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위험한 잠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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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위험한 잠입 (7)
2021.10.02.
“그게 무슨…… 너희, 일행이라며?”
어이가 없어진 보안관이 여자애를 돌아보며 물었다. 겁에 질린 여자애는 말없이 고개만 젓는다.
문 안쪽에 숨은 쥐새끼 같은 놈들과 이 남매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러면 저놈들이 왜 도와주러 내려오지 않은 건지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보안관은 복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들아! 문 안 열면 때려 부숴 버리고 갈 거야! 나한테 해머 있는 거 알지? 셋 센다! 하나!”
고개를 내밀어 골목을 살피던 삼식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젠장. 20미터도 안 남았어.”
유빈이 달려가 제비를 넘겨받고 해머를 건넸다. 좁은 계단 사이에 낀 여자애는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여자애가 발작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진 유빈이는 자유로운 왼손을 내밀어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는 그 애의 머리를 조심조심 쓸어줬다.
소리를 죽여 울음을 삼키던 여자애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두 손을 내밀어 유빈의 옷자락을 꼭 쥐고 바들거린다. 살려 달라는 백 마디 말보다, 고맙다는 천 마디 말보다 더 절실하게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다.
“셋! 그래, 같이 죽어보자! 이 개새끼들아!”
그러는 동안 카운트를 끝낸 보안관은 해머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문 한가운데를 내리찍었다.
콰쾅! 계단 전체가 흔들거릴 만큼 강력한 진동이다. 철제문이 움푹 찌그러지고, 달려 있던 조그만 볼록 렌즈가 박살 났다.
“흐억!”
안쪽에서 깜짝 놀라는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누군가 렌즈를 통해 바깥쪽을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봤지? 이번엔 손잡이다!”
렌즈 구멍에 눈을 대고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지른 보안관이 해머를 또 들어 올렸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열게요! 부수지 말아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곧바로 딸깍! 문의 손잡이가 돌아갔다.
혹시 마음이 바뀔까 두려웠던 보안관은 번개같이 문을 당겨 벌컥 열어젖히고 뛰어 들어갔다. 네 명이나 안에 있었으면서…… 쏘아보는 보안관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들어와! 빨리!”
여자애의 등을 떠밀어 앞세우고 유빈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가장 뒤에 섰던 삼식이가 삽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 씨발! 이거 어쩌지?”
세 마리의 괴물이 계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다가 차례로 삽에 맞아 밀려난다. 그롸아악! 하지만 놈들은 포기를 몰랐다.
“삽을 던져 버려!”
보안관이 스패너를 꺼내 들고 급하게 몸을 날리며 외쳤다. 어차피 저렇게 자루가 긴 무기는 이런 좁은 계단에서 휘두를 수도 없다. 투창처럼 내던진 삽에 찢겨 괴물 하나의 눈알이 날아간다.
“올라가!”
보안관은 삼식이를 번쩍 끌어 올리며 삼식이의 허리춤에 끼워져 있던, 돌 깨는 망치를 꺼냈다. 오른손엔 망치, 왼손엔 스패너. 이도류다.
그롸아악!
괴물 하나가 계단을 네 발로 뛰어올라 부웅, 몸을 날린다. 계단의 폭이 넓지 않은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보안관은 스패너를 밖으로 휘둘러 괴물의 턱을 갈겼다. 빠쾅! 스패너에 맞은 괴물의 머리통이 계단 벽을 찧으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보안관은 잇달아 오른손의 망치로 괴물의 옆머리를 때렸다.
으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 한 번 더 망치를 휘둘렀다. 이번엔 반대쪽 턱을 돌려 쳤다.
콱! 턱이 빠져 버린 괴물이 비틀거릴 때, 보안관이 커다란 발을 들어 괴물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우당탕! 괴물은 제멋대로 나뒹굴며 계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지금이야!”
유빈과 삼식의 애타는 부름이 들린다. 뒤따르던 괴물들이 한데 엉켜 머뭇거리는 사이, 보안관은 재빠르게 뒷걸음질을 쳐서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닫아!”
유빈이 온몸의 힘을 다해 문을 닫는데, 쫓아온 괴물의 팔목이 문틈으로 쑤욱 들어온다.
콰작! 바깥쪽으로 꺾여 나간 괴물의 팔목이 문틈에 끼어버렸다. 그 사이로 또 다른 손가락이 문을 잡고 늘어졌다.
“으아!”
유빈은 손잡이를 꽉 잡은 채 기합 소리와 함께 힘껏 당겼다. 으직! 으직! 부러진 괴물의 팔목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이익! 유빈이 씨름을 하는 동안 삼식이는 괴물의 부러진 팔목을 비틀어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보탰다.
“이…… 개새끼들, 힘이 왜 이렇게 세?”
