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반격의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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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반격의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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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반격의 시작 (1)
2021.09.23.
“우선 저놈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걸 정리해 보자.”
유빈이 작업반장의 다이어리를 가져와 볼펜으로 하나씩 번호를 붙여 쓰기 시작했다. 제1원칙을 적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러주었다.
“저 새끼들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전염돼. 할퀸 건 괜찮은 것 같고.”
보안관과 삼식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아픈 걸 못 느끼는 것 같아. 그리고 내장이 쏟아져도 안 죽어.”
“그건 그냥 한 항목으로 정리하자. 아무리 부상을 입혀도 머리통이 작살 나지 않는 한 계속 덤빈다.”
“그래. 그리고 더럽게 빠르지. 우리보다 확실히 달리기는 잘해. 평지에서 만나면 아마 몇 분 내로 따라잡히게 될걸?”
긴 다리로 100미터를 11초에 끊는 삼식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니, 보통 사람들은 더 금방 먹이가 되고 말 거다. 보안관이 중요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힘은 세지만 철책을 넘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나빠. 닭대가리보다도 못한 거야.”
생존을 하는 데 있어서 그 특징은 매우 중요했다.
아래층을 배회하며 밤새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저놈들이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더라면 세 친구는 벌써 죽었거나 한패가 되어 함께 그르렁대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착안한 유빈이 다섯 번째 특징을 적었다.
“우리를 죽이고 싶어 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에 띄는 사람은 다 죽이고 싶어 하는 거겠지.”
“……냄새가 존나게 나. 씨발, 시궁창 냄새 같은 게.”
구석에서 신입이 거들었다.
“좋아, 신입. 여기 써뒀어. 에…… 이 정도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다 쓴 것 같은데? 또 생각나는 거 있는 사람?”
삼식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두려움이 없다? 저 새끼들은 눈앞에서 자기편 대갈통이 터져 나가는 걸 뻔히 보고 나서도 다음 놈이 그 구멍으로 또 얼굴을 들이미니까.”
“씨발, 그런 새끼들이랑 싸워서 어떻게 이겨…….”
삼식이의 말에 번호를 붙여 적고 있을 때, 신입이 좌절하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보안관이 자신 있게 대꾸했다.
“두려워할 줄 알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우리가 더 유리해.”
유빈도 그 말에 동의했다. 원칙이 정리됐으니 이제 밤새도록 그가 생각해 낸 전술에 대해 설명할 차례였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저 아래에서 돌아다니는 놈들을 다 정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 갇힌 우리가 결국 굶어 죽게 될 거야.”
쪼르르륵∼!
비장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소리가 배에서 울린다.
“내 계획은 이래. 가능한 한 덜 위험하게, 그러면서도 빨리 저놈들을 죽이는 거지. 우리한테는 유리한 점이 몇 개 있어. 첫째, 우리가 위에 있으니까 지리적 이점을 이용할 수 있어. 둘째, 우리는 저 새끼들보다 월등하게 머리가 좋아. 셋째, 도구를 써서 싸울 수 있어. 여기는 다행히 도구도 많고…… 또 보안관이라는 막강한 전력도 있지.”
보안관이 팔을 걷고 알통을 자랑한다. 유빈은 작업반장의 다이어리에 볼펜으로 대충 그림을 그려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내가 생각한 건 이거야. 하나씩, 하나씩 처리하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대신에 우리가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어. 아주 중요한 장점이지.”
“흐음, 흐음…… 이렇게 말이지? 생각대로 잘될까?”
보안관과 삼식이가 그림을 보면서 구조를 이해하는 동안 유빈은 엘리베이터 구멍을 덮어뒀던 스티로폼과 철근을 걷어냈다. 아래를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발광해 대는 게 보인다.
“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해봐야 할 실험은 두 개야. 하나는 이 좀비들이 사람이 아닌 물건에게도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고…….”
유빈은 벽돌 하나를 집어 들고 구멍 아래로 던졌다. 위에 선 유빈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괴물을 지나 바닥에 부딪친 벽돌이 파삭! 소리를 내며 깨지는데도 누구 하나 돌아보는 놈이 없다.
두 개, 세 개를 연달아 던졌다. 그래도 반응은 같았다. 그들은 오직 유빈을 향해서만 달려들고 싶어 했다. 유빈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엔 수도 호스를 집어 와 1층으로 늘어뜨렸다.
“이것 봐. 이놈들은 이 수도 호스가 나랑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몰라. 이걸 잡아당기면 나도 끌려 떨어진다는 생각 따위는 없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유빈이 말했다. 만약 놈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호스로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괴물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유빈의 예상이 모두 맞았다.
