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위험한 잠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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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위험한 잠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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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위험한 잠입 (3)
2021.09.28.
“……이런!”
성인 키 높이만 노려보고 있다가 아래쪽에서 150센티미터도 안 돼 보이는 애송이가 덮쳐 온 순간, 모두 멈칫했다.
제기랄! 하지만 괴물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나는 삼식이를 노리고 괴물이 아가리를 벌린다. 유빈은 입술을 꽉 깨물고 그 뒤통수를 향해 돌 깨는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위층으로 가자.”
엎어진 채 죽어 있는 소녀의 시체를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세 친구는 4층을 지나 옥상으로 향했다.
잠겨 있던 옥상 문을 해머로 부수고 나가니 360도가 확 트인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도로는 차들로 꽉꽉 막혀 있는 채였다. 물론 그 차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괴물들 천국이구만.”
건물 끝까지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던 삼식이가 첫 소감을 말했다. 긴 십자가 두 개가 겹쳐진 형태의 번화가는 괴물들의 행렬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줄잡아 수십 마리씩 뭉친 괴물들이 너무 느리지도, 또 너무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번화가 거리를 걸어간다.
지하 통로와 연결된 곳은 물론이고, 작은 골목에 이르기까지 괴물이 서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절망적이었다.
“돌아가자.”
한동안 괴물들의 모습을 노려보던 보안관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세 친구는 실망감에 힘이 빠진 다리를 이끌고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가방을 챙겨 들고 철책을 넘었다. 걸어놓은 함정들은 모두 처음 설치해 놓았던 형태 그대로이다. 적어도 괴물이 이리로 지나가지는 않았다.
“저 새끼들을 어떻게 이기지?”
벌판까지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보안관이 힘없이 웃었다.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이기지냐? 하여간 존나게 긍정적인 새끼라니까.”
삼식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이겨야 우리가 살지.”
유빈은 두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웃었다. 웃어야 이길 때까지 버틸 수 있다.
“그래, 이기자. 꼭 이겨서 살아남는 거야. 악착같이!”
복지 센터에 도착했을 때, 신입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잠에 취한 녀석을 계속 불러 억지로 깨운 뒤, 밧줄을 내리라고 해서 타고 올라갔다.
“내일은 사다리부터 만들어야지. 저 새끼 믿고 있다가 큰일 나겠어.”
굼뜬 신입의 움직임에 짜증이 난 보안관이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씨발. 너희는 다 같이 몰려나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난 혼자 시체들이랑 있느라고 존나게 무서웠는데…….”
잠이 덜 깬 신입이 엉덩이를 긁적거리며 짜증을 부린다.
“저 시체들은 움직이지나 않지.”
보안관이 짧게 대답하고 가방에서 음료수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눈이 커진 신입은 급하게 뚜껑을 따서 들이켰다. 캔을 세 개나 비운 다음 신입이 물었다.
“그래, 저쪽 동네는 좀 어땠어?”
“야아, 정말 좋더라. 비키니만 입은 여자들 오백 명이 퍼레이드를 하는데…….”
삼식이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랄! 농담하지 말고.”
“뻔하지, 뭘 물어봐? 그냥 좀비 밭이야. 오늘도 두 마리나 해치웠어.”
유빈이 대답했다. 겁을 먹은 신입은 더 알고 싶지 않은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젯밤처럼 페인트 통에 각목을 넣고 불을 피운 뒤, 모두 둘러앉아 가만히 불빛을 들여다봤다.
어제와 다른 점이라면, 아래에서 울부짖는 괴물들이 없고, 그들의 손에 음료수 캔이 하나씩 쥐여져 있다는 것 정도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 유빈이 제안을 했다.
“그래도 오늘 우리 목표는 이뤘어. 정찰도 했고, 음료수라도 챙겨 왔고……. 어때? 소주 한잔할까?”
“좋지.”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병을 쥐려 할 때, 신입이 재빨리 병을 낚아채며 일어났다.
“내가 하지.”
허세 가득하게 소주병 뚜껑을 돌린 신입이 삼식이의 음료수 캔에 소주를 쫄쫄쫄 따라 주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한 잔씩 받아라. 에…… 너희 모두 고생 많았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승리했고, 살아남았지. 너희가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나를 믿고 따라준다면 생존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 믿는다.”
갑자기 달라진 신입의 태도에 삼식이가 빵 터졌다.
