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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유령의 도시 (3) (41/449)


41. 유령의 도시 (3)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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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요? 그리고 언제까지요?”

“내용은 아무거라도 상관없어요. 당신이 좀비로 변해가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여섯 시에 보급 헬리콥터가 오면 그편에 부탁해서 쉘터에 보내줄 테니까, 그때까지는 계속 아무 말이라도 해요. 확신이 안 서면 나도 당신을 거기 못 태웁니다. 원래 생존자 구조는 우리 임무도 아니에요.”

“정말 아무 말이라도 해요? 그쪽도 대답해 줄 건가요?”

“내가 말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소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궁금했던 걸 물어보고 싶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임수정이 입을 열었다.

“왜 군인이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이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니까. 강서 정수장이 주요 기반 시설이라서 보호하기 위해 온 겁니다.”

“여기 말고 다른 곳도 전부 군인들이 출동했나요?”

“말 못 합니다. 몇몇 지역은 군의 지휘하에 있다고만 해두죠.”

“혹시 서울 전체가 괴물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건가요?”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을 이렇게나 모르다니, 당신…… 정말 기절해 있었던 모양이군.”

소위는 쯧,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답답해진 임수정이 재차 물었다.

“저희 집은 건대 부근이에요. 거기도 괴물들의 습격을 받았나요?”

“서울과 경기 전체가 다 그래요. 예외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괜찮아졌고요? 아, 전화! 집에 전화 한 통만 걸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임수정이 애원하자 소위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지금 서울에서 통신망이 회복된 지역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여기나 광진구를 포함한 나머지 대부분은 전화가 되지 않고요.”

“그, 그럼 제 부모님은…….”

“그냥 잘 계시다고 믿으십시오. 저도 우리 가족의 생사를 몰라요.”

충격을 받은 임수정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을 마냥 참고 기다려 줄 수만은 없는지, 소위가 재촉했다.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계속 말을 해요. 좀비로 변할 때 다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한단 말입니다.”

“네…… 하아, 사망자들이 많은가요?”

“사망자는 오히려 적어요. 전부 다 좀비로 변해 버려서 문제지만.”

“후우……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걸 직접 목격하신 적 있어요?”

“네. 어제도 소대원 둘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 말을 하며 소위는 이를 빠득, 갈았다.

“자, 또 물어봐요, 아무 말이라도. 대화가 끊어지게 하지 마요.”

임수정은 이마를 짚으며 힘없이 말했다.

“모르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워서.”

“좋아요, 그럼 내가 묻기로 하죠. 기절은 왜 한 겁니까? 냉장고 속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거고요?”

소위의 질문은 임수정의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괴물과 접촉했다는 것을 말해도 되는 걸까? 작은 베인 상처에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이 사람들은 괴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괴물이 내 다리를 낚아챘다는 것을 이 젊은 군인에게 말해줘도 되는 것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낫다.

임수정은 살짝 이야기를 틀어 민구와 괴물이 정수장을 덮쳤던 새벽의 일을 들려주었다. 오로지 민구만이 괴물과 접촉했고, 그녀는 너무도 무서워 냉장고에 숨어 들어간 다음 기절해 버렸다고 말했다.

“으음…….”

다 듣고 난 소위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좀비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군요. 게다가 만약 당신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냉장고 속에서 나흘 가까이나 질식하지 않고 살아났다고요? 어딘가 허점이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에 서툰 임수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려 할 때, 막사 바깥쪽에서 사이렌과 함께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림픽대로 방면에서 좀비 접근 중! 반복한다! 올림픽대로 방면에서 좀비 접근 중! 규모는 넷! 규모 넷!”

공사를 멈추고 무장을 갖추기 위해 병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우르르르르― 장갑차도 도로의 정면을 막아서기 위해 천천히 차체를 돌렸다. 소위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기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십쇼. 혹시 교전 중에 막사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내밀면 그땐 경고 없이 쏩니다. 우리는 지금 겁에 질려 있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알아들었습니까?”

소위의 말에는 진심이 배어 있었다. 임수정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서로 살아남기를 기도합시다.”

그 말을 남기고 소위는 비가 쏟아지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임수정은 열려 있는 막사의 틈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4차선 도로와 인도까지를 모두 가로막고 2중으로 쳐진 높은 철책 주변에 군인들이 모여든다.

