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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5시간 뒤 (7) (22/449)


22. 5시간 뒤 (7)
202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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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갑자기 신입이 고성을 지르며 보안관을 가리켰다.

“너 이 새끼, 너도 변하는 거잖아! 얘들아, 이 새끼 아래로 밀어버려야 해! 이것도 좀비가 된다고! 우리한테 달려들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쳐서 죽이자!”

갈라진 목소리로 어찌나 악을 바락바락 쓰는지, 세 친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반쯤 돌아서 계속 혼잣말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 녀석 역시 삼식이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던 모양이다.

“닥쳐, 이 개새끼야!”

유빈이 벌떡 일어나서 보안관의 눈앞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던 신입을 밀어 쳤다.

“밀어버리자고? 이런 씨발 놈이! 말이면 단 줄 알고. 응? 내가 널 밀어주면 좋겠냐, 이 개새끼야?”

유빈이 핏대를 세우며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자 신입이 발버둥을 쳤다.

“이 멍청한 새끼들! 의리니 우정이니 찾다가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세상 사람이 다 변하는데, 저 새끼라고 안 변할 것 같아?”

“이게 그래도! 아가리 안 다물면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

“그만해! 유빈이, 너도 그렇게 화내지 마! 저 새끼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보안관이 끼어들어 두 사람을 떼어놨다. 씩씩거리는 유빈을 앉히고 다시 신입에게 다가가자 신입은 빽!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만지지 말라고! 난 옮기 싫어!”

보안관은 의외로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두 손을 들며 뒤로 물러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유빈이 말했다.

“뽕짝 아저씨가 물렸던 게 네가 발목을 잡혔던 것보다 나중이야. 맞지?”

보안관과 삼식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빈이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변했는데도 아직 멀쩡한 걸 보면, 넌 괜찮은 거 아닐까?”

“……그 사람이랑 나랑 왜 그런 차이가 있는데?”

“모르겠어. 무슨 차이지? 음, 그 사람은 물렸고, 그리고 죽었지. 넌 그냥 할퀴어진 거고.”

유빈은 열심히 논리를 만들어보려 하는데, 신입이 쇳소리로 찬물을 끼얹었다.

“이 등신들아! 잠복기라는 것도 모르지? 하다못해 감기가 옮아도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다고!”

유빈이 고개를 돌리고 사납게 쏘아붙였다.

“잠복기를 아는 새끼가 면역은 왜 모르냐? 제발 좀 닥치고 있어!”

“아, 모르겠어……. 씨발. 얘들아, 나 짜증 난다.”

보안관은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토했다.

“괜찮아, 보안관. 괜찮아진다고.”

유빈은 고개를 푹 숙인 보안관을 끌어안았다. 삼식이는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더 포갰다.

창밖으로는 핏빛처럼 붉은 저녁놀이 하늘을 점차 물들여 가고 있었다. 너무나 두려운 밤이 다가오는 중이다.

“사사 십육, 사오 이십, 사육에 이십사. 사칠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약간은 진정된 보안관은 열심히 구구단을 외웠다. 그가 볼 때 1층의 괴물들이 인간과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머리가 지독하게 나쁘다는 것이었다.

보안관은 자신이 지각 능력을 잃지 않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달래고 싶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뭔가 지적인 지식이라고 할 게 거의 없었다.

좋든 싫든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결국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고작 구구단과 알파벳뿐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보안관은 구구단 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칠오 삼십오, 칠육에 사십이, 칠칠에 사십구, 칠팔 오십육…….”

“오십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곁을 지키고 앉은 삼식이가 조그만 목소리로 정정을 해주자 보안관의 눈동자가 불안에 흔들렸다.

페인트 통 속에 각목 조각들을 집어넣고 불을 붙이기 위해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유빈이 삼식이를 나무랐다.

“삼식아, 헷갈리게 하지 마!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보안관. 오십육이 맞아.”

바짝 말라 있던 땔감들은 아니지만, 다행히 그럭저럭 불이 붙어주었다. 이제 조금 뒤 해가 지면 이 정도의 조그만 불빛도 굉장히 절실해질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여전히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신입, 담배 한 대만 더 줘.”

