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금단의 회의 (1)
(3/449)
3. 금단의 회의 (1)
(3/449)
3. 금단의 회의 (1)
2021.09.03.
사내가 복수를 다짐하던 바로 그 시각, 식당에서 계산을 하고 나온 네 친구는 낡은 중고차 앞에 모여 서 있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아치형의 훈련소 정문이 보인다.
“아참, 유빈이 너, 안 다쳤지?”
보안관이 물었다. 유빈은 10센티가량 찢긴 셔츠 사이를 손가락으로 벌려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피는 안 본 것 같다. 아니, 근데…… 뭐, 그런 새끼가 다 있지? 경찰이 바로 문밖에 있는데 그렇게 칼을 휘두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암만 조폭이라도 그렇지…… 어휴, 젠장. 생각하니까 또 아찔하네…….”
친구의 한숨을 본 보안관은 또 흥분해서 이를 갈았다.
“그 양아치 새끼, 아까 경찰이 딱 십 초만 늦게 들어왔어도 아주 그냥 작살을 내놓는 거였는데.”
그렇게 말하며 보안관은 왼 손바닥에 자신의 주먹을 팡팡, 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세 친구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쳐 지난다. 그러다가 거의 동시에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웃어?”
“하하하, 누가 누구를 작살낸다고? 안 아프디? 자기가 다친 것도 몰라? 크크크.”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칼 맞았다고. 피가 질질 흘러. 작살을 내놓는 것 같은 소리 하네. 보안관, 너 완전히 녹슬었어, 이 새끼야.”
당황한 보안관이 오른쪽 팔뚝을 살피자 가느다란 핏줄기가 보인다. 칼에 베인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피가 내비치는 상처는 10여 센티. 깊지는 않지만, 길이는 꽤 된다. 흥분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 진짜 스쳤네! 아,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저런 허접한 새끼가 휘두르는 칼을 다 맞네. 아휴, 진짜 한 번만 더 마주쳤으면 딱 좋겠다. 아주 죽여 버리게.”
“어휴∼ 또 저런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슬슬 돌아가. 나도 입영해야지. 아까 못 들었어? 무단으로 안 들어가면 3년 이하의 징역이라잖아.”
진우가 보안관을 달랬다.
“후우∼ 그래, 내가 너를 봐서 참는다. 그럼 들어가자. 너 입소식하는 거까지는 봐야지.”
“아니, 아니, 저기…… 아까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고, 그럼 됐어. 너희가 차 타고 가는 거 내가 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아까 그 새끼들 중에도 몇 놈이 입영한다 어쩐다 하는 것 같던데, 그렇게 서로 자꾸 마주칠 일 만들지 말자고. 빨리 가서 작업반장님한테 차 돌려드리고 열심히 일해. 참, 미팅도 있다며.”
진우는 낡은 중고차의 지붕을 통통, 두들기며 웃어 보였다. 삼식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너 혼자 있을 때 저 새끼들이랑 또 마주치면 어떡하지?”
“야,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거는 걱정할 필요도 없어. 사방에 총 든 군인이 널려 있는데, 제까짓 놈들이 뭘 어쩌겠어?”
나름 납득이 가는 이야기라서 네 친구는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헤어졌다.
차에 오른 세 사람은 훈련소 정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는 진우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뒤, 속도를 높였다. 진우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얼핏 본 것 같아 다들 마음이 무거웠다.
“앞으로 거의 2년이 고스란히 남았네……. 진우, 어떻게 하냐? 어지간히 외로울 텐데.”
핸들을 잡은 유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뒷자리에 앉은 삼식이가 느긋하게 말했다.
“에이, 괜찮아. 금방 또 볼 텐데, 뭐. 우리가 면회 자주 가주면 되지. 그리고 다섯 달인가 지나면 휴가 나올 수 있다니까, 그때 화끈하게 같이 놀자.”
5개월이면…… 가을이네…… 라고 중얼거리던 유빈은 조수석에 앉은 보안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부터 그는 말없이 창밖을 보며 생각에만 잠겨 있다.
“어이, 보안관. 무슨 생각 하냐? 아직도 그 칼잡이 놈 생각하고 있어? 잊어버려. 그런 새끼 평생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어.”
“……그러니까 더 열 받지. 별 허접한 좃밥 같은 새끼한테 당하고 갚아줄 방법이 없으니까.”
아직도 분이 안 풀려 툴툴거리는 보안관을 달래며 삼식이가 말했다.
