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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위험한 잠입 (1) (26/449)


26. 위험한 잠입 (1)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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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아주 끓이려고 드는구나……. 유빈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오전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 좀비들을 못으로 꿰뚫어 끌어 올리고 대갈통을 부수느라 혹사당한 근육이 욱신거린다.

“후우우∼”

복지 센터 벽에 기대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삼식이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어제부터 굶은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르륵, 난리가 났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아직 기운이 남은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보안관이다.

“푸아! 더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가자! 음식 챙겨 와야지!”

머리에 물을 뿌려 열을 식힌 보안관이 채근을 했다. 맞는 말이다. 뭘 먹어야 살 수 있고, 싸울 수도 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번화가에서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보았던 그 끔찍한 광경, 좀비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사방에 피가 튀던 그 거리에 다시 가야 한다고? 게다가 저놈의 경전철역.

“저게 저렇게 중간에서 딱 가리고 있으니까 그 너머에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잖아. 저것만 아니면 여기 옥상에서 번화가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유빈은 경전철 역을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완공되지 않은 몰골마저 불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만약에 저게 시야를 막고 있지 않았다면 여기에 뒈져 있는 것들보다 더 많은 괴물들이 몰려들었을걸?”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삼식이가 말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 유빈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저쪽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그게 무언가 활용할 만한 이점이 되어줄 것 같았다. 머리에서 물기를 털어낸 보안관은 유빈과 삼식이를 재촉했다.

“저 건물이 있어서 좋으니 싫으니, 그딴 거 떠들 시간 있으면 빨리 물이라도 한 모금씩 마시고 무기 챙겨. 더 시간 끌면 걸어가다가 쓰러진다. 난 지금도 배가 고파서 머리가 아파. 이건 오 씨 아저씨 가방인가? 좋아, 여기다가 먹을 걸 담아 오면 되겠네.”

보안관은 공구 가방을 비운 다음 비스듬히 메고 철책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유빈의 머릿속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휘몰아쳤다. 이건…… 너무 무모하다. 유빈은 다급하게 보안관을 불렀다.

“잠깐! 잠깐만! 보안관, 이게 아니야.”

“응? 왜 그래?”

보안관이 뒤를 돌아봤다.

“가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이 있어?”

유빈이 물었다.

“계획? 별다른 계획씩이나 필요한 상황인가?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못 먹은 지 거의 만 이틀째야. 그리고 저 너머 번화가에는 먹을 게 잔뜩 있고. 저길 넘어간 다음, 번화가 가장 귀퉁이에 있는 가게에서라도 아무거나 음식을 좀 챙겨 오자. 뭐, 그러다가 놈들 한두 마리를 만나면 죽이는 거고. 이게 내 계획이야.”

그건 뭔가 충분하지 않다. 유빈이 보안관에게 다시 물었다.

“보안관, 우리 중학교 다닐 때 스타 전적 기억하지?”

“응? 그건 난데없이 뭔 소리야?”

“기억하느냐고.”

“그래. 열 판 싸우면 아마 내가 아홉 판은 졌지. 생각하면 이상했어. 네가 손이 되게 빠르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근데 안 그래도 바쁜 지금, 그런 옛날이야기를 왜 꺼내는 건데?”

조금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안관이 허리를 짚었다.

“그때도 네가 짜증스럽게 물었지.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째서 맨날 이기는 거냐고. 지금 그 비밀을 말해줄게.”

“아, 이놈 좀 봐라? 삼식아, 들었지? 내 말이 맞았어. 유빈이, 저 자식…… 꼼수가 있었던 거야. 세상에 친구라는 게 그런 꼼수를 5년이 넘도록 말도…….”

“그건 정찰이었어.”

삼식이에게 말을 걸고 있던 보안관은 유빈의 말을 듣자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정찰? 그게 다라고?”

“응. 넌 꽤 잘해. 손도 빠르고, 몰아치는 힘도 있었지. 감도 좋아.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넌 정찰을 거의 하지 않았어. 위치 확인만 하고 나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했잖아.”

보안관은 턱을 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랬었나?”

“응. 하지만 난 정반대였어. 게임하는 내내 계속 정찰을 보내고 또 보내서 네가 뭘 하는지 알아내려고 했거든.”

“일꾼 값 50원 아깝게! 여덟 마리면 400원인데.”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못 이기는걸.”

