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어두운 밤길,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 한 대가 길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희미한 등불 빛에 의지해 달리던 마부의 눈에 멀리에서 무리 지어 있는 수많은 횃불이 보였다.
“어? 길에 웬 사람들이…….”
자세히 보니 웬 제복을 입은 인영들이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모양처럼 보였다.
“허어……. 사람이라도 죽었나?”
쯧, 혀를 한번 찬 마부는 마차를 통행이 편한 길로 돌렸다.
갑작스레 꺾는 마차에 안에 타고 있던 길리언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앞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사건이라도 난 모양입니다.”
“그래?”
그는 별생각 없이 다시 마차에 기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리언은 다시 들리는 마부의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켜야만 했다.
“어어, 사람이 너무 많은데?”
“……!”
“이거 아무래도 무슨 사달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입니다. 속도를 더 줄이겠습니다.”
“아니! 사람이 없는 길을 찾아라. 수상해 보이지 않게 속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예? 예!”
이랴!
마부의 채찍질 소리가 울렸다.
또각또각, 마차가 빗길을 달렸다.
바퀴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소리가 울렸고, 정비가 덜돼 튀어나온 가도에 걸려 차체가 덜컹거렸다.
삐이익―!
“거기! 멈춰!”
“안 돼! 멈추지 말고 달려라!”
길리언이 외치는 소리에 당황한 마부가 외쳤다.
“예, 예?”
“잡히면 너도 죽을 테니 달리라고!”
“히익!”
마부는 기겁해서 채찍을 내리쳤고, 말들은 흥분해서는 더욱 달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익―!
“저기다!”
“잡아! 쫓아가!”
두두두두,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거리에 진동이 울렸다.
길리언이 마차의 창을 열어 뒤를 확인했다.
뒤에 따라오는 병사가 생각보다 많았다.
“제길!”
그는 창문을 닫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선수를 치지 못한 거다……!’
그는 진즉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외쳤다.
“따돌려! 어디로 가든 상관없으니 잠시라도 저들을 따돌려야 해!”
“예!”
마부의 재촉에 말들이 한층 더 세게 바닥을 박찼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엇, 앞이 막혔습니다!”
마부의 당혹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길리언은 마차의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앞을 확인하고는 외쳤다.
“밀어!”
“못 밉니다! 바리케이드라고요!”
“제기랄!”
방향을 돌리지 못한 마차는 그대로 바리케이드를 향해 질주했고, 결국 굉음과 함께 처박히고 말았다.
“으아아악!”
콰앙―!
* * *
“오, 다녀왔나?”
늦은 시간이었지만, 크레센트는 잠들지 않고 클라우디스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크레센트의 침실에 들어가기 전, 클라우디스가 다시 한번 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고 있자 크레센트가 말했다.
“됐으니 빨리 들어와서 보고나 하지.”
그러자 클라우디스가 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는 문틈을 만져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결론만 얘기하면 맞는 것 같습니다.”
“맞다고? 그 골때리는 광산의 주인이 크렘벨이 맞나?”
“그런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황위에 관심이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자신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며 말을 꺼내 왔습니다.”
“그렇군. 큭큭.”
크레센트는 침대에 풀썩 앉으며 웃었다.
“재밌네. 아닌 척 뒤에서는 그런 일을 하고 있었어?”
클라우디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크렘벨 공이 말하길, 치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그 이유는 나중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준다고 합니다.”
크레센트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침대에 누워 말했다.
“그래. 알겠다. 조만간 한번 만나 봐야겠군.”
* * *
이상한 꿈이었다.
아내는 어딘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저택 앞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꿈.
자신의 것은 모두 스러지고, 원했던 것은 그 어떤 것도 손에 쥘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
그 선득함이 자신을 덮쳐 와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새카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목 뒤에 내려앉는 공기가 서늘해 부르르 떠는데,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곧 정신이 들었다.
“윽…….”
길리언의 잇새에서 신음 소리가 샜다.
어딘가에 부딪쳤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뿐만 아니라 열감이 있는 것이, 아무래도 머리에 상처가 났든지 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든지 둘 중 하나인 듯했다.
그렇게 머리에서 열이 나는데 몸은 또 춥다고 으슬으슬 떨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니, 길리언은 헛웃음이 났다.
“아……. 그래. 난 아내도 없었지.”
그는 반쯤 넋을 놓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얼마나 떨고 있었을까.
멀리에서부터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뚜벅. 뚜벅.
무거운 구두 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그의 사촌이자 배다른 형제인 케이든 이스타지오였다.
“정신이 드나 보군.”
길리언이 눈을 끔뻑끔뻑, 뜨다가 정면에 서 있는 케이든을 보았다.
“……유감이야, 길.”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보던 길리언은 그대로 눈을 감아 그를 외면하며 말했다.
“그래. 유감이군.”
“길.”
케이든이 말했다.
“대체 왜 그랬지? 뭐가 그리 불만이었던 거야.”