이를 악문 유빈의 턱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렸다. 겨우 부러진 팔뚝 하나와 으스러진 손가락 몇 개만 버티고 있을 뿐인데, 두 사람이 힘을 다해도 문을 완전히 닫기가 어려웠다.
“내가 할게, 삼식아! 손, 손 조심해!”
보안관이 달려들어 망치로 괴물의 팔을 내려쳤다. 오른쪽으로 부러져 있던 팔이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꺾인다.
빠직! 빠직! 인상을 잔뜩 찌푸린 보안관이 계속 망치를 휘두르자 괴물의 팔이 하얀 뼈를 드러내며 반쯤 잘려 나갔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유빈과 삼식이가 함께 문을 당겼다.
콰앙! 마침내 문이 닫혔다. 질긴 가죽 때문에 대롱거리며 매달려있던 괴물의 손이 덜렁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찰칵! 철컥! 손잡이와 보조키까지 모두 잠그고 난 뒤, 유빈과 삼식이는 그대로 쓰러져 문에 기대앉았다. 밖에서 문을 긁고 두드리는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등에 닿은 쇠를 타고 울렸다.
제기랄, 또 갇혀 버렸다.
“허억, 허억…….”
허리를 굽힌 채 한숨을 몰아쉬던 보안관이 제비와 여자애를 돌아봤다.
제비는 여전히 의식이 없고, 여자애는 벌벌 떠는 게 멀리서도 느껴진다. 문을 잠갔던 네 명의 다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구석에 뭉쳐 서 있다.
“괜찮아?”
보안관이 물었다. 여자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흐으윽, 네, 흐으윽, 감사……합니다.”
하긴 어지간히 놀랐을 테지. 젠장, 주먹 한 번 잘못 놀렸다가 이게 무슨 짓이람?
보안관은 뒹굴고 있는 팔목을 집어 들고 창가로 걸어가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잠시 창문이 열린 동안 바깥의 비명과 고함 소리가 폭풍처럼 커진다.
지옥 같은 풍경을 보고 있기 싫어서 보안관은 서둘러 이중창문을 모두 닫았다. 사람 말 좀 들어줬으면 이런 꼴 안 봐도 되는 거였잖아. 속에서 욕설이 끓어 올라왔다.
“끄으응∼!”
제비가 그제야 신음을 토하며 몸을 뒤척였다. 젠장, 이왕 깰 거면 조금 빨리 깨어나서 제 발로 좀 도망가 줄 것이지.
보안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유빈과 삼식이의 생각은 달랐다. 보안관의 펀치를 턱에 맞고 이렇게 금방 정신을 차리다니, 타고난 맷집이 있는 사람이다.
“여기가 어디…… 응? 응? 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제비는 깜짝 놀라 사방을 더듬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옆에 앉은 여자애를 보고서야 겨우 안심이 되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쉰다. 여동생 사랑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어이, 자네들.”
일어나 앉아 기름 바른 머리를 쓸어 넘기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제비가 입을 열었다.
닫힌 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꼴이나, 다짜고짜 반말지거리를 하는 걸 보니 방귀 좀 뀌고 살았던 모양이다. 부어오른 턱이 아픈지 제비는 담배를 물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몸 놀리는 거 보아하니 뭐 짐작은 하겠네만, 뉘 집 밥 먹는 식구인가?”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등신 같은 놈은? 보안관의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조금 전 죽일 뻔한 죄가 있어서 한 번 꾹 참았다. 그런 보안관의 표정이 안 보이는지 제비는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다시 물었다.
“응? 어디 소속이었어? 누구 밑에서 일해?”
“대흥 인력 파견 회사…… 조국남 작업반장님…….”
제비와 눈을 마주친 삼식이가 순순히 털어놓는다. 유빈이 그런 삼식이의 허벅지를 퍽, 쳐서 입을 다물게 했다. 제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흥이라…… 처음 들어보는데……. 서울에 만배파와 흥선이파만 있는 게 아니었나 보군. 여튼 부탁 좀 하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여기에서 두 블록만 걸어가면 거기 내 차가 있네. 자네들이 나랑 얘, 이렇게 둘만 거기까지 호위해 주게. 차 안에 타는 순간, 내가 아예 지갑째 넘겨줌세. 봐, 전부 오만 원짜리야.”
제비는 옆에 놓아두었던 얄팍한 일수 가방에서 두툼한 지갑을 꺼내 펴 보였다. 노란색 지폐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보안관이 콧방귀를 뀌었다. 돈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제비는 삼식이를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걸로 모자라다면…… 어이, 자네. 거기, 훤칠하게 키 큰 친구! 출세시켜 줄까? 말만 하게. 연예인 하고 싶지? 한 번만 힘 좀 빌려주면 내 은혜는 잊지 않음세. 아, 그래. 이 시계는 어때? 오데마피게, 삼천짜리야. 가져!”
