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금단의 회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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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단의 회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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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금단의 회의 (4)
2021.09.06.
“인구 1,000만 이상의 메가시티에서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프를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스크린을 가볍게 두드리자 떠 있던 그래프의 모양이 바뀌었다. 가파른 상승 곡선이었다. 김성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변종 투입 후 첫 24시간이 지나면 해당 도시의 전체 인구 중에서 감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47퍼센트까지 치솟습니다. 이틀이 경과했을 때 64퍼센트, 사흘 후에는 70퍼센트까지 늘어납니다.”
다소 충격적인 수치였는지 교수가 곧바로 말을 끊었다.
“첫 하루 만에 도시 인구의 반이 감염된다고? 그게 가능한가?”
“이 역시 인구밀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100평방미터의 면적을 독점하는 소도시와 달리, 메가시티에서는 같은 면적을 150명이 공유합니다. 물론 이 비정상적인 수치가 가능한 이유는 제한된 면적 위에 고층 건물들과 아파트처럼 수직 방향으로 늘려놓은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층 구조물들을 계산에 포함시킨다고 해도 개인 간의 거리는 결국 사방 10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150명이 100평방미터 안에…… 그야말로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몇 걸음만 걸으면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는 말이군.”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그 밀집도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변종이 출현한다면 피해자들은 사람의 벽에 막혀 마음대로 달아날 수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변종은 아주 쉽게 감염자들을 증식시키게 됩니다. 또 2차 감염자들 역시 손쉽게 새로운 증식 대상을 확보해 3차 감염자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메가시티의 초기 확산 비율은 기하급수적입니다.”
“아까 가장 빠른 감염 시간이 얼마라고 했지? 15분이었나?”
“그렇습니다.”
“이동 거리를 감안하지 않으면 투입 후 15분 뒤에 3기였던 변종이 6기가 되는 거고, 다시 15분이 지나면 12기가 되는군. 24, 48…….”
음,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잠시 계산을 해보던 교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마리의 변종이 한 사람씩에게만 감염을 시킨다고 가정해도 변종의 수는 다섯 시간 만에 백육십만 가까이로 늘어난다.
그때쯤이면 통제라는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의 변수는 그보다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한 교수는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도시의 거주 형태는 대부분 아파트 아닌가? 다들 집 안으로 들어가 단단한 철문을 잠그고 며칠만 버티면 될 텐데, 저렇게 감염자가 많이 늘어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군.”
그 역시 시뮬레이션에서 제공된 통계 수치가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김성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은 라이프 사이클 때문입니다. 메가시티 시민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20킬로미터 정도라 추산되고 있습니다. 출퇴근이나 쇼핑, 등하교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낮 시간 동안 자신의 집으로부터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입니다. 10킬로미터라고 하니까 꽤나 긴 거리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로는 15분 남짓, 지하철로는 몇 정거장에 불과합니다.”
교수와 군복이 흐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납득하는 듯해서 김성진은 설명을 계속했다.
“일단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발하면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10킬로미터가 실로 엄청난 거리가 돼버립니다. 도로는 정체된 자동차로 꽉 막혀 이동이 불가능해지고, 변종들로 인해 살육의 현장이 된 지하철은 폐쇄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변종들이 가득한 10킬로미터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남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감염의 가능성이 크게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를 사수하거나 가까운 다른 사람의 집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교수의 질문에 김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 재미있는 통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태가 확산된 후에도 이성적이지 않은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가족이 위치한 곳이나 집을 향해 이동합니다. 또 타인의 주택을 공유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밖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대규모의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낯선 타인을 위해 문을 열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파편화되고 익명성이 강해진 현대 산업도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군복이 격하게 공감하며 끼어들어 한마디를 보탰다.
“하긴, 낯선 사람이 갑자기 변종이나 강도로 돌변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겠지. 나 같아도 열어주지 않을 것 같긴 하군. 사태가 진정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도 미지수인데, 새로운 사람을 들일 때마다 내 몫의 식량이 줄어들 테니까 말이야. 그건 인간의 생존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지.”
킹메이커도 자신의 분석을 덧붙였다.
“게다가 그 집들이 대부분 빈집인 채로 잠겨 있을 가능성도 높아 보이는군요. 다들 어딘가로 나가서 뭔가를 하고 있을 시간이니 말이에요.”
