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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위험한 잠입 (2) (27/449)


27. 위험한 잠입 (2)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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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자동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도시의 풍경이 이렇게까지 무서운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쫄지 마. 원칙이 아주 간단하니까 그것만 명심하면 돼. 다섯 마리까지는 내가 혼자 상대할 수 있어. 너희가 도와주면 여섯 마리까지도 가능하고. 그러니까 만약에 저것들이 일곱 마리 이상이다, 그러면 무조건 다 내던지고 뒤돌아서서 달리면 돼. 쉽지?”

보안관이 해머를 야구 배트처럼 휘두르며 이야기하자 삼식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아이고, 배야. 보안관, 너 뻥 좀 그만 쳐. 우리 앞에서 센 척해봐야 뭐한다고. 다섯 마리는 암만 생각해도 무리지. 생각을 좀 해봐라. 그냥 때려눕히는 게 아니라 머리를 뽀개야 하는 거잖아.”

“그, 그런가? 크크큭, 그럼 4대1까지 가능해. 어때, 그건 납득하지?”

보안관도 쑥스럽게 따라 웃었다. 삼식이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많아. 3대1. 우리가 거들면 네 마리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치고, 다섯 마리부터 도망가는 걸로 하자.”

유빈도 거기에 동의했다.

“삼식이 말이 맞아.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어. 배가 고픈 게 죽는 것보다는 나아.”

“좋아, 좋아. 지금은 완전히 공복이니까…… 배만 안 고프면 정말 5대1도 문제없다니까.”

싸움의 방침을 정한 그들은 먼저 산책로 내에 트랩을 만들어두기로 했다. 잔디밭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경계 기둥과 가로등 사이에 5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로 레이저 와이어를 당겨서 걸어두었다.

그렇게 산책로의 양쪽을 막아놓고 나니, 기껏해야 철조망 한 줄뿐이지만 왠지 든든해 보였다.

이렇게 해두면 어제처럼 양쪽이 모두 막힌 상황에 처하더라도 철책을 넘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잘랑∼ 잘랑∼ 함께 끼워놓은 빈 깡통이 바람이 불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몇 시야?”

“여섯 시 이십 분.”

다행히 하늘은 파랗고, 해가 질 기미도 아직은 없다. 세 친구는 구름다리로 이어진 철책에 다가가 역 안쪽을 들여다봤다. 조용하다.

어젯밤 찢어진 철조망에 옆구리가 꿰어져 버둥거리던 녀석마저도 피범벅된 살점 조각들만 덕지덕지 붙여놓은 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들어간다?”

보안관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무너진 철책을 넘어 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삼식이와 유빈도 뒤를 따랐다.

어젯밤 개 아저씨를 만났던 자리를 지나면서 혹시나 싶어 고개를 숙여 하천을 둘러봤지만, 별달리 수상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다못해 시체라도 몇 구 둥둥 떠내려올 거라 생각했는데, 물은 어제저녁과 변함없이 조용히 흘렀다.

“아낌없이 쓰자, 묵힌다고 돈 되는 것도 아니고.”

지하 통로와 이어진 첫 번째 철책에 남아 있는 레이저 와이어 더미 모두를 촘촘한 용수철 모양으로 걸며 보안관이 말했다. 그 작업이 끝나자 모두는 감격한 표정으로 자판기를 향해 다가갔다.

“아아,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너도 그랬지?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지금…… 억!”

두 개의 자판기 중 오른쪽 것에 붙어 쪽쪽거리던 삼식이가 천 원짜리 지폐를 넣으려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입을 막았다.

“……얘들아, 이거 어떡해? 정전이야! 우리 음료수 못 사.”

보안관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삼식아, 이제 우리 돈 없이도 살 수 있어……. 비켜봐, 문 부숴야 하니까.”

삼식이의 엉덩이를 툭툭, 쳐낸 보안관은 해머로 자물쇠를 힘껏 내려쳤다.

꽈아아아아앙∼!

조용하던 역사를 뒤흔든, 그 엄청난 메아리 때문에 깜짝 놀란 세 친구는 어깨를 움츠린 채 잠시 얼음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이거, 소리 너무 큰 거 아니야? 어디까지 들렸을까?”

눈이 똥그래진 유빈이 철책 너머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당황한 것은 해머를 휘둘렀던 보안관도 마찬가지다.

“아, 씨발. 놀랐어. 이게 이렇게 큰 소리가 나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판기 문은 아직 잠겨 있었다. 살짝살짝 두어 대 쳐봤지만, 그렇게 해서 열릴 물건이 아니었다. 보안관은 눈을 질끈 감고 한 번 더 힘껏 해머를 휘둘렀다.

