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금단의 회의 (3) (5/449)


5. 금단의 회의 (3)
2021.09.05.


16554453855185.png

 

“지금부터 보실 영상은 이 케이스의 샘플 2번입니다. 샘플 2번은 앞서 보셨던 사건에서 최초의 변종에게 물렸던 해양경찰입니다. 이 영상을 촬영할 당시, 전염으로부터 125시간 48분이 경과한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 확보하고 있던 가장 오래된 생존 전염체입니다.”

③…… ②…… ①

숫자가 차례로 지나간 뒤에 화면은 병원으로 보이는 타일 바닥의 방을 보여줬다. 천장의 카메라는 약 35도의 각도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서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카메라와 마주 보고 있는 문이 열리고, 방균복과 마스크, 고글을 착용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이동식 행거에 달린 뭔가를 끌고 들어왔다.

이동식 행거는 종합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장 체중 측정계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사방 약 1미터의 판 한쪽 끝에는 윗부분이 ‘ㄱ’ 자로 굽은 길쭉한 철제 기둥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신장 체중 측정계와 다르게 행거의 철제 기둥 끝에 달린 커다란 갈고리에는 구속복에 의해 팔다리가 제압된 한 장년 사내가 꿰어진 채였다.

사내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져 대롱거렸다. 흡사 정육점에 걸어놓은 고깃덩어리나 항구에 걸린, 붙잡힌 상어 같은 모습이다. 흰 막이 씐 눈동자는 그가 변종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변종사내의 입으로 들어가 턱을 꿰고 있는 갈고리에는 재갈처럼 입을 가리는 두툼한 쇠판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쇠판은 사내의 양 볼을 뚫고 들어가 너트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턱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꿰인 채 매달려 있는 모습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보였고, 아주 조금의 진동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통증을 입과 턱에 전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놀랍게도 끊임없이 몸을 채며 꿈틀댔다. 그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갈고리에 꿰인 입과 볼에서는 피와 체액이 섞인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행거를 방 한가운데로 끌고 와 받침대를 고정시키자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푸른색의 마스크를 쓴 사람 하나가 행거에 다가갔다.

“으윽! 으읍!”

행거에 꿰인 변종사내는 여전히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발버둥을 쳤다. 그에 아랑곳 않은 채 푸른 마스크는 곧바로 실험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도구가 놓여 있는 캐리어에서 그가 가장 먼저 집어 든 것은 조그만 플래시라이트였다. 푸른 마스크는 플래시라이트를 변종의 눈에 대고 좌우로 옮기며 비추어보더니 짧게 말했다.

“반응 없음.”

다음엔 조그마한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변종의 무릎을 향해 휘둘렀다.

여러 번 망치에 맞았는데도 변종의 다리는 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푸른 마스크는 다시 반응 없음이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변종사내가 외부의 자극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 실험은 점점 더 격해지고 잔인해졌다.

커다란 바늘이, 메스가, 외과 수술용 전기톱이 차례로 동원되었다. 하지만 흉부가 절개되고 두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신체가 훼손된 상황에서도 변종은 전혀 동요하거나 고통에 괴로워하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주변을 도는 푸른 마스크를 향해서만은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같은 리듬으로 버둥거렸다.

“이 상태에서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그 이상의 실험을 잠시 중단하고 촬영만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세 시간 동안에도 샘플 2번은 비슷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다만, 실험팀이 방을 비우자 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잠시 영상을 정지시키고 김성진이 보충 설명을 했다. 이곳에 오기 전, 김성진은 이 영상에 대해 심각하게 고심을 했었다.

아무리 실험이라고는 해도 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훼손을 그대로 담은 영상을 필터링 없이 상영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회의실에 앉아서 덤덤하게 그것을 지켜보는 노회한 얼굴들을 보며 김성진은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말 잘 죽지 않는구만. 급소 같은 건 없나?”

교수가 물었다.

“급소……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운동이 영구히 정지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그 과정이 앞으로 이어질 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답변을 마친 후, 김성진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아래에 표시된 디지털시계는 3시간 23분이 지났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 그윽! 읍!

