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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탈자들의 밤 (3) (10/449)


10. 강탈자들의 밤 (3)
202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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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쉭!

뚜껑이 열리면서 하얀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냉기 때문에 깜짝 놀란 최성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엄청나게 차가운 공기가 상자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마 냉동 창고 같은 기능을 했던 모양이다. 잠시 손사래를 쳐서 하얗게 서리는 찬 기운을 날려 버린 최성호는 고개를 숙여 상자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어…… 뭐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에, 최성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기까지 잠시 멍하게 서 있어야 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은 값비싼 금괴 뭉치도, 최첨단의 전자제품도 아니었다. 그저 한 구의 시체가 덜렁 누워 있을 뿐이었다.

밝지 않은 손전등 불빛 속에서 슬쩍 보기만 해도 죽은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핏기라고는 없을 만큼 창백한 혈색, 푸석하다 못해 썩기 직전인 피부, 여기저기 뭉텅이째 떨어져 나간 머리카락……. 아직도 찬 기운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시체의 머리맡에 달린 냉동실 모터는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 RF Safe―Stop을 가동했을 때 꺼진 기계가 아직도 재가동되지 않은 모양이다.

“뭐야, 이 미친 새끼들. 뭐한다고 사람 죽은 걸 이렇게 곱게 모시고 다녔어?”

혹시 하는 마음에 그는 황급히 두 번째 상자와 세 번째 상자도 열어젖혔다. 이번에도 똑같이 두 상자 모두 시체 한 구씩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네 번째 상자에 든 시체는 심지어 얼굴이 반쯤 잘린 채였다.

허망해진 최성호가 네 번째 상자를 닫고 돌아서서 걸어 나올 때, 그의 옆얼굴로 뭔가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최성호는 무의식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엇?”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움직이고 있다! 조금 전까지 상자 안에 얌전히 누워 있던 시체가 어느 틈에 일어나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믿을 수 없지만 그의 눈앞에서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와사삭, 와사삭! 시체가 한 걸음씩을 느리게 뗄 때마다 살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 이게 뭐야?”

거짓말 같은 광경에 최성호는 잠시 주춤거렸고, 그 1초간의 머뭇거림은 치명적이었다.

그르르르…….

되살아난 시체의 턱이 벌어지면서 맹수 같은 그르렁 소리가 울려 나왔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뻣뻣했던 시체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건 그냥 평범한 시체가 아니야. 괴물이야…….”

제정신을 차린 최성호가 황급히 몸을 돌려 뛰어나가려 할 때, 썩어가는 피부의 그 괴물은 이미 최성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어깻죽지에 이를 단단히 박고 있었다.

“으악!”

비록 비겁한 기회주의자지만, 최성호 역시 주먹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다. 그는 어깨의 통증에 개의치 않고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어깨를 물어뜯는 괴물의 얼굴을 마구 후려갈겼다.

한 대! 두 대! 그러나 광대뼈가 부서져 내리고 눈알이 터지면서도 괴물은 여전히 턱에 단단히 힘을 준 채 떨어져 나가질 않았다.

바로 그때, 두 번째 상자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달려들어 억센 손톱과 송곳니로 그의 허벅지를 잡아 뜯었다.

“으아악!”

“왜 그러십니까, 형님?”

최성호의 비명을 듣고 부하들이 뒤뚱거리며 트럭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달려드는 세 번째 상자의 시체로부터 습격을 받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최성호의 보디가드가 황급히 뛰어와 최성호를 물어뜯고 있는 괴물을 있는 힘껏 옆으로 밀어 쳐냈다.

찌지직!

최성호의 어깨에서 근육과 피부가 뜯겨 나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이런 씨발 놈이! 감히 우리 형님을!”

보디가드는 한 자가 넘는 긴 사시미 칼을 꺼내 괴물의 복부와 옆구리를 사정없이 쑤셨다. 하지만 놀랍게도 연장질을 당한 괴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나 또다시 달려들었다.

