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위험한 잠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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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위험한 잠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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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위험한 잠입 (4)
2021.09.29.
“하하, 뭐지? 신기하네. 사람이 피가 안 돌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신기한 걸로 따지면 흉측하게 훼손된 시체의 어깨를 잡고 들어 올리면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삼식이의 신경 쪽이 더 신기했다.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유빈도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 헛웃음을 본 삼식이가 만족하며 말했다.
“어! 이제 웃었다. 오전 내내 침울하더니.”
고되게 진행된 작업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에야 끝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레이저 와이어 더미에 말린 채 죽어버린 할머니.
워낙 엉망으로 얽혀 있어 시체를 떼어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삼식이와 유빈은 절단기로 와이어를 잘라내 함께 날랐다. 도중에 녹아버린 내장이 전부 왈칵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그것을 치우는 게 또 고역이었다.
“쌓기는 쌓았는데, 이걸 이제 어쩌지?”
도로 위로 옮겨놓은 시체 더미를 바라보며 삼식이가 한숨을 쉬었다. 악취도 악취지만, 그냥 뒀다간 혹시 무슨 전염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뭇가지 좀 꺾어 와서 각목이랑 섞어 끼워두자. 옷이 있으니까 WD―40을 뿌리면서 불을 붙이면 타지 않을까?”
“그거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뼈가 다 안 타고 남을 거야, 아마.”
“……씨발, 정말 그렇겠네. 그래도 일단 살은 태워야 해. 살균을 위해서라도.”
발전기에서 휘발유를 꺼내 오면 윤활유보다 좋겠지만, 그건 꼭 필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제 또 기름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시체들 사이에 나뭇가지와 각목, 스티로폼 조각들을 쑤셔 넣어 빈 공간을 만들었다.
삼식이가 WD―40을 라이터 불꽃 위로 분사하자 화염방사기처럼 불이 뿜어져 나온다.
스티로폼과 화학섬유에 먼저 불이 붙고, 조금씩 연기가 커졌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걸 확인한 후, 두 친구는 매캐한 노린내가 나는, 그 지옥 같은 자리를 서둘러 피했다.
“아, 이건 정말 두 번은 못할 짓이다.”
세수를 한 뒤 벽에 기대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삼식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빈도 동감이었다.
그건 정말 구역질이 나는 일이었다. 삼식이가 담배 두 대를 천천히 다 피웠을 때쯤, 보안관과 신입도 트랩 설치를 마치고 돌아왔다.
“발전기 켜줘. 핸드폰 충전해서 뉴스를 보고 싶어.”
익숙하지 않은 노동 덕에 팔뚝이 생채기투성이가 된 신입이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모두 그러자고 했다. 발전기의 연료는 아깝지만, 뉴스는 그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스위치를 누르자 윙윙거리며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조금 더 기다리니 핸드폰을 켤 수 있었다.
“……여전히 인터넷이 안 돼. 씨발, 전화는 아예 안테나도 안 뜨네.”
신입은 비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유빈은 상황이 그렇게 극적으로 호전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그저 뉴스였다. 이곳을 탈출해서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도록 돕는 한두 마디의 결정적인 정보. 그런 것이 필요하다.
몇 번 더 인터넷을 껐다가 켜보던 신입은 인터넷을 포기하고, 안테나를 뽑은 뒤 DMB를 눌렀다.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잘 차려입은 중년 여자가 화면에 나왔다.
뭔가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에 모두가 우와아아∼!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귀를 기울였다. 중년 여자는 뻔뻔하게 생긴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빠르게 지껄여 댔다.
― 그러니까 해당 지역의 주민들께서는 그저 문을 꼭 잠그고 며칠만 더 버티시면 됩니다. 정부는 군경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 있으며, 지금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몇 번인가 TV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다. 아마 정부의 대변인인가 뭐였을 거다.
“나아지고 있대!”
삼식이가 소리쳤다. 보안관도 어지간히 좋아한다. TV 속의 여자가 말을 계속 이었다. 여자의 뒤쪽은 커튼이 쳐진 실내라서 장소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 국민 여러분, 지금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저희를 믿고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한시라도 더 빠르게 국민 여러분께 사태의 완벽한 해결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자가 말을 마치자 낯선 아나운서로 화면이 넘어간다. 아마 인터뷰 형식인 모양이다. 아나운서가 물었다.
― 그럼 지금부터 완벽한 해결까지는 얼마 정도의 시일이 소요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 글쎄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의 추세로는 길어도 일주일을 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주일만 참으면 모든 게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
세 친구가 웃음이 가득해서 서로를 마주 보며 하이파이브를 하려는데, 신입이 갑자기 발광을 하면서 핸드폰을 마구 눌러 댔다.
