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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5시간 뒤 (4) (19/449)


19. 5시간 뒤 (4)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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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는 철책에 매달려 울부짖고 있는 괴물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플랫폼을 가로질렀다.

“근데 대체 저게 뭐냐?”

구름다리까지 이르렀을 때, 혼잣말처럼 유빈이 물었다. 물론 나머지 둘 중 누구도 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여전히 놈들은 끊임없이 철창에 몸을 부딪치며 사냥꾼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입술을 말아 올려 드러낸 이빨이며, 철창을 긁어 대는 손톱까지…….

놈들이 단념할 기색은 전혀 없어 보인다. 소름 끼치는 그 모습이 너무 위협적이어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사방을 살피는 것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바로 몇 분 전에 이곳에서 저놈들 중 하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황 씨 아저씨랑 작업반장님도 저 새끼들에게 당했을까?”

“그런 거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데 집중해.”

그때, 등 뒤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피비린내를 가득 싣고서.

“윽!”

세 친구는 팔을 들어 코를 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건너편 철책에 눈을 까뒤집은 놈들 셋이 바짝 붙어 서서 그들을 향해 그르렁대는 중이었다.

“젠장, 저쪽에도…….”

“갇혀 버렸잖아.”

어떻게 하지? 세 친구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철책이 보호해 주고 있는 이 폐역 안에서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다.

끄드드드득!

그들이 넘어온 번화가 쪽의 철책에서 쇠가 비틀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너무 많은 놈들이 한쪽에 매달려 있던 탓일까, 철조망이 기둥으로부터 뜯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몸을 쑤셔 넣었다.

“저 새끼 좀 봐! 아으∼!”

삼식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맨 앞에서 끊어진 철책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있는 놈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철책의 단면이 눈 주위에 걸려 가죽을 찢고 있는데도 녀석은 계속 목을 비틀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오려고만 했다. 찌지직! 깊게 찢어진 놈의 눈꺼풀이 벌어지며 끈적거리는 검은 피가 흘러내린다.

“야이 미친 새끼야, 그만둬!”

역겨운 표정으로 보고 있던 보안관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화를 내며 돌멩이를 들어 던졌다. 따악―! 날아간 돌은 놈을 정통으로 맞췄다.

하지만 코가 으깨어졌는데도 놈은 역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유빈과 보안관, 삼식이를 노려보고 그르렁대며 얼굴을 이용해 철조망의 틈을 벌릴 뿐이다.

콰드득!

눈 주위의 뼈가 부서지면서 노출된 눈알이 덜렁거린다. 그건 어지간히 질리는 광경이었다.

“이놈들…… 아까 그 술 취한 새끼랑 똑같아. 아픈 걸 몰라……. 그르렁대는 것도 그렇고.”

보안관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하지? 꼴을 보아하니, 저 철책……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유빈이 묻자 보안관은 앞뒤로 고개를 돌리며 계산을 했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안 됐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플랫폼 중앙에 위치한 건물 안으로 도망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커다란 위험 요소가 있다.

만약 그 건물의 문이 잠겨 있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저것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 반대로 건물의 모든 문을 잠글 수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방법은 세 놈이 지키고 있는 쪽 철책을 넘어 놈들과 결판을 내고 달아나는 것이다.

열댓 명이 뭉쳐 있는 앞쪽보다 당연히 이편이 더 낫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고통을 모르는 놈들과 싸워 쉽게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까 놈들 중 하나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보안관으로서는 그걸 도무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경찰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물어뜯어 죽이는 놈들이다. 이쪽도 죽일 각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기.”

보안관이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 되묻는다.

“응?”

“무기가 있어야 해, 죽일 수 있는 걸로!”

“하지만 이런 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유빈이 당황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벽돌 조각이라도 찾아봐. 맨손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미친 듯이 서두르며 바닥을 헤집는 보안관의 어깨를 삼식이가 붙잡았다.

“자!”

삼식이가 내민 것은 녹슨 스패너였다. 그것도 길이가 두 뼘은 족히 될 15인치짜리. 묵직한 쇳덩이를 받아 든 보안관이 기쁘면서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너 어디서 이런 걸…….”

