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5시간 뒤 (3) (18/449)


18. 5시간 뒤 (3)
2021.09.18.


16554455312992.png

 
그르르르…….

플랫폼에는 웬 중년 사내 하나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엎드려 그르렁대며 개 짖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디서 술을 먹다가 굴렀는지 양복바지는 무릎 아래가 다 찢어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눈을 까뒤집은 채 노려보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폐역 주변에 철책을 둘러놨기 때문에 저런 양복쟁이들이 일부러 거길 넘어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롸아악! 그르르!

사내가 포효하는 것을 지켜본 삼식이는 엄청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 뭐야? 뽕짝 아저씨 다음엔 개 아저씨인 거야? 하하하, 하여간 이 동네 사람들, 개성이 넘치셔.”

서서히 몸을 일으킨 사내가 한 발짝을 내디뎠다. 그러고는 다시 울부짖었다.

그롸아악!

신이 난 삼식이도 지지 않고 떡하니 마주 서서 곰발처럼 두 손을 앞으로 들며 개 짖는 소리를 흉내 냈다.

“으르렁! 멍! 멍!”

거기까지는 유빈도 보안관도 함께 웃었다. 그러나 곧 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걷혔다. 그릉대던 사내가 번개처럼 몸을 날려 삼식이를 덮친 것이다.

그와아악!

“어, 뭐야? 어떡해. 이 아저씨, 화났나 봐! 하하.”

사내에게 밀린 삼식이가 뒤로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그 와중에도 재미있다는 듯, 삼식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별로 없었다.

딱!

사내의 이빨이 허공을 깨문다. 삼식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사내의 가슴을 밀어냈다.

“아저씨, 나 이래 봬도 싸움 잘해. 나 무서운 사람이라고! 괜히 시비 걸다가 다쳐!”

거짓말이다. 유빈은 삼식이가 누구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맞지도 않는다.

삼식이의 말을 무시하는 건지, 사내는 변함없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엄청 빠르게.

콰득!

밀치던 삼식이의 손을 사내가 깨물었다.

“아야! 아, 진짜!”

사내를 밀어내며 뒤로 훌쩍 뛴 삼식이가 곤란하다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본다. 언제나 불이 붙을 준비가 돼 있는 보안관이 폭발했다.

“어이, 뭐야? 왜 시비질인데?”

남자는 보안관에게도 다짜고짜 이빨을 들이밀었다.

“뭐야, 이 새끼?”

재빨리 몸을 뺀 보안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하지만 사내는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보안관도 주저 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은 때리지 마! 치료비 많이 나와!”

유빈이 진심을 담아 외쳤다.

퍼억!

보안관은 거침없이 오른손을 뻗어 사내의 옆구리에 내리꽂았다. 풀 파워는 아니지만, 시원하게 펀치가 들어가는 소리.

보통 보안관이 주먹을 휘둘렀을 때 저 정도 소리가 나면 상대방은 옆구리를 감싸 쥐며 한 방에 허물어져 버린다.

“쯧쯧, 꼭 이렇게 뻗어야 끝나는 거야?”

삼식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유빈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사내는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여 보안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말 야수 같다. 당황해하며 구름다리까지 밀린 보안관을 보고 유빈과 삼식이는 손뼉을 치며 웃어 댔다.

“저 새끼, 한물갔어. 저런 아저씨도 한 방에 못 보내. 하하하!”

“아이구, 보안관 할아버지. 이제 마음 같지 않죠? 킥킥.”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게진 보안관은 조금 더 힘을 줘 사내의 배에 일격을 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사내는 도무지 쓰러져 주지를 않았다. 두 방, 세 방 연달아 펀치를 날려도 뒤로 주춤 밀려났다가 다시 달려들기를 반복할 뿐이다.

“뭐지?”

조금 초조해진 보안관의 펀치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게 누런 이빨을 피해가며 사내의 옆구리를 두들겨 대기를 5회, 6회…….

갑자기 보안관의 안색이 변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에 빠졌던 보안관은 달려드는 사내의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 버렸다.

