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 삼척원자력발전소 (1) (46/449)


46. 삼척원자력발전소 (1)
202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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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흐흐, 이 새끼. 하긴 네가 뭘 알겠어. 너, 진짜 이건 비밀이다. 알지? 그게…… 탄약 박스였던 거야. 대충 어림잡아도 아마 한 오천 발? 팔천 발? 아니다. 두 박스였으니까 적어도 만 발은 되겠다. 하여간 실탄이 존나게 많았어. 씨발, 나도 꺼내놓고 나서 기절하는 줄 알았지.”

진우는 그 이야기를 믿는 대신 논리적으로 분석해 봤다. 5.56㎜ 캘리버 나토탄 하나의 무게가 대략 12그램 정도니까, 만 발이면 120킬로그램, 오천 발이면 그 절반이다.

꽤 무겁기는 하겠지만, 들어 올리지 못할 무게는 아니다. 부피 문제만 아니라면 100퍼센트 허풍이라고 단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전혀 믿지 않았지만.

“야, 너도 생각을 해봐. 탄피 하나만 없어져도 내무반 전체가 밥도 못 먹고 사격장을 샅샅이 훑는데…… 만 발이야, 만 발. 그게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그리고 그 왕고는 왜 그걸 전역 전날 다시 파본 걸까?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넌 이해가 가냐?”

그 순간, 갑자기 진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제와 어제 느꼈던 그 감각, 그게 온몸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람을 타고 소리보다 먼저 전해지는 냄새, 미묘하게 다른 공기의 흐름,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눈과 귀로는 아직 아무런 징후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저 컴컴한 어둠 너머 어딘가에서 놈들이 달려오고 있다.

진우는 손을 옆으로 뻗어 김 상병의 팔을 두드렸다.

“김 상병님.”

“뭐야? 왜 그래?”

한참 신나게 떠들어 대다가 말이 끊긴 김 상병이 언짢은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옵니다.”

“오긴 뭐가 온다고, 이 새끼야. 소리도 하나 안 들리는구만.”

플래시로 앞쪽을 비춰 본 김 상병이 진우의 전투모를 한 대 후려쳤다.

하지만 진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30초 정도가 지나자 이제는 김 상병의 귀에도 들릴 만큼 커진 소리가 어둠 저편으로부터 울려왔다.

으으으으으우우우우우와아아아아악!

아주 작은 소리지만, 그것은 규모가 아니라 거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백 단위 혹은 천 단위의 좀비들이 아니었다.

지금 몰려오고 있는 건 훨씬 더 거대한 것이다. 버텨낼 수 있을까? 긴장한 김 상병이 허겁지겁 조명탄을 쏘아 올리는 동안 진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뒤쪽을 쳐다봤다.

작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웅장한 규모의 삼척 원자력발전소가 불빛 속에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여기에는 좀비가 먹이로 삼을 인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었다.

‘어째서 저렇게 많은 좀비들이 이곳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것일까?’

진우는 주야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잠시 후, 첫 번째 좀비가 능선 위로 올라서자 진우는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커다란 총소리와 함께 좀비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능선 위로 올라와 달리기 시작했다.

진우는 쉬지 않고 총알을 날렸다. 순식간에 탄창 세 개를 비웠지만, 그 정도의 사살은 표도 나지 않는다. 말로만 전해 듣던 규모 5가 삼척 원자력발전소를 향해 몰아쳐 오고 있었다.

애애애애앵! 애애애∼앵!

사이렌이 울리고 담장 안쪽이 분주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옆 참호의 총구에서도 일제히 불꽃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몇이나 되는 거지?’

진우는 사격을 하면서도 기가 질려 버렸다. 조준경을 어디로 향해도 빽빽한 나무 사이마다 좀비의 어깨들이 쭉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탕! 타앙―!

또 좀비 둘의 머리가 사라졌다. 겨누고…… 탕! 연두색으로 보이는 머리통에서 흰 액체가 가득 튀며 반쪽이 움푹 파여 나간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려 아무런 열도 내지 않는 좀비들이 주야 조준경의 녹색 화면 속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인다는 건, 그것들이 600미터 안쪽에 있다는 의미였다.

