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케이든은 그대로 엘렌의 뒷덜미로 손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촉.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았다.
촉. 촉. 몇 번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 뗀 그는 곧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완전히 포개었다.
부드럽게 입술을 쓸어내리는 말캉한 살의 감촉.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며 장난을 치던 그가 부드럽게 아랫입술을 쓸어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윗입술을 핥아 내리며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엘렌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장난기 있게 건드려오는 그의 탓에 쿡쿡 웃고 만 그녀는, 케이든의 목 뒤로 팔을 둘러 그를 제 품 안으로 당겼다.
그녀의 몸짓에 케이든이 픽 웃고는 혀끝으로 입술을 건드리며 더욱 짓궂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살짝 틈이 생기자마자 양 입술을 가르고 들어가 그녀의 치열을 건드리고, 그 너머까지 밀고 들어가 말캉한 혀를 감싸 올리고.
그렇게 서로를 삼킬 듯 숨을 나누던 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아쉬운 듯 혀끝으로 마지막까지 장난을 치던 그가 엘렌에게서 떨어져 나간 뒤 물었다.
“어찌, 충분했습니까?”
입술을 쓸어 올린 그녀가 말했다.
“음. 한 번 정도는 더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엘렌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케이든이 다시 그녀를 끌어안으려다 멈칫했다.
“이거 하라고 해서 또 냉큼 하면…… 나를 엉큼한 사람으로 보는 것 아닙니까?”
“음, 확실히 그럴 지도요.”
그녀가 웃으며 말하자 케이든은 결국 파핫,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게 사실인데.”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 * *
즉위식의 날이 밝았다.
식이 거행되기 시작하는 것은 11시.
태양이 가장 높게 뜨는 정오가 되면 황태자는 황제의 관을 수여받고 황제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한 장면을 위해 궁의 사람들은 새벽 6시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최종 점검을 위해 바삐 돌아다니던 엘렌은 갑자기 저를 찾는 소리에 의전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듣게 된 소리에 엘렌이 황당한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제가 말인가요? 무엇을요. 설마 황관을요?”
“예. 이 나라에서 전하께 관을 내릴 수 있는 건 각하뿐이라 말씀하시며, 전하께서는 반드시 이리 강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의전관은 태연히 대답했다.
황관의 수여 문제.
얼마 전 엘렌이 머리를 싸매고 찾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날은 저를 찾아온 케이든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을 치다가 뒤늦게 밤늦도록 자료를 찾아보고 있던 때였다.
한참 머리를 박고 찾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오더니 대뜸 ‘해결이 되었으니 이 이상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보고 있던 것들을 휑하니 치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이제부터는 의복과 음악 쪽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상은 신경 쓰지 못하고 부랴부랴 닥치는 대로 일만 했더니…….
의전관은 황당해하는 엘렌에게 케이든의 전언을 전했다.
“전하께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내게는 그대의 축복이 가장 거룩하고 큰 응원이니, 부디 온 마음으로 나의 치세를 축복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상입니다.”
“……세상에.”
엘렌은 낮게 탄식했다.
정말로 나를 전하의 위에 세우실 셈이야.
그녀가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움에 넋을 놓고 있든 말든 그다지 상관하지 않은 의전관은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녀들은 앞에서부터 줄줄이 옷이 걸린 행거를 밀고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을 피팅룸까지 천을 둘러 만들었다.
담당인 것 같은 시녀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각하. 전하의 지시로 제작한 예복들입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없으니 무례를 무릅쓰고 각하를 모시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잠시……!”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의전관은 평온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각하께서 숙지하고 계셔야 하는 절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전하께서 단상에 오르시기 전, 각하께서는…….”
* * *
수도의 사람들이 빼곡히 모인 중앙광장.
저희가 기다리던 황태자의 행차를,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마차의 군단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즉위식을 거행하기 위해 오는 황실의 마차와 그를 수호하는 기사들의 눈부신 행진.
황제가 오를 길에 도열해 높이 검을 치켜들고 있는 기사들과,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꽃을 뿌리는 아이들.
너도나도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그 사이로 울려 퍼지는 웅장한 황실 악대의 연주.
