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삼척원자력발전소 (2)
(47/449)
47. 삼척원자력발전소 (2)
(47/449)
47. 삼척원자력발전소 (2)
2021.10.17.
“들어와! 들어와!”
진우와 김 상병은 잔뜩 긴장해서 아직도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보초병들을 불러들이고 서둘러 철망으로 급조된 문을 닫았다.
망루의 경기관총이 다시 발포를 시작했다. 스무 발짝 정도의 거리에서는 좀비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다.
철컹!
손잡이를 걸어 잠그고 뒤로 물러난 그들은 담장 내부에 둘러진 두 번째 철책을 향해 뛰었다.
철책 안쪽엔 모래주머니를 쌓아 지대를 높여뒀기 때문에 거기 올라서면 위에서 아래를 향해 사격을 할 수 있다.
“뛰어! 뛰어! 뛰어! 위치로!”
선임하사의 독려하는 소리와 함께 원자력발전소의 주차장에 설치된 야전 막사에서는 비상대기조들이 군장을 갖춰 튀어나오고 있었다.
대대 병력이 임시 생활관으로 사용하는 주차장 너머 원자력 대학원 건물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진우의 눈에 보이는 40여 명의 지원군들 중에 수류탄을 장착하고 있는 병사는 아무도 없다. 물론 그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발전소의 안전 문제로 인해 폭발물 반입을 일절 금했기 때문에 수류탄도, 박격포도, 클레이모어도 전혀 지원받지 못했다.
비행 금지 조약 때문에 발전소 반경 1킬로미터 내 상공에는 헬리콥터조차 날지 못한다. 우습지만, 오로지 총알만으로 좀비들을 쓰러뜨려야 하는 것이다.
“탄창! 탄창!”
보급 지원병 둘이 탄통을 들고 지나가자 김 상병이 팔을 들어 지원을 요청했다. 내밀어진 탄통에서 김 상병과 진우는 되는대로 탄창을 끄집어 챙겼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이렇게 총알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다. 일 인당 탄창 여덟 개가 이곳에 도착하며 교육받은 원칙이지만, 배치된 첫날부터 그 탄약 개수 놀음은 우습게 깨져 버렸다.
그롸아아악! 그와아아아아악!
능선 위에까지 올라온 좀비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넓게 150여 미터에 걸쳐 산을 끼고 있는 발전소 동쪽은 이제 좀비들로 꽉 들어찬 것처럼 보인다. 썩은 머리로 이뤄진 파도가 발전소를 향해 밀려온다.
몇이나 되는 걸까? 만, 이만? 아니, 그 이상인 것 같다. 대대 병력 500명 전원이 각자 40마리 이상을 잡아야만 이 싸움이 끝난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진우의 머릿속으로 회의가 들었다.
“발사!”
소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대 위에 올라선 40여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파파파파파파파―! 타타타타타―!
모두들 시각적인 두려움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연사된 총알들이 마구 날아갔다. 예광탄의 불빛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날리지만, 머리를 적중시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뿐이었다.
불과 몇십 미터 내로 다가온 거대한 좀비들의 덩어리를 마주 보며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심정은 당연히 떨린다. 무섭다. 하지만 그건 곧 살고 싶은 의지이기도 했다.
살자! 살 수 있어! 진우는 자신의 실력과 운을 믿기로 했다.
툭! 투툭! 툭! 투투투!
방아쇠를 당긴 후 목표가 터져 나가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옆의 놈을 겨냥해 또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
말로 설명하자면 쉽지만, 맥박수가 120에 이르는 흥분된 상황에서는 총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조차 어렵다.
사선에 선 모든 병사들의 팔과 다리는 조금씩 후들대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덩어리를 이루어 달려오고 있다고는 해도 산비탈을 빠르게 뛰어 내려오는 목표를 정확히 맞춘다는 건 쉽지 않다.
“침착해! 3점사로 머리를 노려!”
소대장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쳐 대지만, 워낙 총성이 가득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바로 옆에 선 병사에게조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갈겨 대는 총알의 비를 뚫고, 좀비 무리의 가장 앞줄은 어느새 두 개의 철책 중 앞엣것에 당도해 버렸다. 망루 위의 기관총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던 시기는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구우우우웅∼ 쇠기둥이 휘는 소리와 함께 생명줄과 같은 소중한 철책이 좀비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파팍! 한 놈의 머리통이 터지면 곧바로 그 자리를 두 놈의 다른 좀비가 채운다. 두려움도 없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한결같이 광기가 넘치는 놈들의 그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질리는 광경일 수밖에 없다.
