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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5시간 뒤 (5) (20/449)


20. 5시간 뒤 (5)
202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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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 왔구나? 햄버거 사 왔어?”

세 친구가 2층으로 뛰어 올라오자 잠들어 있던 신입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묻는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삼식이와 유빈이 상판에 고정되어 있던 철판을 걷어내자 보안관이 힘껏 해머를 내려쳤다.

콰직! 나무 계단이 쪼개지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삼식이와 유빈도 해머를 들고 합류했다.

급하게 해머를 휘두를 때마다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신입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야, 뭐야? 너희 미쳤어? 계단을 부수면 어떡해!”

“시끄러!”

보안관이 날카롭게 쏘아붙인 뒤, 계속 해머질을 했다. 콰드드득! 마침내 상부에 고정되어 있던 목재가 부서지고 목제 계단이 무너져 내렸다.

“하아, 이제…… 이제 됐다. 좀 진정하자.”

유빈이 땀을 닦아내며 보안관과 삼식을 둘러보았다. 특히 보안관이 걱정스러웠다.

조금 전 괴물들의 머리를 박살 낸 이후부터 녀석은 어딘가 얼이 빠진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보안관과 삼식은 허물어지듯 쓰러져서 머리를 감싸고 누웠다. 그럴 만했다.

그롸아아악!

괴물들이 질러 대는 괴성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유빈은 아직 유리가 끼워지지 않은 창문 사이로 상체를 내밀고 삼식이의 망원경으로 밖을 내려다봤다.

세 번째 철책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철망을 흔들어 대던 녀석들 중 하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놈의 흰자위가 번뜩이자 땀에 흠뻑 젖은 유빈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아아악!

포효하는 괴물을 보면서 유빈이 말했다.

“저 개새끼들, 여기까지 올 것 같은데?”

“허억, 허억…… 그래, 그러고도 남을 새끼들이야.”

보안관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대, 대체 뭐야, 그것들? 왜 사람을 잡아먹어? 그리고 왜 그렇게 목숨이 질겨?”

큰대자로 뻗어버린 삼식이가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몰라, 모르겠어. 정말 저게 뭐지? 젠장, 얼굴 가죽이 다 찢어지는데도 계속 밀고 들어오는 거 봤지?”

생각하기만 해도 이가 갈린다는 듯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 나중엔 철책에 옆구리가 걸려서 창자가 쫘악 쏟아지는데……. 아휴, 토 나와. 씨발, 그래도 계속 그 틈으로 몸을 쑤셔 넣는 거야.”

끔찍한 장면이 고스란히 떠올라 버려서 삼식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철책에 달라붙은 놈들은 여전히 괴성을 지르며 계속 밀어 대고 있었다.

지치는 기미조차 없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세 친구의 행동과 끔찍한 대화 내용에 바짝 쫀 신입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예요? 그 새끼들이라니,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다고요?”

나자빠져 있던 삼식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 뒤, 배를 움켜잡았다.

“아, 아하하! 신입…… 갑자기 존댓말하지 마, 이 쫄탱아! 아, 뛰느라 배 아픈데 웃겨서…… 하하하.”

눈물이 맺히도록 웃은 뒤 주섬주섬 일어난 삼식이가 아이스박스로 걸어갔다.

“목말라. 뭘 좀 마셔야겠어.”

“내, 내가 언제 존대를 했다고……. 대체 뭔 소리들을 하는 거냐고?”

얼굴이 빨개진 신입에게 유빈이 손짓을 하며 창문 쪽으로 와서 직접 보라고 했다. 뭐가 무서운지 신입은 주뼛거리며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했다.

“허, 이것밖에 없었나? 야, 신입, 이거 뚜껑 좀 잘 닫아두지.”

아이스박스 안을 들여다본 삼식이가 탄식했다. 보안관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음료수 얼마나 남았는데?”

“페트 병 두 개랑 캔 하나. 그리고 황 씨 아저씨가 쟁여둔 소주 두 병. 어이구, 이 소주 미지근해진 거 봐라.”

1.5리터짜리 페트병을 꺼낸 삼식이는 아이스박스에 고여 있는, 얼음 녹은 물을 손으로 떠서 얼굴을 헹궜다. 두어 번 물을 좀 끼얹고 나니 훨씬 나아지는 것 같았다.

