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덜컹. 덜컹.
철창이 쳐진 자그마한 수레에 지저분한 몰골의 사람들이 태워져 끌려갔다.
수레가 지나가는 길목에는 그 죄인의 최후를 보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에 화가 나 저마다의 말들을 외치고 있었다.
나라를 팔아먹다니!
우리 태자 전하를 죽이려 하다니.
너희들 잘 살자고 우리를 죽이려 해?
이 죽일 놈의 귀족들 같으니!
죄인들에게는 온갖 돌덩이와 오물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이송하는 병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고, 죄인들은 머리와 얼굴, 팔다리를 구분하지 않고 온통 얻어맞아 피와 오물들로 더더욱 지저분한 몰골이 되었다.
그렇게 다다른 처형장.
죄인들을 태운 수레의 철창이 하나씩 열렸다.
헤모니 바로크와 벨라테스 이스타지오를 필두로, 반역자 무리로 규정당한 수많은 귀족들.
병사들은 그들을 거칠게 빼냈고, 손발을 사슬로 구속당한 죄인들은 우당탕 쓰러지거나 얼굴을 바닥에 처박는 등 고통스럽게 땅으로 내려서기 시작했다.
오늘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스러질 그들은 병사들의 발길질에 하나씩 일렬로 자리에 섰다.
저희의 앞에 자리한 거대한 단두대를, 그들 모두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차라리 첫 순서가 되어 한 번에 모든 것이 끝나기를’.
모순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 그들이 바라는 것은 누구보다 빠른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
뒷 순서로 갈수록 날이 무디어져 한 번에 죽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늘어나는 시간만큼 고통은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들은 예정된 공포에 눈을 질끈 감았다.
형장 주위로 빼곡히 모여든 사람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던져댄 돌멩이가 형장으로까지 날아들었다.
죄인들을 이송해 왔던 병사 중 하나가 맨 앞에 있는 헤모니 바로크에게 다가갔다. 병사는 그의 뒷덜미를 냅다 잡아채었다.
“아윽……!”
“조용히 해!”
퍽, 병사에게 발길질을 당한 헤모니 바로크의 입가에서 쿨럭, 피가 섞인 침이 튀었다.
그의 뒷덜미를 잡아챈 병사가 그를 단두대의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는 헤모니 바로크를 무릎 꿇려 단두대의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의 상체를 앞으로 숙이게 해, 목을 걸도록 붙잡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이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쇄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칼날.
그것은 그대로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이의 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차례로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씩, 하나씩.
칼날이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울분이 해소되는 듯한 소리를 질렀고, 그들은 그렇게 스러진 꿈과 함께 환호와도 같은 함성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 * *
처형 이후.
긴장으로 팽팽해진 불온한 공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새벽의 공기는 제법 차가웠고, 케이든은 일어나 창문을 열고 뺨이 발갛게 얼도록 새벽바람을 맞았다.
부친인 헤지스 이스타지오를 보내는 날.
케이든은 멍하니 유리창에 서렸다 서서히 사라지는 뿌연 흔적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 * *
정갈하게 깎인 잔디 위로 하얀 비석들이 솟아나 있었다.
본연의 빛을 잃은 잔디밭.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그것들은 모두 선대 황족들의 묘비였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덩그러니 놓인 비석과 파헤쳐진 땅, 금사로 수 놓인 천을 씌운 관.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관이 매장될 묘 앞에 서서 망자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그렇게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노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고개 숙인 채 엄숙히 각자의 슬픔을 삭여냈고, 노래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꺼내어 읊는 듯 고요하고 슬프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의례가 끝나고 관이 준비된 비석 아래 흙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케이든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뚝뚝, 방울방울 아롱진 눈물이 아래로 떨어졌다.
엘렌은 그의 발치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드레스와 휠체어. 일어나서 그를 안아주기엔 무리가 있는 조건이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그를 한참 바라보던 엘렌은 살며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제 손바닥을 내준 그는, 처음엔 그저 그녀가 닿아오는 대로 둔 채 눈물만을 주룩주룩 흘렸다.
그러다 조금 지나서는 제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지…….
엘렌은 그렇게 제 손을 그에게 내어 준 채로 장례식이 끝나도록 가만히 그를 붙잡고 있었다.
계속, 그리고 계속.
눈물이 바닥나 마침내 그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 * *
해가 지고 장례 절차가 끝난 케이든은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의 뒤를 언제나처럼 모리스가 뒤따랐지만, 오늘은 그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전하. 괜찮으시면 저와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테리어드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엘렌이 말했다.
그는 발개진 눈가로 한숨 쉬듯 말을 내뱉었다.
“술이라…….”
피곤한 듯 눈꺼풀이 살짝 내려온 그가 중얼거렸다. 말끝에 여운이 남는 것이 퍽 술이 간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엘렌을 흘끗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술은 안 됩니다.”
