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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위험한 잠입 (5) (30/449)


30. 위험한 잠입 (5)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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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도 그런 말들을 별로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까짓 좀비가 된 노인 하나가 어디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눈에 보이는 건 다 비슷한 놈들뿐인데.

“세 시 이십삼 분…… 그럼 이십일 분이라고 하고.”

삼식이가 또 혼자서 시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보통 사람이 저런 증상을 보이면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싶어 겁이 덜컥 나겠지만, 삼식이니까 어떤 행동을 해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 된다.

시계 놀이에 몰두한 삼식이를 내버려 두고 유빈과 보안관은 향후의 일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복지 센터 앞 도로 양쪽으로 나가보면 혹시 택배 트럭이나 그런 걸 만날지도 몰라. 운이 좋으면 식재료나 과자를 실은 트럭이 있을지도 모르고.”

보안관이 우회론을 제기했다. 눈앞에 괴물들이 가득한 이 번화가를 버리고 도로를 따라 멀리 나가보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동차들로 꽉 막힌 도로 역시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괴물들이 엄청나게 많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워낙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숨어 있는 한두 마리에게 어이없이 당할 수도 있다.

뒤돌아 도망칠 때도 보호해 줄 철책이나 트랩이 없으니 부담은 더욱 커진다. 유빈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생수 트럭이 하나 보이긴 했지만, 그것도 꽤 멀던데. 가장 가까이 있는 거라야 자빠진 마을버스뿐이었어.”

“영숙이…….”

삼식이는 또 여자 이름을 주워섬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빈과 보안관은 대화를 계속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대로 가면 우리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어. 어느 시점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딱 정해두고 그때까지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모험이 되더라도 해야 해. 난 그게 앞으로 이삼 일이라고 본다.”

보안관은 비장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빈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음료수가 바닥을 보이기 전에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너무 모호해서 그냥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무작정 도로로 걸어 나가서 몇 마리인지도 모르는 좀비들과 싸운다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인 삼식이가 또 중얼거렸다.

“미연이.”

“그럼 내일부터는 아예 이쪽 말고 도로 쪽으로 나가볼까? 아, 또 다른 방법은 경전철 선로를 따라 걸어가 보는 건데, 그건 어때? 몇 정거장이나 이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보다 나은 동네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유빈이 제안했다. 보안관은 지하 통로 위로 쭉 뻗은 선로를 내려다봤다. 지상보다 약간 높이 설치돼 있고 양쪽으로 철책이 있으니 일반 거리보다는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기에서 음식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 계속 가다가 자는 건 또 어떡해?”

“음, 그것도 문제네.”

“보안관.”

삼식이가 불렀다. 고민에 잠겨 있던 보안관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왜 자꾸 귀찮게 그러냐? 삼식아, 우리 좀 내버려 둬라. 지금 고민이 많다.”

“너, 쟤네들 정말로 한 번에 다섯 명 상대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다고오.”

“다섯 명 해치우는 데 몇 분 걸릴 것 같아? 최대한 서두른다면.”

“몇 분? 글쎄…… 어디 보자, 휙 하고 탁 해서 빡 하면…… 오 분? 좀 더 걸리면 육 분?”

육 분이라……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삼식이가 이번엔 유빈에게 물었다.

“유빈아, 그럼 우리 둘이 두 마리 해치울 수 있을까? 그 시간 동안?”

“둘? 가능하지 않을까? 너, 근데 쟤네들 머리통 때릴 자신 있어?”

“나 혼자라면 그냥 잡아먹어라∼ 할 것 같긴 한데, 너희 목숨도 걸린 일이니까…… 까짓거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삼식이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음식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삼식이를 동정하듯 바라보던 보안관이 물었다.

“뭔 소리야? 저 아래 좀비가 수백인데, 일곱 마리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고. 내가 계속 보고 있으니까, 쟤네들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 돌잖아.”

“씨발, 무슨 군대냐? 도는 방향이 따로 있게?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놈들도 있고, 그냥 제멋대로더구만.”

“음, 그런 애들도 있지. 혜경이도 그런 애들 중에 하나더라.”

“야이 미친놈아, 좀비 된 여자 이름 좀 그만 주워섬겨!”

“잠깐만, 보안관. 그만 다그치고 삼식이 얘기 좀 들어보자. 삼식아, 쟤들이 어떻게 움직인다고?”

유빈이 끼어들어 보안관을 진정시켰다. 삼식이는 모아놓은 꽁초를 바닥에 늘어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 이 긴 꽁초가 혜경이다? 그리고 이 바닥 전체가 저 번화가 편의점 앞이라고 하자. 이해했지?”

“응.”

“혜경이는 이 근처에서 계속 가게마다 기웃거리고 왔다 갔다 해. 어떤 그룹에도 속해 있지 않아. 그런 애들이 일곱 마리야.”
“그렇다고 하면?”