신입이 누워 있던 자리에는 몇 개의 빈 음료수 캔이 뒹굴고 있고, 반쯤 남은 스포츠 음료 페트병에는 담배꽁초 두 개가 둥둥 떠다녔다.

“마셔.”

삼식이가 건넨 음료수를 연거푸 서너 차례 들이켜자 보안관의 안색도 조금 나아졌다. 삼식이는 음료수를 유빈에게 넘긴 다음, 수건을 물에 적셔서 보안관의 머리에 얹어줬다.

“보안관, 너 지금 얼굴 굉장히 안 좋아 보여. 괜찮아?”

“모르겠어, 그냥…….”

뭔가 말하려던 보안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수건을 당겨 얼굴을 덮어버렸다. 수건을 잡고 있는 보안관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유빈과 삼식이는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보안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아니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 괴물을 죽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대가리를 쪼개서…….

자신과 친구들이 살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그 기분이 어떨는지는 상상이 간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다면, 그건 살인마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일 것이다.

“난 이제 가야 하는데, 누가 태워다 줘야 할 거 아냐. 씨발,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이게 뭐야? 반장님 언제 오셔?”

잔뜩 주눅이 든 신입은 의도적으로 창밖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툴툴거렸다.

“반장님 안 와. 너도 못 나가고.”

다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유빈이 차갑게 말했다.

“뭐라고? 그럼 나 일당은?”

“일당?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일당 같은 게 뭐가 문제야! 아! 결국 무너졌다, 저기도.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어…….”

유빈이 철책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신입이 곁에 다가와서 슬쩍 들여다보더니 ‘억!’ 하는 비명을 질렀다.

긴 철책 중 2미터 정도의 구간이 앞으로 무너져 내리자 그것을 넘은 괴물들이 벌판을 가로질러 돌진해 오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여름 태양 때문에 그들이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피가 더욱 눈에 띄게 번들거렸다.

“저…… 저 사람들 뭐야? 대체 너희,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어흐, 저 피…….”

신입이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은 아니야. 젠장, 벌써 다 마셨나?”

음료수 병을 수직으로 세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시던 유빈이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홀을 가로지른 유빈은 건물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구멍을 붙잡고 몸을 늘어뜨린 다음,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유빈아!”

유빈이 1층으로 뛰어내리자 삼식이가 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보안관도 얼굴에서 수건을 걷고 외쳤다.

“야, 인마! 뭐하는 거야? 돌아와!”

삼식이는 계단이 있던 자리에서 상체를 숙여 유빈을 찾았다. 밖으로 급하게 달려 나갔던 유빈이 둘둘 말려 있는 파란색 고무호스를 안고 건물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온다.

“왜 그래?”

“물! 물을 생각하지 않았어. 삼식아, 이거 받아!”

이 공사장에서 수도 밸브를 연결해 놓은 것은 1층 마당에 세워 놓은 임시 수도꼭지 하나뿐이었다. 유빈은 호스 끝부분을 뭉친 다음 아래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삼식이에게 던졌다.

“잡았어! 이거 어떡하라고?”

“아무 데라도 물을 좀 받아! 아이스박스에라도 채워! 그리고 빈 페트병에라도!”

그렇게 말을 해놓고 유빈이는 또다시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삼식이는 땟국이 둥둥 떠다니는 아이스박스의 물을 바닥에 쏟아버리고 거기에 호스를 댔다.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뭐 던질 거니까 비켜 있어!”

엘리베이터 구멍 아래에서 유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안관이 대답을 해줬다.

“오케이, 아무도 없어! 너도 조심해!”

덜컹! 콰장창!

각목 쪼가리 두 다발과 빈 페인트 통이 날아와 2층 벽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제 더 없지?”

“그래! 나 좀 잡아줘!”

유빈이 도움닫기를 한 뒤 점프를 했다. 보안관은 팔을 뻗어 잡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림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난다. 유빈은 허공에서 팔을 휘젓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급하게 뛰어내린 게 실수였다. 공공건물 용도로 지어진 것이라 일반 상가나 주택과는 달리 1층 바닥부터 천장까지 4미터가 넘는다.

“으아! 어떡하지?”

