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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단의 회의 (2) (4/449)


4. 금단의 회의 (2)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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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가요, 오늘 우리가 보게 될 샘플들이 입수된 경로가?”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킹메이커가 물었다. 김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무전을 받고 출동한 헬리콥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경비정에 타고 있던 16인 전원이 이미 감염된 이후였습니다. 그것을 저기에 계신 채 장군님께서 극비리에 확보하셨습니다.”

김성진은 8인 중의 한 사람인 군복, 채 장군을 가리켰다. 군복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에 답했다.

“어디 배인가요, 저건?”

킹메이커의 질문에 김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록되어 있는 선박이 아니어서 국적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만, 훼손이 심하지 않은 정도로 보아 근해에서 표류하던 것이라 추정됩니다.”

“뭐야, 대체? 공격성은 그렇다 쳐도 저렇게 절반이 잘린 채로…… 게다가 총을 맞고도 곧바로 움직이던데……. 해부했지? 저게 사람이 맞긴 한가?”

이번엔 대통령의 최측근, 교수가 물었다.

“네. 국과수에서 해부를 진행했고, 그 세부적인 검사결과와 수치는 미리 제출해 드린 보고서 15페이지에 있습니다. 장기 구성이나 유전자 모두 인간이긴 합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헤모글로빈 수치였습니다. 일반인들은 12에서 17 정도의 분포를 보이지만, 이 사건에서 얻은 샘플들은 모두 헤모글로빈 수치가 0.3 이하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헤모글로빈은 한 분자당 네 개의 산소 분자를 흡수하여 이동하는데…….”

교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대서 김성진은 설명을 멈췄다.

“아니, 아니, 잘 몰라. 여기에 헤모글로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그게 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그런 숫자들은 빼고 뭘 의미하는지 결론만 말해봐.”

“예.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맥락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어야 하는 이유는 폐로 흡수한 산소를 피의 적혈구에,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에 실어서 몸의 곳곳에 산소가 필요한 세포로 보내고, 다시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런 피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심장이 박동합니다. 그런데 이번 케이스에서 발견한 샘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헤모글로빈 수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치들과 무관하게 샘플들은 여전히 특정한 주변의 자극에 반응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런 징후들이 의미하는 바는…….”

보다 극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되기를 바랐던 김성진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척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이 돌연변이 과정을 겪은 이들은 산소호흡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샘플들은 폐와 심장에 의지하지 않고도 생존해 있고, 거기에 더해 지속적으로 운동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들으면 모두들 엄청나게 동요할 것이라고 김성진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감정을 드러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게 대단한 건가?”

군복을 입은 남자가 처음으로 김성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연히 대단하지, 이 멍청한 인간아. 폐랑 심장을 떼어내도 살아 있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나 있느냐고! 김성진은 군복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자신이 그를 경멸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역사적으로 단 한 건도 보고된 사례가 없습니다. 이 샘플 중 하나만 공개된다 해도 전 세계의 학계로부터 공동 연구를 위한 제의와 투자가 쇄도할 것입니다. 만약 이들의 생존 원리를 밝힐 수만 있다면, 심장이나 폐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시한부 환자들에게 엄청난 희망이 될 겁니다.”

“확실히…… 돈은 되겠구만. 도무지 뭔지를 모르겠는 정도로 새로운 것이니까 말이야.”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귀한 걸 외부에 공개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자기 패를 다 까고 포커 테이블에 앉아서 돈을 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꽁꽁 싸두고 딱 우리끼리 볼 사람만 보면서 가끔 새로운 거 하나씩 아주 작은 것만 던져 주면 10년, 아니, 20년은 족히 가겠는데?”

말을 마친 교수는 탐욕적으로 입 주변을 쓸었고,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게 분명한데도 군복은 흠, 흠, 소리를 내며 동의하는 척을 했다.

킹메이커도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이거, 국운이 승하는군요. 매력적이지 않아요? 반영구적으로 지속 가능한 무산소 운동이라……. 근데 다 좋을 수는 없겠죠? 좀 전에 화면을 보니까 단점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던데……. 어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가 좀 진행이 됐나요? 어떤가요?”