“참 쓸데없다. 그딴 것보다 여름휴가나 생각해라. 우리도 내년이면 군대 끌려갈 테니까, 이번 여름은 바닷가로 가서 진짜 청춘을 불태우면서 아주 뜨겁게 보내야지. 상상을 해봐! 비키니 입은 여자애들이랑 파도치는 백사장에서 뛰어노는 거야!”
삼식이의 말은 꽤 효과가 있어서 세 친구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야릇한 상상 속에 빠져들었다.
휘이이―
꽃향기를 가득 머금은 4월의 바람이 열린 창문 사이로 날아 들어온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날 네 친구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틀렸다.
그 흉터 진 얼굴의 칼잡이는 결코 허접한 좃밥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보안관과 운명처럼 다시 마주했다. 세 친구가 군대에 가는 일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진우도 휴가를 나오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으로…… 석 달 뒤 여름이 왔을 때, 해변에서는 더 이상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아주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더러운 침이 흐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서 있었다.
어느 초여름 새벽, 세상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버렸으니까.
***
문이 굳게 닫힌 커다란 회의실에는 김성진을 제외하고 총 여덟 명이 있었다.
그 여덟 명 모두 신문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말을 하는 것은 세 명뿐이고, 그것이 그들의 서열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나머지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아부의 웃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들의 충성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가벼운 질문과 농담으로 회의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세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막후, ‘킹메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거물이었다.
그의 왼편에는 가뜩이나 주름진 얼굴을 잔뜩 찌푸린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세간에서는 그를 현 대통령의 오른팔이 된 사람이라고만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것은 교수로서의 경력이었다.
국립대에서 20여 년을 교수로 지낸 그는 정재계의 많은 인물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김성진도 학생 시절에 그의 강의를 들은 기억이 있다.
한 자리 건너에 앉은, 군복을 입은 사내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다른 이들을 감시하듯이 노려보다가 아주 가끔 대화에 참여했다.
“깨끗합니다. 그럼.”
도청 감지 장치로 다시 한 번 회의실을 점검한 요원들이 이상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국가정보원장이 그들을 거느리고 나가며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문을 닫았다. 그의 보안 등급으로는 오늘 이 회의실 내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직접 습득할 자격이 되지 않았다.
달칵, 두꺼운 문이 닫히면서 저절로 잠기는 소리가 났고, 이제 방에는 정말 중요한 인물들만이 남았다.
그 회의실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은 프레젠테이션을 맡고 있는 김성진이었다. 비록 앞자리에 앉아 예의 세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는 권력이나 서열 따위와는 무관했다.
국방연구원의 보고자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한 김성진은 커다란 방을 위압감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사람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일개 안경잡이 박사에 불과했다, 아직까지는.
“슬슬 시작하지요.”
조용한 존댓말이지만, 킹메이커의 한마디에 회의실은 일순 고요해졌다. 교수 출신의 남자가 손가락을 휙휙 돌려 김성진에게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연구의 보고를 맡은 국방연구원 연구 교수 김성진입니다.”
간단한 인사말을 하는 것뿐인데도 중압감 때문에 혀를 씹을 것 같다. 안경을 고쳐 쓴 김성진은 발표대를 두 손으로 꽉 잡으며 배에 힘을 주었다.
“먼저 개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열흘 전, 그러니까 7월 3일 오전 2시 30분에 순시 중이던 속초 해경이 북위 37도 부근, 조업이 금지된 지역에서 표류하고 있던 5톤급 선박 한 척을 발견했습니다.”
“5톤급으로는 보통 뭘 하나?”
교수가 물었다.
“일반적인 소형 어선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징어 배 정도라…… 이런 말이겠군. 좋아, 계속 보고해.”
“네. 당시 문제의 선박은 동력이 꺼진 상태로 외등도 켜지 않고 있었으며, 해류를 따라 계속 북쪽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먼저 확성기로 1차 경고를 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해경은 경비정을 문제의 선박에 근접시키고 절차에 따라 나포를 시도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보실 영상은 그날 해경이 채증을 위해 비디오로 기록한 자료입니다.”
말을 마친 김성진이 리모컨의 스위치를 누르자 벽에 붙은 커다란 모니터가 켜지면서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양경찰입니다. 귀 선박은 지금 불법 조업 및 영해 침범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전 승선원은 지금 즉시 갑판으로 나와주십시오!”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누군가가 확성기를 통해 외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영상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 떠 있는 작은 어선 한 척을 비추었다.
천천히 떠가는 배를 서치라이트가 따라가고 있었다. 스테디 캠 기능이 부실해서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다.
경고 방송이 두어 번 더 반복되어도 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뱃머리에는 배 이름 대신 숫자가 적혀 있었다.
