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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강탈자들의 밤 (1) (8/449)


8. 강탈자들의 밤 (1)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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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다리라고 해. 우리가 쫓아야 하는 건 트럭이다.”

민구는 칼을 웃옷 뒷자락에 꽂으며 운전기사에게 명령했다.

운전기사는 그의 명령을 다시 여러 차에 나눠 타고 있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전달했다.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잠시 또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30여 분이 더 지난 다음, 문제의 트럭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육중한 안전장치로 무장한 2톤 트럭은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차고에서 빠져나와 새벽의 거리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트럭의 앞뒤에는 경호 차량이 한 대씩 붙어 있었다.

“저거다. 가자.”

트럭이 어느 정도 멀어진 뒤, 민구가 어깨를 두드리자 운전기사는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밤거리의 적막을 깨는, 날카로운 타이어 소리와 함께 나란히 주차되어 있던 여덟 대의 자동차가 일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교차로에 이르자 트럭과 호송 차량은 우회전을 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강서 정수장으로 이어진 4차선과 만난다. 귀띔받은 것과 똑같은 경로다.

혹시 이야기 들은 것과 다른 길로 벗어난다 하더라도 결국 한 번은 만나도록 하기 위해 만배파는 조직원들을 세 방향으로 나누어 배치해 놓았다.

강서 정수장과 T자형으로 교차하는 4차선 도로는 대낮에도 그리 차량의 소통이 많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이렇게 비까지 내리는 밤늦은 시간이라면 별다른 방해 없이 일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콰르릉!

커다란 천둥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민구는 몰아치는 폭우와 천둥이 반가웠다. 이 정도라면 웬만한 비명이나 총소리쯤은 깨끗이 집어삼켜 주고도 남는다.

“정수장 애들한테 연락해.”

민구의 명령을 받은 운전기사가 핸드폰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쪽으로 간다. 펴놔.”

운전기사로부터 민구의 지시를 전해 들은 대기조원들은 대형 밴에서 두툼한 검은색 두루마리들을 꺼내 바닥에 그려진 줄 위에 놓고 주르륵 굴렸다.

먼저 차들이 달려오는 방향으로 3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두 겹, 반대편 차선에도 같은 방식으로 두 개. 이제 차들이 이 검은 천을 밟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은 없다.

설치된 곳이 완만한 코너를 돌아 나온 뒤 막 스피드를 올릴 지점이어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 두루마리를 미처 발견하기도 전에 자동차는 그 위를 지날 수밖에 없다.

“빠지자.”

작업을 마친 밴은 곧바로 사람들을 태운 뒤, 페인트로 미리 그어놓은 두 번째 선을 지나 쭉 빠져나갔다.

그런 다음 도로 끝자락에 긴 철제 벨트를 도로 전체에 걸쳐 펴두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스파이크 스트립, 쉽게 말해 타이어 펑크용 가시줄이다.

혹시라도 일이 꼬였을 때 이것으로 속도를 줄이고 차를 돌진해서라도 저지하기 위해서이지만, 그동안의 경험상 그런 돌발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펼쳐 둔 네 개의 검은색 두루마리는 X―Net이라는 물건이다.

1회용이고, 가격이 비싸고, 뒤처리에 시간이 좀 걸리고, 불법이라서 러시아 마피아들을 통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X―Net은 거의 완벽한 차량 저지용 장비였다.

일반 도로와 색깔이 같아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의 얇은 막 아래에는 화살촉처럼 생긴 금속 쐐기들이 박혀 있고, 그 쐐기의 끝에는 아주 질긴 그물이 연결되어 있다.

타이어의 종류와 두께에 관계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훌륭한데, 일단 자동차가 그 위로 지나기만 하면 쐐기는 타이어를 뚫고 들어가 단단히 박히고, 그 순간 그물이 휠 축과 타이어 사이로 빨려 들어가 친친 감긴다.

그러면 자동차가 멈추게 되고, 그걸로 끝이다. 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봐야 복잡하게 얽힌 그물을 모두 제거하기 전에는 더 전진할 수도, 후진할 수도 없다.

“온다!”

망을 보고 있던 조직원이 무전기로 신호를 보냈다.

코너를 지나 점점 환하게 비쳐 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전투가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꿀꺽, 만배파 설치조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던 첫 번째 호송 차량의 운전자는 X―Net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 얇게 펴진 물건이 검은색인 데다가 도로 전체가 비에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백미러를 보며 뒤를 바짝 따르는 트럭과의 거리를 살피느라 전방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X―Net은 1호 호송 차량을 놓치지 않았다. 닿는 순간, 중력과 운동에너지는 쐐기가 타이어의 고무를 꿰뚫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퍼퍼엉! 두 개의 앞바퀴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핸들이 흔들렸을 때, 운전자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억! 뭐, 뭐야!”

하지만 그는 그 순간까지도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 있는 관용 차량에는 바퀴가 터진 이후에도 시속 80킬로미터로 한 시간가량을 달릴 수 있는 피렐리 사의 펑크 방지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음에도 자동차는 아주 급격하게 멈춰 섰다.