“그다음에 거리를 꽉 채우고 수십 명씩 돌아다니는 애들은 다섯 집단이 있어. 걔들은 가끔 이 가게, 저 가게 들어가긴 해도 결국 크게 보면 저 번화가와 그다음 몇 개의 블록을 한 바퀴씩 돌아.”

“다섯 집단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영숙이가 지나가고 나서 큰 덩어리 네 개가 더 지나가니까 또 영숙이가 오더라고. 간단한 거지. 이 캔 하나가 집단 하나라고 하자.”

삼식이는 캔 다섯 개를 나란히 늘어놓았다.

“먼저 얘가 지나가고 나면 얘가 몇 분 내로 와. 그런데 줄을 딱 맞춰서 걷는 게 아니니까 꼬리가 빠져나가면 조금 있다가 머리가 들어오는 식이야. 게다가 혜경이네 일곱 마리는 항상 여기서 기웃거리니까 우리가 볼 때는 계속 괴물들이 상주하는 것 같지.”

유빈과 보안관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유빈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대충 알아는 듣겠어. 그러니까…… 삼식이, 네 말은 몇 마리만 빼면 어떤 특정한 시간대에는 저 번화가에 괴물이 없다는 말이지?”

“그래. 하지만 그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자꾸 시간을 물어봤던 거야?”

“응. 보안관이 말해준 시간을 라이터로 시멘트에 새겨 써놓으면서 보니까, 영숙이네 꼬리가 번화가 밖으로 나가고 그다음 팀 머리가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이 9분 정도 돼. 그다음 미연이네 무리가 11분 정도 있다가 들어와. 그리고 또 20분 후에 오렌지 호프 누나가 오지. 그 12분 뒤에는 뽕짝 아저씨…….”

“그래서 제일 긴 시간 간격이 얼만데?”

“오렌지호프가 들어오기 전까지 20분.”

“20분이면 충분하겠네! 좀비 일곱 마리 잡고 거기서 컵라면 끓여 먹고 와도 되겠다.”

보안관이 반색을 하자 삼식이가 손사래를 쳤다.

“하하, 그럴 여유까지는 없어. 마지막 한두 놈이 완전히 멀어져서 우리가 가는 걸 눈치채지 못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지하 통로 위로 나가야 하고, 저쪽에서 새로 오는 놈들이 우리를 보고 쫓아오면 안 되니까, 실제로 남는 시간은 12분이 될까 말까야. 거기에다 상주하는 혜경이네 일곱 마리를 해치울 시간이 6분이니까, 음식을 챙길 시간은 5분이나 될까?”

유빈과 보안관은 삼식이가 끄적여 놓은 시간 표시들을 검토했다. 구구단도 가끔 틀리는 놈의 말이라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말이 맞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 계산은 맞네. 20분. 근데 삼식이, 네 이론이 옳다는 근거는 뭐야?”

희망으로 들뜬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희가 눈으로 직접 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게 제일 확실하지. 지금이 네 시 삼십사 분이니까 내 계산대로라면 5분 뒤에 또 영숙이가 올 차례야.”

유빈과 보안관, 삼식이는 난간에 나란히 기대서서 번화가 반대쪽 끝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5분은 참 오래간만이었다.

우왕좌왕하는 몇 마리의 괴물, 그리고 맨 끝에 서서 코너를 돌아 나간 괴물들. 마침내 삼식이의 시계가 39분이 되었을 때, 아까의 그 빨간 원피스가 가슴을 흔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보안관이 ‘으음∼!’ 하는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정말이네. 왔다.”

영숙이가 포함된 집단이 번화가 코너를 빠져나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는 6분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또 3분이 지나자 새로운 집단이 그르렁대며 반대쪽 끝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아는 여자애가 하나도 없더라고.”

삼식이는 마치 그게 신기한 일이라도 되는 듯 말했다.

12분 후 또 새로운 집단이 등장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삼식이의 말이 맞다. 이쯤에서 완전히 믿어도 좋겠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신중해지기로 했다.

정말로 오렌지호프 그룹은 20분의 간격을 두고 등장했고, 다섯 그룹이 완전히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그들은 누가 어떤 괴물을 해치울지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다섯 시 사십칠 분. 그룹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서둘러 역사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몇 시야?”

“오십팔 분.”

“좋아, 이제 슬슬 가보자.”

철책을 넘어 지하 통로 입구에 도달한 뒤, 잠시 기척을 숨기고 기다렸다. 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흘러가는 매초가 아쉽지만, 미연이네 그룹이 완전히 코너를 빠져나갈 때까지 나가면 안 된다.

작전 개시 시간으로 정해놓은 것은 여섯 시 오 분. 시계를 보고 있던 삼식이가 두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고! 고! 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재빨리 지하 통로를 달려 나갔다.

계단에 목이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는 시체 두 구가 보인다. 가장 앞서서 뛰어나간 것은 보안관이었다.