82―08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렇게 보였다. 경비정과 수상한 선박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해경들은 어렵지 않게 갈고리를 걸어 두 배를 연결했다.
“어쩌죠? 빈 배인가 본데, 그냥 나포할까요?”
“규정대로 해. 일단 수색 먼저 진행한다.”
‘네―!’ 하는 대답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은 해경 넷이 82―08호로 뛰어 넘어갔다.
“선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플래시를 비춰 선실 안을 살핀 해경이 보고를 했다.
“바닥의 창고를 열어봐! 보통 거기에들 많이 숨는다! 혹시 모르니까 엄호 준비하고!”
“옛!”
두 명이 고무탄 총을 겨누고, 다른 두 명의 해경이 갈고리를 이용해 창고 문을 들어 올렸다. 플래시로 아래쪽을 살피던 해경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리를 굽혔다.
“어, 저게 뭐지?”
“왜 그래, 김 경장? 누가 있어?”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안쪽 벽에 뭐가 작살로 고정되어 있는데, 움직입니다.”
대답을 마친 김 경장은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바닥에 배를 깔고 고개를 창고 아래로 들이밀었다. 5초쯤 지났을까, 엎드려 있던 김 경장의 하체가 미친 듯이 버둥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으악!”
김 경장의 발버둥은 더욱 심해져서 발작에 가까워졌다. 비명 소리에 당황한 동료들이 그의 허리와 다리를 잡고 창고 밖으로 끌어냈다.
“억? 저, 저게!”
주변의 사람들이 경악하는 탄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 경장을 끌어냈던 다른 해경들도 일그러진 표정으로 흠칫거려야 했다. 김 경장의 얼굴에는 상반신만 남은 미라가 달라붙어 있던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끊어진 척추가 덜렁거리는 몰골이지만, 쌩쌩하게 움직이는 두 팔로 김 경장의 머리통을 꽉 움켜쥐고 이빨로는 열심히 광대뼈 주변을 뜯어먹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야이, 씨발!”
동료 해경 하나가 개머리판으로 반 토막짜리 괴물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빠각! 빠각! 두 차례의 강한 타격에도 괴물은 여전히 희생자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으아악!”
얼굴을 물어뜯겨 피투성이가 된 김 경장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동료들은 이후에도 서너 차례 더 개머리판 찜질을 퍼부은 다음에야 겨우 반 토막 괴물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이런 개새끼!”
해경들은 갑판 위에서 뒹구는 괴물을 향해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괴물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몽둥이에 맞아 팔과 갈비뼈가 부러지는 동안에도 괴물은 해경들의 손과 다리를 물어뜯으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허리 아래가 끊긴 상태였는데도 기어 다니는 괴물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탕! 해경들은 결국 비상시에만 사용하도록 교육받은 총을 꺼내 발포했다.
퍽! 괴물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검은 피와 체액, 뼈가 사방에 튀어 날렸다. 그러나 총알이 박힌 뒤에도 괴물은 여전히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10여 분간 숨 막히는 혈투 끝에, 비상용으로 가져간 실탄을 거의 쏟아부은 뒤에야 해경들은 결국 괴물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머리가 부서져 뇌수를 쏟은 채 갑판에 축 늘어진 괴물의 시체는 끔찍했던 조금 전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상황 종료! 상황 종료!”
얼굴에서 피를 콸콸 쏟고 있는 김 경장을 부축하고 배로 돌아온 해경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물어뜯기고 할퀴어진 상처마다 피가 흘러나왔고, 일부는 구역질을 심하게 했다.
“부상자들 상태가 심각한가?”
지휘자로 보이는 해경이 다가왔다.
“정장님, 저게 대체 뭡니까?”
경비정으로 돌아온 해경 중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지휘자라고 해서 알 턱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보다 김 경장 상태는 어때? 출혈이 멎었나?”
“좋지 않습니다. 배에서 꽤 깊숙하게 물어뜯겼습니다. 의식도 없습니다.”
“이 경사, 헬기 지원 요청해. 위급하니까 서두르라 하고!”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무전이 송신되고, 다른 해경들이 김 경장을 바닥에 눕혀 상처에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할 때였다.
조금 전까지 미동도 못 하고 있던 김 경장이 벌떡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다가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섰다.
“어? 어?”
주변의 소리가 울리는 짧은 순간, 김 경장은 엄청난 속도로 카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악! 콰직! 여러 소리가 혼란스럽게 섞이고, 카메라는 흔들리다가 떨어져 바닥을 비춘 채 고정되어 버렸다.
탕! 탕!
총성과 비명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