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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유령의 도시 (7) (45/449)

45. 유령의 도시 (7)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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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으! 아오! 후우! 레이저 와이어야. 후우∼ 후우∼ 나도 참 멍청해. 함정에 걸린 놈을 잡으러 가면서…… 으! 함정 생각을 왜 못 했지? 아흐!” 유빈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삽으로 땅을 찍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플래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무릎 높이의 레이저 와이어 트랩이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면도날 모양의 철망이 붉은 피로 번들거린다. 유빈이 걸린 자리다. “후우∼ 천천히 가자. 함정이 있으니까.” 유빈이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돼버렸다. “가만히 서 있어. 움직이지 말고.” 걸음을 떼려는 유빈을 보안관이 붙잡았다. 삼식이가 플래시를 상처에 비춘다. 청바지가 무릎 바로 아래로 깨끗하게 찢겨 나갔다. 피가 흘러서 정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꽤나 많이, 깊이 베었다. 보안관은 재빨리 자기 셔츠를 벗어서 접은 다음, 상처 바로 위를 꽉 조여 묶었다. “아야야, 너무 꽉 묶은 거 아니야? 피가 안 통해. 으으으…….” “피가 덜 통해야 멎지, 이 멍충아!” “근데……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몰라, 나도! 좌우간 응급처치를 했으니까 넌 여기서 기다려. 움직여서 더 좋아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유빈아. 해치우고 올 동안 좀 앉아 있어. 바로 이 앞이니까.” 삼식이가 말했다. 따라간다고 고집을 피워봐야 방해만 될 것 같은 상황이라서 유빈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미안해. 둘이서 수고 좀 해라. 조심하고.” 유빈을 남겨두고 천천히 산비탈을 올라간 두 친구는 괴물과 마주했다. 보안관은 다짜고짜 해머를 휘둘러 머리통부터 날렸다. 유빈이 다쳤다는 상황 때문에 그의 해머질이 더 난폭했는지도 모른다. 두개골이 박살 난 괴물이 그대로 허물어지자 삼식이는 괴물의 다리 쪽을 플래시로 비췄다. 레이저 와이어 바로 앞에서 미끄러진 다음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려 몸부림을 친 모양인 듯 두 다리가 모두 철망에 끼어 종아리뼈가 드러날 때까지 파여 있었다. 이쯤 되면 뼈와 철망 중 어느 쪽이 더 단단한지 시합을 한 셈이다. 보안관과 삼식이는 잠시 그 처참한 꼴을 말없이 보고 서 있었다. 레이저 와이어 트랩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괴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아야야! 쓰으읍, 어후∼!”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2층으로 돌아와 누운 뒤에도 몸을 뒤척일 때마다 유빈은 계속 신음을 흘렸다. 제니는 입을 가린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상처 좀 보자.” 웃통을 벗은 상태의 보안관이 달려들어 상처에 묶어둔 면 티를 풀고, 유빈의 바지 단추를 붙잡고 열었다. 유빈은 깜짝 놀라 몸을 챈다. “뭐, 뭐하는 거야?” “뭐하긴, 등신아. 바지를 벗겨야 상처를 볼 거 아냐?” “괜찮아, 별거 아니라고. 그리고 봐서 뭐해? 어차피 약도 없는데?” “벌어졌으면 꽉 맞물려 놓기라도 해야지!” “아니, 아니, 저기, 제니가…….” 유빈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턱으로 제니를 가리켰다. 상황을 깨달은 제니가 다급히 등을 돌리고 서자 보안관이 바지를 벗겼다. “어흐!”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서 보안관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제니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유빈이 그 와중에도 손으로 면 티를 끌어내리며 펄떡거린다. 제니는 황급하게 다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안 볼게요!” 유빈의 오른 무릎 바로 아래는 중심으로부터 시작해 오른쪽으로 6센티가량 찢어져 있었다. 종아리 쪽으로 갈수록 상처가 더 깊숙한 것으로 보아, 가운데가 먼저 걸리고 넘어지면서 칼날이 옆으로 파고든 모양이다. 보안관은 주변의 흙을 잘 닦아내 상처 양쪽을 꽉 밀어붙인 다음, 삼식이에게 러닝셔츠로 묶게 하고 고정을 시켰다. 안타깝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내일 약을 구해 올게.” 주섬주섬 바지를 올리는 유빈에게 보안관과 삼식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빈은 고통을 참느라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태연한 척했다. “야! 약을 어디서 구해? 됐어, 별로 큰 상처도 아닌데. 며칠 지나면 아마 다 나을걸?”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유빈아, 좀 자둬. 어지러울 거야.” 삼식이가 한숨을 내쉰다. “아, 그래. 너희도 가서 자. 나 때문에 괜히 이게 무슨 난리냐?” 억지웃음을 짓는 유빈을 쉬게 해주려고 모두 자기 자리에 가서 누웠다. 다들 쉽게 잠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육체의 피로는 감출 수가 없어서 조금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씩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 잠이 들었을 때쯤, 방 안에 조용히 누워 있던 제니는 커튼을 들어 올리고 바깥쪽을 내다봤다. 