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강탈자들의 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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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탈자들의 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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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강탈자들의 밤 (4)
2021.09.11.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괴물의 머리를 구둣발로 짓밟고 놈의 목에 박혀 있던 자신의 칼을 빼내려 할 때, 민구를 향해 세 번째 괴물이 달려들었다.
민구는 빙글 몸을 돌려 뒤로 돌아간 다음 무릎을 세게 차서 넘어뜨렸다.
“너네는 무서운 것도 없냐? 지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도 쪼는 기색이 없네. 쯧, 뭐…… 그거 하난 마음에 든다.”
민구는 땅에 떨어져 있던 야구 배트를 들어 괴물의 무릎을 사정없이 갈겼다. 와드득, 소리와 함께 괴물이 다시 아스팔트에 코를 박고 넘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괴물은 부상 따윈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네 발로 기어 달려드는 괴물의 공격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소름이 끼칠 만큼 기괴했다.
민구는 괴물의 팔꿈치를 향해 풀스윙을 날렸다. 팔꿈치가 반대로 꺾인 채 땅에 처박힌 다음에도 괴물은 여전히 꿈틀대며 분비물이 흐르는 아가리를 쫙쫙 벌려 댔다.
끄르르릉…… 그아악.
빗소리를 뚫고 괴물의 나지막한 울부짖음이 도로 위를 메웠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는 고통이나 공포 따위 때문에 생겨난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아직 충족되지 못한 공격성의 표현이었다.
민구는 야구 배트를 빙빙 돌리며 괴물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정말 별난 녀석들임은 분명하다.
저만큼 훼손된 몸으로 어떻게 그런 운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뭐지, 이 괴물들은? 유전자 공학인가 뭔가가 만들어낸 건가?’
민구는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까딱거렸다. 이만한 물건이라면 대기업의 회장이 욕심을 낼 만도 했다.
“잘 놀았다. 이제 시마이하자.”
잠시의 관찰이 끝난 후, 민구는 배트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때, 모든 소동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육만배가 처음으로 쉰 목소리를 내며 끼어들었다.
“어이, 민구! 거기까지!”
민구는 이해가 되지 않아 육만배가 탄 자동차를 돌아보았다. 육만배는 열린 창문 사이로 얼굴을 반쯤 내밀고 태연하게 말했다.
“야, 이 녀석아. 기운이 넘쳐서 보기에는 좋다만, 그렇게 다 작살을 내면 안 되지. 하나 정도는 남겨서 배달을 해줘야 잔금을 받을 것 아냐?”
“…….”
민구는 대답 없이 배트를 내렸다. 그는 가끔 저 늙은이가 징그럽다고 느꼈는데, 바로 지금 같은 경우가 그렇다.
자기가 거느리는 새끼들이 이렇게 많이 죽고 다쳤는데도 큰형님이라는 사람이 흥분하기는커녕 한없이 냉정하게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틀린 말도 아니다. 돈을 받고 심부름을 하기로 했던 일이고, 받을 돈의 액수만큼이나 그 심부름이 위험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괴물에게 목을 뜯겨 죽어버린 녀석들도 이 세계에 뛰어들기 전에 그 정도 각오는 해뒀어야 했다. 수긍할 만하다고 생각한 민구는 순순히 배트를 떨궈 버리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저 자식, 하여간 무뚝뚝하다니까. 하하하. 어이, 윤 실장. 애들 데리고 저거 챙겨라. 시간 너무 많이 보냈다.”
“넵! 큰형님!”
육만배의 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 실장은 재빨리 달려가 덩치들과 함께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괴물을 들어 원래의 상자에 다시 넣은 뒤 승합차에 실었다.
“최 이사는 어떻게 됐어? 부상이 심해?”
덩치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근처에 서 있던 최성호의 부하 하나를 손짓으로 부른 뒤, 육만배가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의식이 없으십니다.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형님.”
최성호의 부하가 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역시 괴물에게 물려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아직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충 졸라 묶어둔 붕대 끝에서는 비에 젖은 핏방울들이 뚝뚝 흘러내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쯧쯧, 그 사람 참. 그걸 왜 열어 가지구서는……. 빨리 프란체스코 병원으로 옮겨! 내가 보냈다고 하고.”
“예!”
최성호와 다른 중상자들을 태운 세단 두 대가 병원으로 출발한 다음, 육만배는 괴물을 실은 승합차를 거느리고 미리 지정된 약속장소를 향해 떠났다.
