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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피와 좀비의 시간 (2) (13/449)


13. 피와 좀비의 시간 (2)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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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결에 민구의 양복을 받아 입은 임수정은 민구의 지시에 따라 테이블보를 찢어 만든 붕대로 그의 왼쪽 어깨와 팔을 몸에 묶어 고정시켜 주었다.

“아냐, 그렇게 헐겁게 하지 말고 더 꽉 조여서 묶어야 해.”

“하지만 어깨가 굉장히 많이 부었어요. 이 부분에 압박을 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민구는 왼쪽 어깨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전해진 고통을 통해 대충 짐작은 했지만, 탈구가 된 이후에도 너무 혹사당한 탓에 그의 어깨는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젖어 있는 흰 셔츠를 통해 퍼렇게 변색된 피부가 비쳐 보였다.

“마음은 고마운데, 어깨랑 팔꿈치, 손목. 이렇게 세 군데 관절이 다 몸에 딱 맞도록 고정되어 있어야 해.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더 세게 묶어줘.”

“네.”

임수정은 붕대를 고쳐 묶는 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밖의 그 사람들은 고통을 못 느끼나요?”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느끼는데 표시를 안 하고 버티는 건지는 모르겠어. 하여간 괴물들이야. 뼈가 부러지는 동안에도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니까.”

“아까 본 셋 외에도 더 있어요?”

“으음, 정문에서 본 경비원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군. 그때 시간이 없어서 죽이지를 않고 기절만 시켜놓는 게 아니었는데. 멀쩡했던 사람들도 저것들에 물려 죽으면 똑같은 괴물로 변해서 다시 살아나더라고.”

“왜 저런 괴물들에게 쫓기게 된 거예요?”

민구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말이지, 죄를 많이 지었거든. 그런데 명은 또 길고 질긴가 봐. 염라대왕이 도저히 더는 못 참아주겠어서 마중 보낸 모양이야.”

“그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 꼴리는 대로 하면 되지. 지금은 살고 싶으니까 저것들을 먼저 보내면 되는 거고.”

붕대로 왼쪽 어깨를 고정시킨 민구는 피 칠갑한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린 채 한쪽 팔만으로 중심을 잡으며 칼을 휘두르는 연습을 해봤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뛰어난 운동 능력은 이내 평소와 다른 무게중심 속에서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냈다. 팔을 너무 크게 휘두르지만 않는다면 넘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어.”

민구는 만족한 듯 칼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임수정에게 곤봉을 건넸다.

“이걸…… 저한테 왜?”

임수정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끝부분에 아직도 경비원의 피가 묻어 있는 그것을 손에 대고 싶지 않았다.

“받아. 초짜한테는 칼보다 이게 나을 거야. 아, 걱정하지 마, 아가씨. 너한테 나가서 싸우라는 소리가 아니니까. 만일을 대비하는 거야. 만약에 저것들이랑 맞닥뜨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무조건 왼쪽 다리를 빼고 무릎을 굽히면서 이걸로 발목을 있는 힘껏 후려쳐. 그러면 네 모가지도 보호하고 괴물도 쓰러뜨릴 수 있어. 어차피 쉽게 죽지 않는 놈들이지만, 달아날 시간만 벌면 충분하니까. 알아들어? 왼쪽 다리를 빼고 무릎을 굽히는 거야.”

민구는 자신이 직접 자세를 낮추면서 팔을 휘둘러 식탁의 다리를 때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임수정은 곤봉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장창!

위층에서 유리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요했던 건물 내에 소름 끼치는 메아리를 만들며 울렸다.

두 사람은 순간 얼음처럼 경직되었다. 임수정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 입을 크게 벌린 다음에야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무, 문이 부서진 건가요?”

“아니야. 강화유리문은 자물쇠가 먼저 망가지기 때문에 저런 소리가 나질 않아. 1층에 강화유리가 아닌 곳이 있나?”

“모르겠어요. 아, 아마 뒤쪽의 창문들은 그냥 보통 유리일 거예요.”

“그럼 거기겠군.”

민구는 탁자 위에서 커다란 칼을 집어 들고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임수정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쩌려고요?”

“한꺼번에 몰려들기 전에 하나씩 해치우려고.”

임수정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여기에서 무서운 상상들에 괴롭힘을 당하면서 혼자 기다리든가, 아니면 민구를 따라가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괴로워하든가.