“아까 망원경으로 다 봤잖아. 개똥 옆에 누가 버려두고 간 거. 아! 나 혼자 봤었나?”

아직 싸워보지도 않고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든 보안관은 감격하며 삼식이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자, 이제 어떻게 넘어가느냐 하는 건데…….”

뒤편 철책 앞에서 기다리는 세 놈은 보안관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 움직였다.

넘어가 땅에 내려서는 순간에 저놈들에게 덮쳐진다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에도 뒤편에서는 조금씩 철책의 틈이 넓어져 가고 있었다.

“내가 미끼가 될게.”

삼식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마치 ‘그거 내가 먹을게’ 정도의 말투다.

“안 돼! 뭔 소리야?”

“생각해 봐. 내가 달리기가 제일 빠르니까 먼저 넘어가서 저 세 놈 끌고 도망 다니는 동안…….”

“헛소리하지 마, 등신아! 너 뒈지는 시간 동안 우리더러 도망가라고?”

“하하, 뒈지긴 누가 뒈진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쌩쌩 빠르게…….”

유빈과 보안관은 잘 안다, 삼식이는 언제나 친구들을 대신해 손해 보기를 자처하는 놈이란 걸.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직 머리가 제대로 영글지 않아 폭력이 무섭던 시절, 선생님이 화가 잔뜩 나서 ‘이거 누구 짓이야?’ 하고 물으면 삼식이는 웃으면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친구 대신 왕복 싸대기를 맞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건 정말 조금 다치고 마는 게 아니라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아까 골목에서 본, 경찰관의 갈라진 배에서 흘러내리던 내장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 있다. 보안관이 흥분해서 삼식이의 멱살을 잡았다.

“잘 들어, 이 새끼야. 행여 오늘 우리 대신 뭘 어쩌겠다는 생각 하면 내가 널 죽여 버릴 거야. 저길 넘어가서도 마찬가지야. 무조건 너부터 챙겨. 알겠어?”

“알았어, 알았어. 그럼 네 계획을 말해봐.”

삼식이는 화를 내지도 않고 두 손을 들었다.

“내 계획은…… 내가 먼저 넘어가서 저 새끼들을 다 반 죽여놔. 그사이에 너희가 넘어와서 나를 도와주는 거야.”

조금 전 화를 낼 때와 달리 계획을 말하면서는 보안관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갔다. 뭐, 당연하다. 계획이라는 게 없었을 테니까. 가볍게 한숨을 지은 뒤, 유빈이 끼어들었다.

“삼식이가 먼저 뛰어내리나, 네가 먼저 뛰어내리나 무슨 차이가 있어?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 볼트를 반만 풀자.”

“그래서?”

“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으니까 아예 들어오게 해준 다음, 하나씩 상대하자고.”

보안관과 삼식이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동의했다.

그롸아아악!

앞뒤에서 번갈아가며 괴상한 울부짖음이 크게 울려 퍼진다.

거기에다가 뒤쪽의 철책에서는 뜨득, 뜨득, 하며 쇠가 벌어지는 소리까지 더해져서 더 신경이 쓰인다. 그쪽의 괴물들은 한쪽 어깨까지 비집고 들어온 상태였다.

“위쪽을 풀어. 머리를 집어넣을 때 턱을 날려 버리자.”

볼트를 풀어내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오래전에 기계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것이기도 하고, 위에 페인트까지 발라져 있어서 이미 한 덩어리처럼 붙어 있었다.

게다가 철책 너머의 괴물들이 자꾸만 철망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스패너를 건드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해야 했다.

꽈드득! 철망에 걸린 괴물의 손가락이 부러져서 반대 방향으로 꺾인다. 보안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열심히 스패너를 밀었다.

“빨리해. 저놈 허리까지 들어왔어.”

뒤쪽을 감시하는 삼식이가 중계를 해준다.

“아, 옆구리가 걸렸다. 아으…… 어휴, 저거, 끔찍해서 못 보겠다.”

“됐다!”

가운데 볼트를 풀어낸 보안관은 곧바로 위쪽으로 스패너를 옮겼다.

그롸아악.

괴물이 철망을 두드리는 동안 보안관은 까치발을 하고 두 번째 볼트를 풀어낸다.