좀비가 산길 100미터를 12초에 달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1분 12초 만에 가장 앞줄의 녀석이 여기까지 다다른다. 그 시간 내에 저 많은 좀비들을 다 죽이든가, 아니면 내부로 피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피신을 하려면 뛰기 시작해서 담장 안으로 몸을 던지기까지의 시간을 빼둬야 한다. 그가 위치한 모래주머니 참호로부터 담장까지가 대략 100미터. 총과 장비를 들고 달리면 16초 이상이 걸릴 것이다.

툭! 투툭! 투!

생각을 하면서도 진우는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총에서 발사음이 들리면 거의 동시에 전방에서 좀비 하나가 머리통을 잃는다.

이제 후퇴할 수 있는 포인트까지 45초 남았다. 그제야 뒤늦게 초점을 바꾼 서치라이트가 멀리 산속을 비추자 능선 아래로 달려오고 있는 수천, 수만의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툭! 툭! 투툭! 진우는 조준경 모드를 주간용으로 바꾸고 가장 앞서 있던 좀비 셋의 미간에 차례로 총알을 명중시켰다.

파바바바― 바파파파팍―! 드룩! 드르르!

거의 동시에 망루 위에서는 K―3 기관총이 요란한 소리를 내뿜으며 난사를 시작했다.

예광탄들이 어둠 속에 빨간 궤도를 그리며 사방으로 날아가 꽂히자 나무가 부러져 나가고 바위가 쪼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시각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효성은 높지 않다. 애초에 기관총이란 무기가 적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발을 묶어두는 용도지, 정확한 사살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관총이 사납게 긁어 대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엄폐물 뒤에 숨거나 하지 않고, 속도를 살려 그대로 뛰어온다.

횡으로 훑는 사선이 나무와 좀비를 반반씩 맞춘다고 해도 200발짜리 탄통 하나를 비우는 동안 고작 100마리 정도의 좀비만 쓰러뜨릴 수 있다.

게다가 적중된 놈들이 전부 머리가 날아간 것도 아니다. 몸 반쪽이 사라져 버린 다음에도 금방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놈들을 진우는 이틀 동안 질리도록 봐왔다.

“다 죽어라! 이 개새끼들!”

기관총 소리에 흥분한 김 상병이 제대로 겨냥도 하지 않은 채 계속 3점사를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렇게 쏴대면 지급된 탄창 여덟 개는 금방 바닥이 날 것이다.

진우가 마음속으로 세고 있던 시계는 그새 또 15초가 지나갔다. 30초 내에 도망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간다. 진우는 열심히 총구를 좌우로 돌려가며 앞선 놈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면서도 카운트를 계속했다.

투투툭! 투툭! 툭! 투툭!

또 여섯 마리가 쓰러진다. 하지만 그보다 천 배는 많은 좀비들이 뒤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초. 선두의 좀비들이 두 번째 능선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높고 낮게 연이어진 두 개의 언덕 중 두 번째 언덕 중턱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진우의 분대에게 그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지금 능선 아래의 사각을 달리고 있는 놈들은 이제 조금 뒤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능선 위로 올라설 것이고, 그것은 곧 사형선고다.

8초가 남았을 때, 별도로 퇴각 명령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진우는 스스로의 생명에게 권위를 부여하기로 했다.

“퇴각! 퇴각!”

탄창을 두 개 남긴 시점에서 진우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리고 이미 마지막 탄창도 반 이상을 비운 김 상병을 잡아끌었다.

다른 참호에서는 아무도 달아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진우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총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뭐하는 거야, 이 개새끼야! 누가 후퇴하래? 네가 사수야?”

진우의 돌발 행동을 기제로 해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가 폭발해 버린 김 상병이 진우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짝!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김 상병은 재차 삼차 뺨을 때렸다. 못 견디게 아프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른다.

무표정하게 뺨을 대주면서 김 상병의 눈을 바라보던 진우는 네 번째로 휘두르는 팔목을 밀어 친 뒤, 재빨리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 뛰기 시작했다. 능선 위로 좀비들이 뛰어오르기까지 2초도 남지 않았다.