보안관에게 타박을 당하고 옆자리에서 쫓겨난 삼식이가 신입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입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까 줬잖아. 나도 몇 개비 안 남았어. 사서 피워.”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담배 사 오겠다고 간 사람이 죽은 것 같단 말이야. 그럼 네가 팔아. 한 개비에 500원 낼게, 두 개만 줘.”

“됐어. 나 피울 것도 없어.”

“쳇, 치사한 놈.”

조금 분해하며 서성이던 삼식이는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스티로폼으로 덮인 구멍 바로 옆을 지나는 것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삼식아, 거긴 왜 올라가?”

“작업반장님 가방 좀 뒤져 보려고. 담배가 있지 않을까?”

잠시 후, 삼식이는 눈에 익은 커다란 공구 가방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하나는 작업반장의 것이고, 하나는 황 씨 아저씨 가방이다.

“오씨 아저씨 가방은 위에 없어. 1층에 있나 봐.”

먼지가 꼬질꼬질 묻은 공구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은 뒤, 삼식이는 쪼그리고 앉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다. 작업반장의 가방 먼저 열었다.

“억, 입었던 팬티다. 크∼!”

삼식이가 코를 찡그리면서 팬티 더미 몇 개를 손끝으로 집어 옆에 꺼내놓았다. 집이 지방이어서 한 번 출장을 나왔다 하면 보름 이상씩 여관방 신세를 지곤 했다.

그다음에 나온 것은 플래시다.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플래시를 발견한 삼식이는 몇 번 딸깍거려 본 다음 ‘필요한 것’으로 분류했다.

“찾았다! 이것 봐. 있었지.”

1밀리 담배 한 뭉치를 꺼내 든 삼식이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한 보루에서 두어 갑 빠져 있다.

신입이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삼식이를 가만히 쳐다본다. 시선을 의식한 삼식이는 한 갑을 신입에게 토스하며 말했다.

“자, 이제 아까 얻어 피운 거 갚았다.”

그다음에 나온 것들은 별로 대단치 않았다.

러닝셔츠, 라이터 몇 개. 너덜너덜한 다이어리와 볼펜, 줄자와 공업용 커터, 치약, 칫솔, 낡은 작업복과 수건, 두루마리 휴지 두 뭉치, 쇠톱과 펜치 같은 공구 몇 가지, 그리고 싸구려 손목시계는 보안관이 건네받아 찼다.

담배를 피워 문 삼식이는 이번엔 황 씨 아저씨의 가방을 열었다.

“먹을 것 좀 나와라.”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맨 처음 삼식이를 반긴 건 엄청난 양의 콘돔이었다.

“하나, 둘…… 네 박스나 돼! 이 아저씨 대체 이걸 다 언제 쓰려고……. 뭐냐, 능력에 안 어울리는 이 야심은? 하하하.”

손전등, 수건과 양말 따위를 들어내고 나니 보물이 나왔다.

20개들이 커피 믹스 한 상자. 너무 대단한 물건이어서 빛이 나는 것 같다. 멍하니 보고 있던 유빈도, 구구단 외우기에 여념이 없던 보안관도 오오, 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좋았어! 음식이다! 자, 먹어! 먹어!”

삼식이는 급하게 상자를 뜯어 네 명을 위해 골고루 나눴다.

죽을 만큼 배가 고팠던 상황이라 모두들 물도 없이 커피 믹스 봉지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한 사람 앞에 다섯 개는 정말 금방 사라졌다.

“아, 젠장. 커피 믹스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보안관이 물로 입가심을 하면서 푸념했다. 비어 있는 믹스 봉지를 쪽쪽 빨면서 그러게, 하며 유빈도 고개를 끄덕인다.

“얘들아, 이것 봐.”

삼식이가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는 말투로 물배를 채우고 있는 보안관과 유빈을 불렀다.

삼식이가 손에 권총처럼 쥐고 있는 것은 노란색 디월트 네일 건이었다. 그 외에도 황 씨 아저씨가 큰맘을 먹고 투자한 작업 공구들이 많이 보였다.

충전용 로타리 해머, 회전 톱, 전동 드라이버. 조수를 원하는 만큼 쓸 수 없는 요즘에 작업 속도를 당기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아직 할부금도 다 못 갚은 물건들일 텐데, 정작 주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 돈 받을 사람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배터리도 꽉 차 있네.”

