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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1.
눈을 가늘게 뜬 채 홈즈처럼 담배를 몇 번 뻑뻑 피워 댄 다음, 삼식이가 내놓은 결론은 그거였다. 워낙 황당한 이야기라서 유빈과 보안관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건성으로 물었다.
“어이구, 그러세요? 명탐정님, 왜 그런 추리를 다 하셨나요?”
“저것 봐. 저기 철책에 매달린 사람들 전부 다 상처를 입었어. 그것도 대부분 아주 크게.”
그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조금은 호기심이 생긴 유빈과 보안관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괴물들 하나하나를 살펴봤다.
삼식이의 말이 맞았다. 입 주변에 묻어 있는 피에 홀려 주목하지 않았지만, 놈들은 거의 모두 목이나 팔다리, 아니면 옆구리라도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친 것하고 전염이 무슨 상관이야?”
보안관이 묻자 삼식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아이 참, 그러니까 이런 거야. 저렇게 센 놈들이 전부 다 우연히 다쳤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약한 놈일 때 다친 거고, 그다음에 미쳐서 힘이 세졌다는 말이지.”
“미안한데……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어.”
보안관이 답답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유빈은 알아들었다. 너무 그럴듯한 가설이라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지금 저놈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는 인간이 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크고 원시적이다. 다시 말해 깨물거나 할퀴어서 난 상처들이다.
현대인은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는다. 물어뜯기보다는 주먹으로 때리고, 더 큰 힘을 원하면 날카로운 것을 이용해 찌르거나 베어낸다.
저놈들이 모두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고, 어떤 계기 때문에 괴물로 변한 것이라 생각하면 아귀는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물론 그 계기란…….
“저 새끼들에게 상처를 입으면 안 돼. 그러면 병이 옮아.”
삼식이가 말했다.
바로 그렇다. 하지만 유빈은 삼식이의 논리에 한 번 더 저항해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저렇게 미친 듯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는 병은 들어본 적도 없어. 대체 무슨 병에 걸리면 내장이 쏟아져도 멀쩡하게 뛰어다니는데?”
“왜 없어? 영화에도 나오잖아. 그……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좀비 같은 거.”
흡혈귀에 좀비라니…….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버린 감은 있지만, 이 정도면 삼식이로서는 오랫동안 진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꽤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유빈은 식은땀을 흘리며 보안관을 돌아보았다.
“맞아. 보안관, 너 아까 다친 덴 좀 괜찮아?”
보안관은 자기 발목을 들어 보인다. 할퀴어 찢어진 상처는 조금 부어올라 있었다.
“음, 뭐…… 대충. 물로 씻기는 했는데…….”
보안관의 상처를 잊고 있던 삼식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 내, 내가 조금 전에 말했던 거 다 취소! 뻥이야, 뻥! 다쳐도 전염 안 돼!”
의외로 보안관은 무덤덤했다.
“당연하지. 네가 하는 황당한 소리를 믿을 줄 알았어?”
“그건 그런데, 소독은 해두자. 아까 소주 있다고 했지?”
유빈은 귀찮아하는 보안관을 달래 앉히고 발목에 소주를 조금씩 부었다. 상처가 따끔거리는지 보안관의 한쪽 눈꼬리가 올라갔다.
꽈드드득!
잠시 후, 철책이 뜯어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왔다. 결국 마지막 철책도 무너진 것이다.
영원히 버텨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자신들과 괴물들을 격리시켜 주고 있던 단 하나의 벽마저 허물어진 순간, 유빈은 뭔가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그라아아악∼! 괴물들이 괴성과 함께 복지 센터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 들어온다.
유빈은 벌떡 몸을 일으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필사적으로 놈들의 수를 헤아렸다. 스물셋. 스물세 마리의 괴물이 질주해 오고 있었다.
총 몇 마리가 쳐들어온 것인지를 파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나중에 경찰들이 구조하러 와줬을 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삼식이의 전염 이론을 듣고 난 후에는 한 마리, 한 마리의 괴물이 훨씬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다들! 구멍 뚫려 있는 데마다 잘 감시해! 알지?”
보안관은 장갑을 끼고 해머를 집어 들었다. 이 건물에서 아래와 이어진 구멍은 모두 세 개. 나무 계단이 있던 중앙, 벽 쪽의 엘리베이터 자리, 그리고 비상계단이 놓일 반대편 끝이다.
아까 철책을 못 넘었던 걸로 미루어봐서 이놈들이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이 건물의 2층까지 뛰어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세 친구의 입술을 바짝바짝 타게 만들었다.
“마음 독하게 먹어. 까딱했다간 우리가 죽는 거야!”
보안관이 다짐하듯 외쳤다.
“알았어!”
삼식이와 유빈이 해머를 꽉 쥐며 크게 대답했다. 신입은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이상한 소리를 웅얼거리며 가능한 한 구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그롸아아아악! 그악! 그아악!
바로 발밑에서 스무 마리 이상의 괴물들이 내지르는 울부짖음은 엄청났다.
텅 비어 있는 건물의 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사방에서 괴물들이 달려드는 것 같은 극적 효과가 나타났다.