“하하하! 아하하! 야, 신입. 너 소주 못 마시는구나? 냄새만 맡고 그렇게 취하면 어떡해? 하하하하! 대장 노릇을 하고 싶었어? 하하.”
신입은 다급하게 헛기침을 하며 삼식이의 말을 막았다.
“자꾸 신입, 신입, 하지 마. 너희끼리는 존나 친한 척하고 나만 신입이라고 부르는 거, 그것도 차별이야!”
“아, 그건 그렇네. 그래, 신입 이름이 뭐야?”
보안관이 묻자 신입이 유빈에게 술을 따라 주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은 됐고…… 보안관! 너만 별명 있는 거 아니야. 나도 대학교에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있어. 그걸로 부르면 돼.”
“뭔데?”
“……캡틴.”
듣고 있던 세 친구는 말을 잃었다. 누가 들어도 급조한 별명. 게다가 엄청 유치하다. 삼식이조차 웃어주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신통치 않자 신입도 한발 양보했다.
“그럼 마, 마왕이라고 하든가. 여자애들은 그렇게 부르거든.”
소주 칵테일을 죽 들이켜며 삼식이가 손을 저었다.
“무리야, 무리. 안 되겠다. 넌 그냥 신입해야겠어. 입에 짝짝 붙는데, 뭐.”
턱없는 욕심을 부린 신입 덕에 술자리의 분위기가 조금은 밝아졌다.
빈속에 조금이나마 알코올이 들어가고 나니, 꼬박 이틀을 새운 세 친구의 몸은 완전히 늘어져 버렸다. 아직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그들은 구석으로 기어가 스티로폼 패널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웠다.
“……미안해.”
막 잠에 빠져들기 전, 뇌수가 터져 나온 채 엎어진 중학생 꼬마의 조그만 뒤통수가 떠오른 유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확∼! 곧바로 잠이 그를 덮쳤다.
***
다음 날 아침, 그들을 깨운 것은 햇살이었다. 햇빛이 눈꺼풀 안쪽을 붉게 물들이며 환하게 밝히는 바람에 가장 먼저 눈을 뜬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아, 씨발. 머리 아파…….”
시궁창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런 데서 용케 잠이 들었구나 싶을 만큼 지독했다.
사방이 뻥 뚫려 있고 스티로폼으로 대충 구멍을 덮어뒀지만, 몇 미터 아래에서 이십여 구의 시체가 풍기는 악취를 밤새도록 맡았으니 두통이 생긴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오늘 아침 콜라를 먹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이 저절로 정해졌다. 시체들을 치워야 한다.
“잘 잤어?”
푸스스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를 한 삼식이는 담배부터 입에 물었다.
“너 어제부터 담배 많이 피우더라. 그러다 나중에 나이 먹고 후회한다.”
유빈이 경고하자 담배 연기를 들이켠 삼식이가 콜록거리며 웃는다.
“캑, 캑. 하하, 당장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이구만 나이 먹어서 어떻게 되는 걸 누가 무서워해. 콜록, 하하.”
어제 밤늦게까지 잠을 설쳐 아직도 웅크리고 있는 신입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어나 음료수를 두어 캔씩 마시는 것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물론 그래봐야 배는 장이 꼬이는 것처럼 고프지만, 어지러운 건 훨씬 덜하다.
캔 껍데기에 인쇄된 칼로리를 믿는 수밖에 없다. 열 캔 정도면 하루 필요 칼로리를 채울 수 있다.
장비들을 가지고 내려가 건축자재를 쌓는 팔레트로 사다리로 만들었다. 나무 팔레트 두 개를 잘라 세로로 이으니, 2층까지 넉넉히 닿았다.
“너도 빨리 내려와. 할 일이 많아, 오늘.”
뒤늦게 일어난 신입이 하품을 하며 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거 튼튼해? 괜히 부러져 버리거나 하는 거 아니야?”
“원래 여기다 몇백 킬로그램씩 자재를 쌓으라고 만든 거야. 끄떡없으니까 내려오기나 해.”
결국 보안관의 채근에 못 이겨 신입이 내려온 뒤, 모두 방진용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꼈다.
그리고 바닥에는 어제 철책에서 뜯어낸 격자 모양 철망을 깔았다. 시체를 그 위에 얹은 다음 끌고 가는 편이 훨씬 힘도 덜 들고, 자국도 적게 남을 것이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유빈이 미리 말했다.
“어지간히 역겨울 테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리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줘.”