정오의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이곳에서, 오늘 그들의 황태자는 황제가 된다.
붉은 카펫 위를 지나가던 마차는 황태자가 스스로 걸어야 하는 계단 앞에 도착하자 비로소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성장한 황태자가 내려섰다.
은은하게 스스로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망토와, 고급스럽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가벼운 느낌은 아닌 재질의 옷감.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꽃들과 어우러지면서도 결코 그 화려함에 뒤지지 않는 그의 예장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했다.
사소한 장신구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은 섬세함은 그의 위엄을 돋보이게 해 주었고, 백성들은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저희들의 군주를 향해 함성을 내질렀다.
케이든은 백성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하나씩 계단을 올랐다.
하나. 하나.
계단을 밟고 오를 때마다 그는 저 단상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한 사람과 가까워졌고,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한 그는 저를 기다리고 있던 여인과 마주 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겁처럼 느껴지는 몇 초의 시간.
벅차오르는 가슴에 먼저 눈물이 고이고 만 엘렌이 입을 열었다.
“……경하드립니다. 폐하.”
“이 좋은 날 눈물이 뭡니까.”
떨리는 엘렌의 목소리로 그녀의 눈물을 눈치챈 케이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 엘렌도 굉장히 이상한 얼굴로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걸어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은 마침내 둘 사이에 사람 하나 정도의 공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발을 멈추었다.
“……나는.”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이 남은 평생을, 내가 섬길 이인 그대와 내가 살필 이인 백성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가 엘렌의 앞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며 앉았다.
영롱히 빛나는 황금의 관.
그는 엘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이 광경이, 그대의 눈이 닿는 이 모든 곳이 나의 것이며 나의 의무인 동시에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난 가진 것이 너무도 많아 그대가 감당해야 할 짐까지도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저를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에 엘렌은 또다시 울컥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 모습에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든 케이든이 그녀의 눈가를 훔쳐 주며 말했다.
“하지만 맹세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해 그대를 사랑하겠노라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있었던 우리의 시간을, 그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고.”
그가 닦아준 것이 무색하게도 엘렌의 눈가에서는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케이든은 굉장히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등을 들어 말했다.
“이 애틋함을, 이 감사함을. 이 기쁨과 환희를 평생 가슴에 품고, 그대를 귀히 여기며 살겠노라고…… 나는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손등 위에 내려앉은 경애의 키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엘렌의 손에 들려 있던 황관이 정오의 햇빛을 반사해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 위에 황관을 올려주었다.
묵직한 관의 무게가 머리 위에 느껴지자, 케이든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울 것 같이 눈썹이 하늘을 향한 얼굴로 바라보던 엘렌은, 곧 그의 손에 황제의 홀까지도 쥐여 주었다.
그것까지 모두 건네받은 케이든은 그대로 오른손에 홀을 쥔 채 왼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엘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았으나 그는 싱긋 웃기만 하고는 그대로 그녀의 손을 이끌고 앞을 향해 나아갔다.
단상의 맨 끝, 백성들과 가장 가깝고도 높은 자리.
그곳에 선 케이든은 만인의 앞에서 외쳤다.
“이스타지오의 이름을 이은 황제, 나 케이든 이스타지오는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빼곡히 수놓인 사람들이 마치 모자이크로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일렁였다.
그 광경을 보며 케이든은 소리쳤다.
“나의 백성과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나는 평생을 바칠 것이다. 나의 신과, 나의 백성과, 나의 연인 앞에 맹세하겠다. 이 맹세를 그대들의 앞에 증거하리라!”
피융―! 피융 피융―!
펑, 퍼버벙!
축포가 쏘아 올려졌다.
색색의 연기가 하늘을 가득 수놓고, 번영을 상징하는 꽃들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사이로 화려하게 흩날리는 꽃잎들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 시끄러운 가운데 케이든은 엘렌을 꽉 끌어안았다.
그녀의 귓가까지 고개를 숙인 그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그의 말을 들은 엘렌은 눈물이 흐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고, 부둥켜안은 두 사람은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사랑합니다. 그대의 평생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부디 내가 그대의 곁에 서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 fin.
@ZP 타싸X요게X공금갠소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