“으흥, 저 아저씨도 사기꾼이었구나.”
연예인 시켜준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삼식이는 곁에 앉은 유빈에게만 들릴 정도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더 듣기 귀찮아진 보안관이 제비의 말을 끊었다.
“어이, 아저씨. 무슨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암만 좋은 차를 가지고 있어봐야 이젠 못 달려. 저 밖에 도로란 도로는 다 꽉꽉 막혔어.”
“이걸로 뉴스를 보니까 수복 작업이 진행 중이라던데…… 아직도 길이 다 안 뚫렸나?”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제비가 묻는다. 아마 그도 DMB를 본 모양이다.
“그런 건 모르겠고, 이 주변엔 차 타고 아무 데도 못 간다고 보면 돼. 확실한 이야기야. 조금 전까지 내 눈으로 다 보고 왔으니까.”
“봤다니? 어디에 있으면 그런 게 보여? 아, 그러고 보니 자네들은 이 동네에 숨어 있던 게 아니지?”
“궁금한 게 많은 아저씨네.”
보안관은 세 개의 쇼핑백 중 하나를 뒤적거려 음료수를 꺼내 제비와 여자애에게 건넨 뒤, 자기도 하나를 따 마셨다.
진땀을 흘렸으니 목도 어지간히 마르다. 가만히 캔을 쥐고만 있는 여자애와 달리 급하게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제비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걸로 턱을 돌렸던 빚은 갚았다고. 문을 잠그고 있던 네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았다. 저것들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까.
“저기 오른쪽에 있는 경전철역 꼭대기에 가면 사방이 다 보여.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한 2킬로미터 떨어진 데에서 왔고.”
보안관이 숨김없이 이야기를 해주자 제비는 침을 꿀떡 삼키며 관심을 보였다.
“2킬로미터? 거긴 뭐가 있어? 여기보다 안전한가? 자네들 일행은 몇이나 되나?”
“다 똑같아. 이제 안전한 데라는 건 없어. 그냥 숨어서 숨만 쉬는 거지.”
“하지만 2킬로미터라도 움직였다면서? 그러면 그 이상의 거리도 가능한 거 아닌가? 어떻게든 이 난리 통만 벗어나게 해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도 너무 배가 고파서 목숨 걸어두고 한 짓이라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유빈과 삼식이는 말없이 문에 기대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탕 땀을 뺀 덕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어질어질하다.
그러고 보니 기껏 음식을 손에 넣었는데 아직 맛도 제대로 못 봤다는 걸 깨달았다. 유빈은 쇼핑백에 손을 뻗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꺼냈다.
“자, 삼식아. 크림빵이다.”
삼식이가 넘겨받아 맛있게 먹는다. 유빈이 두 번째로 집은 것은 초코 빵. 평소에 즐기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눈엔 천상의 만찬처럼 비쳐졌다. 정신없이 입에 쑤셔 넣고 씹던 유빈의 눈이 제비와 마주쳤다.
“아저씨도 배고파요? 빵 하나 줄까요?”
유빈이 물었다. 제비는 고개를 저었다.
“먹을 건 뭐…… 살림하는 집이니 대충 있더라고. 밥도 있고, 라면이니, 햄이니…… 그래서 배는 크게 안 고파. 오히려 물이 문제였어. 둘째 날부터 딱 끊기니까 미치겠더구만.”
유빈은 어둑어둑해진 집 안을 둘러봤다. 거실 건너편 벽에는 19리터짜리 생수 통이 반 이상 찬 냉온수기까지 있다. 저래놓고 물이 부족하다니, 무슨 소리지?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 다들 비슷했을 텐데, 왜 그렇게 난리를 치고 편의점에를 뛰어 들어간 거였지?”
입가에 크림을 잔뜩 묻힌 삼식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이 개새끼는 똑같이 그 난리 통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존나게 잘생겼다.
“그건 그냥 겁에 질려서 그랬겠지. 언제 또 음식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말이야.”
유빈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삼식이는 다시 빵 한 봉지를 더 뜯어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아, 젠장. 안 좋아. 이제 슬슬 해가 지려 하고 있어.”
입안에 삼각김밥을 가득 물고 창문 틈으로 어둑해진 밖을 내다보며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삼각김밥 먹을 만해?”
삼식이가 물었다.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쉰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엄청 맛있다. 근데 삼식아.”
“응?”
“그거 먹고 여기 서서 아까처럼 망 좀 봐봐. 난 아무리 열심히 봐도 쟤들 얼굴 구분 못 하겠어.”
“그러지 뭐. 오줌만 좀 누고. 저기 아저씨, 화장실 어디예요?”
빵 두 개를 순식간에 해치운 삼식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이미 실내는 꽤나 어두워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잠시 후 삼식이의 혼잣말이 들린다.
“아이 씨, 깜깜해. 어억,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