흠, 그랬군.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빠져 있던 보안관이 말했다.

“그러니까, 먼저 정찰을 하자고?”

“맞아. 우린 지금 저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잖아. 괴물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몇 명이나 살아남았는지…… 그런 것들을 먼저 보고 와서 그다음 일을 계획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배가 너무 고픈데…….”

망설이는 보안관에게 삼식이가 제안했다.

“역에 가면 자판기가 있으니까, 콜라를 배 터지게 먹으면 되지. 그렇게만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걸?”

유빈이 신중하게 덧붙였다.

“역까지 가는 것도 조심해야 해. 너희도 어제 봤겠지만, 분명히 뽕짝 아저씨가 저 벌판 언덕 아래 어딘가로 걸어가 버렸어. 그 사람 하나만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르고, 또 우리는 개 아저씨도 역 안에서 만났었지. 어제 다리 아래로 밀어버렸지만, 산책로로 다시 기어 올라왔을 수도 있어.”

“그럼 거기까지도 가지 말자는 말이야?”

“거기도 안전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최소한의 대비를 생각해 놓고 여길 나서자고. 우리 전부 다 아무 피해 없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저것들보다 약하고 수도 적으니까 한 발짝, 한 발짝 조심해서 움직여야 해. 지금까지 우린 운이 좋았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이 지경이 됐는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가족들 생사도 모르고, 배는 등가죽에 붙으려고 하고, 바로 눈앞에는 시궁창 냄새 풍기는 시체가 한가득인데.”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이렇게 살아남았으니까…….”

유빈의 대답이 모두의 가슴을 찌르며 현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랬다.

불과 24시간 만에 실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시 되살아나 다른 사람을 죽인다. 세상은 그제와는 확연히 다른 곳이 되어 있다. 그 끔찍한 난동 속에서 대체 몇 사람이나 살아남은 걸까?

“끄응∼ 성미에는 안 맞지만, 일리는 있네. 삼식이, 네 생각은 어때?”

깨끗이 포기한 보안관은 뜨끈뜨끈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물었다.

“훗, 어처구니없군. 설마 나한테 머리를 쓰라는 말은 아니겠지?”

삼식이가 잘난 척하며 대답한다. 그래그래, 보안관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유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럼 이제 유빈이, 네가 계획을 말해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물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그런 건 하루 만에 끝낼 순 없을 거야. 오늘은 역까지 오가는 경로에만이라도 몇 가지 장치를 해두고 싶어.”

“어떤 장치?”

“함정 같은 거지. 우리는 안전하게 빠져나오고, 저놈들은 그러지 못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나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삼식이가 관심을 보이며 끼어들었다.

“예를 들자면 저 철책.”

유빈은 어제 괴물들에 의해 부서진 철책을 가리켰다. 4미터 정도의 넓이가 앞으로 무너져 내려 있었다.

“저건 이제 더 이상 괴물들을 막아주지 못해. 하지만 저렇게 됨으로써 생긴 장점도 있지. 우리를 쫓는 놈들이 어디로 올지를 미리 알고 있는 거잖아. 암만 대갈통이 빈 놈들이라도 넘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아니까.”

“음, 그러고 보니 어제 그놈들도 저기가 무너지자마자 전부 뛰어 들어왔었지. 애먼 데서 헤매는 놈 없이.”

보안관이 새삼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저기에 함정을 설치해 두고 우리가 그 부근에서 철책을 넘기만 하면 놈들이 알아서 뛰어들어 줄 거야. 예를 들어…….”

유빈은 무기가 되어줄 만한 것을 찾아 좌우로 고개를 돌려봤다.

건축자재들을 쌓아둔 팔레트, 몇 가지 공구, 각목 더미, 파이프, 알루미늄 새시, 철근, 레이저 와이어, 벽돌. 저것들 중에서 뭐가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고 싶은 유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보안관이 벌떡 일어나서 구리 파이프 한 다발과 해머를 집어 들고 왔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났으니까 뒤는 맡겨줘.”

그렇게 말하고 나서 보안관은 다시 절단기와 레이저 와이어 한 다발을 가지고 왔다. 뭘 하려는 걸까 싶어진 유빈이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 보안관은 볼트를 풀어 무너진 철책의 철망들을 떼어냈다.

그리고 삼식이의 도움을 받아 철책 기둥 아래 지면에서 40센티 정도 되는 곳에 레이저 와이어를 팽팽하게 당겨 걸었다.

