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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반격의 시작 (3) (25/449)


25. 반격의 시작 (3)
20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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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롸아아악! 그악!

손님들이 찾아오자 괴물들의 발광이 시작되었다. 계단 부근에서 뛰던 놈이 가장 먼저 반기며 달려들었다.

보안관이 미리 말했듯이 작전은 간단했다. 일단 괴물 두 마리는 보안관이 나서서 처리한다. 유빈과 삼식이는 비스듬히 떨어진 곳에 서서 보안관의 뒤를 경계해 주면 된다.

“그래, 와라!”

보안관이 정면으로 마주 서서 손을 까딱거린다. 동료들의 시체 더미를 밟고 달려오던 괴물은 보안관을 향해 몸을 날렸다.피딱지가 잔뜩 묻은 괴물의 입에서 누런 타액들이 제멋대로 흩날린다.

보안관은 괴물의 몸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왼발을 뒤로 빼며 몸을 돌려 괴물의 공격을 흘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스패너를 쥐고 있던 오른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빠직!

머리통이 움푹 팬 괴물이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벽에 곤두박질친다. 보안관도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쾅∼! 벽에 머리를 처박은 괴물은 목이 반대로 꺾인 채 앞으로 무너져 내렸고, 보안관의 스패너가 한 번 더 괴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콰, 우직!

스패너와 벽에 잇달아 부딪쳐 머리가 엉망으로 깨진 괴물의 몸뚱이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그르렁대는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오케이, 하나 끝!”

보안관은 곧바로 몸을 돌려 두 번째 괴물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구석에서 창밖만 기웃거리던 괴물은 키가 꽤 컸다. 놈은 크게 울부짖으면서 보안관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르르윽! 그롸아악!

옆으로 몸을 웅크린 채 기다리고 있던 보안관은 괴물의 입이 덮쳐지기 직전에 허리를 스크루처럼 돌려 올리면서 스패너로 어퍼컷을 날렸다.

떠억∼!

작살난 아래턱 때문에 아가리가 합죽해진 괴물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간다. 보안관은 스텝을 밟으면서 괴물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비틀거리던 괴물이 다시 정면을 향해 서려는 순간, 몸을 쫙 편 보안관이 이마에 직각으로 스패너를 내리꽂았다.

쩡―! 하는 맑은 소리가 울리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해 괴물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으르르!

곧바로 다시 일어나려는 괴물의 어깨를 발로 밀어 중심을 흐트러뜨린 보안관은 머리통에 계속 쇠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이미 골수와 피로 더럽혀진 스패너가 집요하게 한 점을 때려 댔다.

빠작! 빠작! 퍽!

세 번, 네 번 잇달아 내려쳤을 때, 마침내 괴물의 정수리가 움푹해지고 벌어진 두개골 사이에까지 스패너가 닿았다.

반숙 계란이 깨질 때와 비슷한 소리가 괴물의 머리에서 울렸을 때,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괴물도 축 늘어진 채 뻗어버렸다.

“하아, 하아…… 좋아, 이 새끼도 끝!”

허리를 숙인 채 잠시 숨을 몰아쉰 보안관이 기운차게 승전보를 알렸다.

“이거, 내가 해보니까 뒤통수를 때리는 게 더 낫겠어. 앞쪽은 뼈가 단단해서 잘 안 빠개져. 세 번째 놈은 아직 안 왔지?”

잔뜩 긴장해서 보안관의 싸움을 보고 있던 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제저녁부터 그들의 고막을 괴롭히던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사라져 버려서 사방이 고요해진 탓이다. 거기에 자동차 경적 같은 대도시의 소음마저 지워져 있기 때문에 모든 소리가 너무나 선명했다.

“근데, 이 소리 뭐지?”

삼식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묻는다. 유빈도 귀를 기울였다. 철렁, 철컹, 철렁∼ 그들이 내는 소리가 아닌, 쇳소리가 끼어들어 울리고 있다.

“건물 바깥쪽 같은데?”

보안관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계를 풀지 않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유빈과 삼식이도 뒤쪽을 흘끔거리며 따랐다.

시체 더미가 쌓인 계단 아래를 지나, 아직 새시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건물의 정문으로 나가니, 문제의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스물세 번째 괴물도 발견했다.

철렁, 철렁∼ 철크렁.