뒤처리는 고스란히 민구와 칠성의 몫이 되었다. 칠성은 부하들을 재촉해서 현장 정리 속도를 높였다.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다행히 바닥의 핏자국은 폭우가 씻어내 줄 테니 그가 해야 할 일은 시체들을 치우고 싸움의 흔적을 지우는 정도였다. 저 커다란 트럭은 길 한쪽으로 밀어두고 불태워 버리면 될 것이다.
“야, 죽은 애들 먼저 승합차에 다 태워. 저 경호원 새끼들 시체는 어디 트렁크에 처박아두고. 우리 애들 몇이나 상했냐?”
“죽은 애는 다섯 명인데…… 부상자가 많습니다, 형님.”
“그 짧은 사이에 많이도 죽었다. 누가 들으면 전쟁이라도 치른 줄 알겠네.”
민구는 쓴 입맛을 지우려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물론 죽은 부하들은 모두 최성호가 데리고 있는 애들이었으므로 민구가 각별히 애통해하거나 분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건 조직의 사기와 관련이 있는 일이다. 개입했던 싸움에서 이렇게 많은 식구를 잃어본 적이 없던 민구는 최성호의 무능함에 절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새끼……. 그런 게 간부랍시고 애들을 거느리고 다니니까 이 사달이 나지.”
민구가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시체들을 들어 나르던 칠성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형님! 얘 살아 있었습니다!”
“뭐? 정말이야?”
“네, 형님! 숨을 안 쉬어서 죽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놈 이거, 움직입니다.”
칠성이가 붙들고 좋아하는 녀석은 최성호의 보디가드 대식이었다. 비록 다른 구역의 식구지만, 같은 고향에서 자란 후배여서 평소 칠성이가 신경을 쓰던 놈이었다.
칠성이는 목이 한 움큼 뜯겨 나간 대식의 어깨를 꽉 잡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야, 대식아, 인마! 너 북망산 갈 뻔했어. 알아? 새끼…… 너 뒈져 버렸으면 나 고향에도 못 갈 뻔했다, 이놈아. 잘됐다, 잘됐어. 금방 병원으로 가면…… 윽? 커컥! 크어억!”
잘 지껄이던 칠성이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죽었다가 살아난 대식은 칠성의 목젖을 콱 깨물고 좌우로 흔들어 댔다. 칠성의 입과 울대에서는 왈칵왈칵 피가 솟았다.
“칠성아!”
민구가 황급히 뛰어갔지만, 이미 칠성은 눈을 까뒤집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대식은 축 늘어져 버린 칠성을 놔준 뒤, 바로 곁의 조직원에게 피 묻은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으악! 이 개새끼가 왜 이래?”
되살아난 대식이 이를 앙다물자 와드득, 소리를 내며 조직원의 코가 뭉텅 잘려 나간다.
“아아악!”
조직원이 주먹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민구는 대식과 코 잘린 조직원 사이로 몸을 날려서 아직도 코 조각을 우물거리는 대식의 턱을 무릎차기로 날려 버렸다.
콰작! 대식의 턱이 부서지고 부러져 나간 이빨이 튀어나갔다. 그런데 대식은 기절을 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르르르…….
벌어진 대식의 입 사이로 낮은 짐승 같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조금 전 괴물들을 상대했을 때의 위화감이 민구를 사로잡았다. 미친개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며 날뛰는 대식이 하나를 처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콰르릉! 쾅!
또 한 번 번쩍하는 섬광에 이어 강한 천둥소리가 거리를 뒤흔들었다.
‘뭔가 존나게 잘못됐어…….’
이 자식은 정말 죽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들은 광견병처럼 옮는 병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보다…… 아까 내가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했던 괴물들은 정말 죽었던 것일까?
그놈들도 여기 이 녀석들처럼 다시 또 벌떡 일어난다면? 정말 불사신이란 말인가……. 민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 형님, 여기 얘도 살아납니다! 이거 어쩌죠? 지금 아예 담가 버립니까?”
“이 자식도 그렇습니다! 뭐, 뭐야, 이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며 대식의 공격을 피하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당황한 조직원들의 보고가 잇달았다. 보아하니 죽었던 놈 다섯 모두가 다시 살아난 모양이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울렸다. 혼자서라면 어찌어찌 상대해 볼 수도 있겠으나, 자신의 부하들은 그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을 민구는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피해를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다들 차에 타! 일단 여길 뜬다!”
“이 살아나는 새끼들은 어떻게 합니까, 형님? 여기 그냥 두고 가요? 억! 이 새끼가 누굴 깨물려고!”
“지껄이지 말고 빨리 피해, 이 새끼들아!”