“두 번째 실험은 좀비들 사이에 동료 의식이라는 게 있는가 하는 점이야.”
그렇게 말하며 유빈은 다시 벽돌을 집어 겨냥한 후, 아래로 힘껏 집어 던졌다. 딱! 벽돌은 중앙에 서 있던 괴물의 머리를 치고 날아갔다.
살갗이 찢긴 괴물의 머리가 홱 꺾였다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주변에 위치한 다른 괴물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시선을 유빈에게 고정시키고 있다.
유빈은 다시 한 번 같은 놈에게 벽돌을 집어 던졌다. 이번에도 녀석은 피하지 않았고, 다른 놈들의 시선도 벽돌을 쫓아 돌지 않는다. 벽돌에 맞은 녀석의 머리통에는 두 개의 깊은 상처가 생겼다.
‘좋아, 생각했던 대로야.’
유빈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보안관과 삼식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 작전, 먹힐 것 같아!”
“그런데 너, 왜 갑자기 저놈들을 좀비라고 불러?”
삼식이가 물었다. 유빈이 조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좀비라고 부르면 저놈들을 죽이는 게 훨씬 덜 힘들 것 같아.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놈들이 이미 죽었다는 걸 확인시켜 주니까.”
유빈은 다이어리의 그림을 신입에게도 내밀었다.
“뭐야, 이 낙서는…… 나더러 어쩌라고?”
신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다이어리를 밀어낸다. 유빈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이 세상에 내가 알고 있는 생존자는 네 명뿐이야. 신입, 우리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는 네 힘도 필요해. 서로 도와야 돼.”
신입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홉뜨고 유빈을 노려봤다. 잠시 동안 침묵하고 있던 신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위험한 건 안 할 거야.”
“절대 위험하진 않아. 조금 무서울 수는 있지만.”
세 친구는 먼저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 위에 설치해 놓았던 둥근 스테인리스 손잡이들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3층의 계단 구멍 위로 가져가 세 줄로 나란히 박아놓았다.
로타리 해머로 뚫은 구멍에 볼트를 넣고 있는 힘껏 조인 다음, 충분히 단단하게 고정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보안관이 해머를 사이에 넣고 지렛대처럼 당겨봤다.
“꿈쩍도 안 해. 이런 게 양쪽에 세 개씩 지탱해 주는 거잖아. 200킬로그램, 아니, 300까지도 문제없겠어.”
마치 약간 들뜬 스테이플러처럼 박혀 있는 손잡이 사이로 19밀리 고장력 철근을 여러 개 집어넣었다.
“이제 그만! 더는 안 들어갈 것 같아.”
열 개의 철근을 두 개의 묶음으로 결속시켜 두자 난간 손잡이와 3층 바닥 사이가 꽉 들어차다시피 했다.
조금의 틈은 보안관이 해머로 스테인리스를 두드려 메우면서 고정시켰다. 이제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완성되었다.
셋이 공구를 이용해서 작업하는 동안 신입은 옥상에서 건물 외벽작업용 로프를 풀어 와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잠시 휴식을 하며 물을 마시는 동안 신입은 검게 멍이 든 손톱을 보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송곳을 써가며 매듭을 풀고는 있지만, 단단한 로프는 그의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아, 씨발, 손톱 아파.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네. 이걸 왜 이렇게 꽁꽁 묶어놨는데?”
“그야, 건물 밖에 매달려서 일할 때 그게 생명줄이니까 그렇지.”
휴식 시간 뒤에 만든 것은 로프에 연결할 무기였다. 원래 달려 있던 작업용 나무 의자를 기본 틀로 삼기로 하고, 그 위에 덧댈 각목들에 8인치 못을 15도 정도로 비스듬히 여러 개 박았다.
그렇게 촘촘히 못질이 된 각목 여러 장을 나무 의자에 고정시키자 가로 1미터, 세로 50센티 정도의 특제 가시방석이 완성되었다.
“……살벌하다.”
보안관이 가시방석 밖으로 길게 튀어나온 못들을 만져 보면서 침을 꿀떡 삼켰다. 15센티 이상 삐죽삐죽하게 솟아오른 못들이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반짝인다.
가시방석 뒤쪽 아래에는 콘크리트 못으로 고정시킨 벽돌을 덧댔다. 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자, 이제 평형을 맞추는 게 문제인데…….”
유빈은 나무 의자에 달려 있던 고리와 양쪽 끈의 길이를 조절했다. 똑바로, 힘 있게 날아가는 것이 이 무기의 관건이다.
철근 기둥 아래의 2층 계단 옆에는 양쪽으로 로프를 묶을 난간 손잡이도 하나씩 박아 넣었다.