끼이이익― 사이드 미러를 통해 너덜거리는 그물들이 비친다.

당황한 운전자는 가스 페달에 올려 있던 발에 최대한 힘을 주어 바닥이 꺼져라 꽉 밟았다. 위이이이잉― RPM 계기판의 바늘이 레드 존 영역까지 올라갔지만, 차는 1센티미터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젠장!”

앞차에게 일어난 일을 고스란히 목격한 트럭 운전사는 욕설과 함께 핸들을 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도로 위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운전사의 시선이 반대편 차선으로 향했다. 다행히 새벽의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중앙선을 넘은 트럭이 다시 속도를 높이려던 순간, 두 번째 X―Net이 트럭의 앞바퀴에 감겨 들어갔다.

끼이이이이― 앞바퀴 두 개가 모두 감긴 트럭은 중심을 잃고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10여 미터를 더 미끄러지다가 멈춰 섰다.

“이, 이런 씨발! 이게 무슨!”

2호 경호 차량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가까스로 충돌을 피하며 트럭의 우측에 비스듬히 차를 댔다.

“걸렸다!”

밴의 사이드미러로 후방을 주시하고 있던 만배파의 설치조 놈들은 세 대의 차량이 모두 멈춰 서자마자 곧바로 기어를 R로 바꿨다. 그러고는 속력을 내 후진했다.

아까 지나쳤던, 페인트로 그어둔 표시에 다다르자 밴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뒷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다.

그러자 밴의 내부를 거의 꽉 채우다시피 할 만큼 커다란 흰색 철제 상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자의 위쪽에는 각진 메가폰 같은 것이 얹혀 있었다.

“켜!”

문을 연 조직원이 외치자 운전석에 앉은 놈은 스위치를 돌렸다. 우우웅― 아주 낮고 무거운 소리가 잠시 귀를 자극하며 기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운전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조수석에 앉은 덩치가 큰 녀석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씨발아, 내가 알겠냐?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방금 그들이 가동시킨 장비는 영국 e2v사의 RF Safe―Stop이라는 녀석이었다.

태양 그룹에서 온 심부름꾼이 자동차째 전해 주고 간 이 고가의 장비는 그 엄청난 덩치만큼이나 무게도 육중해서 무려 350킬로그램에 달했다.

하지만 일처리만큼은 확실해서 최대 2기가헤르츠의 L밴드와 4기가헤르츠의 S밴드 마이크로웨이브가 닿는 방사형 범위 50미터 이내로 다가온 자동차들의 모든 전자 장비를 몇 초 내에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

이제는 기계라기보다 복잡한 전자제품에 가까워진 엔진은 물론이고, 라디오, 무전기, 심지어 탑승자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과 전자시계까지도 거기에 포함된다.

방사형으로 퍼지는 여느 EMP와 다르게 목표 방향을 특정할 수 있고, 파괴가 아니라 일시 마비라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분명했다.

이 장비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목표로 하고 있는 차량의 속도가 24킬로미터 이하일 때 50미터 이내로 접근한 상황이어야 하고, 그 상태를 3초 이상 유지해야 한다. 조금 전, 밴이 지나친 노란 선은 첫 번째 X―Net이 설치된 지점으로부터 50미터를 재 그어둔 것이다.

“이, 이게 왜 안 열려! 젠장! 시동 켜봐!”

호송 트럭의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성진은 창문 스위치가 말을 듣지 않자 짜증을 부렸다.

운전사는 고개를 저으며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잇, 결국 수동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내린 김성진이 2호차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빨리 지원 요청을 해! 이 멍청아!”

하지만 2호차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호차 운전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시동을 걸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스타트 버튼을 눌러도 계기판에는 불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에 장착된 무전기 역시 먹통이 되었다. 나머지 두 명의 요원은 엄호를 하기 위해 하차했다.

“빨리! 빨리!”

1호차의 요원 셋도 무기를 챙겨 쓸모없는 쇳덩이가 되어버린 자동차에서 서둘러 내렸다.

후진해 온 밴의 활짝 열린 문이 수상했다. 이런 공교로운 타이밍에 나타나는 놈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만든 범인이라고밖에는…….

두 대의 경호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검은 양복의 요원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문을 바리케이드 삼아 몸을 숨기고 총을 빼 들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요원은 기관단총을 꺼내기 위해 트렁크를 들어 올렸다.

위이이이이잉∼!

뒤쪽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엔진의 굉음, 그리고 도로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하이 빔! 검은 양복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으아앗! 비명이 터진다. 그들을 향해 여러 대의 자동차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거대자본의 힘으로 끌어들인 외국의 최첨단 장비들과의 예상치 못한 전쟁에서,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었다.

공포에 질린 검은 양복들은 도로변을 향해 몸을 날려 피했다. 단 한 사람의 요원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양발을 넓게 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이 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으면서 조준 사격이 될 리 없었다.

“저 새끼, 받아버려.”

1호 차의 뒷문에 기댄 채 총을 발사하는 검은 양복을 가리키며 민구가 잔인하게 웃었다.

민구의 지시를 들은 운전기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액셀을 꾹 밟았다.