보안관은 번화가 입구에서 서성이던 괴물의 머리를 커다란 해머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빠각! 괴물은 미처 완전히 돌아서지도 못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그롸아악!

편의점 안에서 여자 괴물이 튀어나왔다. 삼식이가 말했던 혜경이다.

보안관은 해머를 옆으로 쳐올려 괴물의 머리통을 작살냈다. 주춤거리며 다시 일어서려는 괴물의 정수리에 해머가 내리꽂히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납작해졌다.

“둘.”

보안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뛰어가며 마주 달려오던 괴물의 다리를 후려갈겼다.

무릎이 박살 난 채 앞으로 고꾸라진 괴물은 뒤따라오던 유빈이 처리했다. 삽으로 계속 뒤통수를 내려찍자 어느 순간 푸슉! 하며 날이 들어가 박혔다.

“셋!”

괴물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유빈이 삽날을 빼는 동안 삼식이가 돌 깨는 망치를 들고 곁을 지켜준다.

그롸악! 그락!

얼굴이 반쯤 뜯겨 나간 파마머리 아줌마 괴물이 삼식이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아…… 역시 아줌마는 무서워.”

삼식이는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긴 팔을 쭉 뻗어 망치 끝으로 아줌마의 얼굴을 때렸다.

빠악!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한 방에 기절을 했겠지만, 상대는 좀비다. 아줌마 괴물은 중심을 잃고 비틀대다가 더 맹렬한 기세로 몸을 날렸다.

“비켜!”

삽을 빼낸 유빈이 외쳤다. 삼식이가 옆으로 돌아선다. 유빈은 삽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있는 힘껏 휘둘렀다.

칵―! 괴물의 목에 삽날이 박히며 날아드는 방향이 바뀌었다. 유빈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삽을 놓쳐 버렸다. 벽으로 내동댕이쳐진 괴물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저대로 일어나 덤벼든다면 유빈에게는 무기가 없다. 다급해진 유빈은 덜렁거리는 삽자루를 걷어찼다.

카각―! 삽이 더 깊숙이 박혔다. 보기엔 끔찍하지만 효과가 있다. 유빈은 눈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삽 손잡이를 잡고 벽을 향해 밀었다.

으롸아악!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간 괴물의 입에서 맥없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런 것에 약해지면 안 된다. 유빈은 온몸의 체중을 삽에 실었다.

콱! 콱! 삽 끝에 닿는 저항이 있을 때마다 힘을 주었다. 마침내 완전히 잘려 나간 목이 삽을 타고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괴물은 조용해졌다.

“어흐∼!”

그 잔혹한 모습에 유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삽을 다시 빼 들었다.

“조심해!”

삼식이가 다급하게 외치며 달려온다. 유빈이 돌아보기도 전에 허리에 콱, 하고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괴물이 몸을 날려 그를 덮친 것이다. 그롸아악! 괴물의 아가리가 쫙 벌려져 유빈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빠악!

괴물의 이빨이 삼식이가 휘두른 망치에 맞아 엉망으로 부러졌다.

삼식이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괴물을 노려보며 그 관자놀이에 다시 한 번 망치를 꽂아 넣었다.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쩌억! 하는 뼈가 쪼개지는 소리가 번화가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일어나, 유빈아.”

움찔거리는 괴물의 몸뚱이를 밀어내고 삼식이가 손을 내밀었다.

“이런 젠장, 나 물렸나? 아프지는 않은데.”

“아니야. 안 물렸어. 괜찮아.”

유빈은 정신없이 자신의 몸을 더듬거려 봤다. 다행히 물린 흔적은 없다.

“하아, 씨발. 정말로 끝나는 줄 알았어.”

유빈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자 삼식이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머뭇거려서.”

“아니야, 너 잘했어. 진짜로 엄청 잘 싸운 거야.”

그렇게 유빈과 삼식이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을 때, 보안관이 화장품 가게 안에서 일곱 번째 괴물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깨진 향수병들을 뒤집어쓴 보안관이 기침을 콜록거리며 묻는다.

“캑! 캑! 아유, 씨발, 화장품 냄새. 하아, 몇 분이야?”

“여섯 시 구 분.”

“내가 말했던 5분보다 오히려 더 빨리 끝냈네. 오케이, 이제 음식만 챙기면 된다. 서둘러.”

세 친구는 편의점에 들어가 쇼핑백을 집은 다음, 닥치는 대로 음식을 챙겼다. 빵, 소시지, 핫 바, 통조림…… 혹시 몰라 시간제한은 4분만 두기로 했다. 삼식이가 시계를 봤다.

“이제 그만! 가자!”

보안관과 유빈이 쇼핑백 네 개를 가득 채웠을 때, 삼식이가 외쳤다.

“그래!”

음식의 유혹은 끝이 없지만, 거기에 사로잡혔다간 좀비들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세 친구는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때였다.

드르륵! 드르륵!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변 건물들의 2, 3층 유리창들이 일제히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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