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오세먼의 표정을 본 로이체가 말했다.
“확실히 향이 강하지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는 오세먼이 강렬한 향에 놀랐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원인은 그게 아니었다.
리암 오세먼은 남들처럼 손부채질을 하는 대신 곧장 고개를 숙여 음식의 냄새를 맡더니, 급기야는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로 음식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일련의 반응을 관찰하던 엘렌이 말했다.
“설명해 드리게.”
“네. 이 요리는 게와 키넛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키넛? 키넛이라고?”
멀찍이서 오세먼이 저 혼자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로이체는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로이체 외에는 모두들 눈앞의 신기한 음식에 정신이 팔려 오세먼의 이상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클라니가 물었다.
“키넛이라는 이름은 나도 처음 듣는데. 이 특이한 향이 그것인가?”
“예. 그 과육을 넣고 뭉근히 끓여 내면 이런 향과 맛을 내게 됩니다.”
“그렇군.”
오클라니는 그 말을 끝으로 스푼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신호탄이라도 된 듯, 사람들이 너도나도 세팅된 스푼을 들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끄럽게 저희의 평을 나누기 시작했다.
“냄새보다 맛이 훨씬 더 특이한데, 정말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게 맛이 있죠?”
메이의 말에 클라우디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먹어 보았습니다만, 이건 이 나라의 것이 아닌 것 같군요.”
그의 말에 엘렌이 말했다.
“어머, 예리하신데요.”
“아. 정답이었습니까?”
그의 물음에 엘렌이 시종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이건 퀴니시와 트리발로스 등지에서 재배되는 열매랍니다. 그곳에서는 키넛이라고 부르지요.”
그녀의 손짓에 주방장 옆에 서 있던 시종은 반으로 갈라 준비해 두었던 열매를 들어 보였고, 엘렌은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여러분의 요리에 들어간 키넛이랍니다. 그리고 이쪽에 있는 것이, 저 안쪽에 보이는 이 열매의 과육이지요.”
그녀는 옆에 유리돔을 덮은 채 세팅해 놓았던 접시를 가리켰다.
“저도 정말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건데, 제 입맛에는 맞았는지 이 독특함이 두고두고 생각나더라고요.”
그러자 클라우디스가 한 스푼을 입에 넣어 다시 음미하고는 말했다.
“확실히 이국적인 맛입니다. 퀴니시와 트리발로스라니, 과연 이스타지오에서는 보지 못했을 법하군요.”
“맞아요. 이 나라에서는 나지 않죠. 그래서 제가 손수 배를 보내 수입해 왔답니다.”
그러자 말없이 먹고 있던 호르세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건 크라이언트의 새 상품입니까?”
“네. 아직은 개시 전이지만요.”
그가 재차 한 스푼을 떠먹고는 물었다.
“개시가 언제지요?”
“최대한 빨리 진행해, 목표는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를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빨리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동생이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을 본 엘렌은 페리윙클 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사람들까지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신이 나서 말했다.
“앞으로 카라밀로를 통해 공급될 예정이랍니다. 수도 우선으로 보급될 예정이지요.”
그녀의 말에 클라우디스가 물었다.
“음……. 카라밀로를 통해서만 공급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카라밀로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커피 하우스에 가까운 살롱 아닙니까.”
“네. 다만 음료 형태의 상품뿐만 아니라, 키넛 열매 자체도 소량 카라밀로를 통해 공급이 될 예정이랍니다. 대중화는 어려울지라도 소수의 수요는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군요. 그 말씀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클라우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히려 저는 대중화까지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건 아쉽게도 물량 차원에서 불가능하답니다.”
“아……. 그건 정말 아쉬운 일이군요.”
하지만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혼자 웃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리암 오세먼이었다.
그는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노려보다, 고개를 들어 엘렌을 노려보는 것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엘렌은 시시각각 변해 가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며, 이번엔 자신이 더 빨랐음을 확신하고는 기분 좋게 미소 짓고 말했다.
“오늘 미식회에 참석하신 분들 중 키넛 열매가 필요하신 분이 계신다면 이 요리의 레시피와 함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호르세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는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엘렌은 싱긋 웃어 보였다.
“영애. 저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후작님께서도 아주 좋아하실 것 같거든요.”
“어머. 물론이지요, 아발란쉬 영애.”
너도나도 선물을 부탁하는 분위기 속에, 오클라니도 끼어들어 한마디를 붙였다.