보디가드의 눈이 뚱그렇게 커졌다. 칼에 찔린 틈 사이로 진득한 체액을 흘리면서 달려든 괴물은 보디가드의 목을 꽈드득, 소리가 나도록 세게 물어뜯었다.

“커, 커헉! 놔라! 놓으라고! 커컥!”

보디가드는 안간힘을 쓰며 괴물의 옆구리에 계속 칼을 찔러 댔다. 하지만 공격을 당하는 괴물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생명줄처럼 꼭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면서 보디가드는 마침내 축 늘어져 버렸다.

“형님부터 구해내!”

“내가 막을게. 악! 이 씨발 놈이 깨물어?”

“대체 뭔 약을 처먹었길래 칼을 저리 맞고도 안 뒈지냐고!”

부하 서넛이 몸을 던져 피범벅이 된 최성호를 겨우겨우 트럭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 역시 이곳저곳을 물리고 뜯기는 바람에 온몸이 만신창이이긴 마찬가지였다. 트럭 짐칸에서는 여전히 조폭과 괴물들 간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때리고 쑤셔도 괴물들은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너무도 대단해서 칼부림을 직업으로 삼는 조직폭력배들이라 해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아군과 한데 뒤엉켜 있기 때문에 총기도 사용 못한다.

“이 잡것들, 도대체 뭐야?”

“일단 튀어!”

최성호가 피신한 것을 확인한 부하들은 서둘러 트럭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쫓아 괴물들도 도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렇게 트럭 안에서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민구와 그의 수하들은 트럭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일로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트럭 운전기사와 김성진에게 칼을 한 자루씩 쥐여 주고 서로를 찔러 죽이라고 명령을 했다.

“남자답게 싸워서 이기는 놈은 보내준다. 이 형이 이건 진짜로 약속할 수 있어.”

칠성이는 낄낄거리면서 먼저 찌르는 놈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부추겼다. 나머지 조직원들은 둘 중 누가 이길 것인가로 내기를 걸었다.

“난 운전기사가 이기는 데 10만 원 건다. 저 새끼가 덩치도 더 좋고 힘도 세 보여.”

“지랄하네. 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원래 높은 자리에 있는 새끼들이 더 야비한 법이야.”

“자신 있으면 판돈 올려. 주둥이만 까지 말고, 이 새끼야. 안경잡이는 지금 안경도 부서졌고 피를 많이 흘려서 절대 못 이겨.”

익숙하지 않은 도구를 손에 들고 엉거주춤하게 선 김성진과 운전기사는 간절한 표정으로 민구를 바라봤다. 제발 이제 그만 보내 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러나 민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차갑고 표정 없는 눈으로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그 섬뜩한 눈빛을 본 운전기사와 김성진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간격을 좁혔다.

“으악!”

“큭!”

시시한 모양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진지한 사투가 벌어졌다.

엉덩이를 빼고 서서 칼을 든 팔만 내지르던 두 사람은 칼끝에 베이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그럴 때마다 빙 둘러 서 있던 민구의 부하들은 깔깔대며 엉덩이를 차서 다시 밀어 넣었다.

“저기…… 형님, 저쪽 애들 뭘 잘못 먹었는지 아주 생난리를 치는데요?”

우산을 받쳐 들고 있던 칠성이 잠깐 트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옆에 선 민구에게 말했다.

“응? 난리 칠 게 뭐가 있어?”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트럭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민구의 얼굴이 굳었다. 마침 트럭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최성호를 부하들이 신음을 흘리며 끌어내는 중이었다.

“저거…… 저거, 왜 저래?”

3년 전 전국의 밤거리를 평정한 이래, 서울 하늘 아래에서 만배파 넘버 투가 피 흘리며 쓰러지는 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서늘한 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건 심상치 않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협을 감지한 민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빼 들며 트럭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괴물들에게 쫓겨 트럭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최성호의 부하 하나가 달려오는 민구를 발견하고 단비를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괴물이 뛰어내리며 녀석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끄아악!”

볼 살이 뭉텅 뜯겨 나간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친다.

“비켜!”

민구는 주변을 물러나게 한 후 커다란 나이프로 괴물의 목덜미를 그었다.