김성진은 고개를 끄덕여 두 의견에 대한 동의를 표시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네.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메가시티 감염의 30퍼센트 이상이 길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무리하게 자동차를 몰고 나왔던 사람들이 꽉 막힌 정체 속에서 변종을 만나면 통조림 신세가 돼버립니다. 혹시 그 직전에 심각성을 깨닫고 차를 버려도 그들에겐 안전한 피신처가 없습니다.”
“그렇게 늘어나던 감염자 수가 증가세를 멈추고 소멸을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로 예상되나? 소도시와 비슷한 5일째부터인가?”
교수의 물음에 김성진이 답을 했다.
“메가시티 시뮬레이션의 특이한 점은 변종과의 첫 접촉부터 120시간이 지난 뒤에도 감염자들의 비율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그 세가 완만해지기는 하지만, 계속 증가합니다.”
“군이 투입된 다음에도 줄어들지를 않아? 그건 또 왜 그런가?”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감염자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천만의 70퍼센트면 칠백만입니다. 칠백만이나 되는 수의 감염자를 무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만 이상의 병력이 일주일간 작전을 펼쳐야 하는데, 만약 병력의 수가 줄어든다면 그 2배수의 비율로 작전 기간이 늘어납니다. 이때 병력 수급 문제가 도출됩니다. 진압을 위한 병력을 외부에서 수송해 와야 하지만, 버려진 자동차로 꽉 막힌 도심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헬리콥터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수를 한다면 병력의 숫자가 적어지고, 도보로 이동하면 작전 개시가 매우 늦어집니다.”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면 작전 기간은 네 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말인가? 애초에 그렇게나 많은 병력이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뭐야? 변종들은 원거리 살상 능력도 없으니까 일단 정규군만 투입되면 일방적인 살육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감염자를 상대로 한 제압전은 자국의 도시를 무대로 하는 시가전이기 때문에 포병이나 공군의 지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물리적 제압이 보병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채 장군님?”
우월한 입지를 인정받아 으쓱해진 군복이 설명을 보탰다.
“그렇지.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미사일부터 날리고 공습으로 초토화시킨 다음 보병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피난 못 한 시민들이 싹 다 몰살당하는 건 물론이고, 재건 비용을 감당하기조차 어려울 거야. 이제는 6.25 때가 아니라서 온통 비싼 건물들이 즐비하니까 말이야. 탱크조차 운용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정말 보병이 죽어나겠는걸?”
상황의 특수성을 가장 먼저 이해한 군복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아마 서울을 가상의 무대로 설정해 두고 머릿속으로 작전을 짜보는 모양이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계산을 하고 있는 군복에게 킹메이커가 물었다.
“하지만 장군님, 그렇다고 해도 보병이 10만이나 필요할까요? 저 같은 문외한이 생각하기엔 그보다 적은 병력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가령 5만 명이라 해도 한 사람이 140발씩만 맞추면 상황이 종료되는 것 아닌가요?”
킹메이커의 질문을 받은 군복은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 그건 이렇습니다. 10만이 투입된다고 해서 그 병력 전부가 총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이 전투에서 싸워야 하는 상대는 이빨만 있으면 얼마든지 적군을 더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변종들이 더 확산되지 못하도록 도심 외곽 전체에 봉쇄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다음엔 탄약과 식량, 약품 같은 것들을 보급하는 부대가 있고, 수복 지역을 새롭게 확보할 때마다 시민들을 구조하는 부대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후방에 임시 캠프를 설치하고, 그에 대한 경계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 또 작전에 투입된 부대가 고립될 경우도 있으니까 그에 대비해서 예비 병력도 따로 운용해야 하죠. 그런 식으로 이래저래 빠지게 되니까 실제로 필드에서 섬멸을 담당할 군사는 전체 투입된 인원의 절반이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예. 게다가 아까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대도시는 고층 빌딩이 많으니까, 그 모든 건물들의 각 층을 수색해야 하는 점도 생각 이상으로 인원과 시간을 소모시킵니다. 그건 아마 미군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라면 화력이 우수한 쪽이 압도할 수 있지만, 이렇게 폐쇄적이고 미로 같은 구조가 배경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저놈들은 항복이라는 개념이 없을 테니까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이건 백기를 들고 나오면 끝나는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최후의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총을 내려놓을 수 없는 싸움이니까요.”
이야기를 듣는 동안 킹메이커와 교수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아니라 점점 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시뮬레이션이 보여준 예상 수치가 절망적일수록 변종이 지닌 전략적 가치는 엄청나게 커진다.
24시간 만에 가장 발달한 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지금 그들의 손에 들어와 있다.