충전 램프 세 개가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한 삼식이는 다시 배터리를 끼워 넣은 뒤 007처럼 자세를 취해본다. 몸을 튼 채 커피 믹스를 아껴 먹던 신입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게 뭐야?”

“네일 건.”

“네일 건이 뭔데?”

“망치 대신 쓰는 거야. 여기에 이렇게 못 카트리지가 있거든. 그걸 넣고 이걸 누르면 못이 나가는 거지. 피융! 피융!”

못 카트리지를 꺼내 보여준 뒤, 삼식이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전원을 넣고 땔감용 각목에 네일 건을 댄 뒤, 방아쇠를 당겼다. 위잉― 뚜청, 하는 소리와 함께 4인치 각목에 못이 박혀 들어간다.

“씨발, 그거 총이랑 똑같잖아!”

흥분한 신입이 벌떡 일어나서 달려들었다.

“너희 진짜 등신 아니냐? 이걸로 좀비 새끼들 다 팍팍 쏴 죽여 버리면 되잖아? 씨발, 나 줘. 내가 쏠게!”

너무 흥분한 신입이 침을 막 튕기는 바람에 삼식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기…… 너, 반장님 가방에서 나온 치약 좀 먹어야 될 것 같다. 냄새가…….”

“총이나 달라고! 내가 쏠 테니까!”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엉겨 붙는 신입을 밀어낸 뒤, 삼식이는 대여섯 발짝 떨어진 아이스박스를 향해 네일 건을 겨눴다. 앞쪽의 센서를 당긴 뒤 방아쇠를 누르자 못이 연발로 날아간다.

피융! 피융! 피융!

못은 모두 명중했지만, 박히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신입은 뭘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삼식이를 바라봤다.

“이건 그냥 바짝 대고 쏘지 않으면 안 박혀. 몇 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살짝 찍히는 정도로 끝난다고.”

“뭐야? 왜 그렇게 좃같이 만들어놨어? 이왕이면 멀리서도 맞게 하면 좋잖아?”

삼식이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너 같은 놈이 사람에게 쏠까 봐 그랬겠지.”

순식간에 희망이 사라져 버린 신입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구석 자리로 돌아가서 웅크리고 누웠다. 타닥거리며 불이 타오르는 페인트 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보안관이 말했다.

“우리 가족들…… 어떻게 됐을까?”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에 억지로 밀어 넣어두었던 생각이라 다들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유빈이 무겁게 입을 뗐다.

“그냥 다 무사할 거라고 믿어.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구하러 가겠다고 하면 건방진 말이겠지?”

모두들 말이 없었다. 이곳에서 그들이 살던 동네까지는 80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져 있다.

고작 4미터 아래의 괴물 몇 마리도 어쩌지 못해 이렇게 갇혀 있는데, 그 2만 배의 거리를 얼마나 많을지도 모르는 괴물을 뚫으며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타닥! 탁! 타닥!

페인트 통 속에서 어지럽게 춤을 추는 작은 불꽃에 집중하며 세 친구는 어두운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을 아직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었다.

사방이 고요해서 아래층의 괴물들이 내는 울부짖음은 더 크게 울렸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 속에 묻혔다.

오로지 바짝 붙어 앉아 있는 친구의 숨결과 온기만이 그들이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독하게 피곤했지만, 아무도 잠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게 길고 긴 밤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그리고 구조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이럴 줄 알았어.”

동이 터오는 새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느껴진 아침이었다. 보안관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말했다.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던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내가 미쳤었지. 평생 남에게 의존했던 적이 없으면서……. 어이, 친구들!”

보안관이 유빈과 삼식이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끼리 싸우는 수밖에 없어! 저 새끼들, 죽여 버리자!”

어제 오후부터 내내 얼이 빠져 있던 보안관이 이제야 평소대로 돌아온 것 같아, 유빈과 삼식이는 웃으며 보안관의 넓은 가슴을 두드려 주었다.

“좋아, 죽여 버리자!”

유빈은 벌떡 일어나 공구 가방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저 아래의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밤새도록 고민을 하고 또 했다.

유빈이 로타리 해머와 네일 건을 꺼내 들자 구석에서 다크 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던 신입이 물었다.

“무기도 안 되는 걸로 뭘 하려고?”

“무기를 만들 수는 있지.”

위이∼잉!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는 로타리 해머의 드릴을 들어 보이면서 유빈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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