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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유령의 도시 (2) (40/449)


40. 유령의 도시 (2)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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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뭘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던 중이었는데……. 자, 이리 와, 제니야.”

남은 음식들을 배분하고 있던 유빈이 제니에게 손짓을 했다.

“에……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들부터 빨리 먹어 치워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빵이나 핫 바 같은 게 우선이야. 삼각김밥도 하나 남았네. 그런 걸 먼저 먹고 그다음에 라면이나 통조림으로 넘어가자.”
“음료수는 몇 개나 남았어?”

제니의 근처에 앉으며 보안관이 물었다.

“우리가 어제 역에서 담은 게 50개 정도고, 지금 남은 건 서른한 개. 미안하지만 이제 비가 그칠 때까지 음료수는 아껴서 먹어야 할 것 같아. 다행히 아직 이렇게 깨끗한 물이 남았으니까 그걸 마시자.”

페트병에 담아 온 물을 나눠 주고서 유빈은 남아 있던 마지막 삼각김밥을 자기 몫으로 가져갔다. 어제저녁 보안관이 먹었을 때에도 이미 약간 쉰 것 같다고 했으니, 지금쯤은 꽤나 아슬아슬할 게 분명했다.

“난 빵은 아까 많이 먹어서 별로고, 지금은 라면 부숴 먹고 싶은데…….”

신입이 볼멘소리를 하자 유빈이 빵 하나와 라면 하나를 동시에 내밀었다.

“자, 어차피 이 두 개는 네 몫이니까 맘대로 해. 이 중에서 아무거나 좋은 걸 먹고 내일 저녁까지만 버텨줘. 대신에 나중에 빵이 상해도 그냥 그걸 먹는 거야.”

양손에 각각 빵과 라면 봉지를 쥐고서 잠시 고민을 하던 신입은 결국 인상을 찌푸리며 빵 봉지를 뜯었다. 모두에게 내일 아침 식사까지를 배분한 뒤, 유빈은 하나 남은 핫 바를 보안관에게 줬다.

“뭐야? 쳇, 특별대우야? 이런 상황에서도 차별하고 싶냐, 너희는?”

신입이 툴툴거리자 보안관도 됐다고 말하며 핫 바를 밀어냈다.

“얘는 어제저녁부터 계속해서 저걸 휘둘렀어.”

한쪽 구석에 눕혀둔 해머를 가리키며 유빈이 말했다.

“손잡이 무게까지 더하면 4킬로그램이 넘어. 저걸 하루 종일 그냥 들고만 다녀도 너나 나는 아마 녹초가 될걸? 보안관은 우리보다 더 먹을 자격이 있어. 아니, 먹어야 돼.”

“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쪽팔려.”

보안관이 손을 들어 유빈이의 입을 막으려 든다. 유빈은 그 손을 피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공평한 거야.”

“야, 암만 그래도 나만 따로 뭘 더 먹는다는 건…….”

계속 늘어질 수도 있던 논쟁을 종결시킨 건 제니였다. 제니가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말했다.

“아, 저도 보안관 오빠가 다른 사람보다 더 먹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하하, 이유는?”

삼식이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니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사람이 더 먹어야 하니까요.”

빵 봉지를 뜯던 보안관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임수정은 계속 비를 맞으며 걸었다. 수조들이 길게 늘어선 진입로를 지나쳐 정문 앞에 다다랐다. 그날 민구가 들이받았던 정문은 아예 통째로 들려 나간 채였고, 그의 자동차도 어디론가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문과 정면으로 마주한 도로 저 너머에는 높은 철책이 세워져 있다. 그녀가 출근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저 자리에 없던 물건이다.

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녀를 이곳까지 이끌었던 소리의 주체가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이다.

판초우의를 입은 군인들이 강서 정수장을 등진 채 서서 50여 미터 앞쪽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중이었다.

한쪽에서는 앞쪽에 특수 장비를 매단 장갑차가 멈춰 서 있는 차들을 길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부르르릉― 장갑차가 천천히 지나갈 때마다 엉망진창으로 꽉 막혀 있던 도로가 조금씩 트여갔다.