“이, 이거 안 놔? 이 씨발 놈아! 어디서…….”

목이 앞으로 숙여진 채 끌려오던 김 상병이 분통을 터뜨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좀비들의 거대한 무리를 어깨 사이로 본 것이다.

“헤엑! 야, 놔! 놔! 내가 뛸게. 놓으라고!”

진우는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롸아아악! 좀비들이 아우성치며 참호를 향해 달려든다. 그 거리는 불과 60미터.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한데 섞여 울렸다.

지리적 우위를 확보해 보겠다고 가급적 등성이에 바짝 붙여 참호를 배치해 두었으니, 이제 참호 속의 경비병들은 육박전을 벌일 수밖에 없어졌다.

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좀비 네 마리를 차례로 저격했다. 저놈들이 제거되어야 그가 계획했던 퇴각이 가능해진다.

“빨리 뛰어, 이 새끼야.”

갑자기 태도를 바꾼 김 상병이 앞서 뛰다가 진우를 재촉했다.

3시 방향의 참호 안으로 뛰어들려던 좀비의 머리통까지 날리고, 진우는 몸을 돌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남겨진 전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도울 수 없다.

타타타! 타타타타!

씌우우웅―

때마침 탄통을 교체하기 위해 망루의 기관총이 멎자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다섯 개의 참호 안에서 울려 나오는 끔찍한 비명들이 진우의 귀를 찢는다. 돌아보면 안 돼, 돌아보면 안 돼…….

고통스러워진 진우는 이를 악물고 달리며 어서 K―3가 재장전을 마치기만을 바랐다.

바리케이드로 막아둔 발전소의 동쪽 출입구를 넘은 김 상병이 손을 휘두르며 빨리빨리를 외친다. 보초병들이 좌우로 벌려 서며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 일련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히 자신의 뒤쪽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좀비들이 있다는 의미였다. 하나나 둘이라면 멈춰 서서 쏠 수 있을 테지만, 지근거리에서 그 이상이라면 이쪽이 당한다.

“숙여!”

보초병들의 외침에 진우는 허리를 앞으로 굽힌 채 최대한 빨리 달렸다.

파바박! 파박! 파바바바!

보초병들의 총구가 요란하게 불을 뿜고, 등 뒤에서 살덩이가 터져 나가는 둔탁한 소리가 세 차례 울렸다. 잡아줬구나…….

진우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바리케이드를 잡고 훌쩍 뛰어넘었다. 그의 몸이 지나치자마자 김 상병도 열 발 남짓 남은 마지막 탄창의 총알을 아낌없이 퍼붓기 시작했다.

진우는 앞으로 구른 뒤 재빨리 몸을 틀며 일어났다. 고개를 돌리자 바리케이드 바로 앞에서 좀비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들고 있다.

열댓 마리는 족히 된다. 저렇게 많은 놈들이 쫓아왔단 말인가. 조준경을 눈에 가져다 댈 여유도 없다. 진우는 K―2를 어깨에 붙이고 가장 앞의 놈부터 차례로 쏘았다.

툭! 투투! 투두둑!

허리를 꿰뚫린 놈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쪽으로 날아가며 내장을 흩날린다. 흐웨에에엑! 그로아아악―! 허파가 터져 나간 좀비들은 신경을 긁는 것 같은 울부짖음을 남기고 쓰러져 데굴데굴 구른다.

바짝 달라붙어 있던 놈들의 몸통을 박살 낸 다음, 진우는 뒷줄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의 가슴과 머리의 중간 지점을 노렸다. 그게 가장 빨리 겨냥이 되는 높이였고, 머리에 비해 면적도 훨씬 넓다.

투투툭! 진우가 날린 세 발의 총탄에 의해 쇄골 위쪽이 모두 날아간 좀비가 풀썩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그들이 마주한 규모 5의 최선봉대는 궤멸됐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50여 미터 전방에서는 수효도 헤아리기 어려운 규모의 좀비 군단이 벌판을 가득 메운 채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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