그가 따져 묻자, 길리언은 여전히 눈을 감아 그를 외면한 채로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됐군.”
“말 돌리지 마. 내가 널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참작할 수 있게, 무언가 변명이라도 해 보라고.”
하지만 길리언은 그의 말에 답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뱉어 냈다.
“처음, 네 모친이 릴리아 이스타지오였던 시점에서부터 결정된 일이었지.”
“어머니? 무슨 소리지?”
케이든이 반문하자 길리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름도 모르는 시녀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부터인가.”
“시녀라니……?”
중간중간 케이든은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들을 물어 왔지만, 길리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너는 황자가 되고 나는 공작의 아들이 되었겠지.”
쾅!
참다못한 케이든이 그가 갇혀 있는 철창의 창살을 쳤다.
“무슨 이야기를 두고 말하는 건지 똑바로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길리언이 반쯤 몽롱하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왜 굳이 반역 같은 것을 꾀했을까.”
“그래. 잘 알면 어서 똑바로 설명해.”
“예상외로 상당히 감정적이군.”
“방금 그게 무슨 소리인지나 말하라고!”
쾅!
그가 재차 감옥의 창살을 쳤다.
길리언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내가 굳이 그런 것을 다 가르쳐 줄 필요는 없지.”
“하.”
케이든이 답답한지 앞머리를 한번 쓸어 올렸다.
“중요한 말들은 이미 모두 들었잖아. 여기서 내게 윽박지르기보다 네 아비에게 찾아가 묻는 게 빠르지 않겠나?”
빈정대듯 말하는 그를 소리 없이 노려보던 케이든은 곧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됐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나, 물을 것은 없나? 네 계획이 어째서 이리되었는지……. 궁금하지는 않고?”
그 말에 길리언은 고개를 저었다.
“궁금해해 봤자 의미가 없다. 이제 나는 나아갈 길을 모두 잃었으니까.”
하지만 케이든은 그의 앞으로 바싹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난 전달해 주고 싶군.”
두 사람의 눈이 아주 가까이에서 맞붙었다.
“언제부터였을 것 같나?”
“…….”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을 것 같으냐고.”
“…….”
길리언이 대답하지 않자, 케이든은 허리를 숙여 그의 코앞까지 다가가 말했다.
“이 모든 게 크렘벨 부인이었던, 엘렌 크라이언트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그의 말에 길리언의 눈이 커졌다가,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군. 그래서였어. 정말 그럴 줄은 몰랐는데.”
“네 덕분에 내가 이긴 거지.”
케이든이 빙긋이 웃어 보였다.
“네가, 그녀를 놓쳐 준 덕에.”
“……너는 그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지. 너랑 내 위치가 뒤바뀌었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결국 여기에 서 있는 건 나지.”
케이든이 말했다.
“그리고 그 운이라는 기회는 따지고 보면 네게 먼저 갔어.”
“…….”
“그걸 제대로 붙잡지 못한 건 너야, 길.”
그의 일침에 길리언의 입가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움찔거리다, 픽 새는 듯한 웃음을 한번 뱉고는 말했다.
“……이거 보아하니 2황자도 아예 헛물켜겠는데.”
“괘씸한 동생은 내가 알아서 잘 치울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그건 좀 보고 싶은데 아쉽군.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광장에 목이 걸리나? 역사 속의 실패자들처럼?”
“그건 나중에, 상의 후 알려 주도록 하지. 무엇이 되었든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 정도는 주겠어.”
“그것 참 고마운 일이군.”
길리언은 그리 대답한 뒤 곧 다시 눈을 감았고, 케이든이 자리를 비우며 죄수 수감실에는 길리언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 * *
길리언 크렘벨 공작의 반역죄에 관해서는 모든 과정이 순탄했다.
귀족파 중 누구도 그의 무죄, 혹은 구제를 주장하지 않았고, 그것은 황제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트 후작은 헤지스에게 가 말했다.
이 기세를 타 ‘길리언 크렘벨’은 반드시 처형시켜야 하노라고.
이에 대해서는 제2황자인 크레센트 황자를 비롯하여, 트라이아 공작과 바로크 후작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말했다.
외려 그들은 감히 이런 시기에 황실의 안녕을 뒤집으려 했다며, 그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사지를 잘라 죽어서도 온전히 잠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의 체포를 망설임 없이 명령했던 황제는 정작 이 시점에 와서는 판결을 미루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지켜보던 포트 후는 제발 참수형을 해 길리언을 광장에 걸어 놓으라고 간언했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크라이언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의외로 가만히 있던 것은 케이든 이스타지오. 그에게 배신당한 황태자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헤지스는 계속된 간언에 부딪혀 말했다.
“끄응…….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는 깊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길리언 크렘벨을 데려가 충분한 심문을 해 모든 조직을 뿌리 뽑아라. 심문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일이 해결된 후엔 교수형에 처한다.”
당초 귀족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다른 결론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길리언 크렘벨의 처형이 결정되었고, 그 이야기는 온 수도에 파다하게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