부웅―

난간에 부딪친 사내는 잠시 허공에 떠올랐다가 크게 원을 그리며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첨벙!

요란한 물소리가 울렸다. 놀란 것은 유빈과 삼식이였다. 보안관이 싸우는 꼴이야 수없이 봐왔지만, 저렇게 상대에게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날려서 몇 미터 아래로 처박아 버리는 모습은 처음이다.

“우왓! 너 인마, 그렇게 하면!”

유빈과 삼식이는 급하게 난간으로 달려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름다리에서 강 표면까지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 다행히 어제 온 비로 물이 많이 불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다칠 일은 없어 보였다.

“죽여 버린 건가…….”

물에 빠진 사내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뒤, 삼식이가 어두운 표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유빈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를 때부터 이미 대충 예상은 했지만, 결국 이런 일을 저지르는구나. 보안관, 그간의 의리를 봐서 사식은 넣어줄게.”

보안관은 귀찮아하면서 삼식이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바보 같은 새끼, 죽긴 누가 죽어? 저 밑에 물 흐르는 거 다 보고 그쪽으로 찬 건데.”

“다들 그렇게 말하지. 설마 죽을 줄 몰랐어요, 라고.”

유빈이 장난기를 거두지 않고 까불거렸다. 삼식이도 거들었다.

“술 취한 중년 남자, 이십 대에게 떠밀려 사망. 내일 아침 신문에 나겠네. 우리는 증인이니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지도 몰라. 고민되는걸? 인터뷰할 때 입을 옷이라도 좀 사야 하나?”

둘이 보안관을 놀려 대고 있을 때, 아래쪽에서는 물에 흠뻑 젖은 사내가 울부짖으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렸다.

그롸아아악! 그르륵!

“저거 봐, 팔팔하게 살아 있지. 저렇게 물벼락을 맞고도 아직 술이 덜 깼나 보네.”

보안관도 난간 아래를 굽어보며 말했다. 사내는 몇 번 더 그르륵거리더니 첨벙첨벙,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넌 그렇게 술에 완전히 꽐라가 된 아저씨조차 겨우 이겼지. 야, 너 이제 어디 가서 싸우고 다니지 마라. 보안관이라는 타이틀도 떼자.”

유빈이 놀려 대자 보안관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저놈 이상했어.”

삼식이가 낄낄대며 대답했다.

“그 아저씨 이상한 걸 지금 알았다니, 그게 더 놀랍다. 크크크. 야, 오죽하면 사람이 개 짖는 소리를 내면서 물겠어?”

보안관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멍청한 새끼들아! 조금 전에 잘못 때려서 갈비뼈를 부러뜨렸거든. 그런데 저놈, 하나도 아파하지를 않았어. 보통은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마련인데 말이야.”

유빈이 얄미운 말투로 대답해 줬다.

“그 이유는 내가 잘 알지. 네 펀치가 완전히 녹슨 거야. 이른바 솜방망이가 된 거지.”

“자꾸 그러면 솜방망이로 몇 대 두들겨 준다? 농담 그만하고 이야기해 봐. 너희가 보기에도 저놈 정말 이상했지?”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던 보안관이 갑자기 삼식이의 손을 잡아당겼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손 괜찮아? 아까 저놈이 달려들었을 때 뭔가 물어뜯기는 소리가 났었는데?”

삼식이는 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장갑은 멀쩡했다.

“이빨이 걸리긴 했지만, 뚫지를 못했지. 케블라거든. 내가 이 장갑 멋지다고 했잖아.”

삼식이는 괜히 뿌듯해하면서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렇게 놀고 농담을 하는 동안 그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어떻게 저 중년 남자는 보안관의 주먹을 대여섯 차례나 맞고도 다시 일어나 덤벼들 수 있었을까. 웬만한 운동선수라 해도 한 방에 뻗어버리기 일쑤인 보안관의 주먹을…….

“아, 개 아저씨 때문에 힘을 뺐더니 더 배가 고파졌다.”

삼식이가 홀쭉해진 배를 쓸어내리면서 툴툴거렸다. 보안관이 어이없어하며 대꾸했다.

