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위험한 잠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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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위험한 잠입 (6)
2021.10.01.
“으와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깜짝 놀란 세 친구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서로에게 등을 대고 바짝 붙어 섰다. 무기를 고쳐 쥐느라 툭, 떨어뜨린 쇼핑백에서 참치 캔 하나가 또르르르 굴러 나왔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창문 안쪽에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지르는 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나같이 초췌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구조대예요? 구조대예요?”
“구조하러 왔어요?”
“아이구, 하느님! 구조대다! 구조대가 왔다!”
“여기 먼저 구해줘요! 애가 있어요!”
어이가 없어진 보안관은 자신의 곁에 붙어 선 두 친구의 몰골을 바라보았다.
좀비의 피와 체액으로 잔뜩 얼룩이 지고 구멍이 뚫린 꼬질꼬질한 면 티, 무릎이 다 찢어진 나달나달한 청바지. 제대로 씻지 못해서 머리카락은 떡져 있고, 얼굴과 목엔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게다가 무기라고 쥐고 있는 건 망치와 삽자루다. 야이, 멍청이들아! 이 세상에 이런 구조대가 있을 리 없잖아!
“우리 구조대 아니에요!”
유빈이가 다급하게 외치며 쇼핑백을 다시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건 반갑지만, 지금은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번화가 반대편으로 새로운 괴물 그룹이 걸어 들어오기까지 채 5분도 남지 않았다.
“내일 또 올게요! 내일 이야기해요!”
보안관과 삼식이도 짐을 챙기면서 크게 외쳤다. 그러나 소란스러워진 번화가 골목은 그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삼켜 버리고 생존자들의 아우성만 뱉어냈다.
“야이, 나쁜 새끼들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어떡해? 구조를 하라고!”
“아저씨! 여기 음식 없어요! 어제부터 굶었어요!”
“좀비가 없다! 좀비가 다 사라졌다!”
“저 사람들 따라가면 된대! 여보, 빨리 나와!”
씨발, 남의 말 좀 들으라고! 대화를 포기해 버린 세 친구는 시끄럽게 귀를 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피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생존자들이 그저 입으로만 떠들어 대는 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
개중에는 행동이 말보다 빠른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더 많았다. 상가 건물의 문들이 열리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편의점을 비롯한 여러 가게로 먹을 것을 찾아 뛰어 들어갔다.
“이, 이 동네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살았나? 어떤 데는 한 집에서 열댓 명도 넘게 나오는 것 같은데?”
혼란스러워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삼식이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유빈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길거리에서 난리가 나니까 무작정 남의 뒤를 따라 달아난 사람들이겠지. 아, 씨발. 근데 이거 어떡하지? 이 사람들 다 큰일 나겠네.”
“빨리 돌아가요! 몇 분 뒤면 다시 좀비들이 온다고요!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요!”
보안관은 목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목청을 돋워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리를 최대한으로 키웠지만, 효과가 없다. 음료수와 통조림을 줍느라 흥분한 사람들은 보안관이 아무리 악을 써도 돌아봐 주지 않았다.
팍―! 세 친구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누군가의 손이 유빈의 쇼핑백에서 음식을 훔쳐 간다.
“살려주세요. 이거 저 주세요, 제발. 애가 굶어요. 선생님, 제발!”
얼굴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가 삼식이의 쇼핑백을 잡고 울먹이며 애원을 한다.
삼식이는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쇼핑백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버렸다. 여자는 음식물이 든 쇼핑백을 품 안에 넣자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뛰어간다. 고맙다는 인사는 아마 마음속으로만 했을 것이다.
쨍강! 김밥 가게의 유리가 깨어지고, 햄버거 집 안에서는 먹을 것을 사이에 둔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개판이다.
“저기! 저기로 가면 더 큰 가게가 있어!”
어떤 과감한 놈들은 경쟁을 피해 보려고 멀리 번화가 반대편의 슈퍼를 향해 뛰어가기도 했다.
“돌아와! 이 미친 새끼야! 죽는다고!”
보안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태웠다.
“몇 분이야?”
유빈이 사람들을 돌려세우면서 물었다. 시계를 들여다본 삼식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십칠 분!”
이제 1분 후면 반대편 코너에서 오렌지 호프 아줌마를 위시한 괴물들의 그룹이 몰려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뒤늦게 문을 열고 거리로 뛰어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유빈은 최후 수단을 써보기로 했다.
“좀비다! 으아악! 좀비다!”
골목 한쪽을 가리키며 있는 힘껏 구라를 쳐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원하던 대로 도망쳐 주지 않았다.
연기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이미 소란이 너무 커져 버려서 특별히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한 사람의 목소리 같은 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얼마나 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급하게 빵을 뜯어 캑캑거리며 입안에 구겨 넣느라고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닥쳐오고 있는데도 주위를 돌아볼 여유 따위가 없었다.
“좀비라고! 저기 좀비 온단 말이야!”
울먹이며 소리를 질러 대는 유빈의 팔을 보안관이 잡아끌었다.
“그냥 가! 이 새끼들 때문에 우리까지 죽겠어!”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뛰어! 네가 다 못 구해, 새끼야!”
그 말이 맞다. 유빈은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가
장 늦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삼식이의 팔을 누군가가 콱 움켜쥐고 당겼다. 몸에 딱 붙는 하얀 줄무늬 양복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넘긴 사내는 한눈에도 제비처럼 보였다.
“억!”
중심을 잃은 삼식이가 비틀댔다. 보안관이 삼식이를 붙든 제비의 팔을 탁 쳐낸 뒤 밀쳐 버렸다.
“놔요! 아저씨!”
시비를 할 시간은 없다. 보안관과 유빈이 삼식이를 끌고 뛰어가려는데 제비는 몸을 날려 삼식이의 바지허리를 잡고 늘어진다.