“대충 알겠지? 저 새끼들이 만약 여기를 지나 달려오면, 이 철조망에 다리가 걸릴 거야. 그리고…….”

보안관은 장치를 해둔 철책 앞에 구리 파이프를 찔러 넣은 뒤, 해머로 내려쳐서 깊숙이 박았다.

“걸려 넘어지는 새끼들은 여기에 꽂히는 거지. 이런 걸 몇 개만 더 박아두면 서너 마리 정도는 따돌릴 수 있어, 운이 맞아서 아예 뒈져 주면 더 좋고, 어때? 무너진 철책마다 이렇게 해두자.”

해머에 맞아 찌그러진 구리 파이프의 단면은 원래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굵기도 적당하다. 유빈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함정의 구조를 살피던 삼식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거, 괜히 멀쩡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걸리면 어쩌지? 그냥 와이어 한두 가닥이라서 미처 못 보고 뛰어올 수도 있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꾸 시간이 지연되자 보안관은 짜증을 부렸다.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저렇게만 해두면 난 불안해서 잠을 못 잘 것 같아. 잘 봐. 만약 어떤 사람이 용케 괴물들 틈에서 살아났는데 우연히 이쪽으로 도망치다가 저 와이어에 걸려서 넘어지면서 바로…… 푹! 어휴, 생각만 해도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자기 배에 파이프가 찔리는 시늉을 하면서 삼식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들어보니 그 역시 타당한 이야기다. 보안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거기에 뭔가가 있다는 표시만 하면 되는 거잖아.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가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오지 않도록.”

보안관과 삼식이는 결국 빈 음료수 캔에 구멍을 뚫어 와이어와 함께 잘랑잘랑 걸어두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준비는 된 것 같다.

“그럼, 이제 진짜로 출발하자.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해가 질 테니까.”

네 번째 철책 앞에 구리 파이프를 열댓 개 박아놓고 나니, 보안관이 차고 있는 시계로 오후 다섯 시 반이었다. 세 친구는 괴물들과 그들을 갈라놓고 있는 역사를 향해 철책을 넘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 잘 보고 있어!”

2층의 신입에게 삼식이가 레이저 와이어 더미를 탬버린처럼 흔들며 인사를 했다.

“혹시 말이야, 이런 풀밭 속에 괴물들이 기어 다니고 있으면 어쩌지?”

구리 파이프로 길게 자란 잡초들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삼식이가 말했다.

“걔들이 왜 기어 다니겠냐? 펄펄 날다시피 하더구만.”

보안관은 말 같지 않은 소리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또 말대꾸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허리가 뚝 끊어진 놈들이라든지, 아니면 두 다리가 부러져서 걷지 못하는 놈들이 팔꿈치로 사사사삭, 기어오는 거지. 오오오∼ 보안과안! 꼬추 떼어 먹자∼ 이러면서.”

“저리 꺼져, 이 새끼야! 재수 없어!”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 보안관은 달라붙는 삼식이를 밀쳐 냈다. 그러는 동안 유빈은 계속 좌우를 살피고 뒤쪽을 힐끔거렸다.

“유빈이, 넌 또 왜 그래? 똥 마려워?”

깨물려고 달려드는 삼식이의 얼굴을 밀어내며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씨, 나올 똥이 어디 있냐? 그게 아니라 내가 생각이 짧았어. 신입에게 망을 좀 봐달라고 하는 거였는데. 걘 우리보다 시야가 훨씬 넓잖아.”

이제는 꽤 멀어진 복지 센터를 돌아보니 여전히 신입은 창문에서 얼굴을 떼지 않고 눈으로 그들을 쫓고 있었다. 표정이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분명 평온해 보이기는 한다.

“뭐, 가끔 돌아보면 되지. 저 새끼가 당황해서 난리를 치고 있으면 잽싸게 도망치자.”

세 번째 철책에도 동일한 함정을 만들어둔 다음, 그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산책로에 진입했다.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 차이지만, 이곳에 오니 역 건너편으로부터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와 적막함을 깬다. 그리 큰 소리가 아닌데도 오히려 그것이 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정말 더 조심해야 해.”

삽을 바짝 치켜들면서 유빈이 다짐하듯 말했다. 길게 뻗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그리고 개천 부근의 갈대밭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정적이어서 공포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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