신입은 덜덜 떨면서 시체들의 작은 산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머리가 뭉개지고 가슴팍이 뜯겨 나간 시체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고, 또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쌓아두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표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유빈과 보안관도 어지간히 긴장한 상태였다. 삼식이가 가장 먼저 다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 하나를 철망 위로 끌어내리며 말했다.
“무작정 역겹다고 할 것만도 아니야. 우리도 죽으면 다 이런 모양이 될 테니까. 그냥 내 몸을 어딘가에다 묻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나, 난 절대 안 죽을 거야.”
신입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삼식이는 녹아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훗, 바보. 사람은 다 죽어. 언제 어떻게 죽는가 하는 차이만 있는 거야. 끄응∼!”
삼식이가 힘을 쓰자 철커덩! 뻣뻣하게 굳은 시체가 철망을 울리며 굴러떨어졌다.
“으아, 꽤 무겁네. 역시 혼자서는 힘들구나. 신입, 다리 좀 잡아줘.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신입은 홀린 표정으로 천천히 시체에 다가갔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내밀어 시체의 두 다리를 잡았다.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차가움! 그리고 딱딱함!
그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이건 사람의 몸을 만지는 기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찢어진 가죽 사이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근육과 지방. 으으으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신입은 후다닥 손을 놓고 뒤돌아서 뛰다가 마스크 안에다가 토해 버렸다.
“우웨에에엑!”
액체뿐인 토사물이 마스크에 막혀 다시 코와 입으로 역류한다. 그것이 또 속을 뒤집는 바람에 신입은 노란 위액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난 못해! 나, 나는 못하겠어. 우에엑!”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신입이 사정을 하자 삼식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내가 못된 짓을 한 기분이 드네. 마왕이라더니, 뭐 이래?”
결국 시체를 치우는 작업은 특이할 정도로 시체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삼식이를 유빈이 도와서 진행하기로 했다.
“왜 너희 둘만 한다는 거야? 나도 같이해.”
보안관이 거들려 하자 유빈이 급히 만류했다.
“넌 이따가 정찰 나갈 때까지 힘을 좀 아껴둬. 만약 싸움이 나면 네가 제일 큰 전력이니까, 못 움직이는 사람들 치우느라고 녹초가 되면 곤란해. 우리가 이걸 하는 동안 넌 신입이랑 뒤쪽 산으로 가서 나무 사이에 간간이 와이어 트랩이나 설치해 줘. 혹시 그쪽에서 뭔가가 쳐들어오거나 하면 경보도 될 거고, 조금이지만 시간도 벌어줄 테니까. 아, 그리고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거기라고 괴물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나름 그럴듯한 말처럼 들려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보안관은 신입이 몸을 추스른 뒤, 함께 장비를 챙겨 뒷산으로 올라갔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삼식이가 어깨 쪽을 잡고, 유빈이 다리 쪽을 잡아 철망 위에 옮겼다. 그다음 철망 끝을 잡고 왼쪽 도로로 50여 미터를 끌고 갔다.
한 사람의 무게를 평균 70킬로그램으로 잡아도 시멘트 두 포대도 안 되는데, 이 일은 그 곱절로 힘이 들었다.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다잡아도 자꾸 헛구역질이 올라와 유빈은 중간중간 몇 번이나 먼 하늘을 보면서 숨을 골라야만 했다.
괴물들의 모습이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유빈 자신이 머리통을 박살 내 죽인 시체들이기 때문이다.
아줌마, 아저씨, 젊은이, 아가씨, 좋은 옷차림, 배달원…… 그런 특징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싫다. 차라리 좀비로 변하는 순간, 온몸이 녹색으로 변하고 뿔이 돋아주거나 하면 이렇게 죄책감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놈들, 피가 별로 흐르지를 않았어. 이렇게나 많이 죽어 있는데. 왜일까?”
유빈이 죄의식과 역겨움에 잠겨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삼식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뭐? 미안, 못 들었어.”
“바닥에 말이야. 보통 머리가 깨진 시체가 이 정도로 쌓여 있으면 피가 흥건히 고여서 강이 됐을 것 같거든. 그런데 이놈들은 그냥 볼펜 잉크가 터진 정도로만 묻어 있어. 아마 이것들에게 전염되면 피가 흐르지 않고 안에서 말라붙나 봐.”
듣고 보니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바닥이 비교적 깨끗하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아직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유빈은 죄의식을 씻어낼 수 있는 도피처를 하나 더 발견한 기분이었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마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가 보다. 겉은 사람하고 비슷해도 속은 완전히 다른 것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