잠시 생각해 본 그녀는 민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의 곁에 있는 편이 더 안전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식당에서 기다려도 돼.”

임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더 무서워요.”

“좋을 대로 해. 너무 바짝 달라붙지만 마.”

“엘리베이터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다리도 불편하신 것 같은데.”

“문이 열릴 때 위험해서 안 돼. 그리고 지금부터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소리를 내지 마.”

조용히 하라는 당부를 한 뒤 민구는 천천히 어두운 계단을 올랐다.

그라아악― 예의 그 울부짖음이 복도를 타고 흘러 들어온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면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임수정은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계단 중간에 이르렀을 때, 앞서 걷던 민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칼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임수정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계단 난간을 잡고 한 손으로는 곤봉을 고쳐 쥐었다.

꾸웨엑!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위쪽에서 빠르게 뭔가가 뛰어내렸다. 아까 현관문을 들이받던 괴물 중 하나였다.

이마의 피부가 다 벗겨진 괴물은 두 손을 벌리고 민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민구는 허리를 돌려 공격을 피하면서 괴물을 향해 묵직한 칼을 내려쳤다.

빠직!

민구의 일격에 오른팔이 부러진 괴물은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단단한 벽을 들이받았다. 계단 전체를 흔들 만큼 굉장히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쿵―!

임수정은 안도했다. 저 정도의 충격이라면 멧돼지라도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벽에 부딪친 괴물은 곧바로 몸을 돌려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면서 다시 한 번 민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라아악!

민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이번엔 놈의 왼팔을 노려 쳤다. 민구의 칼이 지나가자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왼편 팔꿈치가 반대 방향으로 꺾여 덜렁거렸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군.’

양팔을 다 부러뜨렸으니 이제 최소한 붙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 번의 경험으로 이 불사신 같은 괴물들의 어디를 쳐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한 놈은 뒤에서 목뼈를 잘라서, 또 다른 한 놈은 뒤통수를 깨뜨려서 죽였었다. 아마 이 녀석도 뒤쪽에서 머리 부근을 공격해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쿵!

이번에도 괴물은 속도를 못 이기고 벽에 세게 부딪친 뒤에야 멈춰 섰다. 하지만 이번엔 방향을 바꾸는 데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양팔이 모두 부러져 벽을 짚고 돌아설 수가 없던 것이다. 민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어 괴물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쩍!

묵직한 부쳐 나이프가 괴물의 뒤통수 깊숙이 박히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 날뛰던 괴물이 거짓말처럼 쭉 늘어지며 벽에 처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민구는 자신의 이론이 맞았다는 것에 약간의 희열을 느끼면서 좌우로 비틀어 칼을 빼냈다.

그가 칼을 빼내자 벽과 칼에 의해 고정되어 있던 괴물은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이번에도 역시 괴물의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후우…….”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민구는 계단 아래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임수정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왼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서 있었다.

어찌나 손에 힘을 주었는지 피가 잘 통하지 않는 통에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더 이상 괴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임수정은 천천히 손을 내리고 갈라진 목소리를 짜내 물었다.

“주…… 죽은 건가요?”

민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임수정이 뭔가를 더 물어보려 할 때, 계단 위쪽의 복도에서 또다시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롸아악! 그르르!

꾸에에!

이번엔 하나가 아니다. 복도에서 울리는 메아리 때문에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둘, 많게는 넷 정도의 다른 목소리가 울부짖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놈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구는 뒷걸음질로 계단을 내려갔다.

콰장창!

어딘가의 유리가 또다시 깨졌다.

“다시 돌아가. 벌써 놈들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 다리가 이 모양이라 계단에서는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던 임수정은 민구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렸다. 지하로 들어서서 임수정이 물었다.

“어디로 가요? 다시 식당으로?”

고개를 기울여 계단 위쪽을 감시하면서 민구가 말했다.

“그래, 넌 일단 식당 앞으로 가서 기다려. 난 여길 지키다가 한 놈 더 잡고 갈게.”

대답이 없어서 민구는 임수정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들대고 있었다.

“가라고.”

식당을 향해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임수정의 두 눈은 계단 입구를 막아선 민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칼을 높이 쳐든 채 계단 안쪽을 살피던 민구가 갑자기 뒤로 두어 발짝 물러났다.