“제기랄, 이건…… 끄응, 더 빡빡해.”

보안관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거기, 붙지 마!”

자기도 모르게 철망에 바짝 기댄 보안관을 유빈이 잡아당겼다. 부러져서 날카로운 뼈가 드러난 괴물들의 손가락이 철망 사이를 훑고 있다.

“됐어.”

결국 볼트 두 개를 다 풀었다. 철망을 당겨 괴물들이 들어올 틈을 만들어주는 일은 유빈이 맡기로 했다.

철망을 당기기 전, 삼식이에게 장갑을 빌려 낀 유빈이 보안관과 눈을 마주치며 준비가 됐는지를 물었다.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긴다!”

철망을 꽉 잡은 유빈은 두어 번 예비 동작을 한 다음, 몸을 붕 띄워 뒤로 누웠다. 꽈드드득∼! 소름 끼치는, 새된 소리와 함께 철망이 벌어졌다.

그롸! 그롸아악!

모처럼 파고들 구멍을 찾은 괴물들은 발정 난 놈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벌어진 틈을 향해 미친 듯이 상체를 쑤셔 넣었다.

유빈의 당기는 힘과 놈들의 미는 힘이 더해져서 철망은 순식간에 활처럼 휘어졌다. 가장 앞선 놈의 상체가 그 사이로 쑥 뛰어 들어온다.

“지금이야! 때려!”

유빈이 외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보안관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스패너를 힘껏 휘둘렀다.

빠가각!

보안관은 노렸던 대로 놈의 턱을 날렸다. 스패너를 쥔 손끝에 엄청난 반발이 전해진다.

박살 난 턱이 제멋대로 덜렁거리고 이빨이 사방으로 튄다. 제대로 들어갔다. 아마 이놈은 이제 평생 뭘 씹어 삼킬 수는 없을 것이다.

거러러∼!

그러나 뻗지를 않았다. 빠져 버린 턱 사이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도 괴물은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야이, 개새끼야! 좀 뻗으라고!”

보안관이 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죽이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서 턱을 노렸던 건데…… 하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야!”

악에 받친 기합을 내지르며 보안관이 재차 스패너를 휘둘렀다. 이번엔 아까보다 높은 각도에서 내려쳤다.

뻐억! 괴물의 머리가 깨지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놈은 죽지 않았다. 앞으로 고꾸라졌던 괴물이 다시 고개를 들자 세 친구는 또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왜 안 죽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안관이 뒤로 물러났다. 머리통이 움푹해진 괴물의 목이 덜렁거린다.

보안관은 공포와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며 멈칫거렸다. 이런 상대와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보안관!”

다른 놈들이 더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철망에 매달려 밀며 유빈이 필사적으로 보안관을 불렀다. 가뜩이나 힘센 놈들이 둘씩이나 부딪쳐 온다. 겨우 버텨내고는 있지만, 막아내기가 힘에 부쳤다.

“으아아!”

정신을 차린 보안관이 다시 괴물의 머리통에 일격을 가했다. 이미 깨놓았던 자리를 노려 쳤다.

퍼어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스패너가 두개골을 부수고 들어가자 그제야 발광을 하던 괴물이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 하아…… 머리가 터져야 뒈지는 거야?”

한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유빈은 철망을 사이에 두고 놈들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중이고, 뒤쪽의 놈들은 철책에 찢겨 내장을 쏟아내면서도 거의 다 안으로 파고들어 온 상태였다.

철망 사이로 팔을 집어넣은 놈이 유빈의 얼굴을 움켜쥐기 위해 휘적거린다.

“유빈아, 이제 놔!”

마음을 독하게 먹은 보안관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유빈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타악! 철망이 밀리면서 한 놈이, 그리고 또 마지막 놈이 연달아 뛰어 들어왔다.

“죽어어어! 씨발!”

앞선 놈의 머리통을 수직으로 내려찍은 보안관은 잇따라 달려드는 녀석의 공격을 피한 뒤,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퍼걱! 뒤통수가 터진 놈은 쭈욱 바닥에 미끄러지더니, 몇 번 움찔거리다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이제 머리가 반쯤 터진 두 번째 놈만 쓰러뜨리면 된다.