끼이잉!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높고 날카로운 엔진음! 검은 양복은 그제야 몸을 틀었다. 그러나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콰쾅! 퍼걱!

시속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려드는 대형 승용차와 문 사이에 낀 검은 양복의 사내는 커억, 하는 비명 소리와 피를 동시에 토했다.

엉망으로 부서진 사내의 몸뚱이는 떨어져 나간 문짝과 함께 10여 미터 앞으로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민구의 차는 그때까지도 계속 내달려 바닥에 뒹구는 사내를 한 번 더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RF Safe―Stop의 영향 때문에 엔진이 꺼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트럭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경호 차량에도 한 대의 차가 돌진했다.

콰장창! 문짝이 우그러지고 유리창이 부서져 내렸다.

이야아아아! 노란 선 밖에 급정거를 한 두 대의 봉고차에서는 함성 소리와 함께 덩치들이 쏟아져 내렸다. 공사장 안전 헬멧을 쓴 덩치들은 전경들이나 들고 있을 법한 긴 시위 진압용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뛰어왔다.

“이런 개새끼들이!”

도로변 가로수 뒤로 몸을 피했던 다섯 명의 검은 양복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하이 빔 헤드라이트가 시야를 흐리는 데다 권총만으로는 방패를 관통시키기 어렵다. 요란하게 흩뿌리는 빗줄기 역시 요원들의 전투력을 저하시켰다.

티잉! 티잉!

방패에 맞은 도탄이 사방으로 튀었다.

총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방패들을 바짝 붙여 세우고 그 뒤에 몸을 숨긴 조폭들은 계속 쇠파이프를 집어 던지고 엽총을 쏘면서 검은 양복들이 다른 데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라이트부터 쏴! 라이트!”

검은 양복 중 하나가 외쳤다. 나름 타당한 결정이다. 문제는 쏴서 깨야 할 라이트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사선으로 20여 미터 뒤에서 권총 대 방패의 일대 결전이 소란스럽게 일어나는 동안, 민구는 태연히 차에서 내려 조금 전 자신이 치어 죽인 사내의 시체를 살폈다.

“허, 이 새끼들 역시나 나랏일 하는 놈들이었네…….”

사내의 목에 걸려 있는 출입증에서 피와 빗물을 닦아내고 뒤집어 보던 민구가 빙글거리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너희 이제 큰일 났다. 이런 대단하신 놈들을 작살냈으니 이제 줄줄이 달려가서 넥타이 걸 일만 남았네. 도대체 우리 노친네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는 거냐. 크크크.”

꽈르르릉―

또다시 천둥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형님, 이, 이거…….”

운전사 칠성이가 허겁지겁 방탄조끼를 건넨다. 안전모에 두툼한 방탄조끼까지 걸쳐 입은 채 총번 지운 산탄총을 들고 서 있는 칠성이의 모습을 보며 민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이 새끼야. 그런 건 너나 입어.”

경호원들은 등 뒤, 민구의 차량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간간이 뭔가를 집어 던지고 엽총을 쏴대며 방패의 라인을 전진시키는 앞쪽의 조폭들이 충분히 신경 쓰이고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타앙― 타앙―!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양복들의 권총 소리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총알이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방패조가 다시 한 번 함성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회칼을 번뜩이며 달려오던 놈들 중 하나가 다리에 총을 맞고 고꾸라지며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젖은 바닥에 번져 나가는 붉은 피! 그 모습을 보고 겁을 먹은 방패조는 다시 전진을 멈췄다.

“탄창! 탄창!”

총알이 바닥난 검은 양복이 나무에 몸을 숨기며 동료들에게 손을 벌렸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예비 탄창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라이트를 깨느라 너무 많은 실탄을 허비한 덕에 정작 시야가 확보된 후에는 싸울 수단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애초에 트렁크에서 MP5를 꺼내지 못한 시점부터 그들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권총 따위로는 저렇게 장비를 갖추고 한꺼번에 달려드는 놈들을 제압하기 어렵다.

검은 양복은 무기가 들어 있는 자신들의 자동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리는 불과 7미터 정도. 열린 채 들려 있는 트렁크 문이 유혹적으로 느껴진다. 뻥 뚫린 공간이라 무방비이고, 젖은 노면이 부담스럽지만, 뛰자고 하면 못 뛸 것도 없을 것 같다.

“엄호해 줘! MP5 가지러 간다!”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제히 마지막 남은 몇 발의 총알로 제압사격을 가하는 동안 검은 양복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피잉― 산탄총의 발사음이 들리고 머리 위로 사시미 칼이 날아다니자 오금이 달라붙는 듯했지만, 그는 열심히 뛰었다.

마침내 1호차에 도착한 검은 양복은 차 옆으로 날렵하게 굴러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더듬거렸다.

기관단총과 탄창이 들어 있는 검은 보스턴백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는 말할 수 없이 큰 성취감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미소까지 지어졌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지퍼를 내렸다. 그때였다.

“에이, 사람이 뒤도 좀 돌아보고 살아야지.”

난데없이 들려온, 건들거리는 목소리.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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