“내 입맛에도 맞는군요. 그런데 이것을 음료로 만들면 어떤 맛이 되는 겁니까? 그것도 궁금한데.”
“아, 그건 여느 과일 주스들과 같답니다. 열매의 즙에 과육을 짓이겨 넣은 형태로 판매하게 될 거예요. 키넛의 과육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달거든요.”
그녀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메뉴 또한 디저트로 준비를 해 놓았으니, 그리 궁금해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디저트를 조금 빨리 가지고 나오는 것이 좋겠군요.”
엘렌이 뒤의 시종을 향해 손짓했다.
그녀의 손짓을 본 시종이 디저트를 가져오기 위해 곧장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오세먼은 혼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 속이 타서 뭐가 넘어가기나 하겠나.
“오세먼 공자께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으시는 모양이네요.”
엘렌이 그를 지명해서 말하자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느라 뒤늦게 주변을 알아차린 그는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그럴까 봐 준비한 다른 디저트도 있으니까요.”
그 말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알버트 호르세였다.
“다른 디저트는 뭡니까?”
“베니빈이라고, 독특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특징인 콩의 일종이랍니다.”
아무래도 알버트 호르세는 오늘 그녀가 준비한 것이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오늘 준비한 것은 이 베니빈을 섞은 초콜릿이지요. 단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 초콜릿 대신 커피나 우유와 섞은 것도 준비했답니다.”
그러자 메이가 눈을 밝히며 외쳤다.
“초콜릿! 정말 기대돼요!”
“아, 나는 단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달지 않은 메뉴로 부탁드리지요.”
“나는 궁금합니다. 두 종류 모두 시식해 보고 싶은데.”
사람들은 이런저런 주문들을 쏟아 내었고, 그날의 미식회는 생각보다 단맛이 강하다며 난색을 표한 로이체와 시종일관 얼굴이 굳어 있던 오세먼을 제외한 모두의 호평 아래 마치게 되었다.
* * *
배웅을 위해 1층을 돌아다니고 있던 엘렌은 오늘의 마지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바로크가의 마차를 찾았다.
‘어디 있지?’
여기저기로 고개를 돌리는데, 뿌듯한 얼굴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뒤로 제 마차가 오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클라우디스가 보였다.
오클라니 바로크는 있어 봤자 방해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그는 저 멀리서 다른 이들과 담배를 피우며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이 적기라 생각한 엘렌은 곧장 클라우디스를 향해 다가갔다.
제게 다가오는 그녀를 발견한 클라우디스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 하고 가는군요.”
“아니에요. 그건 제가 경께 드릴 말씀이죠.”
엘렌은 형식적인 말을 몇 마디 건네며 인사를 나누다, 주변을 한차례 살피고는 빠른 손동작으로 그의 손에 쪽지 한 장을 쥐여 주었다.
“이건……?”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엘렌은 그런 그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나중에 혼자 열어 보세요.”
그 의미심장한 말에 클라우디스의 얼굴이 굳었다.
“제물은 필요해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 경께서는 잘 아시리라 믿어요.”
그리 말한 엘렌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크라이언트 저택을 찾아왔던 마차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바로크가의 마차가 나갈 차례가 되자 저 멀리에서 오클라니가 발걸음을 옮겨 오기 시작했다.
엘렌은 그 방향을 한번 보았다가, 다시 클라우디스를 보고는 말했다.
“그럼.”
그녀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남긴 뒤 총총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혼자 남아 있던 클라우디스는 제 아비가 오기 전에 제 손에 쥔 작은 종잇조각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 쪽지에 들어 있던 것은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미신고 초석 광산 발견.>
그것은, 반역의 죄였다.
* * *
“어머니!”
리암 오세먼, 오세먼가의 장자는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제 모친을 찾았다.
층계참을 날 듯이 오른 그는 곧장 서재의 문을 열어젖혔다.
쾅!
여기에도 없고.
쾅!
저기에도 없었다.
집에서는 항상 서재나 집무실에 있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1층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리암?”
그의 모친은 생전 들어가질 않던 주방에 있었다.
“어머니!”
“벌써 왔구나. 어떻든? 그 계집은 콧대가 좀 꺾여야 하는데.”
오세먼 부인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녀는 그 집의 요리사들이 각각 만들어 내어놓은 음식들을 하나씩 눈으로 보고 맛도 보며 시식 평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을 본 리암은 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암담해져서는 말했다.
“어머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왜?”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묻는 제 어미에게 말했다.
“이 키넛, 이미 크라이언트는 시판 준비를 마쳤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