컨테이너를 2층으로 쌓아 만든 간이 진지 위로 올라간 군인들은 사격 자세를 취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긴장 속에서 10여 분이 지났다.

도로 저편에서부터 기분 나쁜 웅성거림이 조금씩 가까워져 온다.

그으으으우우우웅, 그르르르와아아아아아악!

꿈에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특유의 울부짖음이 임수정의 귀를 아프게 울릴 만큼 가까워졌을 때, 앞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왔다!”

그롸아아악!

철책 너머의 도로 위로 수많은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조금 전까지 강력하게만 느껴졌던 수십 명의 군인들이 초라하게 보일 만큼 압도적인 수의 차이다. 괴물들의 괴성이 고막을 찢는 것 같아서 임수정은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군인들의 총에서도 불꽃이 뿜어져 나갔다.

타타타타타타! 투투툭! 투툭! 투투투!

진지 위의 군인들은 아래쪽을 굽어보며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앞서 달려오던 괴물들은 온몸이 벌집이 된 채 날아가거나 고꾸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미 수적인 열세는 화력의 차이로 극복될 수 있을 수준을 넘어선 상태였다.

탄창을 교체하는 짧은 순간 동안에도 쓰러진 괴물들의 시체를 밟고 뛰어온 뒷줄의 괴물들 때문에 철책과의 거리는 좁혀졌다.

괴물들은 순식간에 첫 번째 철책에 바짝 붙어 철조망을 밀어 댔다.

날카로운 가시에 얼굴과 팔이 뜯겨 나가면서도 괴물들은 극렬하게 철조망을 흔들었다. 투투툭! 타타타타! 총격을 받은 괴물들이 쓰러지지만, 그 과정에서 철책 역시 엉망으로 파손되었다.

구멍이 뚫리고 무너져 버린 철책을 밀어 치며 괴물들이 달려온다. 첫 번째 철책과 두 번째 철책의 간격은 40미터. 이 거리 내에서 모두 진압하지 못하면 그 뒤에는 저것들과 맨몸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수류탄 투척!”

대여섯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폭발한 수류탄은 흙먼지와 살덩이를 가득 날리면서 전방의 시야를 온통 뿌옇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괴물들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수류탄 폭발로 인해 멍해진 귀를 뚫고 똑똑히 들려올 만큼 아직도 그들의 괴성이 크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쏴! 머리를 노려!”

총성 때문에 제대로 명령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위는 열심히 외쳤다.

병사들은 모두 그의 독려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다들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툭! 투툭! 거리는 화약 냄새와 괴물들의 비명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롸아악!

마침내 두 번째 철책에도 괴물들이 달라붙어 버렸다. 철조망이 앞뒤로 거세게 흔들리며 웅웅, 울리는 소리를 낸다.

컨테이너 위에서 필사적으로 쏴대는 탄환이 괴물과 철조망을 동시에 벌집으로 만들었다. 결국 두 번째 철책마저 무너져 내렸다.

그롸악! 살아남은 괴물들이 포화를 헤치며 앞으로 달려 나온다. 그 모습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 임수정의 가슴은 불안함과 공포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투투투투툭! 타타타타타타!

컨테이너에 달라붙어 뛰어오르려는 괴물들을 향해 무릎을 꿇은 병사들이 일제히 발포했다.

뇌수와 끈적거리는 핏덩이가 하늘 위로 마구 튀어 오른다. 끝까지 살아남아 컨테이너 사이를 돌파하려던 대여섯 마리의 놈들을 장갑차의 기관총이 처리함으로써, 숨이 멎을 것 같던 좀비들의 습격은 끝을 맺었다.

“발포 중지! 상황 종료! 상황 종료!”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군인 하나가 컨테이너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어서 임수정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민구가 괴물 둘의 머리통을 박살냈던 새벽은 이 전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주 짧은, 단 몇 분 만에 너무나 많은 괴물들이 다양하고 끔찍한 형태로 죽어갔다.

거리는 엉망으로 훼손된 괴물들의 시체로 가득 덮여 있었다. 잘려 나간 머리와 가슴, 팔다리, 내장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뒹군다.

“우웁!”