“야, 저기도 뚫렸어!”

뒤쪽 철책을 감시하던 삼식이가 다급하게 외친다. 돌아보니 옆구리가 찢긴 채 끼어 있는 놈의 몸을 철망과 함께 밀어 틈을 벌리고, 그 사이로 괴물들이 난입하고 있었다.

“넘어!”

두 번째 괴물의 얼굴을 후려갈기면서 보안관이 외쳤다.

괴물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배를 걷어차서 구름다리 쪽으로 날려 버렸다. 구름다리 난간에 부딪친 괴물은 허리가 꺾이며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보안관이 괴물에게서 벗어난 걸 확인한 삼식이와 유빈이 훌쩍 뛰어 철책을 넘었다. 보안관도 곧바로 뛰어올랐지만, 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어, 왜 이러지?”

철책 위에 배가 걸려 버린 보안관은 그제야 자신이 한 손에 스패너를 꼭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제기랄, 한 손만 짚고 올라왔으니 그렇지……. 어이없어하며 다리를 끌어당기려는데, 뭔가가 그의 발목을 콱 움켜잡는다.

그롸아아악!

가장 앞서 달려온 괴물이었다. 녀석은 머리 위로 손을 뻗은 채 보안관의 발목을 붙잡고 아래로 힘껏 끌어당겼다.

철책 위에 걸려 있던 보안관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보안관!”

“아악!”

괴물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자 보안관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친다. 삼식이와 유빈이 달려가 보안관의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당겼다.

보안관은 다른 한 발로 놈의 손가락을 콱콱 짓이겼다. 마침내 놈의 엄지손가락이 뜯겨 나간 후에야 보안관의 발목은 자유로워졌다. 뒤따라온 다른 괴물들이 손을 뻗쳐서 잡기 직전이었다.

“어쿠!”

거꾸로 떨어져 내린 보안관을 유빈과 삼식이가 받았다.

“괜찮아?”

“그래그래! 괜찮은 것 같아!”

“그럼 뛰어!”

철책 너머에서는 조금 전 놓친 대어를 아쉬워하는 괴물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여전히 몸을 부딪쳐 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볼트를 풀어놓은 쪽이 빠직거리며 휘었다. 이번 철책은 첫 번째 것만큼 오래 버텨주지 못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달아나야 한다.

“으아아아!”

세 친구는 비명처럼 기합을 내지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걸어올 때엔 낭만적이었던 산책로의 무성한 잡초가 자꾸만 발끝에 걸려 속도를 제대로 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겨우겨우 세 번째 철책 앞에 다다랐을 때, 이런 엿 같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트로트 메들리가 들려왔다.

이런 놔아∼ 당돌한가아요? 야이, 야이, 야이, 야이, 날 봐아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볼 것도 없이 뽕짝 아저씨다. 돌아보니 조금 전 세 친구가 그랬듯이 뽕짝 아저씨가 죽어라 산책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노인인 데다가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여서 실제로는 허우적거리는 수준에 불과하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뽕짝 아저씨의 머리가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 뒤쪽으로 괴물 두 놈이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달려든다.

“사, 사, 살려줘!”

뽕짝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애원을 한다. 어쩌지? 세 친구는 망설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아슬아슬하던 두 번째 철책이 콰드득!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한 무더기의 괴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와 뽕짝 아저씨를 덮친다.

“보고 있지 마! 그냥 뛰어!”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보안관과 삼식이에게 유빈이 소리를 질렀다. 전기신호를 받은 것처럼 흠칫 놀란 두 친구가 철책을 넘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 유빈도 몸을 날렸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벌판을 내달리고, 다시 마지막 철책을 넘었다. 어찌나 열심히 뛰었는지 4차선 도로 위를 가로지를 때엔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해야 했다.

“이제 어떡하지?”

보안관이 물었다.

“함마! 함마로 계단부터 부숴야 해!”

얼굴이 시뻘게진 유빈이 벌판 쪽을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자!”

삼식이가 해머를 건네준다. 보안관은 벌써 손바닥에 침을 뱉은 뒤, 계단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 보안관! 위에 올라가서 부숴야지! 우리가 올라간 다음에!”

보안관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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