꽈앙∼앙앙앙∼!

지하 통로를 울리며 소리가 퍼져 갈 때마다 유빈은 심장이 움찔움찔 멎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됐다!”

도도하게 버티던 자판기의 문이 덜렁거리며 힘없이 열렸다.

랙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청량음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 친구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꽉 다문 채 몸만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자, 마셔! 마셔!”

삼식이가 스포츠 드링크 캔을 꺼내 보안관과 유빈에게 던진 후, 자신의 입에도 가져갔다.

“크어어어∼!”

커다란 캔 하나를 순식간에 원 샷으로 끝낸 세 사람의 입에서 기계처럼 똑같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직 서늘한 기운이 조금 남아 있는 음료수가 식도를 지나 위장을 감싸고 돌면서 삶이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미지근하고 플라스틱 냄새가 나는 아이스박스 맹물과는 레벨이 달랐다. 너무 짜릿해서 조금 어지러워진 보안관이 이마에 손을 짚고 비틀대는 동안, 삼식이는 재빠르게 두 번째 축배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세다. 각 잡고 마셔라.”

올림픽 로고가 새겨진 빨간색 콜라 캔이 손바닥 안에 들어 있다. 유빈은 홀린 듯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몇 주 뒤에 열리는 올림픽.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보안관, 삼식이와 함께 TV 앞에서 치킨을 뜯고 맥주와 콜라를 마신다.

부록으로 따라온 핑크 펀치의 브로마이드를 감상하다가 무가 조금이라서 분노하고……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가.

“야, 뭐해? 빨리 마시고 가자. 해 질라.”

가방 안에다 음료수들을 집어넣던 보안관이 유빈의 망상을 깨운다.

유빈은 세차게 도리질을 한 다음, 탄산이 톡톡 튀어 오르는 콜라를 쭈욱 들이켰다. 가방을 가득 채우고도 아직 음료수는 절반 이상 남았다. 보안관이 기특하다는 듯 자판기를 툭툭, 두드렸다.

“이 자판기 꽤 많이 들어가네. 200개는 훨씬 넘겠는데? 꽉 차 있던 것도 아닌데…….”

음료수는 확보했으니 다음은 정찰이다. 그런데 역 플랫폼 위에서 아무리 좌우로 돌아다녀 봐도 별 대단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번화가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역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지하 통로 너머에 서 있는, 불 꺼진 건물 몇 개와 그 건물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풍경뿐이었다.

컹컹컹컹! 멍! 멍!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슨 상황일까? 폭이 1미터도 안 되는 좁은 틈 사이로 비치는 광경만으로는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사람의 형상이 휙휙 지나쳐 다니는 것만은 멀리에서도 확실히 보였다.

“저거, 괴물이겠지?”

유빈이 물었다. 음,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위에 올라가면 보일 거야.”

삼식이가 플랫폼 끝에 세워진 4층짜리 역사를 가리켰다. 커다란 건물은 칙칙하고 어두컴컴하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측면에 고스란히 노출된 철골 구조 때문에, 마계에서 소환되었다고 해도 믿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다.

“몇 시야?”

“여섯 시 사십오 분.”

역사 현관까지 걸어간 세 친구는 침을 꿀떡 삼키며 건물을 올려다봤다. 후우∼!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게다가 앞장서서 걷던 보안관이 더욱 찜찜한 걸 발견했다.

“이거 봐.”

뚝뚝 흘리면서 걸어간 듯한 핏자국이 검붉게 바짝 말라 있다.

근처의 철책에서부터 역사 안쪽까지 쭈욱 이어져 있는데, 꽤 많은 양이다. 그제 새벽에 비가 많이 왔던 걸 감안하면 이 피의 흔적을 남길 수 있던 시간은 어제밖에 없다.

“이 안으로 도망갔던 거야. 조심해.”

목소리를 낮춰 경고한 뒤 보안관이 앞장을 섰다. 활짝 열린 유리문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다. 스패너를 허리에 차고 해머를 든 보안관은 핏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문 안에 들어선 유빈은 유리문을 닫은 뒤, 들고 있던 콜라 캔을 가운데에 세워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위층에 있어도 누군가 문을 밀치고 들어왔을 때 소리로 알 수 있다. 2층으로 향한 계단을 절반쯤 오르자 햇빛이 닿지 않아 실내는 점점 어두워졌다.

“존나 깜깜하네. 삼식아, 라이터 좀 줘봐.”