그녀가 들었던 쿵, 쿵! 울리는 소리는 일단의 군인들이 아스팔트 위에 긴 쇠말뚝을 박으며 발생한 소음이었던 모양이다. 이미 단단히 세워진 말뚝 사이에는 뾰족뾰족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왜 군인이 서울에 저런 걸…….”

임수정은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있던 그 짧은 사이에 설마 계엄령이라도 선포되었던 것일까?

모든 게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그녀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이런 상황에서 총을 든 군인만큼 든든한 건 또 없을 것이다.

괴물들이 다시 들이닥친다 해도 이제는 안전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임수정은 두 손을 입에 모아 군인들을 불렀다.

“군인 아저씨! 군인 아저씨이!”

군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마도 장갑차 엔진 음과 빗소리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리라.

다시 한 번 크게 외쳐 보아도 마찬가지다. 하는 수 없이 임수정은 그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열 걸음쯤 떼었을까, 총을 들고 서 있던 보초병이 뒤를 돌아본다. 임수정은 생각했다. 아, 다행이다. 이제야 봐주는구나…….

“히에엑!”

임수정과 눈이 마주친 보초병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총을 고쳐 쥐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툭!

세 발의 탄환은 임수정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스팔트 바닥을 때리고 지나갔다.

“꺄아아악!”

임수정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엎어졌다.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왜 발포했나?”

소위 계급장을 단 남자가 총소리와 비명을 듣고 뛰어와서 얼이 반쯤 나간 보초병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어깨를 붙잡힌 보초병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여, 여섯 시 방향에 좀비입니다!”

“뭐?”

소위가 임수정을 돌아보았다. 임수정은 여전히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 엎드려서 두 손을 들고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중이었다.

“쏘지 마세요! 쏘지 마세요! 제발!”

임수정의 목소리를 들은 소위는 보초병의 헬멧을 후려치며 버럭 화를 냈다.

“야이, 미친 새끼야! 사람이었잖아! 발포하기 전에 구두 경고로 확인하라고 몇 번 이야기했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어서…….”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어제도 강남에서…… 어휴, 말을 말자.”

“잘하겠습니다!”

“똑바로 해!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너 군법회의에 회부할 거야, 이 꼴통 같은 새끼!”

소위는 보초병의 머리통을 한 번 더 후려갈긴 후, 임수정에게 뛰어오며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일어나십시오.”

“네? 일어나도 돼요?”

임수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일어나십시오. 적이라 오인해서 사격한 모양입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근데…….”

부하들이 임수정을 부축해 일으키는 동안 소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임수정은 혼자 서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힘이 없던 다리는 조금 전 총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오시는 겁니까? 이 주변에 바리케이드 설치가 미비한 곳은 이쪽 한 방향뿐인데.”

소위의 말투에서 친절함이 조금씩 엷어진다. 보면 볼수록 수상쩍은 여자다.

탱크톱과 짧은 핫팬츠에 커다란 남자 재킷을 얻어 걸치고 있는 모양도 그렇고, 퀭한 얼굴은 사흘을 굶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게다가 맨발이다.

이런 외양의 여자가 퍼붓는 빗속에서 비척거리며 걸어왔으니 깜짝 놀라 저절로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 바로 여기 정수장에서 왔어요.”

총소리를 듣고 놀랐을 텐데, 여자는 의외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임수정의 대답을 들은 소위의 얼굴이 곁에 선 상병에게 홱 돌아간다. 눈이 똥그래진 상병이 변명을 했다.

“아, 아닙니다, 소대장님. 어제 수색했을 때, 분명히 생존자가 없었습니다!”

“근데 여기 있잖아! 이 사람은 뭔데?”

“모, 모르겠습니다! 저희 분대가 방마다 싹 다 뒤져 봤지만, 시체들밖에는……. 아가씨! 저희가 생존자 나오라고 외칠 때, 왜 대답 안 하고 피해 다녔습니까?”