이 무기의 최고 장점은 아무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군복이 설명을 마치자 교수가 김성진을 향해 몸을 돌리고 급하게 물었다.
“메가시티에서는 일단 변종 세균이 퍼지면 감염자의 비율이 감소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김성진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뭐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군 병력 투입을 계산에 넣지 않았을 리도 없고, 군대가 진압을 시도해도 그 작전이 실패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적이 강력해도 이쪽은 현대 화기고 저쪽은 그냥 세균이 묻은 이빨이야. 그런 싸움에서 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데?”
“대대적인 섬멸 작전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둡니다만, 특정 시점이 되면 군대는 일시적으로 작전을 중지하고 병력을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그 특정 시점이란 건?”
“연쇄반응 때문에 메가시티 주변의 위성도시에서도 시간 차를 두고 감염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되면 메가시티를 봉쇄하고 있던 병력들이 오히려 거꾸로 감염자들에 의해 포위당하는 형국이 됩니다. 연쇄반응은 메가시티가 열차, 고속도로, 항공, 선박 등 거의 모든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일단 메가시티에서 감염자의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몇 시간 만에 수천의 감염자들이 다른 도시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허허, 이거…… 완전히 절망적인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네요. 그렇다면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은 뭔가요?”
킹메이커가 물었다. 말로는 절망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들떠 보였다.
성긴 흰 머리카락으로 덮인 그의 교활한 머리에서는 벌써부터 이 기회를 활용해 보겠다는 욕망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지금 강화유리 벽 너머에 잠들어 있는 저 변종들은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전염병이고, 동시에 무기다. 그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고,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조차 해본 적 없는, 그런 종류의 힘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직 그들이 저 변종들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칼은 휘두를 수 없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차트를 넘겨 자료 수치를 확인한 뒤, 김성진이 입을 열었다.
“통제를 포기하고 물리적인 경계를 만들어 거주 구역과 감염 구역을 나누는 방법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확산을 늦추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방용 백신을 확보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백신! 변종에 의한 감염자가 기승을 부릴 때 백신의 값어치가 얼마나 클 것인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유럽의 조그만 도시 하나에 변종들을 풀어놓았다가 반년 뒤쯤 백신을 공개한다면, 60억의 고객을 독점할 수 있다.
가격 흥정도 없을 것이다. 서로 먼저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로비를 하고 줄을 설 테니까…….
백신을 공급받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격차가 향후 30년간의 미래를 결정지어 줄 중요한 키가 될지도 모른다.
킹메이커는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이, 김성진을 향해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차라리 예방약 말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편이 경제적 가치는 더 크지 않겠나? 이미 감염된 사람들까지도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이점은 포기하기 아까운데.”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의학적으로 봤을 때, 감염자들은 죽은 상태입니다. 심장도 뛰지 않고, 호흡도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두엽이 녹아 사라지면서 뇌 전체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치료를 통한 롤백은 불가능합니다.”
“음, 그랬었지.”
교수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런 교수를 위로하듯 미소를 던진 뒤, 킹메이커가 물었다.
“백신을 거론하는 걸 보면 김 박사에게 개발할 수 있다는 어떤 확신이 있는 거겠죠? 말해보세요, 시간을 얼마나 주면 되겠습니까?”
대답을 기다리는 킹메이커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깨끗이 지워졌고,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그의 차가운 눈은 김성진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잘 대답해야 한다. 승부의 순간을 맞은 김성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개발 기일을 너무 짧게 잡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책임질 날이 닥칠 것이고, 또 너무 길게 잡으면 이 능구렁이들은 그를 떨어내고 다른 사람을 데려다 이 자리에 앉힐 것이다.
이런 거대한 극비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다가 떨려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곧 사회적 매장 이상의 의미였다.
킹메이커와 교수, 저 교활한 늙은이들이 용납할 수 있을 만한 한계 내에서 최대한 길게 연구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도박의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 김성진은 긴장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잘 아시다시피 백신 개발은 무한한 확률과 상상력이 벌이는 지루한 싸움입니다. 물론 이때의 상상력은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변종의 백신 연구는 특히 비밀 유지를 위해 소수의 최정예 인력만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습니다…….”
“아, 그런 서두는 다 떼어버리고 본론만 말하지. 몇 달? 몇 년? 완성된 백신이 우리 앞에 놓일 때까지 얼마나 필요해?”
교수가 손을 흔들면서 김성진의 말을 끊었다. 네, 알겠습니다. 핀잔을 들은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 김성진이 안경을 고쳐 쓰고 좌중을 둘러보며 또박또박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