라이터를 쥔 손을 앞세워 걸으며 보안관은 해머를 바투 쥐었다. 계단 여기저기에 정신없이 떨어져 있는 핏자국은 3층 복도로 이어진 문 앞에서 딱 끊겨 있었다. 문은 닫혀 있다.

쿠웅-!

그롸아악!

쿠웅!

손잡이를 잡은 채 문에 귀를 대보니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괴물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거기에 쿵쿵거리며 어딘가에 몸을 부딪치는 소리도 섞여 있다. 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안이야.”

얼굴의 땀을 훔친 보안관이 속삭였다.

“그냥 이 문을 잠가놓으면 꼭 3층을 통하지 않아도 위의 옥상으로 갈 수는 있어. 하지만 역시 처리를 해놓는 게 마음이 편하겠지?”

유빈과 삼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괴물이 울부짖어서 동료들을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용해지도록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보안관은 두 손으로 해머를 꽉 쥐고 한 발 물러서며 문을 당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카운트를 함께한 뒤, 유빈이 문을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괴물의 그르렁 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고개를 내밀어보니 3층의 긴 복도에 줄줄이 떨어진 핏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복도 가장 끝 방이다. 거기에 괴물이 숨어 있다.

“가자.”

보안관이 앞장서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그롸아악! 그락! 그라락!

쿵쿵! 쿵쾅!

세 친구가 복도 안쪽으로 다가갈수록 괴물의 울부짖음은 미친 듯이 커졌다. 어찌나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지, 금방이라도 활짝 열리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아이, 씨발 새끼. 존나게 시끄럽게 구네. 빨랑 해치워야지, 이러다가 동네에 있는 괴물들 다 몰려오겠다.”

보안관이 이를 빠드득, 갈며 복도 끝을 향해 뛰어갔다. 조심해, 말려보려던 유빈의 이야기가 입 밖에 소리가 되어 나오기도 전에 복도 측면에서 유리창을 깨고 괴물이 튀어나왔다.

와장창!

몸을 날린 괴물이 보안관을 덮치면서 아가리를 벌린다.

“어쭈!”

당황한 보안관이 재빠르게 몸을 피함과 동시에 해머를 들어 괴물의 얼굴을 틀어막았다.

칵!

해머를 꽉 깨문 괴물의 누런 앞니가 부러져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보안관은 발로 괴물의 배를 힘껏 찬 뒤, 그 틈을 타서 몸을 뒤로 굴려 일어났다.

“하아, 뭐야, 이 새끼? 어디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보안관은 해머를 휘두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복도 왼쪽으로 붙어 섰다.

크르르르∼!

나지막이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키는 괴물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조금 전 유리를 깨고 나오다가 찢어진 상처와 원래 괴물들에게 물어 뜯겼던 것 같은 볼에서는 검고 진득한 피가 고름처럼 주르륵 흘러나왔다.

괴물의 눈에 박혀 있는 커다란 유리 조각이 놈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며 가죽을 더 찢어놓았다.

그롸아악!

괴물이 다시 보안관의 목을 노리면서 몸을 날렸다. 보안관도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돌려 해머를 휘둘렀다.

뻐걱! 공중에서 커다란 해머에 맞은 괴물은 사선을 그리며 옆으로 날아가 벽을 받은 뒤 떨어졌다. 놈이 아직 움직이는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보안관은 다시 한 번 해머를 내려쳤다.

콰각각! 약간 비껴 맞은 괴물의 머리통이 움푹해지고, 여러 개의 목뼈가 한꺼번에 부러져 꺾였다. 발끝을 한 번 부르르 떤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너 때문에 놀랐잖아, 이 새끼야! 후우…… 한 마리가 아니었네.”

보안관은 괴물의 다리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찬 후, 다시 복도 맨 끝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또 여러 마리일 수 있어.”

쿵쿵, 울리고 있는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유빈이 말했다. 해머를 쥐고 준비하고 있던 보안관도, 삽을 잡고 있는 삼식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두 번째 놈은 나랑 삼식이에게 맡겨. 너는 첫 번째랑 세 번째를 상대하면 돼.”

“세 번째라니? 세 마리나 있을까?”

보안관이 조금 질린다는 얼굴로 물었다. 유빈이 대답했다.

“만약 있다면 네 몫이라는 거야.”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를 마쳤다. 셋을 헤아린 후 문을 열었을 때, 안에서 발광하던 괴물이 뛰어나왔다.

그롸아아악∼! 하얀 막이 씐 눈이 번들거리고 이빨에는 끈적거리는 점액이 가득 끼어 있다. 고작해야 중학생일 여자아이가 피투성이 교복 차림으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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