자면서도 어지간히 고통스러운지 유빈은 계속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고 있다.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 나와 유빈의 곁에 앉은 제니는 그의 이마에 솟은 땀을 닦아내고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주었다. 얼마나 그렇게 했을까, 유빈의 신음이 조금 잦아들기 시작했다. 유빈이 안정적으로 꿈속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한 제니는 올 때처럼 살며시 방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유빈의 얼굴을 확인한 뒤, 제니도 커튼을 닫고 스티로폼 침대 위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제니는 방 안의 유일한 조명인 플래시 불빛을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끄고 싶지 않다. 어둠 속에 혼자 남는 것이 너무 무섭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를 위해 아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제니는 플래시 스위치를 껐다. *** 야간 경비조에 배치되는 건 아주 좃같다. 제논 램프니, 서치라이트니, 온갖 조명을 켠다고 해도 밤에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완전히 캄캄한 어둠에 묻힌 공간을 네 시간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만큼 무섭고 답답한 일도 드물다. 그건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이다. 양쪽이 서로 다 안 보이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면 감과 운이 좋은 쪽이 살아남을 테니까.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저 좀비 새끼들은 달빛조차 없는 깊은 밤에도 그가 어디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귀신처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진우를 두렵게 만든다. “야, 뭐하냐, 이 새끼야?” 사수인 김 상병이 진우의 등짝을 툭, 친다. “네, 이병 박진우!” 진우가 정색을 하며 대답하자 김 상병은 피식피식 웃더니 아예 벌렁 누우면서 또 물었다. “뭐하냐고오∼ 새끼야.” “전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열심히 보래? 무서워? 응?” 김 상병이 짓궂게 웃는다. 이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좀비들이 간간이 습격해 오는 상황 속에서 밤 10시 반에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 안 무서울 수가 있단 말인가. 손가락만 한 전투 모기들은 계속 윙윙 날아다니며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서치라이트는 목표 지점을 잘못 지정해 두어 고작 50미터 앞까지만 비추고 있다. 게다가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건 1미터도 안 되게 쌓은 모래주머니 참호가 전부여서, 지금 진우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손에 꼭 쥐고 있는 K―2 소총과 좌우로 30미터 간격을 두고 배치된 다른 경비조들, 그리고 후방의 망루에 설치된 중기관총뿐이다. 바로 옆에서 하늘의 별을 헤며 실실 웃고 있는 그의 사수는 전력 외로 구분해 두는 게 낫다. 차라리 화력이 집중되어 있는 정문 쪽이라면 이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야. 긴장 풀어, 이 새끼야. 안 와, 이제.” 김 상병은 담배까지 꺼내 물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렇습니까?” 진우는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돌리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후우우∼! 연기를 내뿜은 김 상병이 말했다. “당연한 거지. 하여간 이래서 짬밥 없는 새끼들은……. 잘 들어봐. 지금까지 우리 부대가 사살한 좀비가 몇 마리야? 전부 한 2∼3천 되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 돼. 너는 씨발, 상황판도 안 보냐? 그러면 이 근처 반경 10킬로미터 내에 인구는 얼마나 될 것 같으냐?” “인구…… 말입니까?” “그래, 인구, 이 새끼야. 좀비로 변하려고 해도 뭐 밑천이 있어야 변할 것 아니냐. 무덤에서 기어 나오지는 않을 거잖아.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야 좀비든 뭐든 될 수 있지.” “그 인구가 삼천입니까?” “그것보다 많을 리는 없지. 이런 강원도에서도 한참 들어온 깡촌에 누가 그렇게 산다고. 너 여기 올 때 아래 풍경 못 봤어? 집이라고는 없잖아.” 김 상병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진우는 여전히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사흘 전 오후에 이곳으로 차출되어 오던 기억을 되살려 봤다. 태어나서 처음 타봤던 치누크 헬리콥터. 완전군장을 갖춘 소대 하나가 그 속에 전부 들어가는 걸 보고 감동 비슷한 걸 받았었다. 그리고 양쪽 벽에 마주 보고 앉아서 15분 정도 지나니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둥근 창문 모양은 기억이 나지만, 거길 통해 바깥 풍경을 내다본 적은 없다. 