꾸와악! 그라아아악!

한꺼번에 괴물 둘이 뛰어 들어오면서 괴성을 질러 댄다.

민구는 앞선 놈의 머리통을 비스듬히 갈기면서 두 번째 놈이 할퀴려 드는 것을 피했다. 관자놀이 부근이 움푹해질 만큼 잘려 나갔는데도 앞선 놈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윽!”

몸을 돌리고 스텝을 밟을 때마다 삔 발목이 찌릿찌릿해 온다. 민구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찬찬히 하나씩 제대로 단계를 밟지 않으면 이놈들에게 이길 수 없다.

빠악!

달려드는 두 번째 괴물의 무릎을 때려 끊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놈이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볼 여유도 주지 않고 이번에는 관자놀이가 잘려 나간 놈이 이를 드러내며 돌진해 왔다. 민구는 뭉뚝한 칼끝으로 놈의 아래턱을 올려쳤다.

덜컥―!

빠진 아래턱을 덜렁거리면서 괴물이 비틀댄다. 민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어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다. 빠각! 빠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지하 복도를 울린다.

먼저 양쪽 어깨를 부숴서 괴물의 공격력을 반 이하로 낮추었다. 마침내 머리가 무방비로 노출된 놈의 정수리를 내리치려 할 때, 무릎이 끊어진 놈이 절뚝거리면서 덤벼들었다.

그라아악!

놈의 이빨이 볼을 스치기 직전에 민구는 가까스로 허리를 틀어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민구를 지나친 괴물은 멈추지 않고 곧바로 임수정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제기랄!”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민구는 괴물을 뒤쫓아 뛰었다. 왼발이 땅을 내디딜 때마다 발목이 비명을 질렀다.

민구는 여자가 식당 안으로 도망가 문을 닫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임수정은 제자리에 얼어붙어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달려오는 괴물을 바라보고만 있다.

민구는 필사적으로 달리며 괴물의 등과 뒤통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쪽 어깨를 묶은 채로 달리는 민구는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그의 칼은 그저 괴물의 가죽을 찢어놓을 뿐이었다. 괴물은 무심하게도 뒤편에서 공격하는 그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다리! 다리를 때려! 무릎을 굽히고!”

민구는 크게 외쳤다. 부들대고 있던 임수정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반응했다.

임수정은 왼발을 뒤로 빼면서 무릎을 굽히고 곤봉을 크게 휘둘렀다. 급하게 굽혀진 무릎에 체중이 실리는 바람에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온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팔의 스윙에 집중했다.

허공에 날린 그녀의 머리카락 몇 올이 괴물의 이에 걸려 뚜둑, 하고 끊어진다.

빠악! 민구가 이미 끊어놓았던 괴물의 다리에 임수정이 휘두른 곤봉이 명중하자, 괴물은 빠른 속도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아악!”

괴물을 때리며 생긴 반작용 때문에 어깨로 묵직한 통증을 느낀 임수정도 비명을 지르며 곤봉을 떨어뜨렸다.

그라아아악!

다시 몸을 일으킨 괴물이 임수정을 향해 팔을 뻗었다. 임수정은 급하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발을 빼는 것이 늦었다.

한쪽 다리를 괴물에게 낚아채인 임수정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쿵!

벽에 뒤통수를 세게 찧으며 떨어진 임수정이 맥없이 쓰러졌다. 괴물은 그녀의 발목을 꽉 쥐고 끌어당겼다. 시체처럼 널브러진 임수정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안 돼!”

달려오던 민구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괴물이 아가리를 벌려 임수정의 허벅지를 물어뜯으려는 순간, 몸을 날린 민구의 오른발이 괴물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꾸에엑!

곧바로 다시 덤벼들려는 괴물의 정수리에 민구는 커다란 칼을 내려쳤다. 괴물은 단단한 바닥에 호되게 얼굴을 찧었다. 으직―! 괴물의 코와 이가 부러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이 개새끼야! 사람 좀 작작 골탕 먹여라! 응? 이 씨발 새끼야!”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괴물의 뒤통수에 부쳐 나이프를 몇 차례나 꽂아 넣으며 민구가 욕설을 퍼부었다.

빠각! 빠각! 괴물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된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민구는 서너 차례나 더 괴물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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