자재를 쌓아두던 창고 앞에서 스물세 번째 괴물은 레이저 와이어 더미 위에 쓰러진 채 일어나 보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둘둘 말아두었던 레이저 와이어가 한데 얽혀 괴물의 몸을 파고들며 그물처럼 감았고, 결국 움쭉달싹할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날카로운 면도날들이 더욱 깊숙하게 괴물의 살을 저미면서 박힌다. 덕분에 배가 갈라져 흘러나온 내장이 바닥에 길게 널려 있어서 괴물의 이동 방향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철컹, 철렁∼

세 친구가 가까이 다가오자 걸레처럼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괴물은 일어서기 위해 더 격렬히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가죽에 박힌 레이저 와이어들이 연결되어 있는 다른 와이어 더미를 울리면서 맑은 쇳소리를 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악기다. 반대쪽을 향해 엎어진 괴물의 그 잔혹한 모습을 보며 세 친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뽕짝 아저씨 애인이네.”

침묵을 깬 삼식이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 게다가 이 지경이 됐는데?”

보안관이 어이없어하면서 괴물보다 더 징그러운 것을 대하는 시선으로 삼식이를 바라봤다.

“이건 왜 울부짖지를 않았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빈이 물었다. 측면으로 돌아가 보니 그 의문은 단번에 풀렸다.

레이저 와이어에 의해 얼굴과 목이 거의 다 뜯겨 나간 상태여서 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놔둔다고 해도 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괴물은 괴물이다. 해치우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할머니라……. 이건 또 새로운 방식으로 끔찍하네.”

움찔거리는 괴물의 머리통을 스패너로 조준하면서 보안관이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유빈도 잘 안다.

가시방석에 끌려 올라온 괴물들을 처리했을 때에도 남자였던 놈들보다 여자였던 놈들의 머리통을 부수는 기분이 훨씬 더러웠다. 게다가 이건 잠시나마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봤던 괴물이다.

뭐라고 욕설을 내뱉은 보안관이 스패너를 힘껏 내려쳤다. 씨발, 한 번에 죽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괴물은 세 번째의 스패너를 맞고서야 그 역겨운 꿈틀거림을 멈췄다. 괴물의 머리통이 울리면서 쇳소리가 철렁거릴 때마다 모두 마음속으로 이 X같은 상황에 대해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씨발, 씨발…….

“괜찮아, 보안관?”

일을 다 끝마치고 유빈이 걱정스레 물었다. 보안관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이내 감정의 앙금을 떨어냈다.

“아아, 괜찮아. 이미 죽어 있는 놈들이잖아. 맞지? 이제부터 그냥 청소기 코드 뽑는 거라고 생각할래.”

그건 정말 바람직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쉬운 일도 아니었다. 유빈은 등을 쓸어주는 것으로 친구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다 끝났어!”

삼식이가 2층의 신입을 향해 외쳤다. 2층 창문 너머로 몸을 기울인 채 보고 있던 신입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꼬르륵! 작은 첫 승리를 만끽하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냉혹한 현실이 텅 비어 있는 그들의 위장을 압박했다.

“이제 음식을 구하러 가자.”

수도꼭지를 틀어 머리를 적시고 물을 들이켜면서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별것 아닌 이야기처럼 쉽게 말했지만, 실은 엄청나게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어제 번화가 골목에서 보았던 그 장면은 아직도 생생히 눈앞에 떠오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공격해서 물어뜯어 대던 수백의 괴물들.

지금쯤 어제의 희생자들까지도 모두 괴물로 변해 그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서울 전체가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리라는 점이다. 그런 괴물들의 소굴에 무작정 뛰어들 수는 없다.

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유빈은 새삼스레 사방을 둘러보았다.

양옆으로 연결된 도로는 낮은 언덕으로 가려진 지평선 부근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곳에는 평소에도 하루에 손에 꼽을 정도의 자동차들만 지나던 곳이긴 하다.

뒤편으로는 나무가 가득한 산이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리고 정면, 눈앞에는 철책과 넓은 벌판, 그리고 우뚝 솟은 경전철역이 있다.

“젠장, 저놈의 건물. 저것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여.”

유빈은 번화가 방향의 시야를 가린 채 흉물스럽게 서 있는 폐역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

“빨리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동작 봐라! 뛰어! 뛰어!”