괴물들 중 일부는 머리 위에 있는 먹잇감을 향해 끊임없이 뛰어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쿵! 엉덩이나 등뼈가 부서질 것처럼 호되게 곤두박질을 친 뒤에도 놈들은 벌떡벌떡 일어나 다시 점프를 하며 괴성을 질러 댔다.
부서져 내린 나무 계단 위로 뛰어오르던 놈은 착지하면서 튀어나와 있던 못을 밟았다.
덕분에 한쪽 발바닥에 나무 조각을 달게 된 녀석은 움직일 때마다 딸깍거리면서도 여전히 아가리를 벌리고 몸을 움츠렸다가 있는 힘껏 뛰어오른다.
그러는 동안 못은 더 깊숙하게 놈의 발에 박혀 들어갔고, 결국은 발등을 뚫고 나와 버렸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역겹다는 표정으로 보안관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여간 다행인 것은 발아래 1층의 괴물들이 절대 2층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저 머리가 나빠 보이는 놈들도 그 정도는 깨달았는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뛰어오르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에 녀석들은 건물의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마치 쥐가 미로 안에서 계속 방황하듯이 이리저리 바쁘게 걸어 다니며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점점 증폭된다.
하지만 바깥쪽에서도 2층으로 기어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0분여쯤 같은 꼴을 지켜보고 있자니 해머를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으아아, 왜 안 받아? 112, 씨발! 왜 안 받느냐고? 우린 다 죽게 생겼는데, 이 망할 놈의 전화기는 왜 터지지도 않고! 야이, 씨발. 112! 이 좃같은! 뒈져라, 이 개새끼들아!”
뒤쪽에 웅크린 신입은 반쯤 미쳐서 전화기를 향해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녀석이 돌발 행동을 할까 두려워진 유빈이 큰 소리로 달랬다.
“신입! 진정해! 이 동네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까 어차피 경찰은 와! 너 아니어도 분명히 누군가 신고를 했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서너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해 준 다음에야 신입은 조금 안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등 뒤를 조용히 시킨 유빈이 계단을 지키고 있는 보안관에게 말했다.
“이 새끼들 그만 들여다보는 게 낫겠어.”
“왜?”
“계속 저것들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으니까 어질어질해져! 이러다가 꼭 구멍에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야!”
“나도 아까부터 그래!”
복도 끝에 서 있던 삼식이가 동의했다. 당연한 일이다. 괴물들이 고함을 내지를 때면 텅텅 비어 있는 배 속이 웅웅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불안한데……. 혹시라도 우리가 못 보는 사이에 뛰어 올라오거나 하면…….”
“경보기를 달아두자.”
유빈이 제안한 경보장치는 점심 식사 후 낮잠에 사용되던 낡은 스티로폼 패널이었다.
1층과 이어져 있는 세 개의 구멍마다 철근을 걸친 뒤 스티로폼 패널을 덮어두고, 또다시 그 위에 가느다란 철근 몇 개를 눌러둔다.
가벼운 패널은 아무런 보호도 되지 않겠지만, 그게 움직이거나 들리기만 하면 철근들이 구르면서 소리를 내줄 것이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 세 친구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중앙 계단은 워낙 넓어서 완전히 가려지진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보이니까 한결 살 것 같네.”
일을 마친 후, 삼식이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의 생각도 같았다.
“후아!”
세 친구는 아이스박스 부근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페트병에 담아둔 물을 나눠 마셨다.
쪼르르르륵, 비어 있는 배에서 간절한 소리가 난다. 바로 옆에는 신입이 전화기를 꼭 끌어안은 채 부들부들 떨어 대고 있었다.
“정말 배가 고프다. 몇 시쯤이나 됐어?”
삼식이가 창밖을 보며 맥없이 물었다. 아무도 시계는 차고 있지 않았다. 보안관이 말했다.
“글쎄, 우리가 출발했던 게 네 시니까, 여섯 시쯤 되지 않았을까? 신입, 몇 시야?”
“몇 시인 게 뭔 상관이야, 지금 다 죽게 생겼구만. 개새끼들, 어디서 저런 괴물을 끌고 와서…….”
등을 지고 돌아누운 신입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만히 보고 있던 보안관이 재빨리 팔을 뻗어 전화기를 확 낚아챘다.
“내놔, 씨발. 내 거라고!”
한 손으로 발광하는 신입을 제지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옮겨 쥔 보안관이 말했다.
“금방 줄게. 가만히 좀 있어, 이 새끼야! 6시 30분이었네. 시간 빠르구만.”
보안관은 이내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어차피 락이 걸려 있어서 시간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경찰은 언제쯤 올까? 빨리 와주면 좋겠는데.”
삼식이가 지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있을 때, 유빈이 무릎을 탁, 쳤다.
“뉴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어. 분명히 뉴스에 났을 거야.”
“그야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으니. 하지만 하루 종일 신입이 징징거렸다시피 인터넷이 안 되잖아.”
“DMB! 그건 나오지 않을까?”
“DMB?”