차를 향해 달리면서 민구는 목젖이 뜯겨 나간 채 죽어 있는 칠성이의 시체를 스쳐 지나쳤다. 불과 몇십 분 전만 해도 일이 끝나고 나면 술과 여자를 사 달라고 애교를 피우던 녀석이다.
“저기, 저것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형님?”
트럭 운전기사와 안경잡이 김성진을 무릎 꿇린 채 지키고 서 있던 부하 하나가 그들의 처분을 묻는다.
민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발로 차 두 사람을 멀찌감치 날려 버렸다. 뒤를 쫓아 달려오는 괴물들이 저놈들을 뜯어 먹어준다면 다만 얼마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출발해! 빨리 시동 걸어!”
차 문을 닫으며 민구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네 마리의 괴물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중 한 놈이 걷어차여 나가떨어진 트럭 운전기사를 덮쳤다. 나머지 세 마리는 자살 특공대라도 된 양 가까이 있는 먹잇감을 외면하고 민구가 탄 차를 향해 곧바로 돌진해 왔다.
부아아앙!
운전사가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몸이 좌석 쪽으로 젖혀지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앞서 있던 괴물이 엄청난 기세로 자동차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콰장창!
유리창이 부서져 내리고 만신창이가 된 괴물의 머리가 운전석 안으로 쑥 들어왔다. 굵은 금반지를 낀 괴물의 두툼한 손이 갈퀴처럼 차 안을 휘저으며 붙잡을 곳을 찾는다.
“으아아아!”
당황한 운전사가 미친 듯이 핸들을 틀었다. 하지만 괴물은 여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롸아악!
괴물의 피 묻은 주둥이를 막아보려고 운전사는 왼쪽 팔뚝을 들어 방패처럼 내줬다.
으득! 살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엔진 소리와 고함, 비명과 함께 뒤섞이면서 자동차 내부는 지옥처럼 변해 버렸다.
“더 밟아!”
민구가 외쳤다. 위이이잉! 최대한으로 가동된 엔진이 고음을 내며 민구가 탄 자동차는 순식간에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조수석에 탄 조직원은 주먹을 들어 운전사를 위협하는 괴물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겨 댔다. 하지만 괴물은 두 손을 내저으며 닥치는 대로 물고 할퀸다.
“이 개새끼가! 으악!”
괴물의 손아귀에 얼굴을 잡힌 운전사가 비명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앞에 봐! 핸들 틀어!”
민구의 경고를 듣고 운전사가 방향을 돌리려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들이 탄 차는 전속력으로 삼거리를 가로질러 강서 정수장의 정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민구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버클에 끼우며 충돌에 대비했다.
콰앙!
5센티 직경의 철제 파이프가 우그러질 만큼 빠른 속도로 정문을 들이받은 자동차의 뒷부분이 부웅― 하고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옆으로 기우뚱하게 다시 떨어지는 순간,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던 앞자리의 두 사람은 에어백과 자동차 시트를 연달아 들이받으며 핀 볼처럼 튀어 올랐다.
매달려 있던 괴물의 몸은 세 동강이 나서 잘려 나갔다.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피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큭!”
민구 역시 가슴과 목을 해머로 내려치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숨이 콱 막혔다.
“쿨럭! 쿨럭! 컥!”
소음과 충격이 휩쓸고 간 자동차 안에 갑작스러운 고요가 찾아왔다.
박살 난 앞 유리창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가슴과 배를 조이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민구는 손바닥으로 더듬어 안전벨트를 풀었다.
“으으…….”
비틀거리며 차 문을 열고 나서려던 민구는 이마를 찌푸렸다. 왼쪽 어깨에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분명히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제길…… 빠졌나?”
민구는 탈골된 어깨를 감싸면서 조심스레 자동차를 빠져나왔다.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스치는 고통에 발목이 비명을 지른다. 발목도 삔 모양이다.
그라아아악!
이제는 익숙해진 기괴한 울부짖음이 민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민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0여 미터 앞에서 쏟아붓는 폭우를 뚫고 세 마리의 괴물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다.
“크크큭…….”
민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낄낄대며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렸다.
익숙한 나이프를 찾아 칼집을 더듬거리던 민구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친다. 없다! 나이프가 있어야 할 자리가 허전하게 비어 있었다.
그래, 맞아…… 아까 괴물의 목에서 칼을 미처 못 뺐지……. 그제야 기억이 난다. 뛰어오는 괴물들은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그르르르!
벌어진 아가리 사이로 풍겨 나오는, 역겨운 냄새가 닿을 것만 같다.
“참 가지가지 하는구만.”
빠져 버린 왼팔을 축 늘어뜨린 채 민구는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