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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도장 찍으세요-54화 (54/128)

<54화>

“어, 하버!”

저희끼리 떠들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그를 발견하고는 불렀다.

“뭐야? 무슨 얘기 중이야?”

“학교 마차가 사고가 났다더라. 필립이 조퇴했었잖아. 돌아오는 길에 봤는데, 학교 마차가 엉망이 돼서는 길 한쪽에 치워져 있더래.”

“마차가?”

“응. 그런데 아까 외출 나간 엘시어가 아직 안 들어왔다더라고. 점호 때 없었대. 메이 소르본이랑 같이 나간 모양이던데, 그러면 사고를 당한 게 그 애들이 아니냐는 거지.”

“엘시어 크라이언트가?”

그래서 그 여자가 여기에 와 있었구나!

그제야 퍼즐이 짜 맞춰진 아이비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그 사건에 태자 전하께서 관심을 가지신 거야?

최근에 그 여자를 노리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하버?”

“아, 응.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괜히 나쁜 일은 떠들고 다니지 말자고.”

“엥? 네가 웬일이냐. 방금만 해도 무슨 이야기냐며 달려와 놓고선.”

“아, 그거야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을 때 얘기고. 어쨌든 난 간다.”

“그래. 그래라.”

등을 돌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디디며 걷던 아이비스는, 충분히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큰일 났어!’

이번에 자신들이 쳐 놓은 장난질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진 것이 분명했다.

* * *

“밀러!”

쾅!

그들이 자주 모이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찾았다.

“무슨 일이지?”

밀러 페리윙클이 거칠게 문을 젖히고 들어온 하버를 찌푸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큰일이야. 어제 우리가 만져 놓은 마차 있잖아. 그게 사고가 크게 났나 봐!”

“그래?”

“그리고 메이 소르본만 나간 게 아니라, 엘시어 크라이언트도 같이 갔다고……. 둘 다 아직 안 돌아왔대. 큰일 난 거 아니야?”

아이비스가 불안감이 번진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같이 모여 있던 다른 아이들도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에 페리윙클은 대놓고 짜증이 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크게 나서 뭐?”

“……응?”

“어차피 우리만 입 다물면 모르는 일인데. 크게 나서 뭐.”

그의 말에 아이비스는 자신이 본 것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그 사건에 크라이언트가 엮이면서 태자 전하께서 관심을 가지신 것 같아…….”

“전하께서?”

페리윙클이 진심이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아이비스는 손까지 살짝 떨며 말했다.

“응. 방금 전하와 크라이언트 영애 두 사람이 총장님과 같이 마차 보관소로 가는 것을 보고 온 길이야. 가면서 언뜻 마부가 어쩌고 접근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게 맞는 것 같아. 어떡하지?”

“어떡하긴.”

밀러 페리윙클은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 손을 휙 저었다.

“다들 입 다무는 거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희가 이렇게 내가 범인이오, 하며 떠들고 다니지만 않는 한 들킬 일은 없어. 알겠어?”

그는 그리 말하며 올리버가 서 있는 곳을 보았다.

“흐끅.”

“가만히 있으면 안 생길 일도, 입을 잘못 놀려서 생기고는 하니까. 다들 입조심하라고.”

사고가 크게 나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입 밖으로 내뱉은 그의 행동을 타박하는 말이었다.

그 반응에 올리버는 딸꾹질을 시작했고, 밀러는 한심하다는 듯 그 모습을 째려보았다가 그들이 있던 방의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 * *

교내 시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마차 보관소에 도착하자, 옆으로 남학생들의 무리가 왁자하게 웃으며 우르르 지나갔다.

그들을 흘끗 본 엘렌이 말했다.

“학생들의 사이가 아주 돈독해 보입니다.”

“아, 저 학생들이 유독 사이가 좋습니다.”

총장이 허허 웃고는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저희끼리 따로 동아리도 만들었지요. 부장이 페리윙클 군이라더군요.”

“아하.”

그 말을 들은 엘렌은 그들이 있는 방향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꽤나 활동적인 친구들인가 봅니다. 총장님께서 기억을 하고 계실 정도면요.”

“모든 학생이 그렇지요. 크라이언트 군도 검술 측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뛰어난 학생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엘렌과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 친구도 기사학부인가요?”

엘렌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그 남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오스틴 군 말이군요. 그렇지요.”

총장은 참 성실한 친구라며 오스틴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오스틴 군이 친구들도 잘 챙기며 학교생활을 한다고, 모든 교수가…….”

엘렌은 그런 총장의 이야기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반응이 수상한데.’

페리윙클과 친하게 어울리는 것도 그렇고.

‘이름은 확인했으니 나중에 찾아가 봐야겠군.’

“도착했군요. 저기가 마부들의 쉼터입니다.”

총장이 가리킨 곳에는 일렬로 서 있는 마차들과 그 중간쯤에 서 있는 작은 1층 건물이 있었다.