이번에는 신입도 반응을 보였다. 핸드폰 안테나를 뽑고 DMB를 켰다.
“안 돼. 신호가 약하대. 하여간 이 씨발 촌 동네.”
툴툴거리는 신입을 달래가며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안테나를 철근에 가져다대자 결국 화면이 나왔다.
“나온다! 나와!”
다들 구조대가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긴급 재난 특보’라는 글자가 화면 가득히 선명했다.
“여기가 재난 지역인가 봐!”
“소리 좀 키워! 소리!”
화면은 여전히 자막뿐이었다. 아나운서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 ……계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군경은 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방송 3사가 공동으로 녹음하여 보내 드리는 재난 대비 방송입니다.
― 현재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전국에서 대규모 폭동과 살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절대 외출을 삼가시고 문단속을 철저히 하면서 집 안에 머물러 계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군경은 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방송을 듣고 난 뒤, 세 친구와 신입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삼식이가 말했다.
“이거 라디오야? TV로 돌려봐. 아니면 다른 채널이라도.”
계속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채널들을 지나 마지막으로 돌린 채널에서 드디어 사람 얼굴이 나타났다.
초췌해진 아나운서가 비슷한 이야기들을 잠시 늘어놓더니 헬리콥터로 나가 있는 현장 자료 화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헤드폰을 끼고 있는 기자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 네, 여기는 지금 서울의 강남대로 상공입니다. 지금 시각이 오후 1시 18분, 아래쪽으로 보이는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공에서 비추는 강남대로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자동차들로 꽉 막힌 도로 이곳저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뛰어다닌다.
차 안의 사람을 끌어내 여럿이 덮치고, 건물마다 다급하게 쫓긴 사람들이 창문 아래로 뛰어내린다.
화면의 해상도가 낮아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세 친구가 두어 시간 전 번화가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스케일은 화면 쪽이 수십 배나 더 컸다. 번화가 쪽이 수백의 싸움이었다면, 이쪽은 수천이나 그 이상이다.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 이번에는 경찰의 대응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거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화면이 픽, 하고 종료돼 버렸다. 음악과 함께 휴대폰이 꺼졌다.
“엇! 뭐야?”
“씨발, 배터리가 없네.”
휴대폰 전원을 몇 번이나 다시 눌러봐도 돌아오지 않는다.
“충전하면 되잖아. 너 충전기 가지고 있지?”
“가방에…… 근데 여기에 전기가 들어와?”
“그야, 발전기에다가 꽂으면 되지.”
“발전기가 어디 있는데?”
“……1층에.”
유빈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다. 발전기는 1층에 있었다. 스무 마리가 넘는 괴물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곳에…….
잠시 동안 네 명은 또 말이 없어졌다. 뉴스는 안 보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기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자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아침에 삼식이가 보여줬던 그 영상은 진짜였다.
“……씨발, 경찰은 안 올 것 같아.”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있던 보안관이 침묵을 깼다.
“왜 안 오겠어?”
“아까 그 헬리콥터 아나운서가 시간 말했을 때, 오후 한 시 얼마라고 했어. 근데 지금이 여섯 시 반이야. 그러니까 다섯 시간 전의 일인데도 아직 해결이 안 됐다는 말이야. 게다가 너도 알잖아. 아침에 삼식이가 보여준 그거.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 아침부터 계속 난리였던 거야.”
“그냥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 거 아닐까?”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이고 싶어서 유빈이 억지를 부려봤다.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다른 방송들이 다 재난 특보를 내보낸다는 게 말이 안 돼. 일이 별로 나아진 게 없든지, 아니면 더 심각해진 거야.”
사실은 유빈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 뿐이다. 기억을 더듬던 보안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재난 방송에서 서울, 경기를 비롯한 전국이라고 했었지? 기억나?”
“응, 그래.”
유빈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삼식이, 저 새끼가 말한 게 맞는 것도 같아.”
“무슨 말?”
“전염된다는 거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전국적으로 난리가 날 수는 없겠지.”
그 말을 하면서 보안관은 두려운 눈빛으로 자신의 발목을 쳐다봤다. 아직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혹시 모른다. 화가 난 보안관이 원망스럽다는 듯 자기 발목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야, 진정해. 너 괜찮아! 그럴 리가 없잖아. 전염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있을 리가…….”
애타게 설득을 하던 유빈도, 숨을 씩씩거리며 분해하던 보안관도,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던 삼식이도 일순간 숨을 멈췄다.
그르렁대는 괴성에 묻힌, 아주 작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 분명하게 들었다. 노랫소리다. 세 친구는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았다.
“그것 봐. 저 새끼 말이 맞았잖아.”
이를 빠득 갈면서 보안관이 말했다. 유빈과 삼식이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반 이상 뜯겨 나가 뼈가 드러난 뽕짝 아저씨가 천천히 걸어서 벌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지 그의 걸음걸이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어깨 바로 밑에서 잘려서 없어진 오른쪽 팔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에게서 울려 나오는 노랫소리처럼 뽕짝 아저씨는 능선을 타고 유유히 걷다가 아래쪽으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