“씨발! 씨바알! 씨발! X 까라고, 이 개새끼들! 으아아아!”
깜짝 놀란 세 친구가 신입을 진정시켰다.
“야, 좀 진정해. 왜 그래?”
“일주일만 참으라잖아. 괜찮아, 그동안이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씨발, 이 개새끼가 누군지 알아?”
양쪽 어깨를 붙들린 신입이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가리키는 것은 정부 대변인과 마주 앉아 있는 아나운서였다.
“내 사촌 형 새끼야! 제주 MBS 아나운서 됐다고 명절 때마다 존나게 유세를 떨던 새끼라고!”
“그게 무슨…….”
사태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 세 친구를 향해 신입이 또 악을 썼다.
“이 개새끼들이 방송하고 있는 데가 제주도란 말이야, 이 등신들아! 이 새끼들은 벌써 육지를 다 포기하고 제주도로 떴다고! 그저께부터 지금까지 단 한 군데도 구조를 못 한 거야! 변변한 공중파 아나운서 하나도 구하지 못한 거라고!”
***
어쨌거나 정찰을 나서긴 했지만, 신입이 DMB를 보며 해준 말 때문에 가슴속은 답답했다.
경전철역에 도착해서 음료수를 좀 챙기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보안관과 유빈은 좀처럼 말이 없었다.
물론 삼식이만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일부러 챙겨 온 망원경을 자랑스럽게 눈에 가져다 대고 탐험가처럼 360도를 고루 살피더니, 뭐에 꽂혔는지 지금은 번화가 쪽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고 있다.
“아까 그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정말 서울은 포기한 걸까?”
삼식이와 나란히 난간에 기대서 아래쪽을 바라보며 보안관이 물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괴물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니고 있다. 등을 돌리고 앉아 벌판과 산책로 쪽을 살피던 유빈이 대답했다.
“신입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만약에 그게 경기도나 서울이었다면 일부러라도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곳을 배경으로 삼아 찍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광화문이나 수원성, 국회의사당 같은 데 말이야. 그러면 최소한 거기까지는 안전해졌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거잖아.”
“대체 왜 그런 구라를 일부러 방송을 찍어가면서까지 치느냔 말이지. 그건 그냥 사람들한테 상대는 좀비니까 대가리를 뽀개라고 알려주는 것보다도 못하잖아. 그렇게 일주일을 더 번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거야?”
“내 생각에는 오히려 감염 지역이 아닌, 지방 사람들 보라고 만든 방송 같은데? 공연히 난리치며 돌아다녀서 교통 막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겠지.”
“어쩐지, 그날 헬리콥터가 미친 듯이 날아다니더라니. 지들만 목숨이냐? 개새끼들.”
보안관이 다 마신 음료수 캔을 꽈드득, 움켜쥐며 욕설을 내뱉었다. 도무지 희망이라는 게 보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몇 시야, 보안관?”
망원경으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삼식이가 물었다.
“두 시 반.”
“정확하게 두 시 반?”
“아니, 두 시 삼십사 분. 이런 상황에서 몇 분 단위가 중요하냐? 왜? 누구랑 시간 약속 있어?”
“하하하, 어떻게 알았지? 여자애들이랑 한잔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갈래?”
까칠해진 보안관이 시비조로 대응했지만, 삼식이가 웃어버리니까 말싸움까지도 가지 않는다.
“왜 저렇게 모여 다닐까?”
열심히 괴물들을 살피던 삼식이가 물었다.
“응? 왜라니? 쟤네들의 목적이라야 뻔하지. 산 사람 잡아먹는 거.”
유빈은 뒤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걸 묻는 게 아니야. 저 정도로 여럿이 있으면 먹이 하나를 잡아도 훨씬 조금밖에 못 먹을 텐데, 왜 저렇게 죽자고 붙어 다니느냐는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서로 지켜주거나 하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저놈들이 번화가 거리에만 붙어 있는 이유는 또 뭐야? 벌판 쪽으로는 나오지도 않잖아.”
“하긴 그러네. 나라면 차라리 저기 산책로 어딘가에서 대기 탈 것 같다. 우연히 지나가는 놈 하나만 걸려도 그게 어디냐.”
황량하게 텅 빈 채 뻗은 산책로를 가리키며 유빈이 대답했다. 인정받은 삼식이는 밝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의문을 표했다.
“그치, 응? 저렇게 몰려다닐 필요가 있을까? 어, 영숙이다.”
“영숙이라니? 사람이 있어?”
유빈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삼식이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 이미 변했어.”
“그게 누군데? 나도 좀 알자.”
보안관이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삼식이는 괴물들의 무리 중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빨간 원피스 입은 쟤. 골목 끝 댄스 학원에서 일하던 앤데…….”