두어 번 더 점프를 해본 뒤에야 의미 없는 짓이란 걸 깨달은 유빈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황씨 아저씨의 트럭에 실려 있던 사다리가 아쉬웠다.

“내가 내려가서 목말을 태워주면…….”

보안관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는 제안을 유빈이 딱 끊어버렸다.

“그럼 너는 또 누가 끌어올려? 다른 걸 좀 생각해 봐!”

“이 바보들!”

삼식이가 수도 호스를 빙빙 돌리며 다가와 보안관과 유빈에게 물을 끼얹었다.

보안관과 유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식이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면 대미지가 상당하다.

“이걸로 끌어올리면 되지! 유빈이 넌 가서 수도 호스나 빼고 몸에 묶어.”

그렇게 간단한 걸! 유빈은 자신이 얼마나 다급한 상태였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잡아 뜯다시피 해서 꼭지에서 호스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걸 몸에 친친 감으면서 계단 아래로 뛰어왔다.

“당겨!”

보안관과 삼식이 끌어당기자 유빈의 몸이 조금씩 끌어 올려졌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보안관이 우악스럽게 유빈의 손을 덥석 잡아당겼다.

“후아아∼! 잠깐이지만 아찔했다.”

바닥에 엎어져 한숨을 몰아쉬며 유빈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뭐하는 거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정신없이…… 쯧!”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신입이 불안한 얼굴로 벽에 기대며 하나 남은 음료수 캔의 뚜껑을 딴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다 신경에 거슬렸지만, 아무도 뭐라고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신입 녀석에게도 갑작스럽게 닥친 이 지랄 맞은 상황이 어지간히 쇼크일 것이다. 삼식이가 물었다.

“근데 각목이랑 페인트 통은 뭐야? 뭐하려고?”

“아아, 그거? 혹시 경찰이 이따가 밤에 오면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하니까 불을 피우려고……. 물은 많이 받았어?”

“응. 아이스박스 하나 채웠고. 다라이에도 하나 가득 채우긴 했어. 모래가 많아서 마실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빈 페트병 두 개. 근데 이렇게나 많은 물이 필요할까? 이 난리가 났으니 금방 경찰들이 올 텐데.”

물을 흠뻑 뒤집어쓴 삼식이가 윤이 나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천진하게 물었다.

보안관은 안전 헬멧을 바가지 삼아 대야에서 물을 퍼 올린 다음 머리에 쏟아부었다.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왠지 갑자기 불안해져서……. 네 말대로 되면 좋겠는데…….”

유빈은 말끝을 흐리며 물이 줄줄 흐르는 호스를 돌돌 말아서 공구 옆에 얌전히 던져두었다. 그러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놈들의 동정을 살폈다.

괴물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마지막 철책에 열심히 몸을 부딪쳐 가며 울부짖는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놈들이 아까보다 더 많아진 것 같아 유빈은 마음이 한층 무거웠다.

친구들에게 티를 내지 않으면서 속으로 놈들의 수를 세어봤다.

처음 지하 통로에서 쫓아오던 것들이 열둘 정도, 그리고 산책로에서 뽕짝 아저씨를 사냥하던 괴물이 둘. 그런데 지금 철책이 휘어지도록 무게를 싣고 있는 놈들은 스무 마리가 넘는다.

‘어디서 온 거지, 저것들은?’

유빈이 초조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보안관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암만 봐도 늘어났지?”

“……응.”

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서 이렇게 모여드는 거지? 아니, 애초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걸까?”

번화가 골목에서 목격한 괴물들은 수백 마리나 됐다. 그렇게 많은 괴물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도록 놔둘 만큼 대한민국은 치안이 허술한 나라가 아니다.

“저거랑 저건 뽕짝 아저씨랑 같이 있던 할머니들이야.”

반쯤 넋이 나간 신입에게서 담배 한 대를 얻어낸 삼식이가 연기를 내뿜으며 손가락으로 괴물 둘을 특정했다.

“싱거운 새끼, 그럴 리가 없잖아.”

“정말이야. 저 얼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보안관과 유빈은 어처구니가 없어 삼식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삼식이는 나름대로 날카로운 논리적 계산을 하느라 분주했다.

“저 사람들, 다 전염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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