그저 바짝 군기가 들어 앞만 보고 있던 것이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전 못 봤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안 된다는 거야, 이 새끼야. 총만 좀 잘 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지. 알겠어?” “잘하겠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진우의 눈은 9시부터 3시 방향까지를 계속 훑고 있다. 사수가 등을 돌려 버렸으니 그가 경계해야 하는 범위가 늘었다. 김 상병은 담배를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삼천이면 이 근방 인구 전부 다라고 봐도 돼. 그러니까 이제 좀비는 더 안 온다. 그 증거로 오늘 오후부터 너 총소리 들은 적 있어? 없지? 크크큭, 말하자면 우리가 여기 주민들을 다 몰살시킨 거야. 크크큭.” 끔찍한 이야기라서 진우의 가슴이 순간 먹먹해진다. 조용히 농사를 짓던 시골 노인들이 갑자기 좀비로 변해서 이곳으로 달려 들어왔고,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했다. 아군의 피해도 발생했다. 어젯밤만 해도 그의 동기 세 명이 야산 방향에서 전투 도중 사망했다. 도대체 왜…… 여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목숨을 내던지며 필사적으로 뛰어와 죽이고 죽었단 말인가. 진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우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건 그의 부대가 사살한 좀비 중 10퍼센트 이상이 그에 의해 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이틀 사이에만 수백의 머리통을 날렸다. 사람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너무 사람처럼 보여서 첫날 전투가 끝나고는 밥도 넘기지 못했다. “야, 박 이병, 재미있는 이야기 없냐? 네 고참 심심하다.” 김 상병은 마음 편하게 빈둥거린다. 진우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여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틀간의 전투에서 이 사람은 한 게 거의 없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아무렇게나 방아쇠만 당겼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좀비들은 다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마음속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어찼다. 좀비들 따위…… 그냥 대충 갈기다 보면 다 쓰러지는 거라고……. 그가 꿩을 잡는 동안 그의 조수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앞으로 나서는 좀비들을 차례로 맞춰 쓰러뜨렸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거다. 진우는 정신을 빼앗기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말입니까? 제가 사회에서 워낙 못 놀아서 말입니다.” “클럽도 안 가봤어? 부비부비한 이야기라도 좀 해봐. 에이, 아니다. 그만둬라. 네 그 말재주로 무슨 여자를 꼬셔봤겠냐. 아, 이놈은 너무 진지해서 가지고 노는 맛이 영 떨어지네.” “잘하겠습니다.” “잘할 것 같지가 않아. 너는, 이 새끼야. 애초에 재능이 없어. 에라, 인심 썼다. 내가 하나 해줄게.” “재미있는 이야기입니까?” “졸라 재미있는 이야기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안 해줬던 거니까 잘 들어봐.” “네, 알겠습니다.” “내가 딱 너 정도 짬밥이었을 때야. 그때 우리 내무반 왕고가 전역 하루 전날이었거든. 근데 술을 좀 사 주고…… 뭐, 그랬어. 소등을 하고 새벽 두 시 정도나 됐을까? 사수는 자빠져 자고 나만 나가서 경계 근무를 서는데, 우리 내무반에서 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쑥 나오는 거야. ‘뭐지, 씨발?’ 하고 깜짝 놀라서 봤더니, 좀 전에 말한 전역할 왕고였어. 이 사람이 곡괭이를 가지고 나와서 연병장 구령대 근처를 존나게 파헤치는 거야. 허, 내가 진짜 얼마나 놀랐겠어.” 실없는 소리라서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에 허술한 구멍이 너무 많다. 진우가 호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자기 이야기에 도취한 김 상병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참 땅을 파더니 한 1미터 아래에서 뭘 막 꺼내는 거야. 야, 생각해 봐. 내일 전역할 병장이 새벽 두 시에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으니, 귀신 영화 저리 가라지. 안 그러냐?” 건성으로 대답을 해줬다. “그렇습니다.” “그렇겠지? 근데 뭐, 이만한 걸 두 덩어리 꺼내 놓더니 막 고민을 하는 거야. 그게 얼만했느냐면…… 한 이이∼따만 한 상자들이었어.” 김 상병은 팔을 쫙 벌려 보였다. 1미터 깊이의 굴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컸다. “한참 고민을 하던 왕고는 다시 그것들을 같은 자리에 파묻고 들어가더라고. 난 그냥 못 본 척하고 아무 말 안 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존나게 중금해지잖아, 도대체 뭐였기에 그 새벽에 그 지랄을 떨었을까 싶어서. 결국엔 호기심을 못 이기고 나도 새벽에 나가서 같은 자리를 파봤어. 너도 나중에 부대로 복귀하면 찾아봐. 구령대 바로 아래인데, 몇 번 파헤쳐진 데라서 흙 색깔이 좀 달라. 알고 보면 딱 그 자리가 보인다고. 하여간 나도 한 1미터를 파 내려가니까, 뭐가 곡괭이 끝에 탁, 걸리는 거야. 야, 그게 뭐였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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