그롸아아아아악∼! 크르르르르!
투툭! 투투툭! 투! 투투!
20여 미터 앞에서 수천의 좀비들이 쇠기둥을 밀어 넘어뜨리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면서도 진우는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3시로 가! 3시!”
대학원 건물에서 달려 나온 지원 병력들에게 누군가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원 병력이 서 있는 주차장에서 보면 발전소의 정문이 12시, 동쪽이 3시로 구분된다. 듬성듬성하던 사로에 소대 병력 하나가 더 채워지고 한 번에 발사되는 총알의 양도 두 배로 늘었지만,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했다.
“씨발, 이게 다야? 달랑 50명? 뭐하는 거야? 정문 새끼들은 왜 안 와?”
진우의 옆자리에서 죽어라 갈겨 대던 김 상병이 추가 병력의 양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2킬로미터 밖 도로에 배치된 정문 경비 중대가 가장 주된 화력이기 때문이다.
그로아아악! 크으악!
좀비의 물결이 완전히 무너뜨린 첫 번째 철책을 타고 넘어온다.
퍼붓는 총탄들이 앞줄에 선 놈들을 걸레처럼 꿰뚫지만, 그놈들의 시체가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전에 뒷줄의 놈들이 밀치고 얼굴을 들이민다.
이건 마주 보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놓인 물건이 양쪽 거울 안에서 무한히 반사되며 비쳐지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끝이 있나……. 진우는 고개를 들어 멀리 능선을 바라봤다. 아직까지도 뒤늦게 능선 위로 뛰어 올라오는 놈들이 있다.
“젠장!”
진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 전방의 적들을 향해 총알을 박아 넣었다. 파파파파파― 투투투투― 쏘고 또 쐈다.
얼마나 오래 계속 이렇게 총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일까? 견착하고 있는 어깨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온다. 귀는 윙윙 울리고, 자욱한 화약 냄새 때문에 호흡도 조금씩 어려워진다.
어지럽다……. 진우는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피가 배어 나올 때까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푹푹푹― 퍼퍼퍼퍼벅―!
집중력을 잃은 병사들의 총구가 아래로 처지면서 이미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좀비들의 시체에 무의미한 사격이 가해진다.
철망을 깔고 누운 시체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뒤의 놈들은 점점 안전해졌다. 수북이 쌓인 시체들이 고기 방패의 역할을 하며, 이제 선두에 선 좀비들을 저격하는 건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롸아악!
2선의 놈들에게 열심히 총알을 박아 넣고 있는 동안 안전하게 거리를 줄이고 달려온 놈들이 동료의 시체들을 밟고 뛰어오른다.
3단 뛰기를 하는 육상 선수처럼 부웅 날아오른 다음, 허공에서 팔다리를 휘젓는 좀비들의 모습은 또 다른 차원의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허억―! 병사들의 입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3미터도 안 되는 철망이지만, 그 높이가 부여해 주는 지형적 이점에 꽤나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비가 보여준 점프는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던 병사들을 더욱 주눅 들게 만들었다.
파파팍! 파박―!
허공에 떠 있는 놈들이 5.56㎜ 나토탄 세례를 받고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동안, 좀비들이 시체들의 산을 밀며 병사들이 위치한 철책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그 거리가 줄어들수록 뛰어오르는 놈들에 대한 부담이 늘어난다. 사선에 선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두 발짝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롸악!
“우와아악!”
점프한 좀비가 처음으로 두 번째 철망에 접촉했다.
다른 놈의 으깨진 머리를 밟고 뛰어올랐다가 용케 총알 사이를 뚫고 떨어져 내리며 두 팔을 철책 위에 걸친 것이다. 주변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놈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그것이 화력의 커다란 공백을 만들어냈고, 제2, 제3의 날아오른 좀비들이 철책에 몸을 걸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라악!
아무렇게나 휘저은 좀비의 팔에 총 멜빵이 걸린 병사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또 다른 좀비의 뼈가 드러난 손이 병사의 얼굴을 훑으며 내려가 멱살을 잡고 끈다.
“으아악!”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 반대편 철책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그롸아아아∼!