칼날이 목덜미의 살을 베어내는 동안 매처럼 빠른 그의 눈이 뭔가 이상한 점들을 알려주었지만,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건 뒤로 미루었다.

“어라?”

분명히 제대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괴물은 여전히 최성호의 부하를 물어뜯고 있었다.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깊이라면 커다란 늑대였대도 쓰러졌을 것이다. 실제로 괴물의 목은 반쯤 잘려 나가 있었다.

“이런 씨발 놈 봐라?”

죽이려고 마음먹었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이 민구의 성질을 건드렸다. 그는 한 번 더 같은 자리에 조금 더 깊이 칼을 쑤셔 넣었다. 나이프를 쥔 손끝에 괴물의 목뼈가 끊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툭―!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이자 마침내 질기게 달려들던 괴물도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그럼 그렇지, 제까짓 게…… 민구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아직 이 괴상한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는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뒤쪽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괴물이 달려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혀, 형님! 뒤에!”

즐기고 있는 민구에게 부하 녀석 하나가 손가락으로 트럭을 가리키며 쓸데없는 도움을 주었다.

민구는 재빨리 스텝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괴물들은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에 얼굴을 처박으며 나동그라졌다.

기절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대단한 충격이었을 텐데 괴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벌떡 일어나 민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썩어가는 외관과는 달리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라아악!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두 괴물 사이를 날렵하게 가르며 민구는 바쁘게 칼을 놀렸다.

목표로 삼은 곳은 옆구리였다. 갈비뼈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곳만을 노려 가능한 한 깊이 베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조금 전의 놈처럼 괴물들은 치명상을 입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지기는커녕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심지어 한 괴물은 조금 전 입은 옆구리 상처에서 내장이 삐져나오고 있는데도……. 게다가 이미 괴물들의 온몸에는 자상이 가득했다. 아마도 트럭 안에서 최성호의 부하들로부터 적지 않은 연장질을 당한 모양이었다.

“허, 이거 재미있는데? 하하하.”

달려드는 괴물들의 공격을 피하며 민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껏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싸움을 해봤지만, 이렇게 희한한 상대를 만난 건 처음이다.

마약에 쩐 놈들은 38구경 권총을 서너 발 맞고도 계속 달려든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순간적인 돌격일 때의 이야기다.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계속 방향을 바꿔가며 뛰어다니는 인간이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게다가 저 괴물들의 상처에서는 피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칼에 찔려도 피가 흐르지 않는 동물이란 것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까 그 새끼는 결국 뒈졌는데?”

민구는 이 녀석들과 자신이 죽인 첫 번째 괴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목인가…….”

두 번째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드는 것을 어깨로 흘리면서 민구는 그 녀석의 목을 깊숙하게 찔렀다.

그런데 멈추는 기미가 없다. 괴물은 목이 관통당한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민구를 물어뜯으려 들었다.

“헛!”

민구는 재빨리 칼을 놓아버리고 훌쩍 뒷걸음질을 쳤다. 칼을 포기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자신의 귀 정도는 뜯겨 나갔을 것이다.

계속해서 덤벼드는 괴물의 목에는 여전히 칼이 꽂혀 덜렁거렸다. 보고 있지만 믿기는 힘든,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흥미를 느끼기엔 충분한 상대였다. 하지만 이것들과 놀아주기엔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 너무 많다. 서둘러야 했다.

“너도 뼈는 있겠지.”

민구는 달려드는 괴물의 발목을 세게 걷어찼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이 꺾인 괴물의 몸이 옆으로 쓰러져 내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구는 두 번째 발차기를 괴물의 관자놀이에 날렸다. 쩍! 괴물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엎어진 괴물의 뒤통수에 민구의 발뒤꿈치 찍기가 연달아 들어갔다.

콰직! 콰직!

뼈가 부서졌다.

“이래도 안 죽냐? 응? 또 일어날 거야, 이 개새끼야?”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서너 차례 다시 일어나려고 하던 괴물이 결국엔 쭉 뻗어버린 것이다.

“뒤통수를 까주면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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