“네가 뭘 했다고 힘을 뺐다는 말을 해? 싸운 건 난데.”

“응원했잖아, 응원. 그것도 의외로 꽤나 힘들다, 너.”

그렇게 말하며 삼식이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역이 개통하기도 전에 플랫폼에는 음료수 자판기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되었고, 역이 폐쇄된 지금도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거, 전기료는 나오나 몰라?”

삼식이가 던져 준 차가운 음료수를 받아 허리에 손을 짚고 서서 쭈욱 들이켰다.

하아아∼! 더위와 미친 주정뱅이에 시달리느라 느껴졌던 갈증이 날아간다. 쪼르르르륵― 비어 있는 배 속을 타고 음료수가 흘러 내려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여간 이상한 날이다. 야, 이제 빨리 가서 정말 밥 먹자.”

유빈은 두 친구의 가운데로 훌쩍 뛰어들며 어깨동무를 하고 걸었다. 플랫폼 아래의 완만한 잔디 구릉을 지나 거기에서 또 한 번 철책을 넘었다.

그리고 원래는 전철역과 연결되어 있었어야 할 긴 지하 통로를 지났다. 이제 계단만 올라가면 이 조그만 동네의 번화가다.

“꽤 시끌벅적한데?”

보안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단에 발을 딛기도 전부터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울려 퍼져 들어온다. 유빈이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뭐, 여기야 항상 가게 밖으로 음악 틀어놓고 그러는 데니까.”

“여자애들 꺅꺅거리는 소리도 엄청나다. 무슨 행사 있나? 좋다! 대낮부터 뭔가 화끈한걸?”

삼식이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상체를 가볍게 흔들며 춤을 추듯 걸었다.

“……어?”

계단을 빠져나와 번화가에 발을 내디딘 세 친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보안관은 뭘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볐고, 유빈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깨물었다. 긴장한 두 사람과는 달리 삼식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좌우를 열심히 살폈다.

크롸아아악!

“으아아악!”

긴 번화가 골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대규모의 살육이었다.

상점가에서 틀어놓은 커다란 음악 소리에 섞여 으르렁대는 소리와 비명이 골목 안을 메우는 동안, 피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쫓고 쫓기고 있다.

수백의 포식자와 수백의 희생자. 팔이 잘린 채 뛰어다니는 사람, 커다란 남자에게 올라타 앉아 목을 물어뜯는 여자, 깨진 유리창 사이로 쓰러진 희생자, 벽을 들이받고 서버린 자동차에는 여럿이 달라붙어 운전자를 끄집어내고 있다.

그 모든 광경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인도고 차도고 가릴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끔찍한 피! 피! 피로 붉게 뒤덮인 채였다.

“끄악, 이 씨발!”

필사적인 욕설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서는 두 명의 경찰이 피투성이가 된 여남은 명의 사람들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경찰들은 열심히 몽둥이를 휘둘러 보지만, 결국 온몸을 물어뜯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주르륵, 맥없이 쓰러진 경찰의 갈라진 배에서 체액과 피에 섞여 내장이 흘러나왔다.

그 지옥을 바라보고 있던 세 명 중 가장 먼저 충격에서 깨어나 상황에 반응한 것은 삼식이었다. 삼식이가 두 친구를 보며 물었다.

“이, 이것도 놀리기 마케팅인가 하는 그거야? 아까 본 경리단길처럼?”

“등신아! 그럴 리가 없잖아!”

유빈이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에? 하지만…… 뭔가 더 지껄이려는 삼식이의 입을 보안관이 틀어막았다.

“제발 닥쳐. 빨리 여기서 도망가는 게 먼저야.”

그러나 일은 보안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옥신각신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골목 입구의 편의점에서 중년 여자에게 달라붙어 목을 뜯고 있던 두 녀석이 셋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르르르.

두 녀석의 피 묻은 입이 벌어지며 기묘한 소리가 났다. 조금 전 보안관이 다리 아래로 날려 버렸던 아저씨처럼, 이놈들도 짐승 소리를 냈다.

“쟤, 우리 본 것 같지?”