빈방에서 비교적 얌전히 있던 변종의 발버둥이 갑자기 격해졌다. 그의 움직임이 커짐에 따라 갈고리에 꿰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체액의 양도 증가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다시 푸른 마스크가 방 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슨 신호인 것처럼 변종은 그네라도 타는 것처럼 앞뒤로 몸을 크게 휘저었다.

― 으으우! 으읍!

변종이 그르렁대는 소리는 재갈에 막혀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푸른 마스크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변종은 점점 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고, 쇠로 만들어진 갈고리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 큰 하중을 받아야 했던 변종의 얼굴이 좌우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갈고리에 꿰어져 변종을 지탱하고 있던 피부와 근육은 한번 결을 따라 찢기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크게 벌어졌고, 결국 갈고리에 대롱대롱 걸린 턱의 윗부분만을 남긴 채 변종의 나머지 신체는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동시에 그렇게 활발하던 움직임도 멈췄다.

“저건가요? 머리?”

킹메이커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떤 자극에도 반응이 없고 부상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만, 머리가 절단되는 경우에만은 정상의 인간과 같이 움직임이 정지합니다. 또 뇌가 파괴되거나 강한 충격을 받아도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이상하게 인간적이로군. 심장이 절제되어도 움직이더니 말이야.”

교수는 오히려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김성진은 또 다른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조금 전의 영상에서 머리가 잘린 변종의 뇌를 촬영한 단층사진이었다. 구불구불한 뇌의 주름이 하얗게 찍힌 뒷부분과 달리 앞부분 절반은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이 사진을 보시면 변종의 전두엽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외과적으로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변종으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서 전두엽 부위만이 녹아버리는 것이라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녹아버린 전두엽의 성분이 뇌의 나머지 부분과 화합하여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신경전달물질을 만듭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앞으로 좀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습니다만,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신경전달물질이 변종들의 움직임을 제어한다는 가설입니다. 뇌에 손상을 입으면 움직임이 멈추는 것 역시 이런 이유라고 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진의 설명에 킹메이커와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좋은데 지능이 낮아 보이는 게 흠이군. 군인으로서는 나무랄 것 없는 신체 조건인데……. 총을 쏠 수 있겠나?”

군복의 질문에 김성진은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군복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해도 전술적 가치는 여전히 뛰어날 것 같군. 군사 작전용 프로그램에서 시뮬레이션 돌려봤지?”

“예.”

“어떤 조건이었나?”

“변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현대 도시에 변종들을 투입시켰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24시간 단위로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시뮬레이션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크기와 인구밀도에 따라 소도시, 중간 도시, 대도시, 메가시티의 4단계로 분류시켰습니다.”

“좋아, 소도시부터 가볼까?”

김성진이 스크린을 터치하자 화면에는 그래프 하나가 떠올랐다.

16554453855192.jpg

 

“인구 10만 이하의 소도시에 3기에서 5기 사이의 변종을 투입했을 경우, 24시간 내에 도시 인구의 2퍼센트가 감염됩니다. 이틀이 지나면 전체의 17퍼센트가, 사흘째에는 34퍼센트가 감염됩니다. 4일이 지나면 45퍼센트까지 감염자의 비율이 늘어나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 그 수가 감소합니다. 물론 이 시기가 되면 실제 사망자의 수는 45퍼센트가 아닌 50퍼센트까지 치솟기는 합니다.”

김성진의 설명을 들으며 그래프를 보고 있던 교수가 물었다.

“첫째 날의 전염 속도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한 것 같은데? 저 정도의 전염력을 가진 변종들이 투입됐는데 24시간 동안 겨우 2퍼센트라고? 이유가 뭐야?”

“그건 소도시의 생태적 특수성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소도시들은 농업도시적 측면을 공유하고 있으며, 개별 인구 간의 거리가 100평방미터 내외입니다. 그래서 처음 24시간 동안 변종들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별 인구 간의 거리라는 건?”

“한 사람이 그 도시의 다른 구성원과 접촉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소도시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가로 10, 세로 10미터 넓이의 정사각형 면적을 독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방향으로든 10미터를 가야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이야긴가? 그들이 그다음 사람을 만나려면 또 10미터를 가야 하고?”

“좀 더 복잡합니다. 자신의 독점 영역을 벗어난다고 해도 다음 사람이 100평방미터의 공간 중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이동 거리는 훨씬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100평방미터의 공간 개념을 직선 길이의 개념으로 환원하면 10킬로미터나 됩니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이고,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그 거리가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또 대부분의 소도시는 도로망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이동의 방향도 제한적입니다.”