“제발! 제발 살려줘! 위층에 일행이 있어! 두 블록, 두 블록만 데려다줘. 거기 내 차가 있어.”
“놓으라고, 이 새끼야! 살고 싶으면 빨리 돌아가서 문 닫아!”
보안관이 제비의 배를 걷어찼다. 어지간히 아프고 숨이 턱 막힐 텐데, 그래도 제비는 포기하지 않고 질질 끌리며 사정을 한다.
“컥! 콜록! 제발! 한 번만 도와줘, 섭섭지 않게 갚을게! 지갑에 돈 있어! 아니, 출세시켜 줄게!”
“출세 같은 소리 하네. 지랄 말고 놓으라고! 진짜 안 놔?”
결국 참다못한 보안관이 제비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유빈이 말릴 틈도 없었다. 칼날 같은 짧은 훅에 제비의 턱이 덜컥 돌아간다.
브웩―! 무슨 말인가를 하려던 제비는 열린 입술 사이로 이상한 비명을 흘리면서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흰자를 드러내고 뻗은 제비의 입에서 피시시 게거품이 뿜어져 나온다.
“아이, 씨발! 기절을 시켜 버리면 어떡해? 얼굴 좀 때리지 말라고!”
놀란 유빈이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보안관도 당혹스러운지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빠! 오빠!”
속옷 가게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고등학생 정도나 된 것 같은 어린 여자애 하나가 뛰어나와 제비를 붙들고 울부짖는다.
이 더위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모자에, 마스크에, 헐렁한 옷까지. 어떻게든 안 물려보려고 아주 중무장을 했다. 반쯤 열린 2층 창문 틈으로 몇 명이 얼굴을 들이민 채 음침하게 내다보고 있다.
“그냥 가! 저 정도 머릿수면 자기들이 끌고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난감해하는 보안관을 끌어당기면서 유빈이 소리쳤다. 그때, 골목 반대편에서 엄청나게 큰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끄악!”
번화가 반대편의 슈퍼를 향해 뛰어갔던 놈들이다.
이제 막 코너를 돌아 나타난 괴물들이 그들을 붙잡고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열댓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깨물어 대니 순식간에 팔다리가 뜯겨 나간다.
“으아악―!”
그롸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커다란 울부짖음이 섞이며 혼란스러웠던 거리의 공기를 단번에 제압한다.
“끼야아악!”
쇼핑에 혼이 팔려 자신의 은신처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던 사람들이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리고 혼비백산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식이가 이야기했듯이 괴물들 쪽이 훨씬 빠르다. 먹을 것을 한 아름 품에 안은 채 뒤뚱거리며 뛰는 사람들과 겨루는 거라면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그롸아아악!
괴성과 함께 무리에서 뛰쳐나온 열댓 마리의 괴물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덮치고 할퀴고 자빠뜨려 물어뜯는다.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으로 치솟고, 잘린 살점이 여기저기 튄다. 이틀 전 오후에 바로 이곳에서 보았던 풍경과 똑같아졌다.
“으악! 씨바알!”
비명을 지르던 젊은 사내 하나는 팔뚝의 살을 뚝 떼어주고 주변의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빨리! 빨리! 사내의 부모로 보이는 노부부가 사내를 기다렸다가 끌어당긴 후 문을 쾅! 잠가 버린다. 그 뒤를 쫓아 오르던 다른 생존자는 영락없이 닫힌 문과 괴물들 사이에 갇혀 버렸다.
“안 돼에! 문 좀 열어줘요!”
쾅쾅쾅! 애타게 문을 두드리던 생존자의 목과 다리에 괴물들의 이빨이 콱콱 박힌다.
생존자는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계단참에 쓰러진 채 내장이 다 뜯겨 나갔다. 괴물들이 턱을 잡아채며 구불구불한 내장을 끄집어낼 때마다 사내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하아, 하아!”
정신없이 달리던 세 친구는 지하 통로로 뛰어들기 전에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보안관이 기절시킨 제비는 여전히 의식을 찾을 기미가 없고, 여자애는 그의 어깨를 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2층에서 지켜보고 있던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도와주러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괴물들의 파도는 벌써 번화가 거리를 절반 이상 점령하며 밀려오고 있었다. 지금 세 친구가 이 계단 아래로 발을 뗀다면 저 제비와 여자애는 100퍼센트 죽는다.
“아우우∼ 씨발!”
보안관이 먼저 짐승처럼 욕을 내뱉으며 멈춰 섰고, 유빈과 삼식이도 몸을 돌렸다.
눈빛을 교환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세 친구는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다시 번화가 쪽을 향해 돌아서 뛰었다.
“비켜봐.”
울먹이며 낑낑대던 여자애를 밀어내고 보안관이 제비를 어깨에 둘러업었다. 들고 있던 쇼핑백은 여자애의 손에 쥐여 주었다. 유빈은 보안관의 해머를 맡았다.
끄와아악! 그롸아악!
아가리를 쫙 벌린 괴물들이 침을 흩날리며 달려온다. 아직 은신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꽈드득! 가느다란 뼈가 부서지고 살이 잘려 나가는 소리. 피비린내가 콧속을 가득 채우며 들어온다. 보안관과 친구들은 여자애를 앞세워 속옷 가게 2층으로 다급히 올라갔다.
“이런 미친!”
덜컥덜컥! 손잡이를 돌리던 보안관이 당황했다. 2층의 구경꾼들은 어느새 문을 굳게 잠가두고 있었다. 보안관은 한쪽 발로 거칠게 문을 걷어찼다.
“문 열어, 이 새끼들아!”
안쪽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다른 데로 가요! 우리한테까지 피해 끼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