사방에서 부사관들이 악을 쓴다. 수백의 발자국 소리가 무질서하게 울려 대고, 서두르는 병사들끼리 서로 부딪친다.

무엇보다도 저 붕붕거리는 프로펠러 소리가 귀를 울려서 정신이 아득하다. 진우에게 있어 생전 처음 걸린 비상은 대혼란, 그 자체였다.

“이 새끼들! 아직도 밍기적거리고 있어? 빨리 튀어나와라! 실제 상황이다!”

쫓기는 사람처럼 군장을 챙기고 총을 집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생활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군 생활이라면 모르는 게 없을 것만 같은 선임들의 얼굴도 꽤나 상기되어 있다.

“허! 씨발!”

평소 늘 싱겁고 농담을 좋아하던 김 상병이 연병장을 보자마자 가볍게 탄식을 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커다란 CH―47 치누크 헬기 두 대가 상공에서 대기 중이고, 또 다른 두 대는 연병장에 내려앉아 뒤쪽의 해치를 활짝 벌린 채 완전무장한 병사들을 태우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처음 보는 치누크의 크기는 위압, 그 자체였다.

“하아, 하아, 우우욱, 웁.”

무릎 앉아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동안 진우와 같은 기수 이병 하나가 숨을 헐떡이다가 헛구역질까지 한다. 너무 긴장한 탓이다. 평소 고문관 기질이 다분한 녀석이기에 잔소리를 하는 병사는 없었다.

비틀거리던 녀석이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다시 앉는다. 혹여 시범 케이스로 기합을 받게 될까 봐 진우는 슬쩍 자세를 바꾸라는 신호를 줬다.

“저, 전쟁입니까? 우, 우리 다 죽습니까, 김 상병님?”

고문관은 눈물이 글썽해져서 물었다. 김 상병은 시선을 전방으로 유지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목소리 낮춰, 이 새끼야. 그리고 진정해. 전쟁 아니니까.”

“어, 어떻게 아세요? 아, 아니, 아십니까?”

“여기가 화천이야. 포병이 사방에 깔렸다고. 그런데 잘 들어봐. 대포 소리 나냐? 응? 그리고 실탄 지급을 안 했잖아. 이거, 그냥 훈련이야. 훈련인데 실제인 척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쫄아서 또라이 짓만 하지 마. 알아먹었냐, 이 어리바리한 새끼야?”

“네, 넷.”

고문관은 그제야 좀 안심이 됐는지 가슴을 쓸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진우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훈련이기에 팔자에도 없는 치누크를 다 타게 된다는 말인가. 육공 트럭도 몇 번 못 타봤는데…….

진우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전투복에 달린 특등 사수 휘장을 내려다보았다. 야간 사격에서 표적을 모두 명중시키자 기분이 좋아진 대대장이 직접 주문해 달아준, 요란스러운 물건이다.

“사단 사격 대회에서 우승만 해! 그러면 그날 바로 헬기 타고 휴가 가게 해줄게! 30박 31일짜리로!”

대대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것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2소대!”

부사관이 다가와 진우의 소대를 지목했다.

“내가 뛰라고 하면 신속하게 3호기에 오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탑승하자마자 안쪽으로 들어가서 순서대로 착석한다. 일어서 있거나 이빨을 보이는 새끼는 곡소리 나는 거다. 어떻게 한다고?”

“이빨 보이지 않습니다!”

“알아먹었으면 뛰어!”

모두들 벌떡 일어나 헬기까지 달렸다. 헬기에 다가가자 회전하고 있는 거대한 프로펠러 때문에 모래와 작은 돌들이 정신없이 날렸다.

“쭉쭉 들어가! 빨리!”

해치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요원이 등짝을 후려치며 악을 쓴다. 물론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하나도 알아먹을 수 없다.

고막을 울리는 소음 속에서 빨간 천 의자가 양쪽으로 길게 내려진 치누크의 실내를 마주하자 진우의 가슴은 한층 더 빠르게 두근거렸다.

자리에 끼어 앉아 K―2를 꽉 쥐었다. 건너편 벽의 둥근 창 너머로 치누크가 견인할 화물들을 그물망에 담고 있는 작업 현장이 보인다. 그 큰 상자들이 모두 실탄이란 걸 깨달은 순간, 진우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이건 훈련 따위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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