“첫날은 투입된 변종이 감염시킬 사람을 몇 명밖에 만나지 못해서 증가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말이군.”

“예. 소도시에서 아파트 단지와 같이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을 골라 변종을 투입하고, 그들이 그 구역 전체를 감염시킨다 하더라도 증가한 감염자들이 새로운 증식 대상을 찾기 위해서는 매우 긴 이동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김성진의 설명을 듣고 있던 교수가 손을 들어 말을 끊더니,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변종의 최초 접촉 대상이 경찰일 경우에는 감염자를 전혀 늘리지 못하고 사태가 맥없이 끝나 버릴 수도 있지 않나? 보자마자 사살……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김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경찰들에게는 사살보다는 체포를 우선하라는 지침이 강압적이라 할 만큼 반복적으로 교육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발포 자체를 주저하는 경향이 있고, 피치 못할 상황에 발포를 하더라도 상체가 아닌 하체를 겨냥합니다. 경찰이 아무런 피해 없이 변종을 초기 제압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납득한 교수가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그건 그럴 법하군. 그다음인데…… 나름 가파르던 증가세가 셋째 날부터는 현저하게 감소한단 말이지. 이유는 뭔가?”
“증가세의 차이는 역시 경험이 주는 정보 때문에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 변종들을 대면했을 때 시민들은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변종에게 물린 감염자들을 병원처럼 다른 증식 대상들이 많은 곳으로 옮긴다든지, 별다른 경계심 없이 인구 밀집 지역으로 이동하여 증식의 목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첫 접촉 이후 48시간 정도가 지나면 당연히 군이 투입되고, 변종들에 대한 정보와 대응 방법이 뉴스와 인터넷, SNS, 휴대전화 등의 수단을 통해 시민들 사이에도 확산됩니다. 물론 이 중에는 잘못된 거짓 정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사망자의 수가 감염자의 수보다 월등히 많은 이유도 대부분 이 잘못된 정보들에서 기인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겁에 질린 대중들이 무고한 사람까지 변종으로 몰아 죽인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줄곧 조용히 듣고만 있던 킹메이커가 군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장군님, 어떻습니까? 저 정도 수치라면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을까요? 만약 한 국가가 저런 피해를 입는다면 전투력에 어떤 변화가 발생할 거라고 보세요?”

“음…….”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정리한 군복이 입을 열었다.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봅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이미 인구의 50퍼센트를 잃는다는 건 엄청난 손실입니다. 그것도 단 나흘 만에……. 직접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전력에서 제외되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사이에 생겨난 혼란과 행정 공백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일단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문제만 해도 엄청난 일입니다. 인구 1인당 하나씩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것인데, 그 정도 양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요. 또 사망자들의 보직을 대체하는 과정의 비용도 상상 이상일 겁니다. 이런 문제는 군 조직 내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할 텐데…… 전투기 파일럿은 있지만 정비사는 없고, 포병은 있는데 관측병은 없는 식이 될 겁니다. 게다가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아직 변종들이 다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병력을 전선에만 집중시킬 수도 없죠.”

군복의 답변을 들은 킹메이커는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핵 이상의 전략 병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순간적 살상력은 핵 쪽이 월등하겠지만, 변종 투입은 훨씬 은밀하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발사하는 순간 그 즉시 적에게 파악되는 핵무기에 비하면, 이건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군복의 이야기가 끝나자 8인의 주요 인사가 모두 음흉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의 얼굴은 마치 위험한 무기를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축제 분위기를 다소 가라앉힌 것은 킹메이커였다.

“하지만 전쟁이란 건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와 벌이는 거니까요. 소도시에서 통하는 무기가 대도시 이상에서도 효과를 보리라는 법은 없겠죠. 어떻습니까, 김 박사? 가장 번화한 도시에서도 변종 투입이 비슷한 확산 양상을 보이던가요?”

이건 김성진이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대도시급 이상의 무대에서 변종들이 어떤 가공할 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듣는다면, 그 강력함에 이 늙은 너구리들은 완전히 매혹당할 것이다.

1655445385519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