“걱정되신다면 저는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하지요.”
천연덕스레 말하는 엘렌의 말에 그가 픽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혼자 마시는 술이 술이랍니까.”
“몇 명이 있든, 지나갈 것을 흘려보내고 웃는 데 필요한 것은 술이지요.”
엘렌이 냉큼 대답하자, 케이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제 입가를 만졌다.
울고 싶은 것인지 웃고 싶은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미묘한 모양새의 입술.
그런 그를 올려다보던 엘렌이 말했다.
“실컷 이야기하시고 편히 보내드리는 겁니다. 내일부터는 그 슬픔과 아쉬움을 모두 잊고, 다시 행복할 수 있도록.”
“…….”
“전하께서 술만 드시면 엉엉 우시는 건 이미 잘 아는 바랍니다. 그러니 새삼스레 부끄러워 마시고, 제게 전하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랬다. 그녀의 앞에서 추태를 부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케이든은 물끄러미 그녀를 보다, 이내 다시 픽 웃고는 휠체어를 끌고 있는 테리어드를 향해 말했다.
“내가 하지.”
테리어드는 갑자기 타인의 시중을 들겠다고 나서는 황태자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곧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는 자리를 완전히 비켜주었다.
다다른 방문 앞. 방문 앞을 지킬 모리스와 테리어드를 두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든이 허리를 굽혀 휠체어에 앉은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는 소파 위에 살포시 그녀를 내려놓고는 간단한 안줏거리와 술을 가져오라 지시한 뒤 저도 털썩 자리에 앉았다.
꼴꼴꼴. 시종이 가져온 잔에 술이 채워지고, 그는 그것이 채 희석될 틈도 없이 제 입에 털어 넣었다.
엘렌은 그 모든 행동을 그저 옆에서 지켜봐 주었다. 그렇게 두어 잔을 털어 넣던 케이든이 입을 열었다.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시작된 것은 그의 넋두리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제게는 의지 되고, 많은 것을 주신 좋은 분이셨단 말입니다. 누구라도 그런 아버지를 잃었다면 나처럼 상실감에 젖었을 겁니다.”
“예. 제게 또한 그런 것을요.”
엘렌은 비어버린 그의 잔에 다시 술을 채워주었다.
“길리언도…… 나름 좋은, 어릴 적 그와 난 나름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자연스레 형이라고, 우린 가족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그는 엘렌이 채워 준 잔을 또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탁자에 술잔을 탁 내려놓은 그가 그대로 술잔만을 응시하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원망스럽지만 내게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추억이라 부를 면도 있었고. 하지만 그것을 모두 더럽혀 버린 단 하나의 과오가, 그게 너무 커서…….”
그가 한차례 마른세수를 했다.
“나로서도 그들을 애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해도 되는 걸까. 내가 살아남기 위해 죽은, 혹은 죽인 이들인데. 내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할 자격이 있을까.”
“…….”
“혹은 이런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어쩌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방법을 나의 부족함으로 놓쳐 버린 것은 아닐까.”
엘렌이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으며 그를 불렀다.
“전하.”
저를 불러오는 그녀의 소리에 케이든이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렌은 그의 손을 살며시 붙잡으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참 다정하십니다. 그렇기에 그 모든 슬픔이 있는 것이지요. 어찌하여 내게 그리하였느냐며 내치기보다, 그들과의 좋았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다정함이 있는 사람.”
“…….”
“전하의 감정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화도 내고. 그리고 후련해진 가슴으로 황좌에 앉으시는 겁니다.”
그녀는 케이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전하께서 그런 분이시기에 절 사랑해 주셨고, 저 또한 전하를 사랑할 수 있었으니.”
엘렌은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촉.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
그래도 몇 번 했다고 당황하지 않는 그를 보며 엘렌은 웃었다.
“보세요. 익숙해지실 거랍니다.”
떨리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며 엘렌은 말했다.
“전하께서 원하실 때는 편히 울고, 웃고 싶으실 때는 웃을 수 있게. 전하께서 행복해지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전하의 곁에서…… 제가 눈감는 그날까지.”
그녀를 보는 케이든의 미간이 좁혀들었다가, 눈썹 끝이 이내 하늘을 향하며 그의 입꼬리가 떨렸다.
케이든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청혼을 해 달라더니…… 그대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런 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부담을 좀 드려보려 노력했답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제 생각을 하시면서, 제가 기뻐할 만한 최고의 청혼을 해 주세요.”
엘렌의 장난스러운 말에 그는 이내 무어라 더 대꾸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런 그의 등을 감싸 안은 엘렌은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충분히 슬퍼하세요. 지나가 버린 시간과, 만날 수 없게 된 이들에 대한 애도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