삼식이와 보안관이 하나씩 잡고 있는 로프 두 개를 가시방석과 묶은 후에 유빈이 구멍 반대편에 가서 서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퉤! 좋았어. 준비 완료야.”
장갑을 낀 손에 침을 탁, 뱉어 비비면서 보안관이 외쳤다. 삼식이도 올림픽에 나온 체조 선수처럼 한 팔을 위로 들어 보였다. 작업용 고글을 쓰고 있는 폼이 제법 멋지다.
‘잘돼야 하는데…….’
새벽부터 시작해서 10시까지, 무려 네 시간 이상을 투자한 작업이다.
유빈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계단 구멍 사이 아래를 노려보았다. 1층에서는 여전히 괴물들이 그를 향해 그르렁거리며 펄쩍펄쩍 뛰고 있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상황. 오히려 한 번에 두 놈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약간 헐거워질 때까지 로프를 당겨 거리를 조정한 뒤, 유빈은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가시방석을 힘차게 내던졌다.
쉬이잉!
두 개의 로프에 매달린, 묵직한 특제 가시방석이 호를 그리며 힘차게 날아간다.
첫 번째 시도는 너무 짧았다. 가시방석이 괴물들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갈 때, 유빈이 눈을 찡그리며 외쳤다.
“짧다! 당겨!”
허공을 가른 가시방석이 천장에 부딪혀 부서지지 않도록 보안관과 삼식이가 팔뚝에 힘을 주며 로프를 당겼다.
다시 끌어 올린 가시방석을 가지고 발사 위치로 돌아온 유빈은 눈대중으로 길이를 조절한 다음, 머리 위로 들고 겨누었다.
“셋에 갈게! 하나, 둘, 셋!”
유빈은 힘차게 두 팔을 휘둘렀다. 슈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졌던 로프가 쫙 펴지며 가시방석이 아래로 내리꽂혔다.
퍼억!
그리고 겨눴던 놈의 가슴팍에 박혔다. 가시방석을 얻어맞은 괴물의 몸이 들썩이는 순간, 유빈이 건너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맞았어!”
신호에 맞춰 보안관과 삼식이는 잡고 있던 로프를 힘주어 당겼다. 콰득! 괴물의 몸이 공중으로 조금 떠오른다. 그러나 놈은 여전히 발을 허공에 버둥이며 발광을 해 댄다.
“당겨! 천천히!”
하나둘, 하나둘, 구호와 함께 보안관과 삼식이는 서로 길이를 맞춰가며 팽팽해진 로프를 당겼다.
끼이잉∼! 로프가 걸린 철근이 울리면서 가시방석에 꿰어진 괴물은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온다. 10여 회쯤 끌어 올리자 끄드득! 끄득!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뒤통수가 구멍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만 더 당겨줘!”
보안관의 옆으로 건너온 유빈이 해머를 집어 들며 부탁했다.
머릿속으로 이미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정작 실제 상황이 되자 케블라 장갑을 낀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유빈은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이건 좀비다. 사람이 아니다. 죽여주는 게 이놈을 도와주는 거다. 이건 좀비다…….’
로프를 철근에 묶어 고정시키다가 유빈의 떨림을 눈치챈 보안관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가 할게, 유빈아. 역할을 바꿔. 이리 와서 밧줄 잡아.”
대갈통을 쪼개는, 그 징그러운 손끝의 감촉을 직접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제안,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피해갈 수 있다는 말. 그건 꽤 강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유빈은 크게 호흡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보안관. 넌 어제 했잖아. 이제 내 차례야.”
유빈은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해머를 꽉 쥐고 팔을 들어 올렸다. 한 번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치는 사람도, 밧줄을 잡고 버티고 있는 사람도 모두 더 힘들어진다.
“이야아!”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내려쳐진 해머가 괴물의 두개골을 박살 냈다. 콰작! 머리통이 으깨져 납작하게 터져 버린 괴물은 갑자기 버둥거림을 멈추고 축 늘어져 버렸다.
“흐으으으∼”
굳게 다물어진 유빈의 입술 사이로 신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토하기 직전의 표정인 신입과 함께 해머 자루로 괴물의 시체를 가시방석에서 떼어내는 유빈의 고글 안쪽은 김이 가득 서려 있었다.
찌이이익! 괴물의 몸을 가시방석에서 절반 정도 떼어내자 하중을 못 이긴 가죽이 찢어지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털썩∼!
4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친 괴물의 시체는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처박혔다.
다른 괴물들은 그런 사건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유빈과 친구들을 향해 변함없는 괴성을 짖어 댔다.
그롸아아아악!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닦은 뒤, 유빈은 검은 피가 묻은 해머로 바닥에 긴 선 하나를 그었다. 이제 스물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