“네. 지적해 주신 것처럼 분명히 선결해야 하는 과제들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전염성입니다. 방금 보신 영상에 잘 드러났듯이, 이 돌연변이는 접촉을 통해 전염됩니다.”

“접촉. 그러면 그 접촉의 상정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현재로서는 조금 조심스러운 잠정 결론입니다만, 일단 공기 접촉이나 단순한 피부 접촉은 안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보균자의 구강에서 만들어지는 효소와 세균이 다른 사람의 혈액에 직접적으로 침투했을 경우에는 예외 없이 전염이 진행되어 세포 변형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균이 감염시키고, 효소가 그 진행 속도를 촉진시킨다는 말이군. 피부 아래까지 물어뜯어야만 전염이 되는 거니까 확산 가능성 자체로만 보자면 오히려 에이즈보다도 약한 편이겠는걸? 감염된 이후의 발병은 어때? 얼마나 걸려서 돌연변이가 이루어지나?”

교수와 문답을 주고받자니 김성진은 잠시 자신이 강의실에서 발표를 할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투입된 세균과 효소의 양에 따라 달라집니다. 돌연변이 보균자…… 이것을 이제부터 ‘변종’이라 총칭하겠습니다. 변종의 타액이 직접적으로 피부를 뚫고 피접촉자의 혈액에 주입되는 경우, 쇼크에 의해 피접촉자의 심장이 정지합니다. 그다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변이가 진행됩니다. 여기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현재 보고된 바에 따르면 가장 빠른 것은 15분부터 길게는 여섯 시간 정도 이후에 피접촉자의 신체에서도 돌연변이 과정이 마무리됩니다.”

킹메이커와 교수는 김성진이 설명을 돕기 위해 화면에 띄워둔 도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귓속말로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가 볼펜으로 스크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 보면 역의 경우가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정상인이 변종을 깨물어서 경구 섭취했을 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한 게 없나? 침이라든가 위액이 저항을 일으켜 주나, 아니면 그 역시 감염 경로에 포함되나?”

“동물실험을 해봤습니다. 쥐와 돼지, 조류, 어류 등 20여 가지 대상에게 혈액과 뼈를 포함한 변종의 신체 일부분을 사료로 줘봤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경구 섭취는 안전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교수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끊었다.

“이봐! 누가 동물 이야기를 물었나? 사람이 변종을 먹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잖아!”

의외의 질문이어서 김성진은 잠시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찾아봐야 했다.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누가 목숨을 걸고 저런 역겨운 걸 먹는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김성진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자 교수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면서 나무랐다.

“조사를 했어야지. 어째 그런 걸 빼먹나? 아래에서 그런 걸 놓치고 보고서를 올렸더라도 자네 선에서 더 보강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야지.”

교수의 다그침에 김성진은 연신 죄송합니다, 라고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를 만류한 것은 킹메이커였다.

“아이구, 한 교수님. 진정하십시오. 뭐, 이제라도 알았으니 시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샘플도 확보되어 있고요. 어떻습니까, 김 박사? 이번 주 내로 그 건에 대해서 추가 보고서가 제출될 거라 기대하고 있으면 되겠지요?”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킹메이커의 이야기에 김성진은 소름이 끼쳤다.

누구에게 저걸 먹여서 경과를 관찰하라는 말이야, 도대체?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니면 이 일을 그만두든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김성진이 대답했다. 킹메이커는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논의를 계속 진행시켰다.

“자, 이제 실물을 볼 시간이군요. 김 박사,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이 자리에 준비하셨지요?”

김성진은 슬쩍 손목의 시계를 봤다. 세팅을 하라고 미리 약속했던 시각으로부터 5분여가 지났다. 지금쯤이면 놈들이 잠에서 깨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 회의실 뒤편을 봐주십시오.”

대답과 함께 김성진이 탁자의 버튼을 누르자 두꺼운 뒤편 벽이 문처럼 열리며 깨끗한 유리벽이 나타났다.

확― 뒤쪽 방의 조명이 일시에 켜지자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거벗은 네 마리의 괴물이 끔찍한 몰골로 김성진과 8인을 노려보며 유리벽을 향해 돌진을 해 대고 있었다.