빨간 원피스를 입은, 유난히 커다란 가슴의 여자 괴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다.
“댄스도 안 배우는 새끼가 뭐한다고 직원 이름까지 알아?”
“에, 그게…… 에이, 뭐, 이제 죽었으니까 말해도 상관없겠지. 몇 번 잤거든. 음, 같이 잤던 여자가 좀비가 된 걸 보다니…… 이거, 기분 묘한데?”
삼식이는 씁쓸하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다시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어라, 지혜도?”
“지혜는 또 누구야?”
보안관이 무심하게 대꾸한다.
“지혜는 마을금고에서 일하던 애야. 쟤는 자취를 하는 애라서…… 근데 지금 몇 시야, 보안관? 정확하게.”
“두 시 사십일 분이다.”
몇 분쯤 뒤, 삼식이가 또 입을 열었다.
“미연이도 변했구나. 다음 주에 자기 생일이니까 1박 2일로 춘천 놀러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 쯧쯧.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맘이라도 편하게 해줄걸……. 어! 혜경이, 너도?”
“이런 개새끼. 이 동네 일하러 온 지 몇 주 되지도 않았구만, 그 짧은 새 어지간히도 건드리고 다녔네.”
보안관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등을 돌리고 난간에 기대앉았다. 움직이는 좀비 떼들을 질리지도 않고 계속 망원경으로 얼굴까지 확인해 가며 보고 있는 삼식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보다는 차라리 저 뒷산 너머가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보안관이 유빈에게 물었다.
“거기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
“최소한 거긴 가능성이라도 있지. 여긴 그냥 괴물 밭이야. 한 번도 저 번화가가 비어 있는 걸 못 봤어.”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빈이 힘없이 대답했다. 지하 통로에서 25미터 정도만 가면 편의점이 있다. 비록 유리창이 피범벅이 된 채 깨져 있지만, 물건은 멀쩡하다.
여기에서도 흐트러진 채 방치된 상품들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 더운 날씨에 그 안에서 1초가 지날 때마다 썩어가고 있을 빵이며 삼각김밥, 햄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몇 시야, 보안관?”
삼식이가 또 물었다.
“두…… 아니, 세 시 이 분. 아, 귀찮아. 새끼야, 그냥 시계 너 차고 있어. 갑자기 왜 이렇게 시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지?”
보안관은 시계를 풀러 삼식이의 팔에 채워 버렸다. 삼식이는 신경도 안 쓰고 또 여자 이름을 댔다.
“오렌지 호프 누나도 변했구나. 후우∼”
“오렌지 호프? 어디? 어디? 너! 저 아줌마랑도?”
유빈과 보안관이 벌떡 몸을 일으켜 거리를 내다봤다. 두 친구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30대 중반의 풍만한 미시로, 어딘가 색기가 잘잘 흐르는 느낌이었다. 몇 번인가 일 끝내고 그 집에서 맥주도 마셨고, 치킨 맛이 좋아서 사다 먹기도 했다.
좀비로 변한 그녀가 괴물들 틈에서 속보 정도의 빠르기로 걸어간다. 늘 유혹하듯 흔들며 걷던 엉덩이가 반쯤 뜯겨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저 여자는 네 스타일이 아니잖아?”
적당한 미인형이었던 호프집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이는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응, 맞아. 좋아서 했다기보다는 덮쳐졌지. 너희도 기억할 거야. 지지난 주였나, 새벽에 내가 치킨 사러 갔었잖아. 저 누나가 쪽문만 열어두고 혼자 맥주 한잔하고 있더라고. 내가 들어가서 ‘지금 치킨 해주면 안 돼요, 누나?’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셔터를 내리고 다가오더라고. ‘으응, 삼식아. 누나가 해줄게’ 이러면서……. 쯧, 내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뭐 그렇게까지 하는데…….”
씨발, 듣고 있던 보안관과 유빈은 얼굴을 마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인물이 되는 새끼는 밤중에 치킨 사러 갔다가도 그런 횡재를 하는구나. 어쩐지 삼식이가 사러 가면 치킨 양이 유난히 많더라니.
“지금 몇 시야, 보안관?”
“시계…… 네 팔뚝에 있잖아, 이 바람둥이 새끼야.”
보안관이 공연히 짜증을 부린다. 삼식이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희, 그거 알아? 뽕짝 아저씨도 저기 끼어 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노래는 안 나오네. 드디어 배터리가 다됐나 봐.”
“정말? 저쪽 벌판에서 걸어가더니, 어느새?”
보안관과 유빈이 머리를 내밀어 보니 정말로 뽕짝 아저씨가 괴물들과 함께 어울려 걷는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유빈이 물었다.
“진짜네. 아깐 왜 못 봤지?”
“아깐 여기 없었으니까.”
삼식이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