구역질이 올라와 임수정은 입을 가렸다. 숨을 쉬기가 힘이 들어 가슴을 꽉 누르며 산소를 마시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아, 후우∼”

“그렇게 하고 있으면 불안하니까 말을 해요. 최소한 고개라도 들든가.”

어느새 돌아와 막사 문을 짚고 선 소위가 말했다.

“많이 놀랐죠?”

소위가 물었다. 임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살면서 저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소위가 한숨을 쉬며 수통의 물을 마셨다.

“이제 다 죽은 건가요?”

“뭐가 다 죽어요? 좀비들?”

“네. 꽤 많이 죽은 것 같던데, 저게 전부인가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임수정을 잠시 바라보던 소위가 힘없이 웃었다.

“후후후, 저건 그냥 규모 넷짜리예요. 서울에만 규모 7짜리가 세 개가 넘습니다. 규모 6이나 5는 부지기수고. 그런 게 우리 주변에 오지 않아서 그나마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거고요.”

“규모 넷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4디지트, 말 그대로 네 자리 숫자. 천 단위라는 말이에요. 젠장, 2천 마리 정도를 상대하는 데 철책이 저렇게 다 작살나 버리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똑같은 철책을 도대체 몇 번을 다시 세우는 거냔 말이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애초에 작전이 너무…….”

소위가 투덜대며 뒤에 늘어놓는 혼잣말은 임수정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곱 자리 숫자가 세 개…… 불과 며칠 만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임수정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흐으윽! 흐윽! 머리를 들라고 소위가 명령했지만, 임수정은 계속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살던 나라는 이제 멸망한 것이다.

그녀가 받았을 충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한동안 임수정을 울도록 내버려 두던 소위가 철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웁시다. 보고 있는 사람까지 지치니까……. 그렇게 혼자서 이 세상 슬픔을 다 짊어진 것처럼 굴지 말아요. 우리는 여기 남아서 내일도, 모레도 또 계속 저 꼴을 마주해야 한단 말입니다.”

소위의 말에 놀란 임수정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내일도 또 이런 전투를 벌이겠다고요? 고작 몇십 명을 데리고서? 너무 무모해요. 봤잖아요, 저쪽은 수천이에요.”

“허, 나한테 숫자를 가르치는 겁니까? 적이 몇이나 되는지는 제가 더 잘 압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왜 지원을 요청하지 않느냐는 말이지. 이 숫자만으로는 그저 운이 좋기를 기대하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저 어린 군인들의 목숨이 당신 결정에 달려 있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

“내 결정이 아닙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럼 누구의?”

소위는 자신의 옷깃에 붙은 다이아몬드 모양 계급장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모양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쪽에서 내려온 계획대로라면 지금 내 지휘를 받고 있어야 할 사병은 120명이 넘어야 해요. 예비군을 소집했으니 그들을 편제 안에 흡수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봐요. 서류 속에는 분명히 포함된 예비군들이 지금 어떤 꼴인지.”

그렇게 말하며 소위는 처참하게 죽어 자빠진 괴물들의 산을 가리켰다. 소형 불도저가 산산조각 난 시체들을 철책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중이었다. 임수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건물 안쪽으로 후퇴하세요. 옥상에만 계셔도 여기보다는 몇 배나 안전할 거예요. 방금 전보다 조금만 더 큰 규모의 괴물들이 와도 지금의 병력으로는…….”

“이봐요!”

소위가 임수정의 말을 끊었다.

“그게 걱정해 주는 거라는 건 압니다. 내 누이가 지금 내 꼴을 봤어도 아마 비슷한 충고를 했을 테죠. 하지만 내가 받은 명령은 여기 T자형 도로를 확보한 뒤에 철책을 치고 사수하라는 거지, 정수장 건물에서의 농성이 아닙니다. 일단 저 안에 들어가 버리면 헬리콥터의 보급 지원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요. 탄약도, 식량도 다 거기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오로지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조언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알지도 못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그저…….”

소위는 잠시 말을 끊고 시계를 보았다.

“그저 30분 뒤에 오는 헬리콥터가 당신을 태워줄까에 대해서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요. 그리고 쉘터에 도착하면 이곳에 대해서는 싹 잊어버리세요. 정 내키면 가끔 기도나 해주든가. 그게 당신이 지금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어설픈 충고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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