괴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조금 인상이 달라지긴 했어도, 그들은 모두 조금 전 자료 영상에 찍혀 있던 해경들이었다.

그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 8인은 동시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앉았다. 으음, 하는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쿵―!

괴물들이 들이받을 때마다 유리벽은 작고 낮은 소리를 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괴물을 다시 튕겨냈다.

“특별히 제작된 15센티미터 두께의 아크릴유리입니다. 12톤의 충격에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혹시나 불안한 사람이 있을까 봐 김성진이 설명을 추가했지만, 그중 누구도 그런 것 따위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다들 처음 만나는 괴물의 움직임과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저 방의 산소 농도는 10퍼센트 이하입니다. 우리가 숨 쉬는 서울시의 절반 정도밖에는 산소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 감염자들은 그런 환경과 전혀 무관하게 활발히 움직입니다.”

교수가 손가락으로 김성진을 가리키며 농도를 더 낮춰보라고 했다. 김성진은 그의 말대로 산소 농도를 5로 내렸다.

동물들이라면 모두 질식사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지만, 괴물들은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힘과 속도로 벽을 뚫기 위해 달려들 뿐이었다.

킹메이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김성진을 향해 물었다.

“자, 산소가 없이도 잘 움직인다는 건 알겠고, 이제 신체 장기의 훼손에 얼마나 견뎌내는지 직접 실험을 해봤으면 싶은데, 저걸 어떻게 잡아서 고정을 시킵니까? 아주 미친 듯이 날뛰는데요?”

킹메이커의 질문에 김성진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간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감염자들을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것을 지금부터 재현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성진이 노트북을 조작하자 유리벽 너머 방의 천장에서 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10도, 5도, 0도, 영하 12도…… 벽에 걸린 전자식 온도계는 점점 더 낮은 온도를 표시해 나갔다.

그러나 실내 온도가 영하 35도 이하로 내려간 극한의 상황에서도 괴물들은 여전히 이쪽 편을 향해 아가리를 쫙쫙 벌리며 하얗게 성에가 낀 유리벽을 두들겨 댈 뿐이었다.

“남극의 기온에서도 쌩쌩하군그래. 내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인상 깊구만. 하지만 자네가 말한 건 저놈들을 안전하게 다루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나? 별로 변화가 없는데?”

인내심이 바닥난 교수가 김성진을 돌아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김성진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처음 한기에 대한 반응을 측정하면서 회의를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영하 55까지 온도를 낮추자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성진이 말을 마치자 때맞춰 벽 너머 방 안의 온도는 영하 55가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발광을 해 대던 괴물들의 움직임이 차츰 느려지더니, 마침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하하! 뭐지, 저놈들? 저 상태로 죽어버린 건가?”

괴물들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군복이 껄껄 웃으면서 물었다.

“아닙니다. 그저 외부에 대한 반응을 끊고 활동을 멈춘 것뿐입니다. 온도가 저보다 높아지면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낮은 온도에서도 얼어 죽지 않고 버틴다니, 그거 단순한 세균이 아닌 거 아니야?”

“예외적이긴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또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세균은 방사능 노출과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종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자면 스트레인 121이라는 박테리아는 섭씨 121도에서도 여전히 증식이 가능합니다. 미세한 차이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온도를 견디는 종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플라노코쿠스 할로크리오필루스 같은 박테리아들은 영하 25도에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균들이 발견될 때마다 이전의 기록이 경신됩니다.”

“한계 온도를 넘으면 어떻게 돼?”

“스트레인, 용어의 의미 그대로 변형이 일어납니다. DNA의 응집력이 떨어지고, 생체 분자가 브레이크 다운을 시작합니다.”

“그게 죽는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희한하구만. 영하 55도가 되면 활동을 멈추고, 그 이상이 되면 움직인다고? 대체 이유가 뭐야? 왜 하필 55도지? 극지에서 온 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교수가 물었다. 그 답은 아직 김성진도 알지 못했다. 조금 더 연구를 진행해 보겠다는 말로 얼버무린 뒤, 김성진은 벽을 닫아버렸다.

“그밖에도 신체 훼손에 얼마나 견디는지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맞지요?”

킹메이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자아, 그럼 이제 그 실험 영상을 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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