두 녀석의 하얗게 변해 버린 동공이 삼식이의 눈과 마주쳤다.

그롸아아악!

크와악!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두 놈이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그 소리에 반응을 한 다른 놈들이 일제히 세 친구가 선 쪽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놈들은 적어도 여남은 명이나 됐다. 맨 앞에 선 놈 하나가 발을 끌며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씨발, 뛰어!”

보안관이 삼식이의 뒷덜미를 잡아끌며 외쳤다. 유빈도 미친 것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첫걸음을 떼는 것과 거의 같은 순간에 주둥이에 피 칠갑을 한 놈들도 셋의 뒤를 쫓아 뛰었다.

“으아아아! 정말 영화 찍는 거 아니야?!”

한꺼번에 세 개씩 계단을 뛰어내리며 삼식이가 소리쳐 물었다.

“영화는 무슨 영화! 이 멍청아!”

“아깐 네가 영화라며? 그럼 뭐야, 저거?”

“몰라! 모르니까 죽기 싫으면 닥치고 뛰어! 일단!”

계단을 다 뛰어 내려와서 지하 통로를 내달리던 유빈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피 묻은 주둥이를 벌리고 따라오는 놈들은 대략 열두어 명.

거리는 불과 20여 미터 정도였다. 꽤 빨리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하루 종일 굶어가며 노동을 한 데다가 준비운동도 없이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다리의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까딱하다가는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 죽는 거다. 지하 통로의 희미한 조명이 깜빡거리면서 그들의 공포심을 몇 배나 더 증폭시켰다.

그롸아악! 크악!

소름 끼치는 울부짖음이 울리는, 긴 지하도에서 빠져나오자 철책이 기다리고 있다. 유빈이 가장 먼저 뛰어올랐고, 보안관과 삼식이도 그 뒤를 따라 점프를 했다.

급하게 철조망을 넘느라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세 사람은 곧바로 일어나 거의 네 발로 경사로를 기어올랐다. 까진 무릎이나 팔꿈치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철컹! 철컹! 철컹!

무거운 것이 연달아 부딪쳐 철책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벌써 쫓아왔어? 플랫폼 난간에 겨우 몸을 걸치던 세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난간 뒤로 넘어가 버렸다. 덕분에 그들은 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철책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여남은 명의 괴물들이 철책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는 게 보인다.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그 피투성이 얼굴의 박력이 너무 엄청나서, 세 친구의 입에서는 저절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

저 정도의 운동 능력이라면 철책 따위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할 것이다. 뒤쪽에서 몇 명의 괴물이 더 뛰어온다. 괴물들은 스피드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달려 철책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엇?”

잔뜩 겁에 질려 지켜보던 세 친구는 어이가 없어서 짧은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전속력으로 철책을 향해 날아오른 괴물들은 있는 힘껏 철책을 들이받더니, 뒤로 벌렁 나가떨어져 버렸다. 그러고는 또다시 벌떡 일어나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철컹! 철컹! 어찌나 격렬하게 몸을 날리는지 철책의 그물 격자무늬가 얼굴에 그대로 박혀 버린 놈들도 있었다.

“하아, 하아…… 뭐지, 이 새끼들? 뇌가 없는 놈들처럼 구는데?”

플랫폼 위에서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하며 보안관이 물었다.

“그…… 그러게. 왜 저길…… 허억, 못 넘지?”

힘이 쪽 빠진 유빈은 당기는 배를 움켜잡았다.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쫓아오던 놈들은 철조망에 매달려 격하게 몸을 부딪쳐 가며 울부짖고만 있었다.

“저 새끼들, 철조망을 못 넘나 봐! 하아∼ 잘됐네. 그럼 이제 안 뛰어도 되잖아.”

삼식이가 화색을 띠며 좋아한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유빈과 보안관도 그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동의하고 싶었다. 오, 하나님. 이렇게 감사할 수가! 꼼짝없이 죽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온몸을 옥죄고 있던 긴장이 일순간에 풀어지자 하늘이 핑 돈다. 플랫폼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1분만 쉰다면 공주님의 침실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그럴 수는 없었다.

16554455312998.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