들여다보던 김 상병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진우를 돌아보며 정말 내키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다시 돌려서 가봐? 왜 안 따라오는 거야, 썅!”
빠르게 180도 턴을 해서 좀비들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들의 옆선을 따라 달리며 진우는 계속 방아쇠를 당겨 댔다. 하지만 그래봐야 관심을 보여주는 놈들은 열 마리도 채 안 된다.
“미치겠구만, 개새끼들! 여기 좀 봐라! 어어, 저기 저 새끼! 저거 쏴! 붙으려고 한다!”
김 상병이 가리킨 방향에서 좀비 하나가 차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