몰려 있던 좀비들이 떨어진 병사를 덮친다. 잠시 피가 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병사는 대여섯 조각으로 뜯겨 나갔다.
끄아아아! 아아악∼! 총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대고 있지만, 좀비들의 억센 이빨에 온몸이 찢어지며 병사가 내지르는 비명만은 용케 그 틈을 비집고 날아와 고막을 울린다.
그 비명이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끝까지 철책을 붙잡고 버티려던 이병 하나가 다리를 꽉 움켜쥐고 잡아당기는 좀비들의 힘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내리며 울부짖었다.
“나 좀! 나 좀 쏴줘! 쏴줘!”
그를 덮친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어깨를 마주하며 웅크리고 있는 곳에 아무리 총알을 퍼부어봐도 좀비들은 여전히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잡아 뜯고 씹어 댄다.
몇 초 후, 좀비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바닥에는 피범벅이 된 채 잘려 나간 이병의 상반신만이 버려져 있었다.
크게 떠진 채 숨을 거둔 이병의 눈동자에서는 아직도 그가 받았을 고통과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으아아아! 이 씨발 놈들!”
파파파바박! 파바박!
병사들은 이성을 잃고 철책 위의 좀비들을 향해 난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중률이 낮은 게 문제였다.
팅! 팅! 티딩! 아무렇게나 퍼부어 댄 총알들은 철책의 쇠기둥에 맞아 종소리를 내며 튕겼고, 아군의 유탄에 맞은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져 버렸다.
“으아악! 아아! 끄아아!”
모래주머니 사대 아래로 떨어진 병사들이 부상당한 부위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 댄다. 팔과 옆구리, 허벅지, 얼굴에 이르기까지 상처마다 피가 솟구치며 혼란과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철책 바로 앞까지 밀고 들어온 좀비들이 크게 울부짖어 대자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쏴대는 총알은 명중률이 급격하게 낮아졌고, 그럴수록 더 많은 좀비들이 철책에 달라붙는다.
그와아아악―!
좀비들이 입을 벌리면 놈들의 악취가 느껴지고, 머리가 터져 나간 놈들의 뇌수가 병사들의 얼굴에까지 튄다.
투투투투투툭― 투투투투투둑― 망루 위의 기관총이 탄통을 계속 갈아가며 긁어 대보지만, 좀비 무리 중간에 생기는 작은 공백은 속속 새로운 인원들로 채워졌다.
팍! 파박! 파바박!
최대한 침착하게 좀비들의 머리통을 날리고 있는 진우에게도 한계의 상황이 다가왔다.
새로 지급받은 탄창도 다 바닥나 버렸고, 이제는 자신이 뭘 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저 기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당길 뿐이다.
“……이병!”
그롸아아악!
먼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진우는 좌우로 몸을 돌려가며 철책에 반쯤 몸을 걸치고 있는 좀비들을 찾아 머리에 커다란 구멍 하나씩을 내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혹사당한 총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얼굴이 데일 것 같다.
투앙! 또 한 마리…… 투앙! 또 한 마리…….
그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째서 자신의 주변에 동료들은 없고 좀비의 시체만 걸려 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할 만큼 진우는 한계까지 몰려 있었다.
탕! 탕! 철컥―!
탄창을 갈기 위해 탄띠를 더듬던 진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총알이 다 떨어져 버렸다. 보급 지원병은? 진우는 그제야 뒤로 고개를 돌렸다.
“……박 이병!”
필사적으로 그를 부르며 달려온 김 상병이 진우의 멱살을 당겨 사대 아래로 끌어 내렸다. 땅바닥에 넘어져서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진우가 퀭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포함해 대여섯 명의 병사만이 미친 듯이 저항하고 있을 뿐, 150여 미터에 이르는 사선은 이미 거의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철책 저편을 완전히 점령한 좀비들의 울부짖음이 텅 빈 밤하늘을 울렸다.
“야, 인마! 정신 차려! 계속 뒤로 빠지라고 했잖아! 철책 비우라는 말 못 들었어?”
김 상병이 진우를 부축해 일으키며 버럭 고함을 쳤다.
“……못 들었습니다.”
진우는 김 상병을 따라 뛰며 여전히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확성기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지는 퇴각 명령이 이제야 들린다.
끝까지 버티던 병사들이 차례로 물려 쓰러지고, 반대편으로 끌려 떨어지는 중이다. 저 자리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진우 역시 지금쯤 좀비들의 만찬거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