마침 그곳의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쉼터를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유심히 보더니, 다가오는 이가 총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빌리. 오랜만이네.”

“아니, 총장님께서 이 시간에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손님들께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고 하시어 내가 직접 모시고 왔네. 최근의 마차 신청 목록을 좀 가져오게.”

“마차 신청 목록 말씀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사내는 쉼터로 휙 뛰어 들어가 금세 하드커버로 된 기록장을 들고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명부를 펼쳐 보던 총장은 메이 소르본의 이름이 적힌 곳을 찾고는 말했다.

“여기. AK013은 누구의 마차인지 아나?”

“아, 그건 제 옆의 옆자리인 톰슨의 마차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사고가 났네. 톰슨은 죽었지.”

“오, 맙소사.”

갑작스레 날아든 비보에 마부는 멍한 얼굴로 감탄사만 뱉었다.

“그래서 묻는 말인데, 평소 톰슨은 마차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나?”

“어…… 글쎄요. 그건 저보다는 그의 옆자리를 쓰던 제인이 잘 알 겁니다. 마침 그 친구도 오늘 야간 근무인데, 제인을 부를까요?”

총장에게 의사를 확인한 남자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뒤로 돌아 외쳤다.

“어이, 제인!”

“뭔데!”

“잠깐 나와 봐! 널 찾는 분들이 계셔!”

그는 쉼터 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뭔데. 무슨 일인데.”

쉼터 건물에서 뒤통수를 긁으며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남자는, 곧 눈앞에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물을 것이 있어 왔네. 그대들 두 사람 모두 대답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야.”

“예. 말씀하십시오.”

굳어 있는 제인을 대신해 빌리가 대답했다.

“평소 마차의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자네들이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상은 어떻게 체크하고 그것에 대한 정비는 어떻게 하는지. 그런 것들을 말해 주게.”

“이상 체크야 저희들이 알아서 합니다. 몰다 보면 알게 되거든요.”

빌리가 얼른 대답하고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제인을 툭툭 쳤다.

“아, 예……. 그렇습니다. 수리야 저희가 행정실에 말을 전하면 그쪽에서 비용 담당을 해 주는 거고요.”

“마차 바퀴가 빠지며 마차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마부였던 톰슨은 죽었고, 학생 둘이 상해를 입었다. 이것은 관리 미스인가?”

“아, 톰슨이라면…….”

제인은 톰슨의 사망 소식에 얼굴을 찌푸렸다가, 곧 나오는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톰슨은 조금 어수룩한 면이 있던 친구였습니다. 이게 정비를 하려면 어찌 되었든 자기 마차는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 친구는 말을 몰 줄만 알지 마차는 잘 몰라서…….”

“그 친구라면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군.”

“예. 매번 제 것을 보면서 이것저것 알려 주기는 했었는데, 영 기억력이 좋지 않은지 매번 제게 물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저도 신경이 쓰여서 제 것을 볼 때 같이 확인해 주게 되더라고요.”

“그랬군. 그 친구는 평소 성실한 편이었나?”

“딱히 무엇을 어기는 것 없이 해야 하는 것은 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록부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예약 시간보다 늦은 적도, 불친절한 응대로 항의를 들은 적도 없을 겁니다. 마차 점검도 매번 제게 물어봐서 그렇지 제때 꼬박꼬박했습니다.”

그때 빌리가 끼어들어 말했다.

“그런데 사실 마차가 그렇게 파손될 정도였다면 꽤 전부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을 텐데, 그런 건 딱히 없었습니다. 저희도 오면가면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한번 훑어봤습니다만 딱히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듣지 못했나?”

“예. 매번 시간이 겹치는 게 아니니까요.”

“오늘 근무가 겹쳤던 이들을 확인해 봐야겠군.”

“아, 예. 근무표를 확인해 보시면 있을 겁니다.”

그때 엘렌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괜찮다면 나도 몇 가지만 묻겠네.”

“아, 예. 말씀하시지요.”

“마차에서 끼릭끼릭 하는 소리가 났다던데, 아이들이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한 모양이네. 이런 소리는 어찌 생각하는가?”

“아, 그건 직접 들어 봐야 알겠습니다. 소리라는 것이 사람마다 표현이 다 달라서…….”

마부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러면 이 주차장에는 평소 오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운행이 없는 때에는 다들 오늘처럼 쉼터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가?”

“아, 예. 그렇지요. 혹 그 말씀이 외부인이 접근해 마차에 손을 대기 쉬운 환경이냐 묻는 것이라면, 그렇습니다. 그사이에 누구든 올 수 있지요.”

“성실한 답변 고맙네.”

엘렌은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마부들에 대한 청취 조사를 끝냈다.

“나머지는 나중에 치안관이 오면 그에게 넘겨주면 되겠습니까?”

총장이 묻는 말에 케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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