상병은 오히려 임수정을 다그쳤다. 지친 임수정은 배 속에서 힘을 끌어모아 대답했다.

“전 지하 식당 냉장고 안에 갇혀 있었어요. 기절을 한 상태여서 아무것도 못 들었고요.”

그때, 다른 병사가 임수정의 종아리에서 가늘게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외상입니다! 외상 발견! 외상 발견! 소대장님, 물러나십시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임수정을 부축하고 있던 군인들은 그녀를 놓아버리고 다급하게 물러섰다.

마주 보고 서서 질문을 던지던 소위도 깜짝 놀라며 뒤로 서너 발짝을 뛰었다. 갑자기 의지할 곳을 잃은 임수정은 빗물이 가득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버렸다.

“왜, 왜 이러세요?”

어리둥절해진 임수정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바짝 긴장한 채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고개 들지 마! 엎드려! 엎드려!”

“네?”

“엎드리라고요! 말 못 알아들어요?”

여러 개의 검은 총구들이 눈앞에 겨눠진 채 위협적으로 흔들거린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던 일이다.

분한 마음이 묻는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하지만 임수정은 그 말을 삼켜 버리고 고개를 저으며 엎드렸다. 땅에 고인 빗물이 얼굴을 적셨다.

“두 팔 머리 위로 깍지 껴! 다리 벌려!”

명령을 따랐다. 소란이 일자 점점 더 많은 인원이 주변에 몰려든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굴욕적이어서 눈물이 솟은 임수정은 흐느끼며 소리를 질렀다.

“내 막내 동생도 군대에 있어요! 중위예요!”

걔가 이런 꼴을 본다면 너희 모두 단단히 혼이 날 거야! 막내가 나를 얼마나 따랐는데……. 이 새파란 것들아! 임수정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이 의외로 꽤나 효과가 있었다.

“대답하십시오. 그 다리의 상처, 어디서 났습니까?”

존댓말로 바꾼 소위가 물었다.

“상처? 대체 무슨 상처를 말하는 거예요?”

“종아리의 상처! 물렸습니까?”

임수정은 자신의 종아리에 상처가 났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물리다니, 누구한테요? 그리고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당신 목숨이 걸린 문제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목숨도! 대답 못 하면 쏠 수도 있습니다.”

실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임수정은 필사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냉장고를 기어 나오다가 그랬을 수도 있고, 괴물이 낚아채는 과정에서 생채기가 났을 수도 있다. 문득 자신이 떨어뜨렸던 유리병이 산산이 깨지던 게 생각났다. 어쩌면 그 조각이?

“베인 거예요! 유리 조각이 스쳐서!”

“사실입니까?”

“네! 네!”

“확인해 봐.”

소위가 명령을 내리자 병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다리를 들고 상처를 들여다보는 병사 역시 어지간히 긴장한 상태였다.

“아얏!”

병사가 상처를 벌리는 바람에 임수정은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이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주 날카로운 흉기가 그은 상처입니다.”

그녀의 다리를 놓아준 병사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소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일어나세요. 우리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임수정은 그 지시에 따랐다. 무릎을 꿇고 앉은 임수정에게 소위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지난 며칠간 안 물렸다던 사람들이 변하는 꼴을 너무 많이 봐서 이러는 겁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두 살 위 누나가 있습니다.”

임수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변한다는 건 아마 그 괴물들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구나, 그것들에게 물리면 괴물로……. 그런데 지난 며칠이라는 말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저 괴물들이 난리를 쳤다는 거지? 공사 재개를 명령한 소위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임수정을 데리고 임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자, 드세요.”

국방색 모포를 임수정의 어깨에 덮어준 소위가 종이 팩에 든 주스를 권했다. 여전히 목은 말랐지만, 받아 마시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기분이 상한 건 알지만, 계속 말을 해요. 원래 규정대로라면 이 막사에 들어올 수도 없는 겁니다.”

맞은편 야전침대에 걸터앉은 소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전히 그의 오른손은 권총집 주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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